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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북장단 듣고 네가 온 걸 알았어, 청산도

    moo nee moo nee 2013.10.29

    카테고리

    전라, 풍경, 가을, 에피소드

     

    네 북장단 듣고 네가 온 걸 알았어, 청산도

    영화 '서편제' 따라 청산도를 여행하다 

     

    청산도 서편제촬영지

     

    장사하시는 분이 돈을 받으려 재촉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내야 하는 여행자만 다급하다.

    근무 중 잠깐 나와 차를 태워 주시는 분도 서두르지 않는다.
    오히려 차를 빌려 탄 여행자가 그 분의 시간을 너무 빼앗을까 안달이 난다.

    길가다 만난 동네 사람들의 대화가 끝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저렇게 이야기하다 배를 못 타실까 여행자만 걱정이다.

    슬로 시티 청산. 그 곳에서 만난 느림의 삶과 사람들.
    나는 청산도에서도 여전히 몸을 한시도 가만히 두질 못 했지만,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겼다.

     

     

    청산도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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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서편제' 中

     

    청산도로 내려가는 길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를 보았다. 1993년도 영화임에도 지루하지도 않고, 영상이 촌스럽다는 느낌도 전혀 없다. 역시 기술의 발달은 스토리텔링의 힘을 압도하지 못하는 듯 하다.

    영화는 이청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일정한 수입도 없이 떠돌면서 살아가는 소리꾼 유봉, 그리고 그 소리를 물려주고자 데리고 다니는 남매 송화와 동호의 삶을 이야기한다. 유봉은 송화가 한이 맺힌 소리를 하게 하려고, 눈까지 멀게 한다.

    아슬아슬 무너질 듯한 소리꾼 아버지 유봉의 자존감, 곧 주저앉을 듯한 가난의 연속이 영화를 보는 사람마저 내내 긴장하게 만든다. 그러다 유봉, 송화, 동호가 흥이 나서 논두렁을 걸으며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햇살, 다랭이논, 그리고 구불구불 논길이 아리랑 장단과 어우러져, 영화에서 유일하게 긴장을 다 풀어 헤치고 즐길 수 있는 장면이었다.

     

     

    청산도로 떠났다. 

     

    느린섬 여행학교 전기자전거

    양지마을 전경

    ▲ 자전거 여행자의 특권. 절경이 펼쳐지면 어디든 내려서 바라볼 수 있다. 양지마을의 전경. 양지에 있다 하여, 양지마을이란 이름이 붙었다. 

     

    청산도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바로 서편제 촬영지로 향하기로 한다. 청산도에 머무는 1박2일 동안 하루는 온전히 섬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어 자전거를 대여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서편제촬영지로 가려면, 대적산과 보선산 사이 고개(라고만은 할 수 없는 꽤 가파른)를 하나 넘어야 하는데 그곳은 일반자전거로 넘긴 버겁다. 그래서 전기자전거를 빌려보았다. 전기가 많은 도움을 주어 힘을 덜 들이고 청산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자전거 여행은 청산도의 아름다운 풍경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게 해주었다. 가는 길 내내 풍경이 아름다워 자주 내리다 보니 전기가 금방 닳긴 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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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는 폐교를 개조하여 만든 ‘느린섬 여행학교’. 원래 청산동 중학교였던 건물은 리모델링 하여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고, 옥상에 5채의 예쁜 건물들을 올려 각각 4인실 방을 운영하고 있다. 미술실, 문학실, 영화실, 음악실, 사진실. 방 이름도 아날로그적 감성이 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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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편제촬영지에 도착하여, 안내 표지판을 읽어보니 바로 이곳에서 내 머릿속 가장 기억에 남는 그 장면이 촬영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영화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으로 꼽히는 5분 30초에 걸친 롱 테이크가 촬영 된 곳. 원래 그렇게 길게 찍을 계획은 아니었으나 감독이 장소가 너무 좋아 바꿨다는 곳. 푸른바다, 푸른산, 그리고 황톳길이 어우러진곳.  - 안내판 내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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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풍경이라면 저절로 흥이나 아리랑 장단을 흥얼거릴 수 있을 듯 했다.
    살아가면서 일상에 지쳐 있다 보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흥에 취할 만한 기회가 별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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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권택 감독이 이곳에서 5분이 넘는 장면을 영화에 담은 것은 물론 풍경이 아름다운 이유도 있겠지만, 도심의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조금이나마 어깨의 짐을 내려 놓아 보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청산도는 봄, 유채꽃이 만개할 때 방문한다. 유채꽃이 만발할 땐 완도에서 청산도 들어가는 배를 타는 데도 꽤 줄을 서야 한다고… 궁금한 마음에 청산도에 사시는 분에게 “청산도는 확실히 봄이 좋은지?” 묻자, "봄에는 외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차를 끌고 나가지도 못해요. 또 청산도는 항상 아름답죠."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제야 봄에 방문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던 여행자의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동시에 괜한 욕심이 부끄러워졌다. 가을의 파란 하늘 아래 완연한 햇빛을 받은 들녘도 눈부시게 아름다운데도 말이다. 다시 살펴보니 '서편제'의 그 장면 역시 비슷한 계절에 촬영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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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가 끝난 가을이라 다랭이논이 민둥했지만, 그 곳에 다시 구멍을 내고 마늘알이 한 알 한 알 들어가고 있었다. 사실 청산도의 논은 쉴 틈이 없다. 벼 수확이 끝나면 보리, 마늘, 양파 등을 심는다. 척박한 섬. 그곳의 느림의 삶. 그 여유는 바로 이렇게 쉼 없이 일해주는 땅이 있기 때문 아닐까?

