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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의 슬픈 기억, 마드리드 아토차역 추모관

    Wish to fly Wish to fly 2013.04.20

     

    조금의 웃음과 소소한 감동을 던져주는 건축물이 있다면,

    태양의 힘과 땅의 진가를 상기시켜주는 건축물이 그곳에 있다면,

    나는 그 공간을 마주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떠나고 또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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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3월의 191명을 추모하다 [마드리드 아토차역 추모관]

     

    Do you remember 11th March 2004?

    지금으로부터 9년 전, 2004년 3월 11일.

    연이은 폭발음이 마드리드의 평범한 아침을 뒤흔들었다. 평화로운 출근 길, 다수의 시민을 노린 동시다발테러! 그 아침 마드리드의 아토차역은 아수라장, 아니 지옥이었다. 서 있던 열차, 그리고 폭발. 기차와 플랫폼을 가득 메웠던 마드리드 시민들의 비명과 아우성은 연이은 폭발음 뒤로 아스라이 사라졌다.

    그 날의 사건을 기억하는가. 2004년 3월 11일, 평화로운 일상을 깨뜨린 그 충격적인 사건을. 191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전 세계를 슬픔과 충격에 빠뜨린, 그 무자비한 사건을. 사실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서 접한 테러 소식이야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였기에 쉬 잊혀졌던 이 사건은, 그로부터 몇 년 뒤 스페인을 직접 밟은 내게도 소소하나 짙은 여행 기억의 일부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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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이 있은지 4년. 마드리드를 찾았다. 8월의 마드리드는 뜨거웠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여덟 시 반 이른 아침의 볕에도 땀은 줄줄 흘렀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과 그 심장 마드리드에서 태양의 힘을 실감하고 있었다.

    똘레도에 다녀오기로 한 날이었다. 마드리드에서 똘레도까지는 기차로 40여 분. 그 짧은 여정에도 삼엄한 보안 검색을 피할 수는 없었다. 국제선 비행기를 탈 때 만큼 삼엄했다. 2004년 3월의 그 사건을 상기시키기엔 충분한 일이었다. 4년 전 그 사건 이후로, 스페인에서의 모든 열차 탑승 전에는 이리도 강력한 보안 검색을 거치게 되었다. 슬픈 현실이었다. 짧은 여행을 떠나온 여행자에게도 이리 서글픈 경험일진대, 마드리드 시민들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Monumento de Estacion de Atocha

    - 주소 : 28045, Madrid, Espana

    - 가는 법 : 메트로 Atocha 역에서 바로 연결

    - 홈페이지 : http://www.buj-colon.com/projects/monumento-11m--madrid/

    - 건축가 : Estudio de Arquitectura Fam

    - 요약 : 스페인의 이라크전 참전에 대한 보복으로 이슬람 국제 테러단체인 알카에다가 자행한 2004년 마드리드 열차테러사건, 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관.

     

    * Monumento(Esp.) : 1. 기념비 2.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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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돌아온 마드리드.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마드리드 아토차역 추모관이 저기에 서 있다. 아무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어쩌면 무미건조할지도 모르게- 서 있다. 얼핏 보면 건축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구조물 정도로 보인다. 허나 저 무미건조함은 이 후에 경험하게 될 강력한 무언가를 위해 준비한 '백지' 같은 것임이 분명했다.

    마드리드 제 1 관문 아토차역으로 다시 들어가 추모관을 찾아 나선다.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기억하게하는 장소일지 경건한 기대감을 가지고 추모관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기념하고 있지 않은 한 공간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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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빈 충만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이런 것이었을까.

    말 그대로 텅 빈 공간이었다. 그 공간을 채운 것은 오롯이 빛나는 태양의 나라의 태양이었으니, 추모관이라면 으레 그러하듯,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을 거대한 조각상을 기대했던 이 진부한 건축학도는 뒤통수를 된통 얻어맞은 느낌으로 그 공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래 태양의 나라 스페인, 그리고 여기는 그 심장과도 같은 도시 마드리드였다. 마드리드를 살았던 191명의 시민을 기념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태양 빛이었다.

    고개를 들어 커다란 빛의 구멍을 올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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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나라의 문자로 그 날의 사건을 기억하게 하고 있다.

    분명 그 날의 그 사건은 어둡고 슬픈 기억이지만, 이 곳을 찾은 수많은 방문자들은 이 슬픈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면서도 내내 태양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픈 기억이지만 슬퍼하지만은 말라는 듯이, 그렇게 내내 태양을 보며 읽을 수 없는 그들의 문자를 읽어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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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CTORIA, 그리고 190명의 이름

    이 거대한 빛의 기둥을 마주하고 나오면서, 무심히 바라본 벽. 그리고 그 위에 무심한 듯 써 내려간 몇몇 사람들의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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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다름 아닌 191명 그 날 스러져 간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카를로스. 사라. 파블로와 엔리케...

    나는 그들을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지만, 그나마 읽을 수 있는 몇몇 이름을 읽어 내려가 보았다. 괜시리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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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돌아본, 빛으로 충만한 공간.

    건축가의 의도는 딱 들어맞았을 것 같다. 아무 것도 들이지 않고 오롯이 빛이 채워낸 공간. 사람들은 어설픈 조각상이 아닌, 마드리드의 태양과 191명 희생자의 이름을 기억해줄 테니까, 진지한 여행을 하고 있는 저들처럼 말이다.

     

    마드리드를 여행하는 당신, 아토차역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

    당시 나는 건축을 공부하는 건축학도였고, 똘레도에 가기 위해서라도 아토차역으로 걸음했어야 했다. 허나 굳이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건축에 관심이 없고 아토차역에서 기차를 이용할 일이 없다할지라도, 여기 아토차역 추모관을 그냥 지나치지는 말아 주시길. 우리가 여행하는 -밝고 찬란하기만 할 것 같은- 마드리드라는 도시에도 이렇게 슬픈 기억이 있음을, 마드리드 여행자라면 잠깐 상기해 볼 의무와 권리가 있을 터이니.

     

    이런 여행자에게 추천

    건축을 공부하는 건축학도 여행자.

    지나간 슬픈 기억을 상기해 보려는 여행자.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191명의 희생자의 이름을 되뇌어 볼 여행자.

     

    3월 11일을 잊지 마시길

    3월 11일은 슬픈 날이다. 2004년의 오늘, 마드리드 아토차역에서는 이름 모를 191명이 아스라이 사라져갔고, 2011년의 오늘,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강력한 지진 해일로 수를 헤아릴 수 없으리만치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다. 좋은 날들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내년 봄엔 한 번 쯤 기억해 주길. 이름 모를 희생자들을 한 번 쯤은 생각해 주길.

     

     

     

     

     

    Wish to fly

    건축이라는 것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의 경험으로 다시 건축을 하는 여행이 생활이고 생활이 여행인, 여행중독자입니다. http://blog.naver.com/ksn33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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