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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키타, 전설이 가라앉은 겨울 호수를 만나다

    토종감자 토종감자 2014.01.20

    카테고리

    기타, 휴양, 풍경, 겨울

     

    아키타, 전설이 가라앉은 겨울 호수를 만나다 

    다자와 호수 이야기

     

     

    겨울.

    이 계절의 이름을 듣는 순간 여러가지가 함께 떠오른다.
    김이 모락 모락 오르는 따뜻한 오뎅탕, 호호 불어먹는 호빵, 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게 하는 스키,
    손과 입 주변을 까맣게 물들여도 낭만이 쏟아지는 군고구마 그리고 소복히 쌓인 눈을 바라보며 즐기는 뜨끈한 야외온천.

    대부분의 것은 국내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데, 우리 커플의 로망 중의 하나인 눈 속에서의 온천만은 국내에선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결심하게 된 일본 온천여행. 목적지로 여러 온천명소가 물망에 올랐지만,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소복히 쌓인 눈과 고즈넉한 풍경을 뽐내며 단숨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키타가 선두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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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키타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아직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자는 남편을 위해 살짝 창 밖을 바라보려 커튼을 젖혔는데,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나도 모르게 창문까지 활짝 열어버렸다. 눈 내린 뉴토 온천향이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자태로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HD TV를 바라보는 듯, 비현실적인 화사함으로 아침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설레는 아침, 드디어 꿈에 그리던 눈 속에서의 노천 온천을 하는 날이다.

    그러나 온천이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이었지만 지역 명물인 다자와 호수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온천하기 전에 호숫가를 간단히 산책하고나면 오후의 온천이 더 값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자와코의 매력에 풍덩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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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에서 약 30분쯤 달렸을까? 겨울이 소복히 내린 다자와 호수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이병헌이 김태희와 거닐며, 호수의 수호신인 타츠코의 전설과 함께 사랑을 속삭였던 다자와 호수.
    화산활동으로 함몰된 지형에 물이 고인 호수로 그 깊이가 무려 423.4m로, 일본에서는 가장 깊고 세계에서는 17번 째로 깊다고 한다.
    따라서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강한 산성의 온천수인 타마가와 강이 유입되어 독특한 물빛으로도 유명한데,
    동틀 무렵엔 보랏빛, 낮에는 짙은 푸른빛, 해질녘엔 선명한 주황빛으로 빛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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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이 탁트이는 깨끗한 풍경사이로 어제 방금 닦아 놓은 듯한 도로가 시원하게 뻗어있다.
    아무도 없었던 도로를 신나게 질주해 보아도 좋았겠건만, 군데 군데 쌓여있는 흰 눈과 파란 물빛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홀려,
    자꾸 우리도 모르는 사이 차를 멈추고, 넋을 놓게 되었다. 길가에는 아이리스 덕분에 한국 관광객이 많아져서인지, 한글 표지판도 있었는데,
    알아보기 힘든 폰트와 어색한 해석이 숨막히는 풍경과 상반되어 실소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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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멀리 물속까지 보이는 투명한 호수가 어찌나 예쁜지, 겨울이라도 개의치 않고 그대로 뛰어들어 온몸으로 느끼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아, 그런데 아쉽게도 수영복이 없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그러나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다자와 호수는 사실 얼마전까지 생명체가 살지 않는 죽은 호수에 가까왔다. 이곳 역시 인간의 손길로 인한 수난을 비켜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40년대에 지역발전을 목적으로 유입시킨 강한 산성의 온천수때문에 호수 전체가 산성이 되었고, 결국은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살던 어종인 쿠니마스를 비롯해 어떤 것도 살 수 없는 죽은 호수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1970년대 이후 꾸준한 노력으로 중성을 찾아, 지금은 다시 물고기가 빼곡히 살고 있는 깨끗한 물이 되었지만 아직 고유어종인 쿠니마스는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일본 정부에서 예전에 쿠니마스를 다른 하천에 방류한 적이 있었는데, 추후 다자와호 정화 작업을 진행하며 고유어종을 돌려놓기 위해 쿠니마스에 현상금까지 걸어가며 찾아 헤맸다고 한다. 결국 근 70년 만인 2010년에 야마나시현에서 그것으로 추정되는 물고기가 발견되어 전 일본이 들썩였다고.

