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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 시간이 멈춘 골목을 기웃거리며

    JUNE JUNE 2013.06.13

    카테고리

    전라, 역사/종교

     

    시간이 멈춘 골목을 기웃거리다

    과거로 떠나는 여행,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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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으로 떠난 이유 

    낡은 것들에는 고유의 바랜 빛깔이 있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뚝심으로 지켜오면서 닳고 마모된 빛깔이 말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태어나 단 한 번 본적 없는 낯선 사물에도 '낡음'이 있으면 짝꿍처럼 '향수'가 뒤따라 온다. 어딘가 먼 곳에서, 희미한 온기를 띠며, 밑바닥부터 뭉근히 데워져오는 이 그리움의 정체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나는 군산에서 낡은 골목을 기웃거리며, 생전 처음 밟는 그 땅에서 또 다른 그리움을 깊이 들이마셨다. 80년대, 아니 어쩌면 조금 더 먼 시간대에 머물러있는 듯한 그 거리는, 구석구석 눈길 닿는 곳마다 보드라운 즐거움과 더불어 따뜻한 그리움을 선사해주었다. 

     

    전라북도 군산

    이곳을 '여행'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은, 좁은 골목을 가르며 위태롭게 뻗어있는 철길 마을 사진. 그 한 장이었다. 이런 곳이 아직 우리나라에 남아있구나, 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여행 동기는 군산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 들을 수록 (맛있는 것이 많다거나, 군산에서 가까운 섬 선유도가 예쁘다거나) 토닥토닥 살을 찌워갔고, 햇살 찬란하던 5월의 어느 날 드디어 내 등을 떠밀었다. 군산으로 향하는 무궁화호 기차를 잡아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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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으로 가는 길

    서울 용산에서 출발한 호남선 무궁화호. 더 편리한 시간대에 새마을호도 운행하긴 하지만, 좀 더 기차여행의 운치를 만끽하고 싶은 생각에 무궁화호를 타고 떠났다. 이른 아침 출발로 피곤했던지라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졸다 깨기를 수 차례. 기차의 얕은 흔들림이 요람처럼 편안하게 느껴질 무렵, 문득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겨운 색채로 물들었다. 

    빌딩 숲에서 간신히 숨쉬며 살아가느라 평소 쉽게 만날 수 없는 구수한 풍경이 스치니, 이제야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설렘이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무궁화호 기차조차 오랜만이다. 항상 귀향길은 KTX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기차를 타고 3시간 30분, 작고 아담하지만 깔끔한 군산역에 도착했다. 

     

    INFORMATION

    +) 용산 <-> 군산 운임비 : 무궁화호 성인 13,900원  / 새마을호 성인 20,700원 (2013년 5월 기준)

    +) 무궁화호를 타든 새마을호를 타든 이동시간은 큰 차이가 없다. 대략 3시간 ~ 3시간 30분 가량 소요된다.   

    +) 기차 예매 : http://www.korail.com/

     

     

     

    여행지로서의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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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대한민국 지방도시로 생각했던 군산이, 알고보면 흥미로운 비밀을 품고있는 매력적인 여행지라는 사실이 말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참고했던 '군산 문화관광 홈페이지(http://tour.gunsan.go.kr/)'에서 제안하는 테마여행만 해도 4-5가지. 취향에 따라 스타일에 따라 군산을 바라보는 각도도 달라진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바다를 땅으로 바꾼 역사적인 현장, 새만금을 중심으로 군산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는 '새만금 도시여행',
    근대사의 흔적이 먼지 더께처럼 쌓여있는 골목을 쏘다니며 과거를 좇는 '근대 문화유산 여행',
    서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손꼽히는 선유도를 향해 바다 나들이를 떠나는 '고군산군도 유람여행',
    제주의 올레길처럼 아름다운 군산의 풍광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구불길 도보여행',
    '탁류'의 채만식 선생과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고은 선생의 자취를 만나보는 '문학기행'. 
    그 뿐이랴. 군산 곳곳에 숨어있는 맛집을 발굴하는 재미까지 있으니... 취향따라 테마만 잡아도 군산의 매력을 다채롭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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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제국 시절의 세관 건물로 1908년 독일인에 의해 설계되고 지어진 '옛군산세관'

     

    싱그러운 5월의 기운과 함께 타박타박 오솔길을 거니는 '구불길'도 굉장히 매력적이었지만, 이번에 내가 선택한 군산 여행의 테마는 바로 '근대 문화유산 여행'이었다. 옛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일까. 사연을 숨기고 능청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물건들을 보면 호기심이 동해 어쩔 줄 모르는 편인데, 이번에도 거리마다 태연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는 낡은 건물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지도 한 장 손에 들고 과거를 찾아다니는 여행. 흔히들 말하는 '역사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이런 것 아닐까. 