     

     

    청산도

    청산도

     

    섬을 걷다 보면 구들장논와 다랭이논을 자주 만나볼 수 있다. 다랭이논이야 산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계단식 논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구들장논은 청산도만의 특색이다.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로 지정된 구들장논은 온돌과 논이 결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자갈을 가장 밑에 깔아 물이 잘 빠지도록 하고, 그 위에 구들장, 다시 그 위에 흙을 쌓아 만든 논이다. 흙과 물이 부족하여 고안된 논의 형태라고 하며, 16-17세기부터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땅은 물과 흙이 부족한 척박한 섬 환경을 보완하기 위한 섬 사람들의 지혜 그 자체인 셈이다.  

     

     

    청산도

    청산도

     

    '서편제' 촬영지 앞에는 가을 코스모스에 둘러 쌓인 '봄의 왈츠' 촬영지가 있다. '봄의 왈츠'는 KBS에서 방영한 윤석호 PD의 계절 시리즈의 마지막편이다. 가을동화, 겨울연가, 여름향기, 다른 작품들보다 큰 주목을 못 받았지만 다른 작품들 못지 않은 영상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봄의왈츠 세트장

    봄의왈츠 세트장

     

    나도 다 보진 못했지만 노란빛이 도는 드라마의 색감이 인상에 남아 있었는데, 이곳의 봄, 유채화가 만개했을 때 풍경이 담겨 있다. 이처럼 봄에는 유채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청산도지만,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못지않게 하늘하늘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코스모스도 그 휘날림이 아름다우니 왈츠와 꽤나 어울리지 않은가?  :) 

     

     

    봄의왈츠 촬영지

      

    다시 '서편제' 이야기로 돌아가볼까. 유봉과 송화, 동호가 살았던 초가집 세트장은 진도아리랑 장면을 촬영한 곳에서 도보로 10~1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곳으로, 조금 떨어져 있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지,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꽤 되어 보였다. 동호의 북은 북북 찢어져 있었고, 소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관리가 잘 안되고 있는 모습에 속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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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편제 세트장

     

    다시 완도로 향하는 배에 오르려고 택시를 타려는데, 고마운 현지분이 차를 태워 주셨다. 덕분에 청산도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 분이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청산도에는 초등학교도 4개나 있었지만 지금은 1개만이 남아 있다. 유치원,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가 각각 한 개씩 남았다. 북적북적했던 곳이 서서히 한산해 진다는 것, 하나 둘 곁에 있던 사람들이 떠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하루에도 수 차례 어깨를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서울에서는 잘 상상이 가질 않지만, 몹시나 쓸쓸할 것 같다.

    도청항에 도착하여, 차를 태워 주신 분은 나름 업무 중에 나오셨으니 바로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항구에서 만난 지인과 또 한참 수다 삼매경. 지인 분은 더 재미나다.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어제 배로 짐을 하나 보낼 것이 있는데 손님이 와가지고 화장실에 화장지가 부족하다 길래 가져다 주려니까, 예쁘게 화장지 좀 가져달라면 좀 좋냐… 아주 싸가지가 없어서 신경질을 잔뜩 부리기에... 그 x를 xxx xxxx (삐----- 자체 검열) 욕을 한바탕 하니 배가 저 먼치 가버리는 거야…”

    전날 배편 통해 짐을 하나 부치셔야 했는데 욕을 하다가, 못 부쳐서 오늘 다시 부치신다는 것이다. 어찌나 웃었는지… 참 신기한 것이 욕이 전혀 상스럽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살가웠다.

     

     

    섬사랑 7호

     

    살아가는 것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 된단 말이여.
    - 영화 '서편제' 中

    한을 쌓아 두지 않고 구수~한 욕으로 풀어내 버리는 청산도의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청산도의 여행을 미소로 마무리한다.

     

     

    INFORMATION 

     

    1. 청산도에서 자전거 대여하기, 숙박하기

    - 느린섬 여행 학교, 슬로푸드체험학습장
    - 주소: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양중리 372
    - 가는 법: 청산도 도청항에 배가 들어올 때마다 버스가 있다. 기사 아저씨에게 ‘느린섬 학교’에 간다고 하면 내릴 때 말해준다. (버스비는 1,500원)
    - 홈페이지: http://www.slowfoodtrip.com/
    - 전화번호: 061-554-6962

    - 자전거 대여
    - 일반 자전거 1일 5,000원 / 전기 자전거 1일 20,000원 
    - 전기 자전거는 배터리 하나로 10km 정도 달릴 수 있다. 

     

    2. 완도 ~ 청산도 배편 정보 

    - 주소:  완도여객터미널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1255
    - 전화번호: 1666-0950
    - 가격정보: 청산호, 아일랜드호 (완도, 청산도 직행) 편도 7,700원 (2013년 기준) 약 50분 소요 
    - 섬사랑 7호 (완도, 대모도, 소모도, 여서도를 거치는 배편) 편도 5,500원 (2013년 기준) 약 2시간 소요 
    - 시즌에 따라 운항 시간이 상이하므로 자세한 시간표는 완도항, 청산도 도청항에 직접 문의하는 것이 좋다. 

     

     

     

    moo nee

    배경여행가. 책, 영화,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의 모습이 지워진 배경에 들어가 보는 여행을 하고 있다. 백과사전 회사에서 5년 가까이 근무. 건조하고 차가운 글을 쓰고 편집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으니, 촉촉하고 다정한 글을 찾고 쓰는 일이 낙(樂)이 되었다. 지금은 IT회사에 재직 중. 저서로는 <다정한 여행의 배경>이 있다. www.istandby4u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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