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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가 들려주는 삶의 향기, 박경리 문학공원

    이교 이교 2012.12.10

    카테고리

    한국, 강원, 예술/문화

     

     

    그녀가 들려주는 삶의 향기, 박경리 문학공원에 가다.

     

    '토지' 하나만으로도 한국 문학사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작가로 존경받는 박경리.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된 건 작가 박완서와 김훈의 책과 마치 국상처럼 치러진 그녀의 장례식 뉴스들을  통해서이다.  작가는 작품뿐만이 아니라 생전 그의 삶과 철학, 역사의식, 정치관등 수많은 요소들을 통해 읽히고 평가 받는다. 작가 본인이 일구어놓은 작품세계와 삶이 유리된 작가들은 문단에 의해 심지어 자신의 제자에 의해서까지 부정당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평범해 보이는 한 여성이  끊임없이 수 많은 이들의 입과 글을 통해 다시 살아나 기려지는 이유가 궁금했다. 과연 그녀의 삶은 어떠했고 작품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더 알고 싶었던 차에 기회가 되어 원주에 다녀왔다.

     

     

     

    박경리 문학공원

     

     

     

     

    원주시에 위치한 박경리 문학공원은 박경리 문학의 집과 함께 그녀의 옛집, 그리고 '토지'의 배경을 옮겨놓은 세개의 테마공원 <평사리마당, 홍이동산, 용두레벌> 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의 집은 작가의 작품세계와 작품들, 그녀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을 살필 수 있고, 작가의 옛집에선 그녀의 일상과 삶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먼저 박경리 문학의 집을 둘러 보게 되었다.

     

     

     

     

     

    5층으로 꾸며진 건물의 꼭대기층에선  16분정도의 영상을 상영하는데 작가의  인터뷰와 나레이션을 통해 작가의 생전 철학과 작품세계를 살펴 볼 수 있다.

    그녀는 말한다. "문학이라는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삶의 본질적인 걸 추구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존하는 것 이상의 소중한 가치는 없다" 라고.

    그녀가 이러한 본질적인 것들에 천착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영상 속의 고백과 해설사분의 설명으로 그녀의 삶에 다가가게 되었다.

     

     

     

    불합리한 배경, 고통을 삶의 질료로

     

     

     

    박경리의 본명은 박금이로, 1926년 10월 28(음)  통영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조혼상대였던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갔고, 성적마저 평범했던 수줍은 소녀는 아버지와 세상에 대한 소외감과 적개심을 독서와 시를 짓는것에 매달리며 달랜다.

    그녀에게도 행복한 시절은 찾아 오는데 일본으로 유학까지 갔다 온 부유한 지주의 아들과 결혼하여 남편의 직장인 인천에서 생활하던 시절이다.  이 시절 그녀는 집 한켠에 조그만 중고책방을 운영하며 딸과 아들이 태어나 평범한 한 여자의 아내로 딸과 아들의 엄마로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물들어 지낸다.

    그러나  행복한 시절도 잠시. 남편이 부역자로 몰려 숨을 거두고 얼마 있지 않아 세살배기 아들 역시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비극적인 삶.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연이은 불행과 절망을 질료로 삼아 자신만의 작품세계로 승화시킨다.

     

     

     

    삶에의 연민, 한의 미학

     

     

     

    "나의 삶이 평탄했다면 나는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삶이 불행하고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되었다."


    김동리의 부인이 진주여고 동문이었던 인연을 발판으로 추천되어 단편 '계산'이 1955년 8월호 '현대문학'에 실리게 되면서 '박경리'라는 이름을 문단에 알리게 된다.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고귀함마저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시대에 작가는 전쟁미망인이라는 약자의 신분임에도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녹록치 않은 현실과 맞서 가진것 없는 사람들의 부대끼는 삶을 성찰적으로 그려내기 시작했고 시대의 모순과 사회적 부조리를 파헤치는 작품들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4층 전시관에는 그녀의 다양한 작품들과 연혁들이 사진과 함께 여러자료들로 정리되어 있어 작품세계의 변천과정을 한눈에 알아보기에 좋았다. 1959년까지 주로 단편소설을 통해 주목받던 그녀는 196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장편 소설들을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내 놓은 '표류도',  '김약국의 딸들', '가을에 온 여인', '불신시대', '성녀와 마녀' 등은 작가의 입으로 토지를 내놓기전의 습작이라고 했을 정도로  '토지' 내놓기 위한 긴 과정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토지'에 남긴 업적이 너무나도 위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펴보면 각 작품의 개별적인 문학성도 빼어날 뿐만 아니라  '토지'로 나아가는 이 과정들을 알아가는 과정 역시 흥미로웠다.

     

     

     

     

    * 해설사분의 상세한 설명과 친절한 안내는 그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 '토지'

     

     

     

    망국의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시절까지 민족의 애환을 담은 작가의 대표작  '토지'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1969년에 시작된 작업을 1994년 8월 15일 새벽 2시에서야 끝을 보게 된다.

