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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스타르, 보스니아 내전의 무게

    wAnderwoman wAnderwoman 2012.07.27

    카테고리

    유럽, 동유럽, 역사/종교




    MOSTAR, BOSNIA-HERZEGOVINA

     

     BY ROLLEI35



     

     

     

     

    1993년,

    태어난 해는 달라도 세상을 떠난 해는 같다. 묘비의 주인공들은 당시 많아야 나와 비슷한 또래였거나 대부분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이 곳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작은 마을 모스타르이다.

     

     

     


     

     

     


    1개의 국가 안에 2개의 문자, 3개의 종교, 4개의 언어 5개의 민족, 6개의 공화국 그리고 7개의 주변국가. 구 유고연방은 이렇게 '1234567'의 국가로 설명되었다. 이러한 혼재로 인한 불만과 불안들이 사회주의 붕괴로 한꺼번에 터져나오게 되며 '인종청소'까지 강행되었던 유고내전은 흔히 '보스니아 내전'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와 민족이 무엇이길래 이 수많은 젊은 목숨들이 희생되어야 했던걸까?

     

     

     

     

     

     

     

    91년에 시작된 내전은 이 아름다운 산골 작은 마을을 비켜가지 못했다. '스타리모스트' 다리를 경계로 이웃하던 카톨릭계의 크로아티아인과 이슬람계의 보스니아인들이 각 종교와 민족을 위한다는 이유로 싸워야 했다. 1993년 크로아티아 군이 스타리모스트를 파괴하면서 이 곳은 내전의 격적지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스타리모스트는 재건되어 평화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위 사진을 보면 오른쪽 산위 십자가는 내전 때 숨진 카톨릭계 크로아티아인들을 추모하기 위함이라 한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는 이슬람 모스크의 첨탑이 보인다. 그들은 마을 어귀에 "잊지 말자"는 다짐을 하고 있다.

     

     

     

     

     

     

     

     

     

     

     

     

    전쟁의 상흔들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스타리모스트가 있는 구시가지는 먼저 복구가 되어 전혀 다른 곳인듯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지만 시내로 들어오면 이런 건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나하나 셈하기도 어려운 포탄 자국들이 가득한 건물은 이제 빈 채로 버려져 있다. 그리고 이런 건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관공서와 공공시설, 개인의 상업시설은 복구가 되었다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비용 문제로 손을 댈 수 없다고 현지인이 알려주었다.

     

     

     

     

     

     

     

     

     

     

     

     

    그저 허술한 울타리를 쳐 놓구선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표지판을 걸어두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사람을 대신하여 풀들이 건물 틈새를 타고 자라고 있다.

     

     

     


     

     

     

     

    그들이 1993년을 잊지 말자 다짐하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만하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지만 지금은 이것마저 하나의 관광상품이 된 건 아닌지 약간은 씁쓸함이 없지만은 않지만, 나 역시 돌아보고 사진을 찍지 않았던가. 적어도 전쟁의 허무함에 대한 메세지를 잠시나마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양국의 국경에서는 다른 유럽과는 다르게 입국 심사를 받아야한다. 내전은 오래전에 종식되었지만 그들 사이에 골은 아직도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차들은 양방향으로 심사를 위해 늘어선다. 그렇다고 심사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잠시 버스가 국경에 대기하고선 양국의 경찰들이 차례로 들어와서 여권 검사를 한다. 그래도 그 동안 버스안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역사의 무게가 여전히 도시를 휘감고 있는 그들의 땅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남자를 보았다.

     

     

     

     

     

     

     

     

    보스니아를 떠나는 버스 차창 밖으로 길목 화단에서 꽃을 꺽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도대체 멀쩡한 청년이 왜 저런 짓을??' 이라 생각하고 스쳐가려는 찰나 그는 그렇게 꺽은 꽃을 등 뒤로 숨기고선 여자친구가 기다리는 차로 뛰어가는 것이다.

     

     

     

     

     

     

     

    1993년으로부터 20년. 묘지의 주인공들은 청춘의 나이 그대로 전쟁의 흔적들과 함께 머물러 있지만 보스니아 젊은이들은 그 속에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wAnderwoman

    없는 휴가 붙이고 붙여 세계 일주를 꿈꾸는 보통 직딩. 여행 결정은 충동적으로, 여행 준비는 다소 꼼꼼하게, 여행 수습은 다녀와서...! http://louiejung.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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