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내일을 보다, 싱가포르 시티 갤러리
To make Singapore a great city to live, work and play
싱가포르 도시 개발의 모든 초점은 시민들을 향한다. 오로지 시민들이 멋지게 살고, 일하고 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To make Singapore a great city to live, work, and play." 이는 싱가포르의 도시 계획을 주관하고 시행하는 도시개발청URA, Urban Redevelopment Authority의 단순하지만 꽤 멋진 슬로건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도시 계획이란 것은 결국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 살고, 일하고 놀게 하기 위함인데, 우리는 그 당연한 슬로건을 왜 부러워해야만 하는 걸까.
싱가포르의 차이나타운을 여행했던 그날, 나는 싱가포르의 시티 갤러리를 찾아가 보았다. 이 도시의 계획가들과 시민들의 꿈을 볼 수 있는 곳, 이 곳에서 나의 궁금함들을 씻어낼 수 있길 기대하며.
갤러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외관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차이나타운 옆에 위치한 시티 갤러리는, 우리네 도시에서 쉬이 볼 수 있는 사무용 빌딩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여행자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인지 조금의 불안함을 품고 오피스 빌딩의 로비 같은 시티 갤러리의 안으로 들어가 본다.
로비는 생각만큼이나 조용했다. 여행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켠의 City Gallery라는 커다란 안내판을 보지 못했더라면, 크게 뻘쭘해하며 다시 문 밖으로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싱가포르 도시 계획의 모든 것, 시티 갤러리
▲ 끝없이 이어지는 싱가포르의 모습. 내가 있는 곳, 시티 갤러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이곳은 1999년에 개관한 싱가포르 시티 갤러리Singapore City Gallery. 이 도시의 옛 50년의 변화상과 또 앞으로 50년의 미래상을 모두어 볼 수 있는 곳. 안내하는 이도 제지하는 이도 없어 조심스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보니, 십수 미터 짜리 싱가포르 축소 모형이 방문객들을 먼저 맞이한다. 이곳에는 크게 세 개의 모형이 있는데, 하나는 싱가포르 섬 전체의 모형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도시 구역의 모형이고, 마지막은 싱가포르의 핵심 지역만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심지 모형이다. 도시 전체를 하나의 모형에 구현해야 했기에, 그 스케일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도였다.
건축을 공부했기에, 학교에서 매일 씨름하던 모형이 이제 지겨울 법도 한데, 그래도 자꾸만 눈이 간다. 방금 전까지 직접 밟고 찾아다니며 여행한 이 도시의 공간들을 모형 속에서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모형은 기본적으로는 현재 싱가포르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건축이 확정된 계획안들도 함께 표현되어 있어, 다가올 몇 년 후 싱가포르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 마리나 베이 샌즈를 찾아보자. 당시 완공되기 전이었기에 흰색(계획안)으로 만들어져 있다.
거대한 모형 옆으로는 이 도시의 어제는 어떠했고, 또 내일은 어떠할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10년, 20년, 50년 전의 도시 계획이 어떠했는지, 또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띄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수십 층짜리 커튼월 빌딩 바로 옆으로 단 2층짜리 숍하우스(shop house : 아래층은 상점, 위층은 주택인 싱가포르의 전통적 건축 형태)들의 군집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곳에서라면 확인할 수 있으리라. 물론 모든 문자는 영어, 그래 그 내용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그림들과 다이어그램이 함께 표현되어 있어서, 어렴풋하게나마 그 내용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 2001년부터 현재까지. 싱가포르 어느 블록의 계획안과 가이드라인.
싱가포르의 하루 ‘A day in Singapore'라는 이름의 전시실도 꽤 흥미로웠다. 24시간 동안 이 도시에 몇 명의 사람이 드나들고, 또 태어나고 죽는지, 이 도시가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생산하고 또 소비하는지, 도시의 도로들 위로 몇 대의 버스가 얼마나의 거리를 달리는지, 그 모든 것을 파노라마 영상으로 시각화해 보여준다. 어쩌면 따분할지도 모르는 통계상의 수치일 뿐일지라도, 다양한 영상을 통해 내가 여행하는 도시들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 버튼을 눌러 문제를 맞히고, 최종 점수까지 확인할 수 있다. 결코 쉽지는 않으니 각오는 단단히 해 둘 것.
관람 동선의 끝에는 우리가 싱가포르 시티 갤러리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얻게 되었는지 재확인을 할 수 있도록 '고난도(?)' 퀴즈 쇼가 준비되어 있다. 이 도시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가벼운 퀴즈로 엮여낸 이곳에서, 나도 살짝 앉아 머리를 좀 굴려보려니, 퍽 헷갈리는 문제들이 이 여행자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정답이 A였는지, B였는지, 아니면 C였는지... 나는 아마도 맞히지 못 했던 것 같다.
홈페이지 : http://www.ura.gov.sg/uol/citygallery
찾아가는 길 : 탄종 파가Tanjong Pagar 역에서 Maxwell Rd.를 따라 도보 3분.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Red Dot Design Museum의 맞은 편에 위치.
To make Singapore a great city to travel
▲ 싱가포르의 밤. 시티 갤러리를 둘러보고 나면, 이 풍경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들의 목적은 이미 달성된 것처럼 보인다. 내가 직접 밟고 경험했던 이 도시가 스스로 이를 증명한다. 큰길이나 뒷골목이나 할 것 없이 두루 깨끗하고, 숍하우스들은 오래되었어도 정갈한 멋이 있고, 야경은 화려하지는 않되 충분히 멋스러우며,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래플즈 호텔과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이 어깨를 맞대고 선, 그게 바로 오늘 싱가포르의 모습이니까.
▲ 도시의 크고 작은 공간들, 그 안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질지도 모른다.
오로지 시민을 위한 도시 계획은 결국 이 멋진 도시의 오늘을 만들어 내었고, 그렇게 이 도시는 시민들에게 멋진 삶을, 여행자들에게는 멋진 여행까지 선사하는 도시가 될 수 있었으리라. 갤러리를 나와 다시 싱가포르를 걷는다.
이런 여행자에게 추천
건축과 도시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
싱가포르의 멋스러운 도시가 더욱 궁금한 여행자.
건축이라는 것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의 경험으로 다시 건축을 하는 여행이 생활이고 생활이 여행인, 여행중독자입니다. http://blog.naver.com/ksn333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