    1부가 단행본으로 나오자 평단은 찬사를 보낸다. “문단의 괄목할 만한 수확”(김동리), “문학사 희유(稀有)의 대작”(백철), “뼛속에 스미는 아픔”(황순원),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대하소설”(이어령) 같은 평가가 나왔다.

     

     

     

     

     

    25년간 작가의 문학 역량은 오직 '토지'에만 집중됐다. 작가는 69~72년 '토지' 1부를 ‘현대문학’에, 72~75년 2부를 ‘문학사상’에 연재했고, 1년여를 쉬고 7~78년에 ‘독서생활’과 ‘한국문학’에 3부를 마쳤다.

    집필 중 우환도 적지 않아서 1부 연재 중 유방암 수술로 오른쪽 가슴을 절제했고, 자신의 외동딸인 김영주 씨와 결혼한 사위인 김지하 시인이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며 그 뒷바라지마저 떠 안게 되었다. 80년 서울 정릉을 떠나 치악산 자락의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으로 이사하게 된 것도 자신의 딸과 손자를 위해서였다.

    3차례나 연재를 중단하는 우여곡절 끝에 '정경문화'와 '월간경향' 연재로 '토지' 4부(83년~88)를, 92년부터 문화일부에 5부를 연재, 94년에 이르러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 3층 전시관에서는 '토지' 관련된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1994년 8월15일 새벽2시 '토지'를 탈고한 뒤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토지」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핍박 속에 견뎌낸 우리 민족의 딱한 사정과 생명을 작가의 직관력으로 담은 것.” 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녀의 삶과 철학은 '토지'를 통해 집대성 되었고 ,  '토지' 속 인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삶을 살았다.

    '30여년이 지난 뒤에 작품의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토지'를 실감했다. 서러움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이었다. ... (중략) ...  고난의 역정을 밟고 가는 수없는 무리. 이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라면 이상향을 꿈꾸고 지향하며 가는 것 또한 우리네 삶의 갈망이다. 그리고 진실이다. ... (중략) ...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토지> 에 나오는 인물 같은 평사리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그리고 아저씨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인간의 향기뿐 아무것도 없다.'    ('토지'  2002년 판, 작가의 서문 중)

     

     

     

    '박경리'라는 삶의 향기

     

     

    * 문학의 집 2층에는 작가가 평소에 쓰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직할 것 , 문학을 하는데 있어서 치열할 것."

     

    평소 작가는 텃밭을 가꾸면서 화학비료를 일체 쓰지 않고 물자를 철저히 재활용하는 등 친환경적 삶을 몸소 실천했다. 갈 곳 없는 고양이들을 돌보며 생명을 아꼈다. 오랜 칩거 생활을 깨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을 만큼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10여년간 자신의 생명사상에 기반해 발표한 칼럼과 강연문을 묶어 산문집 '생명의 아픔' (2004)을 펴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텃밭을 가꿀때 쓰던 물품들이 많았고, 그녀의 성품을 보여주는 듯해서 인상깊게 다가왔다.

     

    그녀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걸 별로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한다. 다른 언어로 우리네 언어만이 지닌 정서들을 오롯이 옮길 수가 있을까 하는 걱정에서 였는데, 무슨 상을 통해서만 권위를 내세우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그녀의 올곧은 정직함이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문학의 집을 다 둘러보고 그녀가 살던 옛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작가의 옛집을 둘러보니 교자상 위에서 병마와 싸우며 원고지와 씨름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실제 삶도 수도승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세속의 명예나 비속한 것들에 현혹되지 않고 몰입하여 한자 한자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오체투지 하듯 텃밭을 일구며 온 몸으로 영혼을 갈고 닦았고, 자신의 작품으로 녹여 내었다. 그리고 노년에는 자신의 텃밭을 가꾸듯 후배작가들 역시 각별히 아끼며 후배들의 작품활동을 도왔다.

     

     

     

    버리고 갈것만 남아서 홀가분

     

     

     

    그녀는 2008년 5월 5일 영영 우리의 곁을 떠났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의 삶과 죽음을 기리게 만들었을까.

     

    이는 평생을 자신의 불행과 한을 승화시켜 삶을 냉철하게 직시했고, 통찰력 있는 작품을 통해  삶의 향기를 일깨워준 위대한 스승에게 바쳤던 헌사이다. 생명 있는 모든 들을 살피고 거두는 일에 헌신을 다한, 숭고한 영혼을 가진 시대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전 국민적 헌사 말이다.

     

    <토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으로 회자되는 월선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니 여한이 없제?” 정인(情人), 용의 채근에 “야, 없십니다” 라고 마지막 말을 내뱉는.

    그녀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여한 없는 사랑을 주고 떠났다. 그녀의 삶과 작품에 빠질 수록 여한 없는 삶이란 바로 작가 본인이 삶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 박경리 문학공원


    주소 :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토지길1 (1620 - 5번지)

    전화번호 : 033- 762 - 6843

    관람 및 해설시간 : 오전 10시 ~ 오후 5시  * 점심시간 12~1시

    휴관일  :  1월 1일, 설날, 추석, 매월 넷째주 월요일


    이교

    유쾌하고도 진중한 여행을 꿈꾸는 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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