    여름에는 유람선을 운행하고 자전거도 대여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호수를 돌아볼 수 있다. 호수 둘레는 20km쯤 되니 하루정도 여유롭게 하이킹을 하기에도 손색없는 코스. 몇몇 포인트에서는 수영도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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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츠코 상을 만나다

    이것이 바로 드라마 아이리스 속의 이병헌과 김태희가 앞에서서 슬픈 사랑을 암시했던 미녀 타츠코의 동상이다. 호수에 물이 차면 동상 바로 아래까지 수면이 올라오는 모양인데, 우리가 갔을 땐 호숫가를 걸어 동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수면이 낮았다.

    그럼 타츠코가 뭘 어쨌기에 이렇게 동상까지 세워져 있는걸까? 전해져 오는 이야기는 이렇다.

     

    타츠코의 전설

    숨막히게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이었던 타츠코는 어느 날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된다. 예쁜 애들이 본인 예쁜 걸 알면 무섭다고,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미모를 영원히 유지하고 싶었던 타츠코는 절로 가서 지성을 다해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관세음보살은 산 속 호수에 가서 물을 많이 마시라는 계시를 내려준다. 살 빠지고 예쁜 피부를 유지하려면 물을 열심히 마셔야 한다고 늘 성화이신 우리 헬스클럽 강사님도 매우 동의할 이야기다. 그녀는 시키는대로 물을 마셨지만 끝없는 욕심 때문일까 점점 더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결국 욕망에 미쳐 가며, 아무리 배가 불러도 아랑곳 않고 계속 해서 물을 마시던 그녀는 어느새 용의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욕심이 불러온 인과응보라는 것을 깨달은 타츠코는 너무 창피해서 물 속에 몸을 숨기고 이 호수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욕심많은 딸이라도 부모에게는 소중한 법. 자신의 딸이 산에 들어가 한참이 되어도 내려오지 않자, 걱정이 된 엄마가 호수로 그녀를 찾아나선다. 그때 이미 타츠코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고, 이를 보고 슬픔에 잠긴 엄마는 호수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리고는 물고기의 모습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이 호수에만 유일하게 살았던 어종인 쿠니마스의 시작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이야기다. 엄마가 딸내미 예쁘게 낳아준 것 말고는 무슨 죄가 있다고.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는 교훈은 어느나라에서나 통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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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츠코 상이 있는 곳에는 우키(浮木)라는 이름의 신사(神社)가 하나있다. 신사의 내부에는 방문자들의 소원이 깃들어 있을 부적같은 것들이 귀엽게 매달려 있다. 그런데, 다들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미모를 영원히 유지하게 해달라고? 나도 멋진 용이 되게 해달라고? 건강하다 못해 불사의 존재가 되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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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무슨 소원을 빌고 싶은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신사 뒤로 돌아가 앉아, 푸른 호수와 저어 멀리 눈쌓인 산을 바라 보며 이런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삶에 감사드렸다.

     

     

    뜨끈한 키리탄포 꼬치를 호호 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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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츠코상 길 건너편에는 작은 기념품 상점 겸, 음식점이 하나 있다.
    살짝 출출해진 우리는 입구에 진열되어 있는 음식 중 대충 모양만으로 판단해 하나 주문해 놓고, 상점안을 둘러보았다. 잡다한 물건들과 기념품, 특산품, 야채, 건어물 등 가게의 주제를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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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글 동글 짭쪼름한 곤약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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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동글 동글한 곤약 꼬치였지만, 나의 입맛에는 너무 짰던 기억이 있어 오늘은 다른 것을 주문하기로했다.

