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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산내마을, 마을을 거닐다.

    엄턴구리 엄턴구리 2015.06.25

    카테고리

    전라, 풍경, , 여름

     

     

    지리산 산내마을, 마을을 거닐다.

     

     

    동네마실

    ▲ 지리산 자락의 작은 마을, 인적 없는 그곳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짐을 꾸리고 길을 떠났다.

    지리산 자락에 작은 마을이 있다고 한다. 친구는 그곳에서 종종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고 했고 나는 마을 내에 동동주 제조장이 있다는 소리에 혹한 거 같다. 늘 지니던 가방에 짐을 싼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 거리다 올 생각이다. ‘힐링(Heeling)’이란 말을 쓰기엔 그동안 나의 삶이 변변찮다. 사색을 즐기자는 친구의 말, 내내 동네 마실이나 다닐 것이기에 편안한 몸빼 하나 챙겨 넣는다. 동대문에서 구입한 천 원짜리 모자는 해(SUN)에게서 보호받기 충분하다. 책은 세 권 정도? 다 읽어도 또 그렇지 못한데도 상관없다. 많은 생각을 하거나 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 가벼운 사색 후 어쨌든 조금은 정리가 되겠지…….

    양재에서 내려 택시를 탈까도 했다. 택시비 12000원, 머리를 굴려본다. 강남까지 12분. 강남에서 터미널은……. 지리산행 버스는 30분에 출발 예정이고, 잘만 하면 그 즈음 입각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하철은 어쨌든 변수가 적어 다행이다.

     

     

    오월의 감꽃, 시월의 홍시

     

    감꽃홍시 (5)

    ▲ 멀리 길 끝으로 [5월 감꽃, 10월 홍시]가 보인다.

     

    인적 드문 시골 마을, 골목을 따라 걸음걸음 디디다 보면 멀리 길 끝으로 빠끔한 집 한 채가 보인다. [5월 감꽃, 10월 홍시] 친구가 종종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는 그곳이다. 때문일까? 덩달아 마음이 놓인다. 귀엽고 앙증맞은 하늘색 나무 의자위로 손 맛나는 간판이 얹혀 있다. 오월의 끝 무렵, 어디선가 감꽃의 향긋함이 바람에 실려 온다. 시월의 어느 날엔 문뜩 홍시의 달달함이 궁금해 불쑥 이곳을 다시 찾을 지도 모르겠다.

     

    감꽃홍시 (4)

    ▲ 꺾어진 길 밖으로 빨래터는 소리가 난다.

     

    기척 없는 조용함은 평화를 넘어 적막으로 흐른다. 아무도 없는 건가? 잠깐 당황스러운데 ‘탁탁탁’ 꺾어진 길 밖으로 빨래터는 소리가 난다. 자신을 지리산 문화공간 [토닥]의 OOO이라고 밝힌 남자는 얼마 전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떠난 감꽃 홍시의 여주인을 대신해 숙소를 봐주고 있다고 한다.

     

     

    “ 언젠간 너도 운명을 만날 거야…….”

     

    IMG_20130601_212433

    ▲ 감꽃홍시 주인장의 청첩장

     

    밭을 일구다 호미로 맥주병을 따는 게 행복하다는 그녀를 만난 남자와, 사람과 여행을 좋아하고 장래 희망이 ‘이장님’이라는 그를 만난 여자가 있다. 참 닮은 두 사람이 드디어, 이제야, 만났다며 함께 까르르 웃으며 가슴 뛰는 삶을 살겠다, 다짐한다.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청첩장 문구에 가슴 한편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일면식도 없는 그와 그녀의 결혼, 한창일 그네들의 앞날에 진심 어린 축하를 던지고 희망찬 응원을 보탠다.

    ‘언젠가 너도 운명을 만날 거야……. 너도…….’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지만 그건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는 말 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언젠가 나도 운명을 만나겠지…….’

     

    감꽃홍시 (1)

    ▲ 아궁이의 불은 ‘활활활’ 잘도 탄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위해선 마른 장작이 필요하다. 불쏘시개는 재들을 뒤척거려 어쨌든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주고 ‘활활활’ 타오르는 불길에서 감자와 고구마는 잘도 익어간다. 무거운 솥 뚜껑을 버겁게 열어 어쨌든 물 한 바가지 부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친구는 언젠가 가마솥에 물 채우는 걸 까먹어서 방바닥을 누렇게 태운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방이 이 방인지 옆방인지 헛갈린다고 했지만 방문을 여니 기억은 명확해졌다. 아궁이의 불은 ‘활활활’ 잘도 탄다.

