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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우의 뿔을 찾아라,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

    Wish to fly Wish to fly 2013.07.29

     

    투우의 뿔을 찾아라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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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에서 일주일을 ; 알랭 드 보통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의 현대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깔끔하게 포착할 수 있는 어떤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공항밖에 없을 것이다. 온갖 소란과 교차 속에서 아름답고 흥미롭게 펼쳐지는 공항 풍경은 현대 문명의 상상력의 중심에 자리한다. - 공항에서 일주일을 ; 알랭 드 보통

    그의 말대로 공항은 그런 곳이다. 현대 문명의 끝을 보여주는 장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상상력의 집합체. 공항은 하나의 건축물이기 이전에, 24시간 숨을 쉬는 거대한 생명체이자, 쉬지 않고 돌아야 하는 육중한 기계다.

     

    하지만, 그저 스쳐 지나간다면

    여행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공항일랑 그저 하릴없이 지나쳐야 하는 관문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에도 부스 안 아주머니와 눈 인사 정도 할 여유는 있었다. 그러나 편리함과 빠름이라는 목표 아래 그 통과는 점점 더 간소해지다 결국 휭~하고 최대한 빠르게 지나가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공항도, 많은 이들에게 그런 장소가 되어버렸다. 첫 여행의 설렘, 육중한 쇳덩어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데 대한 벅참 따위는 사치의 감정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그저 스쳐 지나간다면. 어떤 도시의 관문이자 얼굴인 공항을 그저 귀찮은 통과의례처럼 스쳐 지나간다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보통 씨가 말한대로 공항은 현대 문명이 상상력 그 중심이고, 공항이 자리한 나라와 도시의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끊임 없이 고민한 결과물이자, -여행을 사랑하는 나와 당신에게는- 여행의 시작과 끝이 있는 장소, -건축을 꿈꾸던 나에게는- 현대 건축의 집합체와 같은 것이니, 어찌 그저 빨리 빠져나가 공항철도를 타야 하는 장소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

    주소 : Avenida de la Hispanidad, s/n 28042 Madrid, Spain

    가는 법 : 크게 두 가지. MAD행 티켓을 끊거나, 마드리드 시내에서 METRO를 타고 8호선 Aeropuerto T4 역에서 하차.

    홈페이지 : http://aeropuertomadrid-barajas.com

    건축가 : Sir Richard Rogers

    요약 : 스페인의 관문이자, 마드리드의 관문 바라하스 국제공항의 신 터미널.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경의 설계로, 하이테크 양식으로 건축됨.

     

     

    2008년 여름. 스페인으로 떠났다. 거창하게도 "건축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스페인만을 여행하기 위한 나의 세 번째 배낭여행이었다. 지금이야 굳이 주제를 달고 여행을 떠나는 편은 아니나, -지금에 비하면- 꽤나 젊었을 그 때 그 여행, 모든 마주치는 건축물에서 느끼고 배워보리라는 다짐으로 떠난 여행이었으니, 그 "건축기행"의 관문 격으로 마주친 마드리드의 바라하스 국제공항을 그저 스쳐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의 그런 다짐을 알기라도 하겠다는 듯, 바라하스 국제공항은 꽤나 멋스러운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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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 비행이었다. 처음 마주하는 이베리아 반도의 땅은 붉은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체코항공 항공기의 빠알간 엔진과 붉은 열기를 내뿜는 남국의 땅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등간격으로 심어진 오렌지나무들이 점점 선명히 보이고, 이내 사뿐히 내려앉는 항공기. 그렇게 나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발을 딛게 된 것이다. 어떤 도시일지, 어떤 건축물들이 수도 없이 많은 감동을 안겨주게 될지 기대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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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륙 후 마주한 스페인의 첫 풍경. 독특한 지붕 형태의 바라하스 공항 터미널이 눈에 들어온다. 어디서 본 듯 한데. 투우의 뿔을 닮지 않았던가. (물론 공감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너무 매몰차게 아니라고 말하지는 말아주시길.) 그 디자인의 시작이 무엇으로부터일지 알 수는 없지만, 독특한 모양새임은 틀림 없어 보였다. 리처드 로저스 경, 꽤 나이 든 할아버지 뻘 건축가의 장난끼 어린 위트가 돋보인다. (실제로 그의 현재 나이는 80세로, 건축계에서는 노장이자 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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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청사 안으로 들어온다. 독특한 지붕의 곡선은 안에서는 이런 형태로, 평범하지만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붕의 안쪽 천장을 대나무로 마감한 것이 매우 새로워보였다. 전통적인 재료로만 생각했던 대나무가 하이테크 건축 양식을 만나 이런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자칫 차갑게 느껴지기 쉬운 하이테크 건축물의 단점을 상쇄하기 위한 건축가의 아이디어였을지도 모를 일.