    창문앞에 쪼르르 세워 놓은 커다란 성냥개비같이 생긴 것이 재미있어,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시켰더니, 5분 정도 기다리라고 한다. 설레는 5분이 지나고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바로 키리탄포 구이. 키리탄포 구이라니 뭔가 있어보이지만, 한마디로 '밥' 구이다. 아키타는 쌀이 맛있기로 유명해서, 쌀로 담그는 청주와 바로 이 키리탄포가 대표적인 지역 특산물이다. 키리탄포는 찰지게 지은 밥을 막대기에 조물조물 붙여, 된장 소스 같은 것을 발라 불에 구운 것으로 짭짤하고 달콤하다. 이 외에에도 키리탄포를 전골로 끓여 먹는 '키리탄포 나베'도 유명하다. 

     

     

    거울이 있는 고자노이시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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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수의 북쪽으로 계속 이동을 하면 호수의 수호신이 된 타츠코를 모시는 신사가 있다.
    신사 앞은 바위 절벽으로 다자와 호수 푸른 물빛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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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 앞에 있는 신이 지나는 길, 토리이. 용이 된 수호신 타츠코가 이 문을 통해 호수에서 신사로 들어오고 나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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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신사에 들어가면 입구에는 어김없이 작은 샘물이 하나 있다. 이 샘물은 들어가기 전 손을 씻고 입을 헹구는 의식을 위한 것으로 놓여있는 작은 바가지에 절대 입을 대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약수터와 비슷한 모양새에 한국인 관광객들은 자연스레 바가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조차 처음 봤을 땐 산에서 나는 약수 쯤으로 여겼으니까.

    이 신사는 용이 된 미인 타츠코를 모신 곳이어서 그런지 샘물이 용의 입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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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는 규모가 상당히 작았는데 본당 건물이 어딘지 여성스럽고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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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건 무슨 뜻일까? 본당의 내부를 조심스레 들여다 보니, 대부분 보살이나 그 신사에서 모시는 신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거울이 하나 붙어 있다. 미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용이 되었다는 타츠코 대신 말이다. 아마 지금 어떤 욕심이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이 자리에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는 아닐까? 내 멋대로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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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수많은 이들의 염원이 끝없이 매달려 있는 것을 바라보며 신사를 나왔다. 욕망에 사로잡혀 용이 되었다는 타츠코. 그런 그녀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신사. 또 그녀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 어딘지 아이러니한 구석이 가득하지만, 아마 그래서 이곳에 인간미가 넘치는 지도 모르겠다. 끝없는 욕망과 반성을 반복하는 불완전한 사람들의 모습이 이곳에 담겨있기 때문에.

     

     

    INFORMATION

     

    다자와 호수 교통편

    숙소가 뉴토온천향에 있다면 다자와코 고원방향으로 가는 뉴토선 버스를 타고, 다자와코 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이곳에서 다자와코 일주선으로 갈아타면 버스로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타츠코 상에서 15분, 고자노이시 신사에서 5분의 하차시간이 각각 주어지므로 관광을 하기에도 불편함은 없다.

     

    ▶ 아키타현에서 제공하는 다자와코 버스 시간표

     

     

     

     

    토종감자

    티스토리 우수블로그 '토종감자와 수입오이의 여행노트’ www.lucki.kr 을 운영하고 있다. 2004년부터 세계를 유랑하고 있는 유목민으로 한국일보 여행 웹진, 월간 CEO, 동원블로그, 에어비엔비, 투어팁스, 서울대치과대학 소식지 등 온오프라인 여러 매체에 여행칼럼을 기고했다. 도시보다는 세계의 자연에 관심이 많아 섬여행이나 오지트래킹, 화산, 산간지역 등 세계의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닷 속 이야기를 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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