     

     

     

    군산 근대 문화유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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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군산 근대 문화유산 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째서 군산에 이런 과거의 흔적들이 남아있게 된 것인지 그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로부터 한반도 최대의 곡창지대였던 호남평야. 그 세곡이 모이는 곳이 군산이었기에 이곳에는 조세인 쌀을 쌓아두는 창고, 군산창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병력기지인 군산진이 설치되어 경제 군사적 요충지로 성장하였다.

    쌀이 모이는 풍요로운 땅 군산. 그렇기에 1899년 5월 1일 군산항 개항을 맞이하면서 일제로부터 쌀 수탈을 위한 거점 항구가 된 것이다. 일제는 해안일대에 조계지를 설치하고 군산을 '관리'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로 인해 풍요로운 땅이었던 군산은 약탈의 중심지로서 왜곡된 역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군산에 남아있는 일본 문화의 흔적은 바로 그러한 배경을 등에 업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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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자, 이제 본격적으로 떠나볼까? 먼저 근대 문화유산 기행을 떠나기 전에 군산역 관광안내센터에서 근대 문화유산 탐방 지도를 받아두면 요긴하다. 지도가 정밀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 건축물이 모여있는 방향을 가늠하기 쉬우며, 간략한 설명이 곁들어져 이해에 도움이 된다. 

    지도를 살펴보니 근대 문화유산은 군산의 장미동과 월명동 일대에 밀집해있다. 맛집으로 소문난 장미칼국수도 맛 볼겸 먼저 장미동을 향해 택시를 잡아탔다. 장미동은 꽃같은 이름과는 달리 속뜻은 '장미(藏米)' 즉 쌀을 저장한다는 뜻으로, 과거 쌀 곳간이 많았던 것에서 유래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과거의 곳간을 개조하여 현재는 문화예술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 장미동의 근대 문화유산 거리는 군산 구불길의 '탁류길'에도 해당하는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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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시작은 구 조선은행. 일제강점기 군산을 배경으로 쓰인 채만식 선생의 '탁류'에도 등장하는 곳이다. 군산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로 조석총독부의 직속금융기관 역할을 했던 곳이다. 1922년 준공된 건물로서 국가등록문화재 제 374호에 해당한다. 

    장미동은 군산내항 근처로, 이처럼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주요 공사(公社)들이 모여있다. 구 군산세관이나 구 군산 제3청사 건물도 남아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도 가까우니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군산 근대사를 일목요연히 만나볼 수 있게끔 잘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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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흥동 일본식 가옥 내부 

     

    이번엔 월명동으로 가볼까. 달이 빛난다는 뜻의 월명(月明)동은 과거 일본인 지주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가옥이 많이 남아있다. '히로쓰 가옥'으로 이름난 신흥동 일본식 가옥 역시 이름은 신흥동이지만 월명동에서 가깝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당시에도 큰 규모였던 '저택'으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내부까지 돌아볼 수 있다. 삐걱이는 낡은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 2층 창문으로 아담한 정원을 내려다보니 마치 흑백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 기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실제로 이곳은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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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유일한 일본식 사찰 '동국사'

     

    동국사 역시 역사의 현장이다. 일단 위치부터가 독특하다. 보통 우리나라의 사찰은 핍박과 전쟁을 피해 산으로 산으로 거처를 옮겨, 대부분 깊은 산 속 암자처럼 위치해있다. 그러나 이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는 군산 시내 한 가운데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입지조건만 봐도 대략 짐작할 수 있듯 이 동국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조동종 승려 '우찌다' 스님이 포교를 위해 자리잡은 곳이다. 고까운 눈을 치켜뜨고 사찰 내로 들어가자 거대한 비석 하나가 눈에 띈다. 제목이 '참사문'이다.

    우리 조동종은 명치유신 이후 태평양 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해외포교라는 미명 하에 당시의 정치권력이 자행한 아시아 지배 야옥에 가담하거나 영합하여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인권을 침해해 왔다. (...중략)

    이 참사문 비석은 패망 후 처음으로 일본인 스스로 한국에 세운 사죄의 뜻이라고 한다. 그렇게 우리 땅에 어울리지 않는 낯선 색채의 이 사찰이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이곳 군산에 남아있는 것이다. 동국사 역시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내부에는 불상과 함께 동국사가 소유하고 있는 근대사 유물들도 만나볼 수 있다. 