    지붕을 받치는 Y자 형태의 기둥은 빨강으로부터 파랑까지 색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공항 터미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기다란 공간에 색깔 하나로 변화를 주었다. 사실 로저스 경은 이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 말고도 상하이와 취리히 등의 공항 설계에 참여해 왔으니, 말 그대로 공항계의 베테랑 건축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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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짐은 언제나 나오려나. 허나 지루해질 새도 없이 주위를 둘러본다. 이티처럼 생긴 저 기이한 설비, 늘어선 Y자 형태의 노란 철골 기둥, 페인트 칠도 되지 않은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그 시설들은, 사실 어느 하나 쉽게 디자인된 것들이 없다. 저 기이한 하얀 기둥(냉온풍을 위한 설비)들은 철저히 계산된 높이와 구멍들의 크기를 가지고 있을테고, 노란 기둥들이 위로 올라가면서 Y자로 갈라진 것은 아랫층 기둥의 수를 최소로 줄이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며, 페인트 칠 되지 않은 저 콘크리트(노출 콘크리트라고 칭함)들은 별도의 페인트 칠을 필요로하지 않는 매우 경제적이면서 효율적인 마감방식이다. 그런 생각들이 모여 이 거대한 공항의 한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빛, 스페인 건축의 전매특허

    이전에도 마드리드의 건축물, 아토차역 추모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물론 규모는 작은 건축물이었지만 그 추모관 역시 남국의 강렬한 태양을 그 무기로 하여 디자인 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여기 마드리드의 바라하스 국제공항의 터미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붕에 뻥뻥 무심한 듯 구멍을 내어 빛을 강하게 빨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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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친환경'이니 '자연채광'이니 하는 것들은 요즈음 공항 건축의 공통된 키워드이기 때문에, 이것이 이 곳만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경험했던 공항 중에서 여기 마드리드의 바라하스 공항 터미널만큼 적극적으로 그 빛을 활용한 곳은 아직 마주한 적이 없는 것도 같다.

    스페인 건축기행을 시작하는 순간, 저 빛의 마력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순간이다.

     

    이런 여행자에게 추천
     
    건축을 공부하는 건축학도 여행자.
    여행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여행자.
    지루한 체크인 대기줄도, 떨리는 입국심사도 여행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나의 생각에 공감하는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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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당신의 여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누군가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또는 그 이전부터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유명 관광지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서야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고 할지도 모를 일. 여행의 맞고 틀림은 없으니 각자의 방식대로 여행을 하면 되겠지만, 그래도 새로 마주하는 도시의 관문인 공항을 그저 스쳐지나가는 장소로 생각하지는 말기를. 체크인을 기다리는 중에, 여권에 도장 받기를 기다리는 중에, 쏟아져 나오는 캐리어들 사이에서 내 것만 늦게 나온다고 투정하는 중에, 잠깐이라도 고개를 들어 이 공항의 모양새를 둘러보기를. 지붕의 생김과, 기둥의 모양새와, 창문의 크기에 잠깐이라도 관심을 가져보기를. 그것으로 당신의 여행이 아주 조금이나마 더 풍부해 질수도 있으니, 그리고 또 그것들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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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의 고민이 보이는가. 여행을 시작하는 이 공항이라는 장소에서, 당신의 행복한 여행을 위해 고민을 아끼지 않은 건축가들의 노력을, 잠시라도 눈을 들어 찾아 보기를.
     
     
     
     
    Wish to fly

    건축이라는 것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의 경험으로 다시 건축을 하는 여행이 생활이고 생활이 여행인, 여행중독자입니다. http://blog.naver.com/ksn33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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