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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라나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上

    엄턴구리 엄턴구리 2014.03.29

     

    바라나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_ 上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의 삶

     

    인도 최고의 힌두교 성지. 갠지스 강 연안에 위치하며 연평균 100만에 달하는 순례자가 모여들어 갠지스 강에서 목욕재계를 한다.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라나시는 곧 인도의 모든 것을 대변하며 3000여년의 긴 세월은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미국 대문호 마크 트웨인)’ 바라나시를 완성했다.

    인도인들이 그들의 어머니라 칭하는 강가(갠지스)를 품은 고도(古都), 쉬바신을 비롯한 인도의 모든 신앙이 모인 신들의 고향, 신화가 현실이 되어 인도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그곳에서 갠지스는 오늘도 세속의 모든 더러움을 품고 바라나시 그곳을 유유히 흐르고 있다.

     

     

    바라나시 Varanasi 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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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갠지스의 물결이 유유히 흐른다. 한쪽에선 빨래가 한창이고 그 옆에선 중년의 인도인이 벌거숭이 몸을 하곤 강물에 몸을 담근다. 팬티만 겨우 가린 그의 몸은 무슨 성스런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 행동하나하나가 거룩하기 그지없다. ‘어이구, 어이구’ 어디선가 시작되는 곡소리에 읽던 책을 잠시 접고 낯선 이의 명복을 빌어 보는데 눈을 뜬 그곳에는 7살짜리 어린 꼬마가 디아(Dia) 하나를 쑥 내밀며 당당하게 10루피를 요구한다. 달콤한 짜이 한 잔에 세상을 다 가진 듯 만족스런 입맛을 다실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기꾼은 주황색 사두차림을 하고서는 무작정 사진을 찍자며 집요하게 졸라댄다.

    그 곳에서 친해진 목걸이 파는 한 소녀가 자신의 집이라며 소개한 갠지스의 구석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듯한 천막이 아슬아슬한데 그 좁은 곳을 그녀는 그녀의 할머니와 부모님, 2남 5녀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몇몇의 어린 조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매일 저녁, 해질녘이면 메인가트인 ‘다샤스와메드’에선 관광객을 위한 거대한 뿌자(힌두교 의식)가 행해진다. 그 화려한 의식에서 한걸음 비껴가면 어느 화장터 골목에선 24시간 끊임없이 마른 장작들을 실어 나르고 그 타들어가는 시체를 보노라면 그것은 슬픔보단 어떤 허망함이 먼저이니 결국은 ‘나는 또 어디로 가는 것인가?‘라는 별 시답잖은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이른 여행자가 되어 그들의 일상에 나 자신의 일상을 포개어 유유자적한 시간을 강가로 흘린다. 인도를 찾는 이들로부터 인도에서 가장 더러운 곳으로 악명 높은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손꼽히는 이곳 바라나시에서 삶과 죽음의 일상, 그리고 그 경계에서 맞이한 거대한 축제의 현장을 함께해 보자.

     

     

    바라나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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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는 황혼으로 물들고 저 멀리 어둠이 깔리는데 여행자의 조급함은 그와는 별개라는 듯 덩치 큰 황소 한 마리가 아까부터 어슬렁어슬렁 도로를 배회한다. 그 느려터진 걸음에 여행자의 인내는 기어이 바닥을 보이는데 또 그와는 별개로 느긋한 그네들의 기다림은 괜히 또 사람을 황소인양 만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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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빵’ 여기저기 크락션이 울려댄다. 소를 제외하면 그들에겐 양보 따윈 없다는 듯 곳곳이 유실되어 낡아빠진 도로 위를 치고 가는 모든 탈것들의 움직임엔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어쩌다 부딪힐라 치면 또 그보다 먼저 비켜가는 기막힌 핸들링, 그 혼돈의 카오스엔 말로는 표현 못할 교묘함이 가득하니 오래되 삐걱거리는 낡은 사이클 릭샤 위에서 배낭을 꼬옥 잡은 여행자의 두 손이 절로 힘이 들어 뻐근하다.

    어머니의 강, 갠지스가 품은 바라나시. 그 고도(古都)의 관문 고돌리아로 향하는 길은 황혼에서 시작하여 짙은 어둠으로 마감하니 길이 낯선 초행자의 발걸음에 서두름이 절로 묻어난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이 몸 누울 자리 하나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당면한 과제인 것이다.

