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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정이 지났어도 가을은 황홀하다, 길상사

    홍대고양이 홍대고양이 2013.11.13

    카테고리

    서울, 역사/종교, 가을

     

    절정이 지났어도 가을은 황홀하다, 길상사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더욱 좋을 서울의 마지막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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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이 절정으로 타오르다가, 가을비를 맞고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절정이 조금 지난 이 순간이 좋다. 반쯤은 나뭇가지에 달려 팔랑이고, 반은 길 위에 뿌려져 길 자체가 단풍길이다.

    이 순간은 무척이나 짧다. 그러니 가을이 가기 전에 이 가을의 붉고 노란 마지막 모습을 싶다면 멀리 갈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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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꼭 숨겨두고 다정한 이와 가을날 찾겠노라고 아껴두고 싶은 곳이 서울 성북구의 길상사다.

    서울 속에 가장 낭만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사찰 하나 있으니 바로 길상사다. 가을이면 눈이 부실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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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외곽에는 붉음이 한껏 밀려들어 있다. 서울에서 가을을 느끼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다. 

    길상사는 성북구에 있다. 삼각산 자락에 있다. 운치있는 산중에 머물고 있다.

    서울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즈넉하고 청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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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각이라는 고급요정이었으나 주인 김영한 여사가 법정 스님에게 기부하여 대법사가 되었다.

    1995년 법정스님이 김영한 여사의 뜻을 받아들였고 대법사로 이름을 지어 불도량이 되었다.

    1997년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대부분의 건물은 대원각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시민운동 '맑고 향기롭게' 도량으로 5월에 봉축 법회를 열고 자선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한달에 두번 주말 선수련회를 진행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템플 스테이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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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사는 법정 스님의 흔적이 많다. 이곳에는 2010년 입적한 법정스님의 일부가 남아있다.

    탑. 스님의 사리를 모시는 여느 탑의 거대함은 없다. 자그마한 탑이 앙증할 정도다.

    쉽게 지나칠만한 앙증맞은 탑이 스님의 모습인양 소박하면서도 단단히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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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이 기거한 소박한 실내. 흰 바람벽에는 군더더기 없이 삶에 필요한 최소의 것만이 남아있다.

    밤이 되면 작은 계곡물 여울지는 소리가 들리고 낮이면 작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인간지사의 복잡다난한 일과, 그에 이어지는 감정들을 놓아두고 가도 될 것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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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사를 말하자면 김영한 여사와 백석 시인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함께 하지 못한 연인의 마음은 그랬기에 아쉽고 그래서 사멸하지 않는 이야기로 남는다.

    로맨틱 영화의 해피엔드. 행복하게 완결된 이야기는 앙금이 없는데 슬픈 엔딩은 앙금은 오래 남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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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 흰 바람벽이 있어 中,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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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해석은 읽는 이에 따라 제각각이다. 나는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를 읽으면 한껏 달콤한 씁쓸함을 느낀다.

    저 사랑하는 여인은 나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의 사람 같게 읽혀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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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속에 어여쁜 사람이 있다. 시인이 침묵 속에서 홀로 떠올리는- 마음 깊은 곳에 둔 여인은 다른 사람과 저녁을 먹는다.

    바라 마지 않는 둘의 인연은 이번 생은 아니었나보다. 사랑하는 여인은 그녀의 남편과 기대어 있다.

    시인의 적막한 방은 따뜻한 저녁상과 대비되어 한껏 쓸쓸하고 고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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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 소설을 읽고 나면 그 속의 사람들을 마음껏 상상한다. 현실 속에 그들이 살아서 움직이며 웃고 울고 사랑하듯.

    시 속에서처럼 시인은 아마 고독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길상사이지만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 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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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야 子夜. '자야'는 백석이 여사를 부르던 이름. 단어는 누구의 입에서 어떤 마음으로 불리워지는가에 따라 체온이 달라진다.

    부름말. 같은 이름도 부르는 이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 어떤 蜜 語 보다도 따뜻하고 달콤하여 진다. 名이 愛가 된다.

    한껏 따뜻하게 부를 수 있는 연인이 있었기에 아마 고독하더라도 깊이 고독하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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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한.  지고지순한 사랑 품고 살았고 길상사를 법정스님께 내어 놓은 길상사의 옛 주인.

