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바로가기
  • 메뉴 바로가기
  • 하단 바로가기
  • 고베, 한신고시엔구장에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moo nee moo nee 2014.12.23

    카테고리

    풍경, 칸사이

     

    고시엔구장에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소설「바람의 노래를 들어라(風の歌を聴け)」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양파를 썰던 재즈 바 주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작품이다. 그는 이 소설로 군조신인상을 수상하며, 1979년 등단하게 된다.
    최근 몇 년 간 하루키 소설에 잔뜩 빠져있던 나는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뭔가 '군데군데 코가 빠진 목도리' 같단 느낌을 받았다. 소설을 읽었다기보단 사진을 보듯 한 장 한 장 넘겼다. 21세기에 읽은 나에게도 생소했던「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확실히 당시 일본 문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듯하다.

     

     

     

    IMG_2784

    ▲ 한신고시엔구장

    소설「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주인공은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21살의 ‘나’. 시간적 배경은 1970년 8월 8일에 시작해 8월 26일까지. 이 기간 동안 ‘나’는 방학을 맞아 항구도시인 고향으로 돌아오고, 그곳에서 22살의 ‘쥐’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와 새끼손가락이 없는 여자를 조우하게 된다.

    다른 일로 간사이에 가게되면서,「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배경이 된 고베 주변 풍경을 꼭 보고 싶었고, 하루키의 고향 '한신칸(阪神間, 오사카와 고베 사이 지역을 일컫는 말)'을 가보고 싶었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감정도 크지만, 나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장소가 어떤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IMG_7340

    ▲ 한신칸의 마을 풍경

    한 사람의 전형적인 '한신칸 소년'이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당시의 한신칸은-물론 지금도 그럴지도 모르지만-소년기에서 청년기를 보내기에는 썩 좋은 장소였다. 조용하고 한가하며 어딘지 모르게 자유로운 분위기가 배어나고 있었다.
    - p.203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著 | 김진욱 譯 ) 中

     

     

     

    IMG_7357

    ▲ 한신칸의 마을 풍경

    결론부터 말하면 한신칸 여행은 근사했다. 나는 1년간 요코하마에서 지냈던 적이 있어서 이 일대도 비슷할 것이라 지레 짐작했는데 (두 곳 모두 항구가 있고, 차이나타운이 있으니까.) 요코하마보단 일본마을스러움(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이 가득했고, 보다 차분하고 고풍스러움이 있었다.

     

     

     

    IMG_7701

    ▲ 한신고시엔구장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주인공 내가 ‘쥐’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차 사고 때문이었다. 둘은 만취하여 운전을 하다 차가 거의 박살 날 정도로 사고를 낸다. 그러나 둘 다 숙취에 시달릴 뿐 다친 데 하나 없이 멀쩡하다. 책에서는 사고 지점이 항구 주변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영화는 니시노미야 고시엔구장(甲子園球場) 바로 앞에서 촬영하였다. 정확히 말하면 '니시노미야 스타디움' 바로 앞. 다음에 둘이 함께 맥주를 마시는 장소 역시 바다가 아닌 야구장 안이다.

    사실 영화에 야구장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이다.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발표되고 이듬해 오모리 카즈키(大森一樹) 감독에 의해 바로 영화가 제작되었다. 화면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이라고 나왔을 때 '어랏!?'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했다. '고시엔이 있던 곳이 니시노미야였는데?' 조사해 보니, 고시엔은 원래 '니시노미야 스타디움'이라는 이름을 가진 구장이었다.

     

     

     

    고시엔

    이곳 고시엔구장은 마치 해리포터의 9과 3/4 플랫폼 같았다. 속을 열어보면 어마어마한 광경이 열릴 듯했다. 실제로 이곳은 1924년에 개장을 했으니 90년의 일본 야구 역사가 녹아들어 있는 장소다. 선수, 감독, 팬들의 땀과 눈물, 기쁨과 환희, 흥분과 격분 등 숱한 감정들이 뒤범벅된 곳이리라.

     

     

    INFORMATION

    한신고시엔구장

    가는 법: 한신고시엔역에서 도보로 3분이면 갈 수 있지만, 한큐패스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한큐선 니시노미야키타구치역(西宮北口駅)에서 내려 100번 버스를 타고 갔다. (약 20분 소요)

     

     

     

    IMG_7697

    고시엔 2번정, 3번정, 5번정 이렇게 번호가 붙어있는 주변 마을 풍경을 구경하며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대는 원래 고시엔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아니었는데, 고시엔구장이 유명해지면서 지역 명칭도 바뀌었다고.