     

     

    바라나시에서는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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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의 바라나시.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내려다 본 강의 풍경은 고요했다. 너머로 자욱한 안개, 강가로는 줄지은 나룻배들이 예약된 손님을 맞이하고자 순항의 채비를 서두른다. 일찍이 눈이 떠진 참이다. 오늘은 나도 한 번 나가 볼까 생각은 해 보지만, 이곳 숙소의 옥상에서 나 홀로 맞이하는 일출은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가 선사하는 시크릿한 일탈이다.

    ‘삐걱억’, 빗장이 벗겨지면 계단을 오르는 다른 이의 발소리가 가까워 온다. ‘굿 모닝~’ 차마 완전히 떠지지도 않는 눈을 하고선 멋쩍은 아침인사를 건네 오는 이. ‘굿 모닝~’ 서둘러 눈곱을 정리하며 나 또한 얼결에 화답한다. ‘뷰리플~’ 우리는 서로에게 어쩔 수 없는 불청객 이지만 함께이기에 아름다움은 그만큼 배가된다. 노랗게 물든 갠지스에 각자의 시선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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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여나 누가 깰까 계단을 딛는 발걸음에 신중이 묻어난다. ‘철컥’, 밤새 닫혀 있던 문도 조심스레 기지개를 편다. 숙소를 나서는 나의 손에 두꺼운 책 한권이 들렸으니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강가에 죽치고서 그냥 저냥 책이나 읽을 요량이다. 벌써부터 거리의 개들은 먹을 것을 달라며 주변을 에워싼다. 내일은 나머지 빈손에 하물며 빵이라도 들여야겠다.

     

     

    시작은 가벼운 짜이 한 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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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은 가벼운 짜이 한 잔으로 시작한다. 손가락 두 개로도 충분한 작은 유리컵에 담긴 뽀얀 카라멜빛 액체는 뜨거운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댄다. 홀짝, 한 입 들이키면 그 쌉싸래한 고소함에 입 안 가득 퍼진다. 만족의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선제네 짜이]는 이곳 벵갈리 토라 일대(Pandey Ghat와 Rana Ghat사이 초입에 쿠미코GH가 있다.)에서 만수짜이와 더불어 한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짜이집이다. 선제와, 만수... 한국이름을 걸고 운영 하는 집인 만큼 그들의 한국말 또한 수준급이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강가에서 보냈기에 안쪽의 [만수짜이]보단 강가의 [선제짜이]를 자주 이용했다. 그곳에서 지켜본 이들 3형제의 삶은 그 부지런함과 적극성이 여느 인도인답지 않았기에 그건 또 다른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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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마다 선제네 짜이집 앞에는 시끌벅적 크리켓(Cricket)이 열린다. 영국식민지 시절 전파된 크리켓은 야구와 비슷한 인도의 인기 만점 생활스포츠다. 11명씩 한 팀을 이뤄 공수교대를 하며 공을 배트로 쳐서 득점을 겨룬다. 바라나시 선제네 짜이집 앞의 크리켓은 비록 매번 참여 인원수가 달라지기는 하고 장비 또한 허술하기 그지없지만 그 열기만큼은 바라나시 아니, 인도 전역을 통틀어 최고일 것이다. 한 번은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소리에 놀라서 눈이 떠진 적도 있었으니 적극적인 성격의 여행자라면 그들과 함께 어울려 크리켓 한판 때려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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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나는 배드민턴을 친다. 배드민턴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지라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때론 그것이 나 같은 홀로 여행자 이거나 호기심 많은 인도인 혹은 선제나 그 누군들 나는 감사하다. 저기 한쪽에서 자리를 깔고 요상한 동작으로 몸을 꼬고 있는 수염달린 서양인이 아까부터 이쪽을 힐끔거리는가 싶더니 다가와 한마디 던진다.

     

    “이거 어디서 났어?”

    “어? 내가 가지고 다니는 건데?”

    “좋은데?”

    “고마워... 한판 어때?”

     

    여행에서 시작은 늘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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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갠지스의 물에 몸을 씻는 인도인들의 표정을 본 적이 있는가? 세상을 다 가진 듯 감격에 겨워하는 그 표정을 보면 우리네 기준에선 똥물임이 자명한 갠지스가 그네들에겐 세상에 다시없을 거룩한 성수인 것이다. 인도인들에게 갠지스에서의 목욕은 단순히 몸의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닌 정신의 때를 말끔히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행하는 순서에도 전해지는 관습이 있고 예법이 있다.

