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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행, 인셉션의 기원

    발없는새 발없는새 2010.08.11

    카테고리

    한국, 서울



    <인셉션>을 지난 토요일에 아이맥스로 재관람하고 왔습니다. 그렇다면 예고해드렸던 대로 <인셉션>에 대한 보다 상세한 리뷰를 써야 하지만... 과감하게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시기도 놓쳤고, 영화가 영화인지라 이미 훌륭한 리뷰들이 충분히 쏟아졌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같은 얘기를 또 해봤자 중언부언의 범위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이며, 솔직히 프로이트, 융, 라캉 등의 정신분석학자 혹은 심리학자들의 세계와 접목하여 <인셉션>을 해부하는 것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진작에 심리학과 철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아직은 그릇이 얕아서 차마 담아낼 수가 없는 상태군요. (미리 좀 열심히 공부하지!)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초점을 조금 달리 해볼까 합니다. 저는 제목 그대로 크리스토퍼 놀란이  <인셉션>을 두고 "<다크 나이트>는 전초전에 불과했다"는 의미의 발언을 한 배경을 살펴봤습니다. 시사회에서 <인셉션>을 처음 봤을 때는 놀란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공통된 요소를 발견했지만 짐작에 불과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주특기(?)인 사색의 길을 걷고, 전작들을 오랜만에 재감상하면서 짐작에다 저만의 확신을 조금이나마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주의 : 이하는 스포일러 및 "스크롤 압박의 진수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그의 학업성적이 어땠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필시 전공과는 별도로 심리학이나 철학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관심 정도가 아니라 전공보다 더 심도 깊은 학구열을 불태웠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비단 <인셉션> 한 편의 감상을 기초로 하여 내지르는 짐작만은 아닙니다.
     

    제가 보는 크리스토퍼 놀란은 '인형술사(Puppet Master)'입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심리를 조작하고 시시각각 자기 뜻대로 운용하는 데 능합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을 혼돈의 세계로 밀어넣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더 나아가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있어 관객은 꼭두각시이고, 영화는 관객이라는 이름의 꼭두각시와 자신의 손가락을 이어주는 끈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크 나이트>를 블록버스터 히어로 무비의 완성형이라고 한다면, <인셉션>은 감히 크리스토퍼 놀란이 추구하던 영화의 완성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로소 그의 오랜 숙원을 이룬 셈이죠.
     

    한편으론 이것으로 인해 크리스토퍼 놀란이 정말 무시무시한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단순히 타인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선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상대방의 외모와 의상, 습관 등을 통해 그 사람의 실체를 파악하는 셜록 홈즈의 '추리'와는 전혀 방향성이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악한 재주를 살려 특정한 목적 하에서 상대방을 원하는 대로 주무르려고 하는 악의적인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궁극적으로 아이콘화한 캐릭터가 바로 <다크 나이트>의 조커이며 가장 처음 선을 보인 캐릭터는 <미행>에 등장한 (인셉션의 주인공과 이름이 동일한) 코브입니다.



     
     

     

    미행 - 인셉션의 기원
     

    <다크 나이트>와 <인셉션>의 상관관계를 따지기 이전에 우선 <미행>부터 세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행>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1998년에 연출한 장편 데뷔작으로, 동일한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만 봐도 <인셉션>이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작가 지망생인 이 영화의 주인공 빌은 작품에 필요한 캐릭터를 구상하는 데 도움된다는 이유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무작위로 미행하는 기이한 행동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법칙을 가지고 있어서 같은 사람을 두 번 미행하지 않고, 미행한 사람들에게 딱히 접근을 한다거나 해코지를 하지도 않습니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한 남자를 미행하다가 뜻하지 않게도 그에 의해 발각이 되고 맙니다. 줄곧 자신을 쫓아왔다는 사실을 안 이 남자는 빌에게 다가가서 그를 추궁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의 이름이 '코브'라고 밝힌 남자는 빌이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 유심히 쳐다보던 가방이 훔친 물건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보여줍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코브는 빌의 왕성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자신과 함께 남의 집에 침입하고 물건을 훔치는 일에 동참하게까지 만듭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두 사람이 함께 작업을 하면서 코브는 자신의 주특기를 유감 없이 보여줍니다. 그는 마치 셜록 홈즈처럼 집 안에 널부러져 있는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집주인의 나이는 몇 살인지, 이사온 지는 얼마나 됐는지, 그들의 관계는 어떤지 등의 세부사항을 단번에 파악합니다. 내심 그간의 숱한 미행으로 인해 사람들의 내면을 파악하는 데 도가 텄다고 자부하던 빌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죠. 코브의 예리한 시선과 추리에 비하면 빌의 그것은 이제 막 걸음을 시작한 갓난아기에 불과했습니다.