     

    감꽃홍시 (2)

    ▲ 마을 동동주와 마을 치킨

     

    산내마을 계동 치킨에서 치킨 한 마리를 받아왔다. 토닥 청년이 우리가 미리 주문해 놓은 동동주 3병을 건넨다. 얇은 플라스틱 페트병은 목이 긴 주병모양이다. 아랫부분이 넓고 통통한 것이 그 양이 적잖아 보인다. 몇 병을 주문할까? 친구의 물음에 그래도 둘인데 6병은 있어야 않겠냐며 너스레를 떨던 생각이나 피식 웃음이 나온다. 친구는 도저히 6병이라고 말하진 못했단다. 동동주는 고소했다.

     

    동네마실

     

    동네마실 (1)

    ▲ 몸빼차림의 동네마실

     

    몸빼 차림에 씨레빠 질질 끌고 동네 마실을 나온다. 친구가 나는 발가락이 예쁘단다.

    “발가락만?”

    뾰로통해 발끈하면,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멀어지는 바람을 따라 펄럭이는 머리카락이다.

    “이마도!”

    예쁜 곳이 하나 더 늘었다. 나는 발가락과 이마가 예쁜 사람이다. 그렇게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예뻐지련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딛는다.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는 걸음이다.

     

     

    동네마실 (2)

    ▲ 버려진 소파 위로 5월의 감꽃이 분다.

     

    버려진 소파 위로 5월의 감꽃 바람이 분다. 5월의 끝자락, 하나 둘 떨어지는 꽃잎이 때묻은 소파위로 떨어진다. 군데군데 가죽이 터져 속이 드러난 모습은 자칫 흉물스럽기까지 한데 사람의 기척이 드문 길은 그래서 쓸쓸하다.

     

    동네마실 (3)

    ▲ 아침나절 산내마을이 공기는 차분하다.

     

    아침나절 산내마을이 공기는 차분하다. 독기를 뺀 흙길 위로 맨발의 한 걸음을 디딘다. 차갑고 까실하다. 아무도 없는 그 길에서 한참을 걷고 나니 발바닥은 한가득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탈탈탈’ 털어내도 피부론 스민 물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뱀사골

     

    뱀사골 (4)

    ▲ 뱀사골의 물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지리산 문화공간 [토닥]에서 뱀사골 가는 버스를 물어본다. 산내 초등학교, 산내면사무소 앞에서 남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탑승하면 된다고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허기를 달래고자 주먹밥을 산다. 토닥에서 직접 만든 삼각모형의 주먹밥은 멸치맛 하나 밖에 남아있질 않았다. 콩 한쪽도 나눠먹는 정으로 그걸 또 반으로 쪼개느라 모양이 짓물렀다.

    ‘어어어~’ 우물쭈물하는 사이 버스가 지나 갈 판, 우물우물 손가락을 펴 보인다. ‘끽’ 고맙게도 버스는 우리를 알아봤다.

    ‘어?’ 단양을 여행 중인 지인이 그 버스를 타고 있다. 이렇게 길 위에서 또 하나의 반가운 인연을 만났다.

    뱀사골의 물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발만 겨우 담근 그것을 나약함이라 폄하하기엔 억울한 차가움이다. 땅으로는 시원한 물의 기운이, 주위로는 청량한 나무 기운이, 위로는 탁 트인 하늘 기운이 한 번에 밀려든다.

     

    뱀사골 (2)

    ▲ 꽃은 사연을 품고 핀다.

     

    뱀사골 입구로 즐비한 식당들 가운데 한 곳을 정해 자리를 잡는다. 나와 친구 그리고 반가운 인연이 한 상에 둘러앉았다. 주메뉴는 지리산 산나물이니 나물정식 2인분과 도토리묵을 따로 주문한다. 주인에게 막걸리 추천을 떠넘기니 우리 쌀로 빚은 생 막걸리 ‘산마실’을 가져온다.

