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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렌지빛 프로방스의 햇살, 따뜻한 중세도시 아비뇽

    moo nee moo nee 2014.02.14

     

    오렌지빛 프로방스의 햇살, 따뜻한 중세도시 아비뇽 Avignon

     

    아비뇽

     

    러셀크로우 주연의 영화 '어느 멋진 순간 (A Good Year, 2006)'은 일과 싸구려 사랑에 취해 살던 런던 증권맨 맥스 스키너가 프로방스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 사랑, 추억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어린 시절 프로방스에서 자란 맥스 스키너(러셀 크로우 分)는 자신을 키워준 헨리 삼촌의 유산을 정리하러 프로방스로 휴가를 떠난다. 그곳에서 만난 페니(마리옹 꼬띠아르 分)에게 호감을 느끼고 데이트 신청을 위해 페니가 일하는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그 때 바쁜 페니가 하는 말.

    “맥도날드는 아비뇽, 피시 앤 칩스는 마르세유에 있어요!”

    영화 속 프로방스의 풍경은 너무나 여유롭고 아름다웠는데, 여주인공의 ‘아비뇽 = 맥도날드(?)’ 라는 멘트는 '한적한 프로방스의 아비뇽'을 기대하며 여행 일정에 아비뇽을 넣은 나에게 제법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큰 기대 없이 아비뇽 역에서 내렸다.

     

     

    아비뇽역

     

    과연 아비뇽에는 맥도날드가 있었다. H&M도 있고 까르푸도 있고 각종 쇼핑시설, 브랜드 상점이 메인 스트리트에 줄지어 있었다. 그러나 이 현대적 쇼핑가는 아비뇽의 특색이라 할 수 없다. 아비뇽  기차역에서 내리는 순간,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맥도날드도 H&M도 아니다. 바로 성벽이었다. 아비뇽은 성벽 안에 오밀조밀하게 조성된 마을이다. 성벽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엄마 품에 폭 안기듯 아늑함이 밀려온다.

     

     

    아비뇽 성벽

    아비뇽 성벽

     

    아비뇽은 프랑스 론 강변에 위치한 도시로, 11세기부터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를 잇는 상업의 요충지로 번영했다. 이때부터 건설된 성벽이 거의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중세도시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아비뇽 교황청

    ▲ 아비뇽 교황청과 노트르담 성당 

     

    아비뇽의 가장 큰 볼거리인 교황청에 들어간 순간! 그 크기와 장엄함에 처음 놀란다. 그리고 벽면에 그려져 있는 아름다운 벽화들에 두 번 놀란다. 교황의 권력이 가장 약화되었던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하는데…… 교황청을 둘러보다 보면 ‘과연?’ 이라는 의문이 든다.

     

     

    아비뇽 교황청

    아비뇽 교황청

     

    아비뇽은 ‘아비뇽 유수’라는 역사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아비뇽의 유수란 프랑스 황제 필리프 4세가 당시 교황이었던 보니파시오 8세와 대립하였는데, 필리프 4세가 승리하면서 (아니니사건, 1303년),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겨 교황직을 프랑스인이 계승하도록 한 1309년부터 1377년까지 약 70년간의 기간을 말한다. 즉 황제의 권력이 강력해지고, 교황권이 극도로 약화된 기간인 것이다.

     

     

    아비뇽 교황청

    아비뇽 교황청

     

    최근에는 ‘아비뇽 유수 기간에 건축, 미술, 문화 등의 분야에서 눈부신 혁신과 발달이 있었다’는 견해와 함께 이 시기를 재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교황청을 직접 둘러보며 나 역시 이 견해에 한 표를 던지고 싶었다.

     

     

    아비뇽 교황청 기념품점

    ▲ 아비뇽 교황청 기념품점

     

    아비뇽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동요 ‘아비뇽의 다리 위에서 (Sur le pont d'Avignon)’ 에 등장하는 다리 때문이다. (사실 나도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처음 접한 동요지만…… ^^;)

    Sur le pont d’Avignon (아비뇽 다리 위에서)
    L'on y danse, l'on y danse (우리는 춤을 추네, 우리는 춤을 추네)
    Sur le pont d’Avignon (아비뇽 다리 위에서)
    L'on y danse tous en rond (우리 모두는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네) ……

    론 강에 걸쳐진 아비뇽다리의 정식명칭은 생베네제교(Pont Saint Benezet). 12세기에 지어진 이 다리는 이미 끊긴 채, 현재 3개의 아치만이 남아 있다.

     

     

    아비뇽 다리

     

    ‘뭐 별 것 없는데?’ 하면서 다리의 끝으로 걸어가 보았다.
    다리의 가장 끝에 서서 뒤를 돌아본 순간. 아비뇽 시내를 둘러싼 성벽이 함께 눈에 들어오면서 마치 중세로 돌아가 서 있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긴 스커트의 중세 유럽 복장을 하고 다리 위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아비뇽 다리 

     

    비록 비가 내려 론 강의 물색은 황톳빛을 띠었지만 베이지색 성벽과 어울려 나름의 운치가 있다. 

    한참을 다리 위에 서 있는 데, 성당에서는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고……
    이 소리는 더욱 우리를 중세 풍경에 흠뻑 젖게 했다.

