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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나지 않는 얼굴, 빛나는 소설

    낟나 낟나 201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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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서울



    듣건대 벌써 여름휴가도 끝물이랍니다.

    제대로 즐길 겨를도 없었는데 벌써 끝이라니,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오늘도 길을 오가며 사람들을 봤습니다. 지난 주말은 무척이나 더웠죠. 건강하게 그을린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한결 가볍지만 더없이 화려한 옷들을 입고 미모를 뽐내듯 지나갑니다. 어쩜, 세상에는 정말 예쁘고 멋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눈망울을 똑 떼어가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에요. 언젠가 지하철에서 만난 회사 언니와 함께 출근하던 길, 회사 근처 커피숍에 들렀던 일이 기억납니다. 카운터 너머로 바리스타 언니가 한 분 있었는데,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생글생글 웃으면서 커피를 만들어 주더군요. 어깻죽지까지 내려오는 파마머리에 민낯이었던 언니는 어린 곰 같은 눈망울을 빛내며 한껏 환하게 웃었습니다. 차가운 커피를 손에 쥐고 커피숍을 나오면서, 옆에 있던 회사 언니에게 말했지요.



    “언니, 저는 저런 인상을 갖고 싶었어요. 순하고, 보면 같이 따라 웃게 만드는 그런 얼굴.”


    그러자 언니는 말했습니다.



    “그럼 넌 다시 태어나야 해.”


    오늘은 저런 말을 수없이 들었을 주인공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눈물을 머금고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그래도 날 사랑해 줄 건가요?”








    박민규의 가장 최근 장편소설입니다. 이미 ‘박민규’라는 이름에서부터 기대감을 잔뜩 올려주는 작가. 수상 경력도 화려하기 그지 없는 작가. 그의 글은 독특한 개성이 있습니다. 문자를 뛰어넘어 문자의 배열, 문장의 배열 모두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신기한 힘을 지녔지요. 그의 장편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표지가 보이시나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입니다. 유독 어느 한 명만 밝게 비추고 있네요. 우린 이 그림을 다른 식으로 배웠습니다. 그림의 구도, 화면 속 인물의 시선. 그러나 박민규는 한쪽의 어느 여인에게 시선을 맞췄습니다.



    제목이 특이하죠?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을 보고 영감을 받아 피아노 연주곡을 하나 만들었는데, 바로 그 연주곡 이름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입니다. 그리고 박민규는 그 연주곡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저 사실 그때 당신을 믿지 않았거든요. 아니, 실은 믿고 싶었지만... 믿을 수 없었던 거예요. 그럴 리가 없었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그 전에 당신이 제 짐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전 분명 또다시 놀림감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이전에도 여러 번 비슷한 일을 겪었으니까... 즉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저 애에게 가서 말 걸기... 그리고 이긴 남자애들이 어딘가 숨어서 배를 잡고 웃는 거예요. 수군거리는 주변의 그 분위기를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런 일을 겪을 때 언제나 못 박힌 듯 몸이 얼어붙었으니까... 사람의 웃음이...창(槍)처럼 사람의 배를 찌를 수 있다는 걸 믿으세요? 믿어... 하고, 나는 뿔이 잘린 트리케라톱스처럼 고개를 끄덕였었다. 결국, 세상의 매듭을 푸는 것은 시간이다. (본문, 140쪽)



    스무 살, 아직 어린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외모에 콤플렉스가 무척이나 많은 여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다가서려는 남자는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한 사람을 아버지로 둔, 사랑받는 것에 익숙지 못한 남자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한눈에 반했지요. 여자는 그동안 도저히 지울 수 없으리만큼 큰 상처를 받아왔기에 그가 다가오는 걸 쉽사리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작가 박민규는 다시 한 번 말하지요.



    “그래도 날 사랑해 줄 건가요?”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도미니카계 미국 작가, 주노 디아스의 장편소설입니다.

    첫 장편소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하여 더욱 유명해졌죠.



    "에세 무차초 에스타 부에노 (저 녀석 정말 잘생겼어)!"