    그곳에서 그는 그의 지나온 사랑을 반추하고, 친구는 그 사랑을 자신의 사랑에 빗대어 눈물을 보였다. 어딘지 아련해지는 이야기지만 친구처럼 흘릴 수 있는 눈물이 나에겐 없나 보다. 친구가 또는 그가 사뭇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실상사

     

    실상사

    ▲ 천년의 세월을 품은 실상사

     

    실상사는 신라시대 고찰이면서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보물을 가진 절이다. 암자인 약수암과 백장암의 문화재를 포함하여 국보 1점과 보물 11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만큼 역사가 깊고 가치 있는 절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실상사 (1)

    ▲ 돌탑의 높이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쌓여있다.

     

    이곳 실상사에서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속세의 시간을 잠시 잠가 두고 절간에 시간에 맞춰 하루를 시작한다. 일찍 시작한 하루는 길다. 가족단위의 참가자들도 눈에 띄는데 무엇보다 아이들의 표정이 밝다. 너른 들판,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인다. 아이들은 방방 거리며 뛰어 놀다가 스님을 마주 할 때면 언제 즉각적으로 멈춰 서선 경건해 진다. 그리고 스님이 채 지나지도 않았음에도 또 다시 방방댄다.

    돌탑의 높이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쌓여있는 곳. 그 옆에서 한 모자(母子)는 저들만의 세계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호기심의 깊이만큼이나 잔뜩 웅크린 뒷모습이 너무도 귀여운 아이다.

     

    실상사 (2)

    ▲ 소원 돌맹이 위로 실상사의 기운이 뻗는다.

     

    모자(母子)의 시간을 뒤로하고 나 또한 덩달아 돌탑을 쌓아 본다. 행여나 무너질까 조심스러운 손길이다. 마음속으로 가만히 소원을 빌어본다. 대단히 거창한 건 아니지만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원이다. 소원 돌멩이 위로 실상사의 기운이 뻗는다.

     

    실상사 (3)

    ▲ 마음까지 건강해 지는 물맛

     

    “먼저 하시라고 해”

    아이는 제 통이 크다는 걸 알았다는 듯 기꺼이 양보란 걸 해줄 모양이다. 졸졸졸 흐르는 약수는 그 통을 채우기엔 한 없이 빈약하지만 뭐든 건 시간이 해결해줄 터, 나는 그 작지만 큰마음이 예뻐서 기꺼이 그 선의를 받고자 한다.

    “고마워. 잘 마실게”

    마음까지 건강해 지는 물맛이다.

     

    INFORMATION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 마천행’ 탑승, ‘인월’이나 ‘실상사’앞에서 하차(기사분께 미리 알림)

    산내마을 감꽃홍시GH는 2014년 현재 지리산 문화공간 토닥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  예약 http://cafejirisan.net/

    뱀사골 탐방로가 있는 반선까지 차로 약 10분~15분 소요. 산내 초등학교, 산내면사무소 앞에서 남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탑승할 수 있다.

    실상사 템플스테이 http://www.templestay.com/ 063.636.3191

     

    엄턴구리

    용의 머리가 되고 싶은 뱀의 꼬리로 ‘잡다함’이 지나쳐 자칫 ‘너저분함’으로 치닫는다. 미대를 졸업해 그림을 그리며 교양 있게 살줄 알았는데 생뚱맞게 연극과 영화미술에 빠진 탓에 한 몇 년을 작살나게 고생만 했다. 그러다 운 좋게 환경디자인 회사에 취직을 하지만 그저 좀 ‘무료’하단 이유로 지복을 날로 차고, 지금까지 몇 년 째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며 되도 않는 글들을 끼적이고 있다. 밥먹고 사는 일은 자유로운 기고로 이어진다. 문화 예술 칼럼을 비롯해 다양한 취재 원고를 소화하고 있다. 한 번의 긴 여행과 몇 번의 짧은 여행을 무한 반복 중이다. 덕분에 적당히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견문은 넓혀진 것도 또 아닌 것도 같다. 쉽게 마음이 동하는 갈대 같은 호기심에 뿌리 깊은 나태함이 더해져 도대체가 갈피를 못 잡는다. 여행과 생각, 사람과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blog.naver.com/wast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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