    백석과 이루지 못한 사랑을 평생도록 하였던 그녀의 일화가 있다. 일화 속 대답이 참 간명하면서도 깊었다.

    한 기자가 물었다. 그 사람 생각 언제 하느냐고.  그녀는 답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따로 있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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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가을날 시절이 아름다울 때면 아름다웠던 때, 사랑하던 시절의 사람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각별한 인연들이 생각난다.

    인연은 참 신기하다. 조금만 더 일찍 아니면 좀더 늦게였더라면 아마 서로는 만났어도 엮이지 않았었을 것이다.

    살아온 시간이 쌓여 각각의 생각과 관점이 만들어진 후에야 그 눈으로 서로를 알아 보게 되는 것이니.

    타인을 자신의 테두리 안에 들이는 일은 쉽지 않기에 인연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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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이라는 이름을 붙였어도 무언가 부족하여 전생의 인연으로 윤회의 고리로 엮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절을 거닐다 보면 엮이고 끊어지는 인간사의 인연들에 대해 새삼 돌아보게 된다.

    어떠한 연유로 지금 이런 관계가 되었을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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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사람들은 절을 찾는다. 절은 신을 찾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찾는 곳이다. 불교의 정진은 신이 아닌 스스로를 찾는 과정이다.

    말을 삼키고 고요 속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번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희노애락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마모시킨다.

    윤회의 굴레가 있다면, 그래서 엮이어졌다면 순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마음을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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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각을 법정스님께 시주할 때 김영한 여사는 아깝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 한다. 

    여사는  "그 사람의 시 한줄만도 못하다." 답했다 한다. 누군가와의 각별한 인연은 선택에 망설임이 없게 해 주나보다.

    백석의 자야는 시인을 기리며 백석 문학상을 제정하여 자신의 마음에 자리한 사람을 잊지 않고 세상도 기억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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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사에는 법정스님의 맑고 청아한 글귀가 곳곳에 적혀있다.

    인생사를, 나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글귀 하나하나를 마음에 담으며 걷다보면 관세음 보살을 만나게 된다.

    그 어느 절에 있는 관세음보살상보다 곱기 이를 데 없는 상이다. 정병을 들고 있으니 관세음보살인데, 마치 성당의 마리아상 같다.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선을 가지고 있지만 단아하고 자애로운 표정이다. 한참을 보면서 가을의 시간을 놓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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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플 것을 뻔히 알면서도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야 마는 사람들을 안쓰러워하기엔, 길상사만한 곳이 또 있을까.

    저물어가는 가을의 색깔들이 곱다. 핀 꽃이 조용히 지고 있고 물든 잎이 말없이 떨어지고 있다.

    이번 생에 엮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르익는 가을, 산사에 내려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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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이해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무엇을 이해해야할지, 이해할 수 있을지 잘 모른다.

    나이를 먹고 또 한번의 가을을 보내어도, 사람과의 인연은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

    앞으로 또한 어떤 인연과 닿을지 가늠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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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 아름다운 것들을 다 인연이라 하면 되지 않을까.

    쉽지 않은 인연을 보다 잘 다독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 한줄을 되뇌이면서 서울 속의 가장 아름다운 절을 산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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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북구는 성곽을 따라 걷는 둘레길,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 등이 있어 함께 가을을 느끼기 참으로 좋다.

    지하철을 타고 한성대 입구에 내려 가을 하루를 천천히 걸으며 추억을 벗삼아 걷기 참으로 어울리는 곳이다.

     

     

    Information

     

    - 성북구 길상사 : 서울시 성북구 성북2동 323번지 길상사

    - 전화 : 02 3672 5945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 6번출구 > 길상사 셔틀버스 탑승(50미터 앞 동원마트 앞) 또는 1111번 버스 탑승

                                 지하철에서 도보 시 약 20분 내외 걸림

    - 상세 정보 출처 : http://kilsangsa.info/

     

     

    홍대고양이

    동아사이언스 과학기자, 웹진과학전문기자, 아트센터 객원기자, 경기여행지식인단으로 활동. 지금 하나투어 겟어바웃의 글짓는 여행자이자 소믈리에로 막걸리 빚는 술사랑 여행자. 손그림, 사진, 글로 여행지의 낭만 정보를 전하는 감성 여행자. http://mahastha.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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