    주인공 오스카가 어렸을 적에 자주 듣던 말입니다. 그에게는 황금기가 너무나 일찍 찾아왔던 거죠. '생후 일곱 번째 맞는 가을에는 여자 친구를 둘씩이나 거느리며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삼각관계를 누렸을' 정도입니다.



    마릿샤가 그를 차버린 순간부터-샤잠!-오스카의 인생은 시궁창으로 곤두박질쳤다. 그후 두어 해 동안 오스카는 저점 더 돼지가 되어갔다. 사춘기 초기는 특히 가혹했는데, 얼굴은 귀여운 데라곤 하나 없이 뒤집어졌고 피부엔 여드름이 울긋불긋 수를 놓았다. 그는 남의 이목을 몹시 신경 쓰게 되었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던 장르 소설에 대한 그의 관심이 갑자기 ‘찌질이 중에서도 으뜸 찌질이’의 동의어가 되었다. 그는 아무리 해도 친구를 사귈 수가 없었다. 너무 꼴통스럽고 수줍음이 많았으며, (동네 아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 이상한 아이였다. (오스카는 전날 새로 외운 어려운 단어를 다음 날 다른 사람에게 써먹어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이제 여자애들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기껏해야 무시나 당하고, 재수 없으면 비명을 지르는 여자애들한테 ‘구역질나는 돼지’ 소리나 듣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는 페리토 춤도, 집안 여자들이 그를 옴브레(남자)라고 불렀을 때 느꼈던 자부심도 잊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여자들에게 키스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마치 그 지랄 같은 일주일 동안 오스카 내부의 여자 ‘부서’가 불타버리기라도 한 듯이. (본문, 30쪽)



    그의 얼굴은 과히 놀라울 정도로 한순간에 변해 버렸습니다. 그의 빛나던 외모는 어디 갔는지요. 그의 여자 친구들은 다 어디로 떠나 버렸는지요. 그는 그의 인생에 허락된 제일 달콤한 열매를 너무나 이른 시기에 우걱우걱 먹어 버렸습니다. 더욱이 그에겐 세대에 오래도록 이어진 저주 ‘푸쿠’도 함께하고 있고요.



    사람들이 뚱뚱한 사람을 싫어한다고? 그렇다면 살 빼려는 뚱보는 얼마나 더 싫어할지 상상해보라. 그 광경은 사람들 속에 내재된 저 빌어먹을 악마를, 발로그를 끄집어냈다. 세상에서 제일 상냥한 아가씨들이 길에서 뛰는 그를 보고 차마 못할 말을 던지곤 했고, 나이 든 할머니들은 저 뚱보 좀 봐, 구역질나게시리, 라고 했다, 구역질이 난다고. 평소 오스카에게 반감을 표시한 적이 한 번도 없던 해럴드조차 그를 ‘자바 더 벗’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의 반응은 너무나 적대적이었다. (본문, 212쪽)



    사람들은 못생긴 그가 운동을 하여 조금이나마 괜찮은 모양새를 갖추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막상 오스카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저리도 고약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도 오스카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워지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박민규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사랑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의 노력은 보기 애처로울 정도입니다.



    결국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사랑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실 이 두 책의 매력은 주인공의 외모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빚어내는 주옥같은 아름다움입니다. 책 속의 외모 이야기는 단지 그들의 외양을 묘사하는 잠깐의 서술에 불과하지요. 그들이 그리는 아름다움이란 세상에서 제일 숭고한 것은 사랑일 거라는 확신을 주는, 그런 아름다움입니다. 한번쯤 손에 쥐고 책에만 폭 빠져서 읽고 싶은  아주 아름다운 내용의 이야기책 두 권이랍니다.



     

    * 책 표지 이미지는 yes24에서 가져왔습니다 *

     

    낟나

    어느 출판사에서 고전문학을 편집하고 있는, 아직 걸음마 배우고 있는 새내기 편집자입니다. :-) http://blog.naver.com/aswis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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