    입수시 머리는 항상 동쪽으로 향해야 하고, 입으로는 목욕예법에 해당하는 만트라(Mantra)를 외운다. 그것은 행위라기 보단 의식으로 자리한 것. 지금 당신의 눈앞에서 벌거숭이 몸을 하고 갠지스의 물에 몸을 담그는 인도인이 있다면 그는 현재 평생에 걸친 소원을 거룩하게 맞이하는 중 이니 하물며 팬티만 겨우 가린 그의 몸이 민망하다 치부치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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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를 하는 그들은 ‘불가촉천민(untouchable)’이다. 그들은 카스트(Cast)제도 바깥에서 만지고 닿는 것조차 금지된다. 하물며 그들의 그림자도 불결함으로 치부되니 어찌 그들의 삶이 인간의 그것이라 하겠는가?

    “네가 전생에 죄가 많았으니 지금 그 자리에 태어난 거야. 네가 네 계급에서 충실히 살면 다음 생에는 조금 더 높은 계급으로 태어날 수 있어.”

    그들은 현재의 고됨을 전생의 업보라 여기며 후생의 안녕을 도모코자 오늘도 묵묵히 주어진 하루를 살아간다. 몸의 반을 갠지스에 담그고선 앙상한 그 팔로 힘차게 내리치는 행위의 반복에서 나는 그 어떤 웃음과 희망을 찾아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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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현재 인도 전역에 카스트(인도의 신분제도)는 없다고들 하지만 인도인들의 뿌리 깊은 의식 속에 그것은 온건히 살아 있다. 그들에게 카스트는 단순히 계급의 상하구분을 떠나 그들의 전통이고 정신인 것이니 하물며 외지인의 눈에 그것이 부당하고 억울하다 느껴지더라도 함부로 논할 것이 못된다. 마침 읽고 있던 책(신도 버린 사람들)과 상통한 현실 앞에 나는 또 괜한 억울함에 울컥하니 지나가는 개만도 못한 외국인 주제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점심은 인도식 백반, 탈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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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식 백반 탈리는 밥과 로티(인도식 빵)를 기본으로 달(인도식 스프)·커리·다히(인도식 요구르트) 등으로 구성된 인도의 정식요리이다. 힌디어로 ‘큰 접시’를 뜻하며 금속으로 된 쟁반 위에 밥과 반찬을 담은 작은 그릇을 올려낸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말에 의하면 이곳 벵갈리토라에 ‘탈리’로 유명한 집이 있다기에 그곳을 찾아간다. 좁은 길이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을 벗어나 대로변에 접어들면 그 일대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그 길을 따라 고돌리아 쪽으로 올라가면 왼편에 그녀가 말한 ‘탈리’집이 있다.

    언뜻 고급스런 분위기에 자연히 지갑 속 현실이 걱정스럽다. 그러나 생각보다 적당한 가격에 보다 훌륭한 퀄리티는 다질링에서 먹었던 40루피 탈리와는 전혀 다른 고급스러움으로 간만에 미각이 넝실넝실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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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나시 먹거리는 생각보다 오묘하다. 한국인 여행자가 많은 탓 일까 집집마다 얼추 비슷한 한국식 요리를 선보인다. 김치칼국수, 수제비, 김치볶음밥, 하물며 닭볶음탕까지... 이 모든 메뉴들을 한국어로 써 붙이고 ‘어디가요?’라며 손님을 끄는 넙죽 좋은 인도인들이 있다.

    그 중 어디를 가더라도 특별히 잘하거나 못하는 곳은 없으니 가는 족족 고만고만하다. 혹여 정통 한국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직접 한국인이 운영하는 [라가카페(마니카르니카 가트 주변)]로 가면 될 터지만 훌륭한 맛에 버금가는 후덜덜한 가격은 배낭여행자의 발길을 순간 주저하게 만들고 만다.

    네팔 인들은 머리가 좋고 눈썰미가 예리해 한 번 본 음식도 곧잘 흉내 낸다. 인도식은 물론이거니와 한식, 일식, 중식, 이탈리아, 그리고 티베트 음식까지... 네팔 인들이 있는 한 바라나시 음식의 폭은 이처럼 광범위하다.

    그중 아시카트의 바티까 레스토랑 [피자리아]에서 맛본 화덕에 구운 바싹한 피자와 달콤한 애플파이를 잊을 수가 없다. 얇은 도우에 적절한 토핑과 고소하고 쫀득한 치즈의 향연, 그 맛은 한국의 유명 이태리 음식점과 비교해 절대 뒤지지 않을 훌륭함이다.