    한가지 더. 이 동국사는 시인 고은 선생이 출가한 절이기도 하다. 동국사로 가는 길목에 고은 시인의 작품들도 같이 만나볼 수 있으니 찬찬히 머물며 음미해보는 것도 좋겠다.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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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나를 군산으로 이끈 장본인, 철길마을. 끝없이 황량한 철길이 늘어서 있을 것만 같던 상상과는 달리, 실제로는 30분 남짓이면 왕복할 수 있을만큼 짧다. 그렇지만 낡은 판잣집이 조각처럼 엮여있는 가운데 아슬아슬하게 철길이 놓여 있는 모습은 내가 상상한 그대로였다. 소박하여 정겹지만 치열하여 서글픈 삶의 때가, 잔뜩 눌어붙은 건물들도 이제는 주민 대부분이 떠나 썰렁한 분위기다. 개보수 없이 버려진 채 세월만이 철길 위를 흐르고 있는 이곳. 

    이 철길은 군산역에서 페이퍼코리아 회사까지 원자재 및 제품을 실어나르기 위해 다소 강압적으로 놓인 것으로, 정식 명칭은 '페이퍼코리아선'. 약 2.5km의 길이다. 1944년 개통 이래 21세기로 접어든 2008년까지도 기차가 다녔다고 한다. 당시엔 매일 기차 시간에 맞춰 철길에 걸쳐놓은 가재도구를 부지런히 옮기는 주민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고. 이제는 기차도 떠나고 주민도 떠나 침묵을 지키고 있는 곳이지만, 그 모습 그대로 박제된 듯한 모습 덕분에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굉음과 함께 기차가 선로를 가로지르던 그 때의 풍경을 떠올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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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햇살 내리쬐는 철길마을을 선로따라 타박타박 걸어본다. 이곳에서 고달픈 삶을 살았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상상해본다. 선로 위에서 잡초처럼 자랐을 아이들의 모습도. 지금은 쓸쓸한 풍경이지만 당장에라도 창문 너머로 와글와글 이야기가 쏟아져나올 것 같다. 정다운 그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군산의 오후를 이곳에서 보냈다. 

     

     

     

    시간이 멈춘 골목을 기웃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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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부리지 않은 소박한 간판에 정직한 글씨체로 쓰여진 '한약방'이 정답다.

     

    새만금, 부잔교, 동국사, 일본식 가옥, 철길마을, 해망굴... 각자 이름표를 달고 있는 굵직한 볼거리 외에도 군산은 도시 자체가 박물관같아서 골목골목이 흥미롭다. 개발에 재개발까지 바쁘게 거듭하는 대도시와는 달리, 변화가 느린 이곳의 시간은 멈추었거나 더디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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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용접'가게. 이곳도 장사를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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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낡은 타이어 가게와 함께 거리를 지키고 있는 노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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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슨 간판이 인상적이던 장미 레스토랑. 과거 유행한 '경양식'을 팔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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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도 옛 건물들을 보다보니 오히려 세련된 것처럼 느껴지는 코리아나 볼링센타. 간판의 빈티지한 글씨체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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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의 손때가 묻어 더욱 멋스러운 집 

     

    여행을 거듭할 수록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에 더욱 정이 가고, 그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캐낼 때 마다 광부의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군산은 정말이지 그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이었다. 평범한 표정 아래 숨겨진 특별함은 걸으면 걸을 수록 서서히 드러났다. 게다가 그 특별함에는 시대를 공유하지 않았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따스한 향수가 있었다. 빠른 시대의 흐름에 숨이 가쁠 때는,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옛것들을 돌아보는 것이 큰 위로가 되는 법이다. 군산의 느리고 따뜻한 숨소리를 들으며, 나 역시 모처럼 느리고 따뜻하게 걸을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INFORMATION 

    +) 군산 문화관광 홈페이지 : http://tour.gunsan.go.kr/

    +) 주요 볼거리 주소 

    -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23

    - 구 군산세관 본관 :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49-38

    - 동국사 대웅전 : 전라북도 군산시 금광동 135-1

    -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 전라북도 군산시 신흥동 58-2

    - 군산 해망굴 :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동

    - 근대역사박물관 :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1-67 

    +) 경암동 철길마을 위치 : 군산 이마트 건너편 (택시가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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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 시간이 멈춘 골목을 기웃거리며 - END

     

     

     

     

     

    JUNE

    여행하고 글 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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