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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골목골목 살아 숨 쉬는, 타이베이 용캉지에

    전나무 전나무 201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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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포토에세이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용캉지에를 만나다

     

    3박 4일의 짧은 여정 동안 타이베이의 용캉지에에 끊임없이 발을 들여놓게 된 이유는, 사실 단순히 용캉지에와 타이베이에서 묵었던 숙소가 가깝기 때문이었다. 걸어서 7분 거리. 떠나기 한 달 전에 급작스럽게 성사된 이 여행에서 친구와 나는 길고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특가 할인, 그리고 트립어드바이저에서의 제법 높은 순위. 이 두 가지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빈 방이 모두 사라질까 몇 개의 후기만 간략히 읽고 허둥지둥 예약을 하고 보니, 용캉지에와 가까웠을 뿐이다. 정말로, 그뿐이다.

     

    여행의 삼 주일 전. 나 역시 통과의례처럼 제법 두꺼운 두께의 가이드북을 하나 샀다. 역시나 어느 곳 하나 가보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이, 어느 음식 하나 맛보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이 현란한 사진들과 지도들의 빽빽한 나열이다. 넘쳐나는 타이베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책을 대충 휘적휘적 거리다가 숙소 근처에 있다는 용캉지에에 대해 읽는다. 소개부터 거창하다. "타이베이의 삼청동".... 예스럽고 고즈넉한 동네인가 보다. 맛 집과 보석 같은 골목들이 그득하단다. 여행 가이드북이라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얄팍한 존재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어김없이 혹한다. 골목골목, 아름다운 흔적이 곳곳에 거칠고 정겹게 묻어있는 모습을 연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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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캉지에(永康街)에서 만난 우체통 두개.

     

     

    용캉지에의 골목골목, 우리가 꿈꾸던 골목길이 아니었을까

     

    우리에게는 이상하게도 '골목길'에 대한 낭만이 존재한다. 버스커 버스커는 <골목길 어귀에서>를 노래하고 우리는 기억의 저편에서 골목대장의 시절을 향유한다. 나만 해도 골목길을 누비며 자란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철창 대문 너머의 벽돌집,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난 조그마한 골목길의 어스름한 풍경을 갖고 있다. 이곳에는, 우리 모두가 비밀스레, 혹은 당연스레 공유하는 노을 지는 추억의 향기가 베여있다. 

     

    흔히 '용캉지에'로 불리는 거리에 들어서면, 작고 허름한 골목들이 나타난다. 골목골목에 걸맞은 간판과 내음을 풍기는 가게들이 소소히 펼쳐지다가 중앙에는 푸른 초목들과 함께 어우러진 놀이터까지. 해 질 녘의 용캉지에 거리 속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까르륵대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홀로 어슴푸레 다가가는 용캉지에의 골목을 느낀다. 누군가는 용캉지에 골목가에 앉아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나를 신기하다는 듯 응시한다. 거리 안, 제각각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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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캉지에의 중앙에 위치한 푸른 초목과 놀이터. 사람들은 삼삼오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용캉지에의 입구에서부터 쭉 이어지는 메인 거리를 피해, 진정한 '골목골목'으로 발자국을 뗀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곳곳에 카페와 음식점들이 놓여있는 거리와는 달리 한산함이 비친다. 건물들은 여전히 낮고 허름하다. 길에 발라진 시멘트는 곱지 못하고 어딘지 자글자글하다. 전혀 깨끗하거나 정갈하지 못한 골목들 사이에서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냄새가 확 풍겨져 나온다. 정돈되지 못한 골목, 허름한 간판들과 어스름한 불빛들, 골목들의 색은 다채롭지 못하고 중후하고 낡았으나 아름답다. 곳곳에 놓인 자전거들마저도 풍경의 일부처럼 아련하다.

     

    이곳, 용캉지에의 골목골목. 우리가 꿈꾸던 골목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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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지만 다른, 구석구석 살아 숨 쉬는 골목

     

    '골목'이 이토록 매력적이게 다가오는 이유는 겉보기에는 늘 엇비슷하지만 곳곳의 다름이 숨어있는, '탐방하는' 재미를 힘껏 느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골목의 이러한 점이 바로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며, 사랑하게끔 한다.

     

    용캉지에의 골목들에게도 같음과 다름이 존재한다. 낡은 양철 지붕의 처마 밑, 환풍구는 겹겹이 달려있고 자전거와 오토바이는 멀뚱히 세워져 있다. 제법 공을 들여 그린 것 같은 벽화들 사이의 골목길도 보인다. 한 쪽 벽에는 책장이, 다른 쪽 벽에는 알 수 없는 기이한 생명체들이 그려져 있다. 좀 더 어둑한 골목길에는 천막을 드리우고 연등을 킨 노점상이 비친다. 뜻 모를 한자들을 마구 내걸고, 상 위에는 두서 없이 무언가를 담은 통과 병들이 늘어졌다. 옆에는 셔터가 이미 내린, 닫힌 가게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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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용캉지에의 골목을 구석구석 걷다 보면 모든 것이 단 한 군데도 빼놓을 수 없는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금세 느끼게 된다. 그냥 깔린 것 같아 보이는 헤진 보도블록마저도 하나의 그림으로 자리 잡아, 작은 골목골목 살아 숨 쉬는 아련한 내음을 은은히 풍기고 있는 것이다. 크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며 조곤조곤한 이 거리들.

     

     

    아름다운 골목의 향연, 용캉지에를 떠나며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나열된 타이베이의 명소들 중 (근교를 제외한다면) 발자국을 찍지 않은 곳은 없었다. 모든 것을 다 보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부지런히, 부단히 움직였다. 타이완의 명동이라는 시먼띵도, 핫 플레이스라는 동취와 중산,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는 딴수이도 모두 다녀왔다.

     

    그러나 여전히, 용캉지에의 골목이, 그때 느꼈던 채취와 내가 맡았던 내음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 만난 가장 깊숙하고도 익숙함. 부디 용캉지에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이 느리게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언젠가 다시 찾더라도, 사무치도록 익숙한 내음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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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ORMATION

     

    * 용캉지에는 동먼(東門)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보이는 '딘타이펑(鼎泰豊)' 골목으로부터 시작된다. 동먼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니 찾아 헤맬 염려는 없다.

    * 용캉지에에는 사실 타이베이의 소문난 맛집들이 가득하다. 용캉지에 입구에는 딤섬 전문점인 '딘타이펑' 1호점이 위치해있고, 골목을 좀 더 들어가면 망고빙수 전문점인 '쓰무시(思募昔)'가 위치해있다. 이외에도 우육면이 유명한 맛집인 '용캉 나우러우미엔(永康牛肉麵)'이나 타이베이에서 가장 유명한 길거리 음식인 총좌빙(蔥抓餅)을 파는 '티엔진 총좌빙(天津蔥抓餅)'도 자리해있으니 꼭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 용캉지에는 사실 매우 작은 골목들의 집합이라,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골목골목 둘러볼 수 있다. 최대 1시간. 

     

     

     

     

     

    전나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니는, 젊은 스물 셋. ( http:// jeon_namu.blog.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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