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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픔을 간직한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GetAbout GetAbout 2014.07.17

    카테고리

    유럽, 기타, 역사/종교

     

    역사로 보는 유럽,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발칸반도에 위치한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이름도 길고 생소한 이곳은 유럽과 이슬람 문화권이 절반씩 섞인 국가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발칸반도는 오랜 시간 터키의 지배를 받았다. 오스만제국의 쇠퇴는 곧 발칸전쟁과 유럽전쟁의 시작이 된다. 호시탐탐 그들을 노리던 주변 제국주의 국가들과 발칸동맹 내 국가들 역시 서로 영토 분쟁과 전쟁으로 갈등이 심화되었다. 그들은 어느새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게 되었다.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를 받던 중 범슬라브족의 통일을 울부짖던 세르비아 민족 결사단에게 사라예보에 있었던 황태자 부부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대 세르비아, 러시아의 전선이 형성되며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사진 341

    ▲ 수도 사라예보(Sarajevo) 거리 곳곳 이슬람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건물과 모습들. 

     

    전쟁 이후 남슬라브족은 연맹을 맺고 유고 연방을 결성한다. 평화의 시간도 잠시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크로아티아 국우 민족주의 정권으로부터 많은 세르비아인들이 학살을 당한다. 이는 이후에 발칸 내전의 큰 시발점이 되며,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 의해 동유럽과 발칸반도는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된다.

    하지만 '티토'에 의해 유고의 사회주의는 독자적인 길을 가고, 다양한 인종과 종교, 국가를 보듬으며 혼란스럽지만 안정적으로 이끌어간다.  

     

     

    보스니아 내전(유고슬라비아 붕괴)

     

    티토에 의해 평화로웠던 유고 사회는 그의 사망과 함께 끝이 나고 만다. 연방 국가 내의 경제적 불만, 소련의 공산주의 붕괴와 함께 본격적인 독립에 갈망이 확산된다. 여기에 국가보다는 나와 같은 인종과 언어, 종교를 믿는 민족주의가 대두된다. 그중 대(大) 세르비아를 외친 당시 유고연방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등장하며, 20세기 최악의 내전을 발발시키고 만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가 연달아 연방 탈퇴를 하면서 무슬림,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가장 많은 민족이 엉켜 있는 보스니아에서 폭발하고 만다. 밀로셰비치(유고 공화국 대통령), 라도반 카라지치(보스니아 내 스릅스카 공화국의 대통령) 가 이끄는 세르비안인들은 수많은 무슬림과 크로아티아인들을 학살하는 '인종청소'를 자행한다. 

    당시 약 20만 명이 희생되고, 250만 명 가까이 난민이 발생했으며, 수많은 무슬림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인간 이하의 행동을 했다. 당시 UN이 무슬림과 크로아티아인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곳을 침공해 8000여 명의 대량 학살을 자행했다. 

     

     

    사진 336

     ▲ 수도 사라예보(Sarajevo) 거리 곳곳에는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수많이 묘비가 있다. 

     

    사진 361

    ▲ 건물에는 당시의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보스니아 내전은 세르비아의 인종 학살로 끝나지 않았다. 이곳 모스타르는 오래된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웃으로 지냈던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가 서로 총을 겨누었다. 옆 국가인 크로아티아는 자국의 영토 확장을 위해 이곳 모스타르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무기를 대주었다. 당시 사회에 스며든 비이성이 낳은 참극이었다. 형제처럼 지냈던 친구를 죽이고, 내 이웃을 죽였다. 결국 다리는 그 수많은 폭격에 무너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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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314

    ▲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슬람과 카톨릭이 함께 공존하는 모스타르 Mostar

      

    95년 11월, 3년 넘는 보스니아 내전은 결국 끝이났다. 20세기 최악의 내전과 20세기 최악의 인물을 낳은 시간이었다.

    그들은 절대 그 일을 잊지 않고, 다시는 발생되지 않도록 돌에 새겨 두었다. 그리고 다리도 다시 지었다. 서로 아픈 상처를 안은채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  

     

     

    사진 329

    이젠 조금씩 날이 개고 밝은 날만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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