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도 반한 로맨틱 아키타 레스토랑
푸른 타자와코를 진정으로 즐기는 법
타자와코는 아이리스 드라마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아키타 현에 있는 호수로, 일본에서 가장 깊고, 신비로운 푸른 물빛으로 유명하다.
▶ 토종감자의 지난 아키타 여행기 다시보기 : 전설이 가라앉은 겨울호수, 타자와코
시원한 풍경을 아침내 계속 바라봤더니 뱃속도 시원하게 텅 비었는지 심한 허기를 느꼈다. 큰일이다. 결혼 7년쯤 되면 여행하다 배가 고픈 것이 매우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신혼 초엔 배고파도 본성을 숨길 수 있었는데, 이제 둘다 스멀스멀 곤두서는 신경을 감추지 않기 때문에, 허기는 신경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럴 때는 눈에 띄는 첫번째 음식점으로 얼른 들어가는 것이 즐거운 커플 여행을 지속할 수 있는 팁! (^^)
로맨틱 커플여행 Tip 1 : 잘 먹어야 한다!
다행히 호수를 한바퀴 돌았을 무렵 저쪽에 커다란 음식점이 하나 보였다. 대충 보기에 공장 같아 보이기도 해서, 살짝 망설이다가 가까이 다가가 간판을 천천히 읽어보니 레스토랑이라 쓰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사진처럼 멀리서도 보이도록 커다랗게 쓰여있는데, 나에게는 익숙치 않은 일본어인지라 집중하지 않으면 한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음식점 내부는 이렇게 따뜻한 느낌의 원목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고, 3면이 전부 유리창이라 부드러운 햇살이 기분 좋게 들어온다. 특히 창가의 2인석은 나란히 창밖을 보며 앉을 수 있어, 타자와코의 평화로운 풍경을 반찬삼아 식사를 할 수 있다. 배가 고파서 무엇이라도 다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음식점이 기대 이상으로 멋진 것이 아닌가. 이런 곳에서라면 이미 식사를 하고 들어왔더라도 무엇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에 온 뒤로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매번 깜짝 메뉴가 등장한다. 일본어를 못하기에 대략 짐작하고 주문을 하니, 종종 전혀 상상하지 못한 다른 것이 나오기 때문. 오늘도 메뉴 선택을 놓고 고전할 각오를 하고 들어왔는데, 이곳은 이렇게 센스 있게 메뉴를 커다란 사진과 함께 입구에 떡 붙여 놓아 문맹 고객의 불편함을 덜어 주었다.
일본에 도착한 뒤로 오랜만에 음식점에서 마음이 편하다. 가장 예쁜(?) 그림을 하나 고르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눈 앞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 살짝 구름이 짙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로 빛이 내리는 모습 덕에 전설이 깃든 호수가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전설처럼 정말 용이 하늘로 올라갈 것만 같은...
로맨틱 커플여행 Tip 2 : 스마트폰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남편, 화장실에 다녀오며 보니, 눈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따윈 안중에 없고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다. 무료 와이파이가 잡혔기 때문. 인터넷이 그리 좋으면 그냥 집에 있자...
요즘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단체로 각자의 스마트폰에만 집중하고 있는 순간이 있다. 남편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간혹 여행지의 멋진 풍경도 뒷전이고 서로의 존재까지 망각한 채,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릴 때가 있다. 기껏 멋진 곳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고 나와서, 결국 스마트 폰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간다. 자제하려고 노력 중인데, 무의식 중에 튀어나오는 어딘가 안타까운 모습이다.
무료 와이파이라는 말에 나도 스마트폰으로 자꾸만 옮겨가는 손을 진정 시켜가며 오손도손 음식을 기다리는데, 살짝 쌀쌀한 느낌이 들어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자 센스 넘치는 종업원이 얼른 무릎담요를 건네준다. 기왕이면 자리도 따뜻한 벽난로 옆에 앉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그 자리는 '아이리스' 특별석. 아키타에는 구석 구석 아이리스의 흔적이 묻어있고,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 이 분위기 좋은 음식점을 그냥 지나쳤다면, 그것이 더 놀랍겠다. 바로 저 벽난로 옆자리에서 김태희와 이병헌이 앉아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찍었던 것이다.