    마니카르니카 가트 주변의 [메구 카페]는 깔끔하고 인상적인 일식 요리를 선보인다. 특히 팔뚝 굵기 만한 샐러드 김밥은 맛에 대한 만족감은 물론이거니 더불어 포만감에서 엄지를 절로 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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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는 거나하게 불렀으나 텁텁한 입은 또 달래주어야 할 터, 달콤한 후식을 찾아 라씨집을 향한다. 바라나시에서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라씨집이라면 [블루라씨][시원라씨]를 들 수 있다. 바라나시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미로를 찾아 헤매는 길이 만만치 않으니 초행이라면 단단히 각오정돈 해 두어야 할 것이다.

    골목 건너 지척에서 장사를 하는 두 집은 라씨 맛으로만 따지자면 누구하나 특별하거나 덜하지 않게 고만고만하다. 다만 [블루라씨]에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인도의 원빈’으로 추앙받는 첸첼이 있으며, 시원라씨는 그곳에 앉아 라씨를 먹고 있으면 비어있는 그릇에 계속해서 라씨를 퍼 나르는 화끈한 서비스가 있으니 시각과 미각의 기대치와 취향에 따라 적당히 들려봄이 좋겠다. 참고로 본인은 미각파니 나는 곧 죽어도 [시원라씨]다!

    다시 가트로 돌아오는 길, 길가로 조성된 시장풍경이 발길을 잡아끈다. 변변찮은 먹거리들을 내놓고 오가는 이를 기다리는 상인들의 표정에는 인생의 고달픔이 짙게 배여 있었다. 야채며 먹거리가 유난히 싼 이곳 바라나시에서 저걸 다 팔아치워 얼마나 남길 수 있을까?

     

     

    그리고 또 가벼운 짜이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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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오후, 가트를 거닐다가 한 무리의 소떼를 발견한다. 소를 숭배하는 힌두교 교리상 인도에서 소는 카스트의 제일 윗자리에 존재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소를 모는 불가촉천민의 가차 없는 채찍질이란 그간 나의 상식에 물음표를 던진다.

    지내다 보면 그렇다. 골목을 가로막는 소의 엉덩짝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인도인, 아무대서나 철퍼덕 똥을 싸지르는 소를 보면 기함을 하고, 우연히(그러나 매우 자주) 좁은 골목에서 마주할 때면 행여나 그 꼬리가 몸에 닿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도 다 소를 그저 소로만 보는 우리네 반응과 일맥상통한다.

    “그들에게 소는 그냥 가족이야. 못난 자식 끌어안듯 모든 걸 받아들이지...”

    우리가 소를 가두고 제압하고 먹어치우는 것과 달리 그들은 그런 못난 소를 그저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나? “넌 가족이 못났다고 그냥 버릴 수 있어?” 그 물음에 당당히 “그래”라고 대답할 인간 몇 이나 될까? 인도인도 아니고 힌두교 신자는 더더욱 아닌 나지만 그들의 사상이 어쩐지 조금은 이해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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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똥을 치우는 그는 빨래를 하는 이와 마찬가지로 언터쳐블, 불가촉천민이다. 전생의 카르마(업보)를 짊어지고 더러운 소똥을 퍼 나르는 그는 말라비틀어진 몸을 하고 있다. 앙상한 두 팔과 두 다리는 후생의 영광을 바라고자 무던히도 움직인다. 구부정한 허리를 쉴 세도 없이 그의 몸은 소똥과 함께 단단히 굳어진다.

    “소똥은 왜 퍼 나르는 거야?”

    “불을 지피는데 아주 좋은 연료가 돼, 말린 소똥은 판매도 하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선제가 따끈한 레몬생강차를 건넨다. 요 며칠 으슬하여 감기기운이 있었는데 그럴 땐 이게 즉빵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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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가트에 앉아있으면 같은 자리에서 참 많은 다른 것들을 보게 된다. 아까부터 ‘포토, 포토’를 외치면서 집요하게 눌어붙는 그는 주황색 힌두교 승복차림을 한 가짜 사두(Sadhu)다. 사두란 힌두교의 가르침에 따라 몸과 마음을 혹독하게 갈고 닦는 수행자로 우리로 치자면 절의 스님 정도 되겠다.

    우리네 스님들이 그러하듯 그들 또한 그들의 교리를 전파하고 가르침을 주면서 일종의 보시(박시시)를 받는다. 그런데 이 가짜 사두들은 설파는 고사하고 껍데기만 화려하여 그 치장으로 먹고 사는 이다. 활동범위는 바라나시 일대 전역에 산재하고 타깃은 가트의 하릴없는 관광객, 특히 물정 모르는 외국인들이다. 접근 방법은 개인마다 차이는 있으나(대개 ‘쓱’하고 다가와 다짜고짜 이마에 ‘티카’를 찍어준다.) 그 마지막은 언제나 사진과 돈으로 귀결되니 괜히 애꿎은 돈 뜯기기 싫으면 알아서 피할 지다.

