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 윗동네를 가다
전주 언저리 여행
"전주 사람은 전주(정확히 말하면 한옥마을)에서 절대 비빔밥을 먹지 않는다!"
지인은 비빔밥을 비추했고, '그래도 전주하면 비빔밥인데...' 뭔가 아쉬운 나는 그 말을 일부러 무시했다. 비빔밥은 비쌌다. 고기 '좀' 들어간 비빔밤은 '더'비쌌다. 별것도 아닌 게 '진짜' 비싸다고 생각했다. ‘전주 사람은 전주에서 절대 비빔밥을 먹지 않는다’는 그 말은 맞는 것도 같다.
한옥마을은 동화 속 풍경이다. 그래서 현실성이 없다. 현실성이 없는 풍경은 감흥을 주지 못 했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만지면 사야 합니다.’ 남부시장 청년몰은 재미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점포들은 셔텨를 내렸다.
‘현대옥’과 ‘웽이집’은 전주 콩나물국밥의 양대 산맥이다. 뭔가 다를 줄 알고 방문한 두 집은 실은 그렇지 않았으니, 콩나물국밥이 특별해 봐야 얼마나 특별할까 싶다. 순대는 피가 진하게 배야 제 맛이다. 남부시장 할머니 피순대는 그래서 줄이 길다. 한옥마을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지만, 따지고 보면 남부시장은 한옥마을 바깥 이다.
한옥마을 윗 동네를 가다
윗동네는 조금 거칠다. 여기저기 까지고 군데군데 녹이 슬어있다. 창틀로 쌓인 먼지는 화석처럼 굳어져 겨우 '입김' 정도로는 미동조차 않는다. 나무 기둥 벌어진 틈새로 정체 모를 벌레가 줄지어 기어간다. 틈새마다 꽉 찬 것이 미분양은 없어뵌다.
외벽의 까칠함은 세월 속에 중첩되어 한옥마을의 그것이 단번에 찍어낸 판화라면, 윗동네의 이것은 오래 묵힌 회화 같다.
때론 이 모습이 더한 삭막함을 품기도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가치 있다. 환풍기는 '달달달' 힘겹게 돌아가고, 대원 보일러는 가만 서서 피눈물을 흘린다.
폐가를 집어 삼킨음산한 기운은 어딘지 힘이 없어뵌다. 봉인 된 시간, 그 문턱을 넘고 자면 재갈 문 사자의 허락이 필요한 터, 이집트 스핑크스의 기묘한 질문이 떠오른다.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
이제는 너무도 유명해져 누구나 답할 수 있는 질문이기에 쉽게 열릴 만한 문이건만
“두 자매가 있는데, 서로 번갈아 낳아주는 것이 무엇이냐?”
재갈이 두 개이니 질문도 두 개여야 마땅하다.
디딤발은 땅의 기운을, 하늘 기운은 온 몸으로...
골목을 헤집고 다닌다. 넓었다 좁아지고, 가다가 막히고, 쭉 뻗다 꺾이는 게 골목의 특성인 지라 디딤 발의 속력 또한 그때그때 달라진다. 확 트인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러면 부러 멈춰, 하늘 기운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디딤 발의 속력은 막다른 골목에서만 멈추는 게 아니다. 디딤 발은 가만 서서 땅의 기운을 흡수하고, 하늘의 기운은 온몸으로 빠르게 번져 간다.
윗동네 한옥마을 언저리는 아랫동네 한옥마을에 비하자면 (관광하기에) 여러모로 불친절하지만, 윗동네 한옥마을 언저리는 아랫동네 한옥마을에 비하자면 다방면에서 친근했다. 윗마을 한정식은 그 차림이 뻑적지근했지만, 한옥마을 (고기 든) 비빔밥 보다 지출은 덜 했다. 가는 길에 가맥(전주 특유의 가게 맥주집) 집에 들러 연탄불에 잘 구운 황태 한 마리 데려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용의 머리가 되고 싶은 뱀의 꼬리로 ‘잡다함’이 지나쳐 자칫 ‘너저분함’으로 치닫는다. 미대를 졸업해 그림을 그리며 교양 있게 살줄 알았는데 생뚱맞게 연극과 영화미술에 빠진 탓에 한 몇 년을 작살나게 고생만 했다. 그러다 운 좋게 환경디자인 회사에 취직을 하지만 그저 좀 ‘무료’하단 이유로 지복을 날로 차고, 지금까지 몇 년 째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며 되도 않는 글들을 끼적이고 있다. 밥먹고 사는 일은 자유로운 기고로 이어진다. 문화 예술 칼럼을 비롯해 다양한 취재 원고를 소화하고 있다. 한 번의 긴 여행과 몇 번의 짧은 여행을 무한 반복 중이다. 덕분에 적당히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견문은 넓혀진 것도 또 아닌 것도 같다. 쉽게 마음이 동하는 갈대 같은 호기심에 뿌리 깊은 나태함이 더해져 도대체가 갈피를 못 잡는다. 여행과 생각, 사람과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blog.naver.com/waste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