     
    헌데 코브의 이와 같은 행각은 도둑질에 그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빌이 가장 의아하게 여겼던 점이 이것인데, 코브는 돈 때문에 남의 집에 침입해 물건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드레날린 분비를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아울러 자신 또한 빌처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덧붙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이는 빌의 관음증적인 시선과는 달리 뚜렷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브는 대범함까지 갖추고 있어 위급한 상황에서의 사리판단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습니다. 빌과의 첫 작업에서 그의 이러한 면을 잘 드러내주는 해프닝이 발생합니다.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온 것으로도 모자라 코브가 호기 있게 와인까지 훔쳐 마시려던 찰나에 집주인인 듯한 남녀 한 쌍이 들이닥칩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야 마땅할 상황인데, 코브는 이미 이 집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주도면밀하게 파악해둔 덕분에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고 유유히 빠져나옵니다. 어째서 이런 후안무치한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 짧은 시간에 코브는 자신의 확신에 찬 추리를 바탕으로 여자와 함께 있던 남자가 동거인이 아님을 신속하게 알아차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어설프디 어설픈 거짓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죠. 이 해프닝의 여파는 며칠 후까지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코브와 빌이 함께 식사를 하던 레스토랑에 앞서 마주쳤던 여자가 들어온 것입니다. 이를 보고 빌은 화들짝 놀라 얼른 나가야 한다고 재촉하지만 코브는 이번에도 태연하기만 합니다. 심지어 여자가 자신을 봤다며 재차 주인공이 보채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한 가지 질문을 건넵니다. 여자와 함께 있는 남자가 그때와 동일인물이냐고. 빌이 아니라고 답하자 그럼 안심하라며 디저트까지 먹겠다는 대담한 태도를 보입니다. 결국 빌의 성화에 못 이겨 레스토랑을 빠져나오긴 하지만 코브는 도리어 디저트를 못 먹고 나왔다며 잔뜩 화를 내고 빌을 다그칩니다. 이건 또 어째서일까요?

     
    간단합니다. 코브는 이전의 경험을 통해서 그 여자가 바람피우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로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어 문젯거리를 피하고 싶은 사람은 코브와 빌이 아닌 여자쪽이 됩니다.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여자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기는커녕 행여라도 이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겁니다. 이 대목은 긴박한 순간에서조차도 코브가 얼마나 타인의 심리를 제 손바닥 보듯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는 지를 또 한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상 크리스토퍼 놀란이 <미행>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바의 핵심은 여기까지입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반전이 있는데, 눈치가 빠르신 분이라면 이쯤에서 그것이 무엇일지 대충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본격적으로 짝을 이뤄 도둑질을 시작한 두 사람은 코브의 안내에 따라 한 여자의 집을 슬그머니 방문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빌에게는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집 안 곳곳에 있던 여자의 사진과 서랍장의 속옷을 보고는 본능에 가까운 욕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급기야 자신이 철칙처럼 따르던 규칙을 깨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여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합니다. 그렇게 만남을 시작한 두 사람은 점차 가까운 관계로 발전하고, 그 결과 여자는 빌에게 한 가지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그녀는 이전에 만났던 남자에게 약점을 잡혀 그로부터 거듭 협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빌은 그녀의 환심을 사고자 영웅이 되기를 자처하고 나서 문제를 해결합니다만,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게다가 여자가 말한 약점이라는 것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여자는 다름 아닌 코브와 작당을 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될 위기에 처한 코브를 대신하여 경찰의 용의선상에 오를 재물로 빌을 끌어들이는 데 도움을 준 것이었습니다.

     
    또한 빌을 희생양으로 점지하기까지 코브가 그를 미행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밝혀집니다. 코브는 다른 사람도 아닌 나름 미행에 도가 튼 빌을 역으로 미행했고, 거기에 덧붙여 그의 성향을 낱낱이 파악한 덕분에 빌이 제 발로 함정에 걸어들어오게끔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빌은 호기심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일부러 집 안 곳곳에 사진을 배치하고 속옷을 꺼내어 그의 욕구를 자극, 여자에게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습니다. 그 후 코브는 여자의 집에서 훔친 물건을 빌에게 직접 처리(판매)해보라고 제안하여 그로 하여금 여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상황은 - 두 사람의 첫 작업을 통해 여실히 증명됐듯이 - 코브가 빌의 머리 위에 앉아 꼭두각시 다루듯 조종한 인형극에 다름 아닙니다. 물론 그 결정적인 도구는 빌의 심리와 그 심리를 근간으로 이뤄지게 될 행동반경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측한 코브의 독심술입니다.

     
    그런데 <미행>의 반전은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코브와 한패라고 여겨졌던 여자도 실은 빌만큼이나 코브의 농간에 당한 것이었습니다. 코브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됐다며 도움을 청한 것부터가 거짓이었고, 이 모든 계략은 그가 자신의 보스이자 여자의 옛 남자친구로부터 사주를 받아 여자를 죽이고 그 죄를 빌에게 덮어씌우기 위한 일종의 완전범죄였습니다. 빌도, 여자도 마지막이 되어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미 때가 늦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코브는 유령처럼 사라진 뒤였습니다.

