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자존심, 카탈루냐 음악당
Palau de la Musica Catalana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이라 일컬어지는 카탈루냐 음악당.
하지만, 나에게 있어 카탈루냐 음악당은 그 외관보다 탄생 배경이 더욱 아름다운 곳이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문화적 자존심이자, 바르셀로나의 풍요로웠던 지난 영광의 상징인 카탈루냐 음악당.
오늘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아름다운 이 공간을 소개하고자 한다.
파리와 쌍벽을 이룬 19세기의 바르셀로나, 그 카탈루냐 르네상스의 상징!
19세기~20세기에 유럽에 팽배했던 아르누보 경향. 자긍심이 강한 카탈루냐인들은 그 트렌드를 본인들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다. 19세기 말의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의 언어와 문화를 부활시키고자 진행한 카탈루냐 르네상스(Catalan Renaizenca)의 바람이 불던 때였다. 와인과 면화 철강 산업이 발달하면서, 바르셀로나에는 돈이 모이기 시작했고 부르주아들도 많이 생겼다. 그들의 부의 축적은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여유를 낳는다. 그 '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을' 즉, '모데르니스타스(모더니스트)'로 알려진 건축가들이 그들의 역량을 발휘하기 좋은 때가 바로 이 시기였다.
스페인의 건축 사상 가장 아름답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도시를 휘감은 시기였다. 이 시대의 카탈루냐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공장과도 같아진다. 오늘날 바르셀로나라는 도시의 아름다움과 간결한 도시계획은 이 때 완성되었다고 볼수 있다. 이 때 활동한 대표적인 건축가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였고, 그에 이은 2인자로는 도메넥 이 몬타네르(1850-1923)가 활약했다. ㅡ 여기서 2인자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대중과 후대로부터의 '인지도'에 따른 것 ㅡ 이 카탈루냐 음악당은 건축가 '도메넥 이 몬타네르'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참고 : 카탈루냐란?
바르셀로나가 속해 있는 스페인 북동부 지역을 카탈루냐 지방이라고 부르며, 바르셀로나 사람들을 흔히 '카탈루냐 사람'이라고 한다.
카탈루냐 지방은 스페인 다른 지역과 다른 독자적 언어와 문화를 향유하는 지방으로서, 과거부터 꾸준히 '독립'을 주장한 결과
20세기에 잠시 자치권을 쟁취한 적도 있었으나, 결국 스페인 정권에 의해 상실하고 '카탈루냐어'의 사용도 금지된 역사를 안고있다.
하지만 여전히 카턀루냐인들은 자신이 스페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두고 '스페인'이라고 부르면 불쾌해한다고 한다.
카탈루냐인들의 자부심과 열정이 빚어낸 걸작품, 지역사회가 만들어낸 예술 공간
카탈루냐 음악당은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건축물'로 더욱 유명하다. 워낙 바르셀로나에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다보니 '봐야 할 건축물'의 연장선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르누보 등의 건축 양식과 내부 인테리어에만 초점을 갖고 이 공간을 바라보기에 이 건물이 품고 있는 가치와 의미가 너무 아깝다. 카탈루냐 음악당의 본질은 카탈루냐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자발성을 보여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공연장을 두고 감히, 지역사회와 시민들의 힘으로 일구어낸 진정한 '소셜 공연장'이라 표현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공연장 설립, 운영 실태와 비교하자면, 이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나라 공연장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립 공연장과 몇몇 대기업에서 사회공헌적 성격으로 운영하고 있는 기업 공연장이 대부분이다. 즉 수직적 구조의 형국인 셈이다. 큰 조직에서 솔선하지 않으면 문화예술이란 존재는 살아남기 힘든 공공재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러나 카탈루냐 음악당은 어떠한가. 이곳은 수평적 구조에서 탄생했다. 지역사회와 시민들의 관심, 참여로 탄생한 것이다. 부를 향유하게 된 바르셀로나는 문화와 예술에의 욕구를 '건축'이란 하드웨어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형의 소프트웨어로도 발전시켰다. 카탈루냐의 문화 아이콘이자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구성된 오르페오 카탈루냐 합창단은 대표적인 소프트웨어다. 합창단이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공연장과 연습실이 필요했고, 따라서 지역 사회와 시민들의 대중 모금을 통하여 이 공연장을 짓게 된 것이다. 카탈루냐의, 카탈루냐에 의한, 카탈루냐를 위한 예술 소통 공간의 탄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탈루냐 음악당이 '시민들의 문화자부심'이라 불리는 까닭이다.
