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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과 노스탤지어의 감독 '신카이 마코토'

    JUNE JUNE 2010.05.29

    카테고리

    예술/문화

     

     

      

     

    - 빛과 노스탤지어의 감독 -

     

    신카이 마코토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생 시절, 상주하던 네트워크에 마치 유행처럼 그의 작품이 화제가 되었을 때였다. 일본의 유명 게임회사 '팔콤' 에서 오프닝 애니매이션을 만드는 엔지니어였던 신카이 마코토는 2000년 제 12회  DoGA CG 애니매이션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감독으로, 그리고 예술가로 데뷔를 하게 된다.  그의 등장은 어딘가 센세이셔널한 구석이 있었는데- 각본에서 작화, 감독, 제작, 성우 연기까지 모두 그 혼자만의 1인 제작으로 만들어졌었기 때문이었다. 애니매이션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 한번쯤 호기심을 가졌었던, 

     

    흑백의, 5분의, 아주 짧지만 긴 여운을 자랑하는, 단편 애니매이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 계절은 초봄으로, 그 날은 비가 왔다.

    주위는 비 냄새로 가득했고, 지축은 소리도 없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녀와 나의 체온은 세상속에서 조용히 계속 열을 빼앗기고 있었고,

    그 날, 그녀가 날 주웠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고양이다. "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 유유히 흐르는 가장 큰 맥락이 되는 두가지 키워드는 '성장 과 '고독' 이다. 그는 모든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한 소재를 정교하게 그려낸다. 신카이 마코토는 이 세상을 향한 애정을 듬뿍 안고, 현실을 따뜻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관조하면서, 어떻게 하면 가슴에 애잔함을 남기며 스며들 수 있는가를 잘 알고 있는 무척 똑똑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호흡과 함께 흘러 들어오는 아릿한 가슴저밈에 '어쩜 이럴까' 라는 탄식을 반복하게 된다.


    또한 그의 짙은 노스탤지어는 공상소설처럼 SF를 소재로 하는 작품에서 조차 거리의 정경과 인물 자체는 굉장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재와 설정을 골라 집음으로써, 아무리 스케일이 클지라도, 내용이 허황되더라도, 전체적인 시선과 온도의 포근함을 결코 놓치지 않게 한다.  예를 들자면, 그의 두번째 작품이었던-




    별의 목소리

     


     

     

     

     

     

     "있잖아. 난 말이야. 그리운 것이 너무 많아.

    예를 들면 여름을 적셔주는 시원스런 비라든가, 가을 바람의 내음이라든가, 봄 흙의 부드러움이라든가,

    한밤중 편의점의 평온한 분위기라든가, 교문을 나설때의 서늘한 기운이라든가,

    칠판 지우개의 냄새라든가, 소나기 내릴 때 아스팔트 냄새라든가-"




    우주와 지상으로 갈라진 두 소년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시공간 워프니 로보트니 외계인과의 전투 같은 어처구니없는 SF를 소재로 끌어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휴대폰은 녹색 액정의 구식 기계라든가, 그들의 대사를 우리의 유년기의 정서에 맞춘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엄청나게 초현실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미래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외계인과의 전투를 위해 중학생 소녀를 전투요원으로 뽑아가는 이 미래사회에서도 소년소녀들은 수험을 걱정하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다. 시간이, 장소가, 그 배경이 어떠하든-


    인간과 인간사이의,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리움' 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도일까?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 있어 기술적으로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빛' 의 활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거의 집착에 가까울만큼 '빛' 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작화법을 쓰는데, 그는 '빛의 효과' 를 극대화 시킴으로써 그림에 생명을 불어 넣고, 그의 작품을 그저 '애니매이션' 에 그치지 않게끔 만든다. 그는 빛으로 감정을 연출할 줄 아는 감독인 것이다.


    심지어 흑백으로 만들어졌던 그의 초기작,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서도 다채로운 빛의 구사로 표정이 풍부한 장면이 엿보였는데, 그의 이러한 '빛의 효과' 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세번째 작품,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에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지금까지의 그의 작품이 주로 '나레이션' 을 중심으로 한 서술적인 형태였다면,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부터는 좀 더 '영화' 다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2004년에 공개된 신카이감독의  최초의 극장용 애니매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발전된 작화 수준과 연출, 음악의 조화로 큰 호평을 받았던 이 작품은,  59회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의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누르고 수상을 거머쥔다. 