     
    이처럼 코브는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손오공을 가지고 놀듯이, 타인의 내면을 모조리 파헤치고 그들의 심리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여 마음껏 주무르는 용의주도한 인물입니다. 다소 장황한 글이 됐지만, 왜 <미행>과 <인셉션>의 주인공이 같은 이름을 가졌는지, 왜 제가 <미행>을 <인셉션>의 기원이라고 했는지 이제 조금이나마 감이 잡히셨나요? 이만큼 긴 글을 읽었는데도 아직 잘 모르겠다 하시는 분들은 마지막까지 꼭 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으로 여러분은 저한테 낚이신 겁니다!)





     

     
    <미행>은 데뷔작답게 다소 실험적인 성격이 담긴 작품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한 편의 영화만으로도 향후 크리스토퍼 놀란이 추구하는 작품성향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크리스토퍼 놀란은 일찌감치 인간 심리의 탐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이러한 학구적인 자세는 <미행>에 앞서 제작한 단편영화 <Doodlebug>에서부터 엿볼 수 있습니다. 약 3분짜리인 이 짧은 영화에서 그는 현대인의 내면에 자리한 강박증을 초현실주의적인 화면을 통해 재기발랄하게 전달합니다. 또한 <메멘토, 인썸니아, 배트맨 시리즈>의 주요 캐릭터들이 공히 정신 혹은 심리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의 주관심사가 무엇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론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인 코브처럼 놀란은 관객의 심리를 교란하고 장악하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것이 저로 하여금 놀란이 두렵다고 지칭하게끔 만든 직접적인 원인인데, 그의 야심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채택된 수단은 바로 <메멘토>를 통해 익히 알려진 비순차 편집입니다. 표면적으로 <메멘토>에서의 비순차 편집은 주인공과 동일한 시점에서 영화를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은 흔히 보여주는 대로 보고 있는 관객의 습성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비순차 편집을 도입해 보다 능동적으로 극에 동참하기를 유도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럼으로 인해서 <메멘토>는 전형적인 장르의 틀을 답습하지 않고도 더없이 뛰어난 흡입력을 가진 미스터리 영화가 됐습니다. 심지어 동일 장르의 타 영화와는 달리, 플롯의 재배치를 가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후반부에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반전이 등장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비순차 편집이 (역)순차적으로 진행하면서 얻게 된 아이러니하고도 탁월한 결과물입니다. (새삼스레 놀란의 천재성에 탄복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이상과 같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성향, 즉 인간 심리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교묘한 탐구와 그로부터 빚어진 관객을 아우르려는 야심을 종합하면, <미행>의 빌과 코브는 결국 놀란 본인의 자아분열이 반영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 작품은 차치하고 그가 모험이나 다름없는 배트맨의 리부트를 연출한 것이나 노르웨이 영화가 원작인 <인썸니아>를 굳이 리메이크한 것도 일면 당연해 보입니다.




    여기서 잠시 앞으로 돌아가 <미행>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추가적으로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비순차 편집은 <메멘토> 이전에 이미 <미행>에서 시도됐던 방식입니다. 다만 <미행>에서는 단순히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예 두 개의 시간대로 범위를 나눠 시차를 두고 엉킨 채로 보여집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눈으로 화면을 보고 머리로 끊임없이 퍼즐을 맞추면서 영화를 좇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실험은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난색을 표했거나 놀란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메멘토>에서는 그 유산을 이어받되 한결 단순화시켰습니다. 물론 <메멘토>에도 중반부부터 이질적인 시간대(흑백화면)가 간섭을 하긴 하지만, 이는 일종의 가이드 라인으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메멘토>가 자신의 동생인 조나단 놀란의 단편소설 <Memento Mori>를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미행>을 봤다면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라는 추측을 감히 하게 됩니다. <미행>의 빌이 그랬듯이 <메멘토>의 레너드도 타인에 의해 이용 당하는 처지였으며 비순차 편집도 그대로 이어받지 않았습니까. 다른 것이 있다면 빌은 심리적인 꼬임에 빠져 스스로 함정을 향해 걸어갔지만 레너드는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정신적인 장애로 인해 꼼짝없이 타인의 사리사욕의 실현에 동원됐습니다. 특히 <메멘토>는 타인뿐만 아니라 레너드 본인조차도 자신의 존재목적을 상실하지 않고자 그러한 장애를 거듭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이밖에도 <미행>은 코브의 캐릭터를 비롯한 몇 가지 요소를 통해 <인셉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제가 그랬죠? 여러분은 저한테 낚이고 계시는 겁니다!)

    발없는새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고 여행을 꿈꾸는 어느 블로거의 세계입니다.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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