     

     

     

    한신고시엔구장의 숨겨진 이야기

     

    고시엔 구장을 가게 된 것은 20여 년간 야구팬으로 살아온 남자친구가 들려준 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일본 프로야구팀 한신 타이거즈의 '커널 샌더스의 저주' 이야기.
    1985년 한신 타이거즈가 21년 만에 센트럴리그 리그에서 우승을 하자, 기쁨에 취한 한신 팬들은 도톤보리 강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당시 선수들의 얼굴을 닮은 팬들이 차례로 강에 뛰어들었는데, 외국인 선수였던 랜디 배스 선수를 닮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KFC 할아버지, 커널 샌더스를 닮았다고 하며 팬들은 샌더스 할아버지를 그대로 뽑아 강에 던졌다. 그 이후로 한신타이거즈는 성적 부진에 시달리게 되고, 이를 '커널 샌더스의 저주'라 부르게 된 것이다.

     

     

    IMG_7718

    아쉽게도 (이날은 시간운이 유난히 좋지 않아) 내가 탄 고시엔구장행 버스는 오후 5시에 도착했고, 고시엔구장 역사관은 5시에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렇게 크지 않은 야구장을 겉에서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IMG_7717

    IMG_7732

    2009년 저주를 풀기 위해 KFC 할아버지는 도톤보리 강에서 구조(?)된다. 한 바퀴 돌곤 강에서 건져진 커널 샌더스 동상이 전시되어 있다는 KFC 한신고시엔점을 찾아가 보았다. 매장을 한 바퀴 돌아보아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어보니, 약 3년간 전시된 적이 있었으나 작년에 본사로 가게 되었다는 아쉬운 소식을 들었다.

     

     

     

    IMG_7722

    너무 여유를 부렸던 여행이었나. 아니면 그 와중에도 바쁘게 다녀서 이미 가볼 곳은 다 갔던 것인가. 4일간의 간사이 여행 마지막 날. 나는 반나절의 시간이 생겼다. 어딜 가볼까 고민하다가 판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난 판다를 엄청 좋아한다.)

     

     

     

    고베, 오지동물원에서 귀요미 판다를 만나다. 

     

    IMG_8282

    영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쥐와 내가 고베시에 있는 오지동물원에 가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는 사자들이 엎드려 있는 곳에 지금은 판다 '탄탄'이 무기력하게 퍼져있다. 영화 속 오지동물원 장면과 내가 본 오지동물원은 무려 30여 년의 시간이 벌어져 있다.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나의 모습과 탄탄의 모습이 겹쳐져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원래 '싱싱'이라는 수컷이 함께였으나, 2010년에 죽었다고 한다. 따라서 '탄탄' 혼자 방문객을 맞이하는 데 늘 우울한 자세로 뒹굴뒹굴하고만 있다고...

     

     

     

    IMG_8372

    한 마리 들여오기가 그리도 힘들다고 하는 판다인데, 꽤 오지인(?) 이곳에 판다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알아보니 1973년 고베시가 중국의 톈진시와 일본-중국 간 최초로 우호도시 협정을 맺은 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 듯하다. 협정 이후 팬더연구와 관련한 여러 교류를 진행하다, 1995년 한신 아와지대지진이 고베를 덮쳤다. 이때 고베 시민, 특히 아이들을 위해 고베에서 판다의 공동연구를 실현하고자 한다는 고베시의 요청을 중국에서 받아들여 오지동물원에 판다가 살게 되었다고 한다.

     

     

    INFORMATION

    오지동물원

    가는 법: 한큐선 오지코엔역에서 도보로 약 5분.
    개장시간: 3월~10월, 9:00 ~17:00 / 11월 ~ 2월 9:00 ~ 16:30 (매주 수요일, 12월 29일~ 1월 1일 휴관)
    입장료: 어른 600엔 (고등학생 이상) / 학생 무료
    홈페이지: http://www.kobe-ojizoo.jp/

     

     

     

    IMG_3039

    너무나도 울적해 보이는 팬더가 돌아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빨리 다른 팬더 친구가 오길 간절히 바라며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산노미야역(三ノ宮駅)으로 향했다. 영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역시 산노미야역에서 주인공 내가 버스를 타고 도쿄로 돌아가며 끝을 맺는다.

     

     

     

     

     

     

     

    moo nee

    배경여행가. 책, 영화,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의 모습이 지워진 배경에 들어가 보는 여행을 하고 있다. 백과사전 회사에서 5년 가까이 근무. 건조하고 차가운 글을 쓰고 편집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으니, 촉촉하고 다정한 글을 찾고 쓰는 일이 낙(樂)이 되었다. 지금은 IT회사에 재직 중. 저서로는 <다정한 여행의 배경>이 있다. www.istandby4u2.com

    같이 보기 좋은 글

    Tags

    칸사이의 인기글

    moo nee 작가의 다른글

    전체보기

    SNS 로그인

    복잡한 절차 없이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댓글을 남겨보세요!

    겟어바웃 에디터라면 로그인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