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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펜하겐, 살구빛 일요일의 그룬트비히 교회

    Wish to fly Wish to fly 2014.03.11

    카테고리

    북유럽, 역사/종교
     

    살구빛 충만한 일요일의 교회, 코펜하겐 그룬트비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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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그 모든 경계를 초월하기 위함이다. 바다를 건너고 국경을 넘는 것, 이제껏 살아왔던 문화권을 떠나 새로운 문화 속으로 한발 담는 것, 익숙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과 어색함을 마주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위해 우리는 떠나는 것이다. 때때로 여행지와 종교적 장소의 경계에 서 있는 어떤 장소를 찾는 것도 어쩌면 새로운 경계 너머의 무언가를 찾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굳이 종교적 신념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여도, 여행자라는 '경계의 신분'을 방패 삼아 그 금기의 장소 속으로 들어가 느끼는 묘한 여행 기분이란. 단순히 수백년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건축물의 위대함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삶의 이야기들을 기웃거리며 경험하는 그 설렘이란.

    로마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는 산 피에트로 성당을, 파리를 여행하는 여행자는 노트르담 성당을 찾을 것이다. 허나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일랑 성스러운 파이프 오르간의 울림보다는 온갖 관광객들의 왁자지껄함, 간절한 기원 읊조리는 누군가와 그 앞의 촛불보다는 여행자들의 재잘거림과 플래시 세례. 아이쿠, 내가 이것을 보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은 아닐 터인데. 이미 관광지화한 대성당과 교회 본연의 모습을 찾지 못하는 것은 이처럼 씁쓸한 것.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풍의 나라 캐나다는 가을에 가고, 벚꽃의 나라 일본은 봄철에 가야 하듯이, 사실 교회나 성당의 진짜 모습을 경험하고 싶은 여행자라면 일요일 아침 예배(미사) 시간에 그곳을 방문하여야만 그 장소 본연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여행의 첫 일요일. 휴일 아침의 햇살을 가득 품고, 나는 코펜하겐의 그룬트비히 교회를 찾아 나섰다.

     

    주소 : Pa Bjerget 14B, 2400, København, Denmark

    가는 법 : 덴마크 국철 S-Tog Farum 행 열차를 타고 Emdrup 역에서 하차. Bispebjerg Cemetary 방향으로 도보 5~10분.

    홈페이지 : http://grundtvigskirke.dk/

     

    일요일 아침, 코펜하겐

    일요일 아침, 코펜하겐은 맑음이었다. 호스텔의 침대 머리맡, 열린 창문으로 새들의 재잘거림이 새어 들어왔다. 여유로운 휴일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할 곳, 그룬트비히 교회는 우리가 흔히 여행하는 코펜하겐의 시가지로부터는 조금 떨어져 있다. 서울과 비교하자면 과천 쯤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네 국철과 비슷한 코펜하겐의 S-Tog 열차를 타고 나는 그룬트비히 교회가 있는 Emdrup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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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그마한 간이역에 내리자마자 대도시 코펜하겐에선 느끼지 못할 여유로움이 발걸음을 잡아 끌고 있었다. 한껏 들뜬 기분 그대로 그룬트비히 교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햇빛, 바람과 함께. 교회의 뜰에 도착했을 즈음,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맑은 소리 조각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뎅- 뎅- 울리며 옛 여행을 상기시키는 그 종 소리가 반갑고 또 반가웠다.

     

    아침 볕 가득한 예배당

    안내하는 이에게 예배에 참석할 것이라 말을 하고 예배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동측의 제단을 향해 주욱 뻗은 공간. 그리고 그 끝에서, 이제껏 고대하며 상상했던 그대로 북유럽 햇살의 따뜻한 충만함을 볼 수 있었다. 유럽 대부분의 교회와 성당들은 서측에 입구를 두고 동측에 제단을 둔 장방형의 평면으로 되어 있다. 예배가 열리는 아침마다 이리도 찬란하게 떠 오르는 동쪽 태양을 보여주기 위함도 있었으리라. 성서를 읽지 못했던 뭇 백성들도 이 햇살의 따뜻한 충만함으로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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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는 덴마크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 어떤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성가대의 아카펠라와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한 울림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한 시간여의 예배 시간은 지루할 새 없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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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가 끝나고, 따뜻한 볕이 드는 예배당 안의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어느 곳 하나 빛으로 충만하지 않은 곳이 없는, 살구색 벽돌을 쌓아 만든 공간은 있는 그대로 따뜻했다. 뾰족하게 솟은 아치(포인티드 아치)들 사이, 위로 길게 낸 창(고측창), 그룬트비히 교회 역시 고딕 성당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고딕 특유의 장엄하고 침잠한 공간의 느낌보다는 밝고 따뜻한 느낌이 더 지배적이었다. 여행에서 이런 느낌의 예배당을 만난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장소가 더없이 좋았다. 오래도록 떠나고 싶지 않을만큼.

    * 유럽 대부분의 교회와 성당들은 모든 이에게 예배와 미사를 개방하고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입장료가 있거나, 관광객에게 개방이 되지 않는 곳이라도 예배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완전히 개방하는 곳도 있다. 물론 예배 시간 동안은 사진 촬영 등의 행위가 허용되지 않으므로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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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룬트비히라는 이름의 교회

    그룬트비히 교회는 웬만한 여행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곳. 코펜하겐 구시가 안에 있는 다른 교회들보다 오래 되지도 않았고, 그렇기에 여행자들을 잡아 끌만한 매력이 없기 때문일지도. 허나 짧은 역사 하나 때문에 이 장소의 가치가 묻혀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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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룬트비히 교회는 덴마크 근현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그룬트비히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 니콜라이 그룬트비히(1783~1872)는 덴마크에서는 국부로 칭송되는 인물. 신학자이자 시인, 정치가이자 교육자로서 여러 분야에서 힘써 덴마크의 부유한 현재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한다. 우리나라의 근현대 역사에서는 국부라고 일컬어지는 인물이 없어 정확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세종 문화회관이나 충무 아트홀이 우리나라에도 있는 것처럼, 그 나라의 위인을 기리는 마음이야 지구상 어느 곳이라도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 교회가 세워질 당시, 그룬트비히를 존경하는 많은 덴마크 국민들이 기금 모금 등을 통해 교회의 건축을 지원했다고 한다. 진정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과 감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교회 설립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방금 전 교회의 예배당에서 느꼈던 따뜻함이 겉으로만 보여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짧은 예배와 짧은 교외 여행을 마치고 다시 코펜하겐으로 돌아가는 여행자의 마음도 한결 넉넉한 따뜻함으로 그득이 채워지는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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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여행자에게 추천

    건축을 공부하는 건축학도 여행자.

    코펜하겐 시가지 뿐 아니라 교외까지도 여행하려는 여행자.

    예배나 미사를 직접 참여하고픈 여행자.

     

    여행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

    종교적 장소를 방문하여 종교적 시간을 경험하는 여행. 혹시 당신이 종교인이 아니기에 조금 꺼려지는가? 당신이 어떤 신을 믿든, 또 믿지 않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한 걸음 내디뎌 보기를. 당신의 여행도 나의 여행처럼 그 모든 경계를 초월하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라면, 조금 더 가까이에서 그들의 삶을 경험하고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종교적 신념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들의 건축과 문화와 삶과 또 그 안에 담긴 소소한 이야기 꾸러미를 그곳에서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은 또 하나의 경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Wish to fly

    건축이라는 것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의 경험으로 다시 건축을 하는 여행이 생활이고 생활이 여행인, 여행중독자입니다. http://blog.naver.com/ksn33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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