아울러 카탈루냐 음악당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건축물의 아름다움 등을 인정받아, 1997년 음악당으로서는 드물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다. 유네스코 등재와 함께 더 많은 세계인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제는 세계와 소통하는 음악당이 되었다.
▲ 카탈루냐 음악당의 외부 공간, 팔라우 스퀘어의 파사드에 조각된 오르페오 합창단 부조
카탈루냐 음악당의 뮤즈, 오르페오 카탈루냐 합창단 Orfeó Català
앞서 이 음악당의 건립 배경을 설명했다. 즉, '오르페오 카탈루냐 합창단'의 연습실, 공연실이 필요하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은 건물이 카탈루냐 음악당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이 합창단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오르페오 카탈루냐 합창단'은 이 카탈루냐 음악당의 DNA와도 같다. 이 합창단은 클래시컬한 합창교향곡부터 카탈루냐 전통음악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단체다. 그러나 이들에게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아마추어 합창단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수 유럽의 합창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그 앙상블과 실력이 출중하다.
게다가 그 역사는 또 어떠한가! 이 단체는 1891년, 카탈루냐 전통음악을 전승하기 위해 창단되었다.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뤄진 것이고, 지금까지 120년이 넘는 전통을 유지하면서 명실공히 유럽 최고의 아마추어 합창단이자 무엇보다 카탈루냐 문화의 심볼이자 긍지로서 자리 잡았다.
▲ 출처 : 오르페오 카탈루냐 합창단 홈페이지 http://www.orfeocatala.cat/en/
비전공자로 구성되었다고 해서, '넬라 판타지아'만 부르는 우리네 동네 합창단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바흐나 헨델의 미사곡이나 종교 합창곡 등 우리나라 왠만한 프로 공립 합창단도 손 대기 힘든 수준급 레퍼토리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바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 주빈 메타(Zubin Mehta),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로린 마젤(Lorin Maazel) 등 이제는 세상을 떠났거나 아직 건재한 여러 마에스트로와 함께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고 있는 그들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카탈루냐 음악당을 둘러보자.
공간의 첫인상, 쉼과 소통이 있는 Palau square
바르셀로나의 Ciutat Vella 지역을 헤매다가 드디어 만났다. 처음 들어선 곳은 팔라우 광장. 붉은 벽돌로 올려진 고풍스러운 외벽과 최근 리모델링 한 듯한 통유리 창이 어우러진 아늑한 광장이다. 가볍게 음료도 한 잔 할 수 있는, 야외 의자와 계단이 있어 휴식터와 같은 느낌을 선사해주었다. 앉을자리가 필요한 여행객들, 그리고 현지인들의 소통과 만남, 휴식의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햇살 가득 만남의 공간, Foyer
팔라우 스퀘어에서 내부로 들어오면, 바로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다. 카탈루냐 아르누보 스타일의 장식과 스테인드 글라스를 약식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공연장의 에피타이저라고나 할까? 크지는 않지만 세월이 느껴지는 고풍스러움과 모던함이 동시에 어우러져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여기서 사람들은 만나고 먹고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테리아가 아닐까? 빵과 차를 내주는 공간인데 참으로 아름답다. 화려한 타일장식과 붉은 벽돌, 꽃 장식은 카탈루냐 음악당의 상징이다. 로비에도 이런 일관성 있는 컨셉이 유지되고 있다. 처음부터 이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은 아니었을테지만, 기존의 장식과 구조를 살리면서 현재 필요한 기능을 삽입한 지혜가 좋다. 무조건 바꿔버리는 우리네의 모습이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생각을 뒤로하고, 시간이 되어 음악당 가이드 투어에 나선다. 이 근방에서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고, 인솔자가 나타난다.
카탈루냐 음악당 가이드 투어
카탈루냐 음악당의 아름다운 내부 공간을 만나려면 기회비용이 상당히 크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공연 프로그램이 있다면 공연을 관람하면 되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유료 가이드 투어를 추천한다. 그래야지만 내부를 관람할수 있기 때문. 매일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진행되며, 영어와 현지어는물론 불어, 러시아어와 같이 다양한 언어로 진행하는 시간들이 있다.
그 투어의 시작은 Rehearsal Hall of the Orfeó Català 이다. 아마 오르페오 합창단의 연습공간인 듯 한데, 이 공간을 오디션이나 발표 등의 목적으로 대여도 해주는 듯하다. 우리는 이곳에서 짧은 영상을 관람하고 인솔자의 설명을 들었다.