     

     

    INFORMATION

     

    교황청 궁전 (Palais des Papes)

    - 주소: Place du Palais, 84000 Avignon, France ‎
    - 입장료: 성인 11유로, 학생 5.50유로
    - 개관시간: 9월 1일 ~ 11월 1일 9:00 ~ 19:00
    11월 2일 ~ 2월 29일 9:30 ~ 17:45
    3월 9:00 ~ 18:30
    4월 ~ 6월 9:00 ~ 19:00
    7월 9:00 ~ 20:00
    8월 9:00 ~ 20:30
    - 홈페이지: http://www.palais-des-papes.com/en

     

    아비뇽 다리 (Pont d'Avignon)

    - 주소: Pont d'Avignon, 84000 Avignon, France ‎
    - 입장료: 성인 5유로, 학생 3.50유로
    - 개관시간: 교황청궁전과 동일
    - 홈페이지: http://www.avignon-pont.com/en

     

    (*) 교황청 + 아비뇽 티켓은 할인가가 적용되어 성인 13.50 유로, 학생 7유로

     

     

    아비뇽다리 주변풍경

     

    돌아와서 우연히 읽게 된 '도시와 나'라는 단편 소설집에는 성석제 작가의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 한 편이 실려 있었다.
    이 작품에 아비뇽 다리 주변 풍경이 아래와 같이 담겨 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포도주 한 병과 샌드위치, 자전거와 책 한 권을 들고 강변 잔디밭에 누웠지. ... 슬슬 불어 드는 바람에 솔솔 찾아오는 잠, 천국이 따로 있나 싶었어. 이러니까 사람이 사는구나. 이러니까 '아비뇽의 유수'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면서까지 7대 교황이 아비뇽에 머물렀구나......

    p.26 [도시와 나 | 사냥꾼의 지도-프로방스의 자전거 여행] (성석제 | 바람) 

     

    그가 묘사한 이 도시의 여유를 나 역시도 비슷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었는 데, 바로 일요일의 아비뇽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 성벽을 따라 산책을 하였다. 아비뇽의 아침햇살은 석양의 색감과 닮았다.
    따뜻한 색감을 가진 아침햇살이 그림자를 길~게 늘리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아직 늦잠을 자고 있는 듯 고요했다.
    산책을 하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에 묻어나는 여유로움과 한적함. ‘천국이 따로 있나' 싶었다.

     

    아비뇽로를 따라서 계속 북진했지. 길가에 맥도날드 간판이 보이길래 커피를 한잔 마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을 열었는지 몰라서 그냥 지나쳤어.

    - p.37 [도시와 나 | 사냥꾼의 지도-프로방스의 자전거 여행] (성석제 | 바람) 

     

    소설의 이 부분을 읽으며 문득! '아비뇽과 맥도날드. 은근 인연이 깊은 듯?' 혼자 생각하며 킥킥거렸다. 아비뇽에 머무는 동안 한 차례 갑작스런 스콜과 같은 비를 만났다. 속옷까지 흠뻑 다 젖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상점 난간에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서둘러 호텔로 뛰어가는 사람은 나와 내 동생뿐. 모두들 우리를 쳐다보았다.

    온몸이 다 젖어 호텔방에 도착하고 나서야……
    ‘우리는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서둘러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방스에서도 버리지 못하는 나의 조급증.

    그리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다시 따스한 햇님이 방긋! 언제 싸웠냐는 듯 금방 다시 친해지는 오랜 친구처럼 아비뇽의 날씨는 뒤끝도 없이, 최상의 얼굴을 내밀었다. 정말 정이 가는 도시다.

     

     

    아비뇽

    아비뇽

     

    저녁놀이 지는 아비뇽은 건물에 따로 주황빛 조명을 켜 놓은 듯 아름다웠다. 자연의 빛이었고, 프로방스의 햇살이었다.

     

     

    아비뇽 케밥집

     

    성곽 안 작은 커뮤니티 아비뇽에서 사흘을 머물면서 불쾌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식당에서 우리 테이블만 빵을 안 준다거나, 숙박한 호텔방에서 옆 방이 너무 시끄러워 한숨도 못 잤다고 하니 호텔직원이 정색을 하며 '지금 방을 바꿀 순 없다. 아침에 말했어야지'라고 한다든지, 낄낄거리며 '니하오, 니하오' 말을 거는 청소년들 등…… 조금은 눈살을 찌푸릴만한 일이 있었다.

    아비뇽에서는 케밥 하나를 사도 카메라를 든 나에게 주방을 내어주며 ‘들어와서 찍으라’는 청년, 와인 한 병 따 달라고 했을 뿐인데 얼음을 가득 담은 큰 통에  예쁜 글라스까지 챙겨주는 호텔직원, 친절한 영어로 견학경로를 설명하는 교황청 관광안내원, 기차에 늦지 않게 해준다며 쌩쌩 달리는 버스기사 아저씨까지…… 모두가 친절하고 살가웠다. 또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사람들끼리 웃으며 악수하고 인사하는 모습도 몇 차례 보았는데, 정말 보기 좋았다. 

    여러 도시를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이기 때문에, 한 도시의 순간적인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고, 비교하고 기억하기 마련.
    아비뇽은 나에게 프로방스에서 가장 따뜻한 도시였다.

     

     

    아비뇽 떼제베역

    ▲ 마지막 장면까지 아름다운 아비뇽. 니스로 향하는 기차에 타기 전 아비뇽 떼제베역 풍경이다.

     

     

     

     

    moo nee

    배경여행가. 책, 영화,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의 모습이 지워진 배경에 들어가 보는 여행을 하고 있다. 백과사전 회사에서 5년 가까이 근무. 건조하고 차가운 글을 쓰고 편집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으니, 촉촉하고 다정한 글을 찾고 쓰는 일이 낙(樂)이 되었다. 지금은 IT회사에 재직 중. 저서로는 <다정한 여행의 배경>이 있다. www.istandby4u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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