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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

    경험주의자 경험주의자 2013.02.02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

    Buenos Aires, Buenos Aires





    부.에.노.스.아.이.레.스


    이 놈의 도시 이름 한번 참 길다.

    입에 잘 붙지도 않는 그 이름을 반복적으로 되새김질 하다보면 마치 땅고(탱고)의 음율 만큼이나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잊혀진 옛 사랑의 쓸쓸한 뒷모습처럼, 처음 맡았던 쓰디쓴 에스프레소의 초향(初香)처럼, 쌉쌀하게 가슴을 아리는 가을바람처럼 말이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오늘은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이다. 짐짓 화려하게 변모해가는 산뗄모 거리는 어느 여행자의 일요일 하루에 작은 파문을 선사한다. 하루아침에 표정을 바꾼 거리. 설렁설렁 매달려있는 낡은 간판 아래 낡은 돌바닥 위로 어제와 다른 낯선 풍경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것이 벼룩시장의 풍경일까? 황망스런 낯설음을 뒤로 하고 발을 디뎌본다. 내 의지와는 달리 헤매듯 거닐기 시작한다. 마치 길을 잃은 것 처럼.









    "너무 갑자기 모든게 변했구나."


    어제까지 마음에 홀로 담아둔 풍경들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니 괜히 상실감도 든다. 혼자 어제에 덩그라니 남겨진 것 같은 기분.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나름 질서를 유지한 채로, 좌우로 나뉘어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따라 나도 슬그머니 그 대열에 끼어본다.








    혹시나 길이라도 잃을까 내 앞에 걷고있는 사람을 기억하기로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누군가의 등 뒤로 내딛는 미행같은 걸음은 작게나마 배려가 필요하다. 급한 마음에 너무 빨리 디디면 앞사람과 부딪치게되고, 무언가에 시선을 빼앗겨 걸음을 멈추게 되면 앞사람을 놓치게 되니까. 만약 거리가 벌어진 것을 금방 눈치채지 못하고 앞사람을 떠나보내게 된다면 그것으로 이별이다. 아무리 잰걸음을 옮겨본다한들 이 많은 인파속에서 같은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으니.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작은 배려 한 조각. 적절한 거리 유지. 그래 그거라면 널 그렇게 떠나보내지 않았을텐데.  어쩌면 그 작은 배려는 사실 나를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넝마 조각 위에 진열된 골동품들은 나름 각을 맞춰 대형을 유지하고있었다. 초침, 분침이 다 떨어져나간 태엽시계를 어린아이 다루듯 애지중지 가슴에 품고 연신 광을 내고 있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꾸안또 꾸에스타? (얼마에요?)"


    그는 날 힐끗 바라보더니 물어봤던 가격 대신 시계의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무언가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이 시계의 역사라도 들려주는 것일까. 열성적으로 말을 이어가는 그는 내가 못알아듣겠다는 제스처를 취해도 전혀 굽힐 기미가 없다. 미안한 마음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참을 고개만 끄덕이다, 결국 옆에 놓인 팔찌 하나를 집어들었다. 너덜너덜 다 뜯겨져나간 보자기 귀퉁이에 놓여있던 팔찌는 여러색의 굵은 실을 꼬아 만든 것으로, 자못 튼튼해보였다. 아저씨는 내 선택에 조금 마음이 상하셨는지 안고있던 시계를 바닥에 거칠게 내려놓으신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보물 다루듯 했던 바로 그 시계를 말이다.


    내손에 들린 팔찌를 받아 손수 소매를 걷어 팔찌를 채워주시곤 작은 호흡을 내쉬듯 말했다. "비엔 (좋아)"


    길을 걷다보면 문득 복잡한 감정들로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그런 뜻밖의 순간이 찾아올 때면 으레 온몸이 무기력해지고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이 감정들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이름은 있는 것인지 가끔 누군가를 붙잡고 정의를 위탁하고 싶을 때가 있다. 명확하고 간결하게 진단해준다면 더욱 좋을텐데. 그러나 변화무쌍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 만큼이나, 이 감정에 대한 정해진 대답은 없을 것이다.











    INFORMATION


    * 산뗄모 벼룩시장 [San Telmo Market]

    매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벼룩시장.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이 다 모인다고 할 만큼 많은 사람들로 항상 분주하다. 생활용품부터 각종 기념품, 골동품이 즐비하고 거리악사부터 행위예술인들로 시장 곳곳이 화려하다.


    탱고의 고향이기도 한 산뗄모는 한 때 아르헨티나의 부유층이 거주하는 주거공간이었다. 그러나 1871년 황열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도시는 급격하게 황폐해졌다. 현재 이 곳을 다시 찾은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유럽 각지에서 온 이주민들이다. 덕분에 산뗄모엔 각국의 다양한 문화가 녹아있고 노동자들의 향수를 어느 곳보다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지역이 되었다.


    * 아르헨티나 이야기, 더 만나보기

    - http://getabout.hanatour.com/archives/category/america/argentina











    경험주의자

    창업가, 기획자, 여행작가 편의에 따라 꺼내드는 타이틀은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처럼 지극히 불안정하고 또 순수하다 2번의 스타트업 창업 속 직장인이라는 낯선 옷을 수 차례 입고 또 벗으며 줄곧 새로운 것에 목말라있다 개인저서 <저가항공 세계일주>를 비롯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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