    그러나 간혹 가다 제법 흥미로운 사두(이 역시 가짜다)를 만나기도 하니 무턱대로 경계하기 보단 일단 분위기를 봐서 괜찮으면 얘기나 한 번 나눠봄직도 나쁘지 않다. 억세게 재수 없지 않은 이상 그들이 요구하는 박시시란 다 거기서 거기, 고만고만한 수준이니 말이다. 억세게 재수 없지 않으면 말이다. 억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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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걸이를 파는 그 처자는 기껏해야 십대 후반, 많아야 이십대 초반으로 밖에 안 보인다. 예쁘장한 생김새와 가녀린 몸매의 그녀가 가트 한쪽에 너른 자리를 깔고 그 위로 형형색색의 화려한 장신구들을 늘어놓는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인이 박힌 품새다. 아까부터 홀린 듯 바라보니 그녀가 이리오라 손짓한다.

    보기와는 달리 걸걸한 말투를 지닌 그녀는 굳이 사지 않아도 되니 구경이나 해보라며 뻔한 상술을 부린다. 나는 또 살 것도 아니면서 이것저것 뒤척이기 시작한다.

     

    “이쁜데? 니가 직접 만든거야?”

    “어, 이것도 봐봐 이건 동물의 뼈를 갈아서...”

     

    그 말을 다 믿기엔 나는 그리 순진한 여행자가 아니었기에 그녀를 빤히 본다. 마침 주황색 복장을 한 사두 하나가 우리 앞을 지나간다.

     

    “저 사두 말이야, 저들은 사기꾼이야. 다 가짜지”

    “그럼 너는?”

    “이건 정말 동물의 뼈를 갈아서 만든 것과 별 다를 게 없다고, 봐봐. 완벽하잖아!”

     

    나는 그녀의 ‘동물의 뼈를 갈아서 만든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목걸이를 ‘동물의 뼈를 갈아서 만든 것’보다는 훨씬 싼 가격에 구입했고 그 뒤로 자주자주 그곳을 찾았다. 내내 혼자였던 그녀와 하릴없는 홀로 여행자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오다가다 말벗이 되어주는,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인도장사치 흉내도 내보았는데 그 동물의 뼈를 갈아 만든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것을 나는 또 곧 죽어도 동물의 뼈라 그렇게 우기지는 못하겠더라.

    “저기가 우리 집이야.” 그녀가 강가의 한쪽을 가리킨다. “저 사람이 우리 엄마, 그리고 아빠, 그 옆이 언니야. 저기 저 꼬마는...”  그녀가 가리킨 갠지스의 좁은 구석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천막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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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나시의 해가 저문다. 저 멀리 메인카드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이제 곧 있으면 성대한 뿌자(힌두교 종교의식)가 거행될 터다. 가까운 미래 이곳 바라나시를 다시 찾게 되면 갠지스의 경관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그 방에 머물면서 인도의 전통악기 하나 쯤 배우고 싶다.

    음악에 있어 모든 것이 젬병인 나라지만 바라나시 이곳은 신의 축복이 깃든 성지이라니 나에게도 그 어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거리마다 뿌연 흙먼지가 마른기침을 토해내는 이곳에서 일상은 참으로 단출하기 그지없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이야기는 쌓여간다.

     

     

    하편에 계속 - To be continued 

     

     

     

    엄턴구리

    용의 머리가 되고 싶은 뱀의 꼬리로 ‘잡다함’이 지나쳐 자칫 ‘너저분함’으로 치닫는다. 미대를 졸업해 그림을 그리며 교양 있게 살줄 알았는데 생뚱맞게 연극과 영화미술에 빠진 탓에 한 몇 년을 작살나게 고생만 했다. 그러다 운 좋게 환경디자인 회사에 취직을 하지만 그저 좀 ‘무료’하단 이유로 지복을 날로 차고, 지금까지 몇 년 째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며 되도 않는 글들을 끼적이고 있다. 밥먹고 사는 일은 자유로운 기고로 이어진다. 문화 예술 칼럼을 비롯해 다양한 취재 원고를 소화하고 있다. 한 번의 긴 여행과 몇 번의 짧은 여행을 무한 반복 중이다. 덕분에 적당히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견문은 넓혀진 것도 또 아닌 것도 같다. 쉽게 마음이 동하는 갈대 같은 호기심에 뿌리 깊은 나태함이 더해져 도대체가 갈피를 못 잡는다. 여행과 생각, 사람과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blog.naver.com/wast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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