Lluís Millet Room
메인 플로어 즉, 로비에서 1층 정도 올라가 있는 층의 오케스트라 스툴 맞은편에 있는 인터미션 홀. 카탈루냐 오르페오 합창단의 창립자 Lluís Millet 이름으로 지었다. 홀 안은 합창단과 음악당 설립과 역사에 큰 역할을 한 인물들의 흉상이 있고, 그 위로는 카탈루냐 지방의 아름다움이 그려진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무엇보다 외부로 난 발코니쪽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답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우아한 곳이었다. 이곳도 파티나 행사, 연회 등의 장소로 대관이 된다고 한다.
룸을 나와 복도의 벽면 또한 아름답다. 이런 스타일과 양식, 색깔은 카탈루냐 음악당에서만 볼 수 있는 요소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답고, 복잡하고, 화려한 콘서트홀 Concert Hall
형형색색 모자이크 타일, 붉은 벽돌, 스테인드 글라스,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듯한 '그리스' 스타일의 기둥과 석재 조각으로 장식된 공연장이 나타났다. 우아함, 화려함을 모두 겸비한 이 공간은 카탈루냐 특유의 감성이 섞여 독특한 색채를 띠고 있다. 언뜻 그로테스크해 보일만큼 복잡한 부조와 함께, 무대 측면과 2층 발코니석을 잇는 화려한 조각들이 압권이다. 역사상 위대한 작곡가나, 바르셀로나 관련 위인, 그리스의 여신 등을 조각해놓았다.
예술인들은 항상 고대의 그리스와 로마시절의 예술을 동경한다. 15세기 르네상스도 그러했고, 근대 이후의 카탈루냐 르네상스도 그러했던 듯 하다. 무대의 뒷면, 반사판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신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음악의 여신들을 조각해 놓았다. 그 사이의 정교하고 컬러풀한 타일 아트는 구엘 공원의 그것과도 비슷한 느낌을 자아낸다.
무대는 유럽의 전형적인 프로시니엄 스타일(proscenium arch)이지만, 그 벽면에 반사판 대신 여러 타일 장식과 부조,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우리 나라 공연장에서는 음악당하면 오로지 나무 재질의 반사판으로 단조롭게 꾸며져 있는 모습에 익숙한 나에게는 꽤 큰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이 콘서트홀은 음향적으로도 훌륭한 곳이다. 반사판이 없이도 아름다운 음향을 구현하는 과학적인 설계에 놀라웠다.
가이드 투어를 하게 되면 저 파이프 오르간을 리모콘으로 작동하여 이미 입력되어 있는 선율을 자동연주로 감상할 수 있다.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한 소리가 콘서트홀 가득 메운다.
무대 못지 않게 객석쪽도 화려하기는 마찬가지다. 또 카탈루냐 음악당의 상징과도 같은 콘서트홀의 천장은 파란색과 황금색의 스테이드 글라스로 화려하고 다채로운 패턴으로 장식되어 있다.
지금도 시민과 기업의 관심과 사랑은 이어진다.
현재 이곳은 The Fundació Orfeó Català-Palau de la Música 즉, 오르페오 합창단과 음악당 재단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이것은 지역 사회의 힘이 어떻게 문화를 발전시키고 북돋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음악당 내부의 한 켠에는 이 공간과 조직을 후원하는 회사와 재단들의 리스트가 나열되어 있다.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펀드레이징과 그에 상응하는 컨텐츠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끊기지 않는 예술에의 관심과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이러한 모습이 부러운 것은 왜일까?
INFORMATION
- 주소 : Carrer de Sant Francesc de paula 2 (팔라우 광장 쪽)
Palau de la Música, 4-6 - 08003 Barcelona (정문 쪽)
- 위치 : 지하철 1,4호선 우르키나오나(Urquinaona) 역에서 도보 8분.
- 홈페이지 www.palaumusica.org
- 2014년 '꽃할배'도 반한 스페인 여행! 가장 쉽게 준비하는 법 => http://bit.ly/1isKrHc
※ 음악당 가이드 투어
- 가격 : 1인당 17유로 (2013년 4월 기준)
- 운영 시간 : 매일 10:00-15:30 동안 30분마다 있음 (부활절과 7월은 10:00-18:00, 8월은 09:00-20:00 까지 운영 )
- 소요시간 : 55분~1시간
- 언어 : 카탈루냐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 시작 장소 : 팔라우 광장 쪽 1층 로비(Foyer)
- 홈페이지 및 현장 박스오피스에서 매표 가능
지난 수년간 공연장에서 클래식 연주회를 기획하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아이와 함께 삶을 앙상블하고 있는 아줌마. 특별히 문화와 예술적 시각의 여행을 지향한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순간을 더욱 즐긴다. 그곳의 즐거움 뿐만 아니라 아픔까지도 나누고 싶다. http://contenter.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