세련된 스타일로 깔끔하게 담긴 음식이 도착했다. 꼭 허기지지 않았더라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덕에 음식이 맛있게 느껴질 것 같았다. 사실 매우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음식맛 자체는 평범한 편이다. 게다가 닭가슴살인줄 알고 주문했던 나의 메뉴는 돼지 목살 스테이크. 그림이 있었음에도 또 다시 깜짝 메뉴가 되어버렸다. (^^;)
오이군의 도리아도 평범한 케찹 볶음밥에 치즈를 얹어 오븐에 구워 나오는 것으로 나에게는 살짝 부족한 맛. 그러나 이 음식점은 평범한 맛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아키타에 온다면 주저없이 다시 들르고 싶은 매력 넘치는 그런 곳이다.
로맨틱 커플여행 Tip 3 : 가끔은 맥주 한 잔으로 분위기 만끽!
이 음식점이 밖에서 봤을 때 어딘지 공장 같아보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곳은 직접 맥주를 제조해 판매하는 곳이였던 것이다. 전국적으로 상을 휩쓸정도로 훌륭한 맛을 가진 맥주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리스의 주인공들도 이곳에앉아 맥주를 마셨던 것. 시원한 생맥주는 물론 병맥주도 그 종류가 다양하다.
아기자기한 장식이 주욱 늘어선 바에 앉아 시원한 맥주 거품으로 입술을 적셔가며 풍경을 음미하면, 오래된 로맨스도 새삼스레 불쑥 고개를 내밀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맥주의 힘을 빌어 로맨틱한 오후를 보냈느냐고?
전혀. 우리는 맥주없이도 충분히 늘 로맨틱하다...는 아니고, 사실 둘다 맥주를 즐겨하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 유명하다는 맥주를 한잔은 주문해서 분위기를 잡았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로맨틱 커플여행 Tip 4 : 멀리 멋진 곳을 발견한다면 가까이 가볼 것
음식점에서 내내 호숫가를 바라만 보다가, 배가 불러오자 이제 저곳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데 여길 왜 걷냐며 눈이 동그래지던 남편은 호숫가로 내려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성큼성큼 먼저가며 내 걸음을 재촉한다. 음식점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누구나 반할 만한 모래사장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맞은 편의 산만 보이지 않았더라면 바다라 해도 믿을 것 같다.
이곳의 모랫속에는 매우 굵은 규석이 잔뜩 섞여 있어서 마치 유리 조각을 사방에 뿌려놓은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모래 위로 한걸음을 내디딜 때 마다 굵고 투명한 모래알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반짝이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둘이서 힘든 줄도 모르고 한참을 뛰어다녔다. 덕분에 어느새 추위도 저어만치 멀어졌다.
오라에 음식점 앞의 호숫가는 타자와코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기억에 남는 곳이다. 만약 우리가 춥다고 움츠리고, 차 안으로 들어갔더라면 이 멋진 곳을 놓치고 말았으리라. 여행하다 멋진 곳이 눈에 띄거든 망설이지 말고 가까이 다가가보자. 생각지도 못한 멋진 것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INFORMATION
오라에 Orae
아키타현 센보쿠시 타자와 타자와코 하루야마 37-5
TEL 0187-58-0608
※ 오라에는 아키타 사투리로 '우리집'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티스토리 우수블로그 '토종감자와 수입오이의 여행노트’ www.lucki.kr 을 운영하고 있다. 2004년부터 세계를 유랑하고 있는 유목민으로 한국일보 여행 웹진, 월간 CEO, 동원블로그, 에어비엔비, 투어팁스, 서울대치과대학 소식지 등 온오프라인 여러 매체에 여행칼럼을 기고했다. 도시보다는 세계의 자연에 관심이 많아 섬여행이나 오지트래킹, 화산, 산간지역 등 세계의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닷 속 이야기를 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