    별의 목소리에 이어, 이 작품 역시10대 소년소녀들의 '약속' 을 테마로한 SF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문학적인 표현들은 세걸음 정도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 속 대사 하나하나들이 구어체라기 보다는 문어체에 가까워서, 그림을 위한 대사가 아니라 대사를 위한 그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어디서 캡쳐를 하든 마치 한장의 일러스트처럼 모든 장면들이 완벽하게 느껴지는 것은.






     







    섬세한 감정묘사, 완벽에 가까운 배경처리, 무서울만큼 맞아떨어지는 음악과 서정적인 대사.

    '그리움' 에 대한 감정이, 마치 잔물결이 일듯이 끊임없이 흐르는데, 덕분에 보는 내도록 가슴 한켠이 울먹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첫사랑' 과 '짝사랑' 의 느낌이랄까. 가슴께가 아프도록 찡해오는 이 노스탤지어를 가장 저며오듯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은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가장 최근작이자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






    초속 5cm

      







    SF와 꿈을 오가는 그의 초현실적이던 세계관이, 초속 5cm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철저하게 현실을 강요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 중 초속 5cm는 감정이입도가 가장 높기도 하다. 유년기의 추억과 사춘기의 애틋함을 넘어,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 과정을 '노골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초속5cm.


    감독의 순정만화적 감수성이 그나마 이 세계를 반짝 반짝 빛나는 것마냥 느끼게 해줄 뿐, 기적도 운명도 우연도 없는 애니매이션 속 세계는 그야말로 냉철한 현실 그대로다. 인물을 제외한 모든 배경이, 너무나 치밀하게 사실화되어서 이게 그림인지 사진인지 헷갈릴만큼 사물을 정밀하게 그려놓았는데, 그래서 더 애틋하면서도, 잔인하게 느껴진다.




     






    시간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사회인이 된 모습까지 순차적으로 진행이 되는 가운데, 일상 속에서 유년기의 추억이 어떤 형태로 자신에게 남겨지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것이 반짝 반짝 빛나던 10대를 지나 점차 무채색의 일상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마지막 엔딩곡이 흐를 때 쯤이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고 싶어진다. 우리는 과거를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지만, 우리는 과거에게 무의미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제, 꿈을 꿨다.

     아주 옛날 꿈.

     그 꿈 속에서 우리는 아직 13살이었고,

     그곳은 온통 눈으로 뒤덮인 넓은 정원으로

     인가의 불빛은 한참 멀리 보일 뿐,

     깊게 쌓인 눈밭을 뒤돌아 봤을 때,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만이 남아있었다.

     




    그리움과, 그리움과, 그리움과, 그리움으로-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기다리고, 누구를 찾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찾아 헤맨다. 과거가 자꾸만 색깔을 덧입고 미화되어 추억을 유토피아로 남겨두는 것은, 마치 거기에 모든걸 잃고 온 것처럼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한 깊은 좌절을 불러일으킨다. 







     



    있잖아. 알고 있어? 초속 5센티미터래. 벚꽃잎이 떨어지는 속도.

    내년에도 같이 벚꽃 볼 수 있으면 좋겠네.

     




    돌아보면, 거기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돌아보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단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무서워서 돌아보기 힘들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더라도, 그건 진짜 없는게 아니야. 돌아보는 것이, 돌아보고 싶어하는 이 마음이, 바로 여기 있으니까. 이 마음이야말로 무슨 일이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확인하지 않아도 거기에 늘 있어주는, 진짜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워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살아있다는 축복으로 여겨야 한다.




     

     


     

     


    fin.
     




    ps. 그의 작품에는 감초처럼 고양이가 등장하는데,
    주인공들은 그 고양이를 한번씩 쓰다듬으며 '쵸비' 라고 부른다.
    '쵸비' 는 그의 출발점이기도 한,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의 주인공인 바로 그 고양이의 이름이라는 사실!


     

     

     




    진짜 fin.


    JUNE

    여행하고 글 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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