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떼목장 넘어 대관령 옛길이 이어진다
강원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바우길 2구간 대관령옛길
땅의 경계. 드넓은 초원 위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목장의 양들은 자신들의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까? 어쩜 그곳의 양들을 보기 위해 찾아간 사람들도 양떼목장이라는 장소를 나타내는 단어를 통해 공간정 한정을 인지할 뿐이지 경계와 그 너머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관심 갖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바우길 2구간 대관령 옛길을 통해 양떼목장의 경계 넘어 또 다른 세상을 향해 걸어보자.
대관령을 넘는 길, 대관령 옛길
보통 대관령 양떼목장을 찾으면 양떼목장 구경하고 돌아가기 바쁜데 양떼목장의 경계를 지나가는 대관령 옛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이 길은 강릉 바우길 2구간으로 16KM 정도 걷는 길이다. 양떼목장과 함께 연계하는 하루 코스의 여행으로 좋은데 시종착점이 다른 관계로 자차여행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양떼목장을 찾는 것이 좋다.
대관령옛길과 양떼목장 사이, 경계
양떼목장에서 바로 길이 이어지면 좋겠지만 출입구가 하나이고 입장료를 받는 관광지다 보니 양떼목장 관람을 마치고 되돌아 나와 코스의 시작점을 찾아 걸어야 한다. 숲을 빠져나왔다 싶을 즘 철조망이 길과 나란히 이어지는 데 이 철조망 넘어가 양떼목장이다. 양들이 몰려다니는 곳과 좀 먼 곳이다 보니 걷는 내내 양을 구경할 순 없었지만 운이 좋다면 길을 잃은 양과 대면할 수도 있다.
숲 속에서 조심해야 할 것, 뱀
9월의 대관령 옛길엔 야생화가 곳곳에 피어 있다. 꽃구경하느라 정신 팔려있다가 밟을뻔한 뱀. 길을 가로질러 숲풀 속으로 사라질때까지 기다린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는 건 아마 저 녀석도 마찬가지리라. 저 녀석을 발견했을 때 그 소란스러움은 사진에도 글에도 나타나지 않아 다행이다.
너희가 자라듯 나무들이 자란다, 대관령 탄생숲
느닷없는 뱀의 출현으로 당황했던 곳은 대관령 탄생 숲. 이곳엔 아이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아이의 이름으로 심은 나무들이 자라는 곳이다. 내가 성장하듯 자라난 나무를 먼 훗날 바라본 같은 이름의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바램이 있다면 너의 곧고 올바른 성장을 위해 너의 부모가 그 기원을 이곳에 남겨놓았음에 감사하며 스스로 나무와 같이 성장하길 다짐했으면 한다.
소리에 이끌려 닿은 곳, 국사성황당
탄생숲을 지나 희미하게 들리던 소리가 정점을 찍을 무렵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보인다. 굿소리는 나도 모르게 홀리는 그런 묘한 기분을 들게 하고 몇 번의 도리질로 소리를 쫓아낸다. 이곳저곳에서 제를 올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던 국사성황당. 이곳에 있는 성황사와 산신당은 유네스코에 지정된 문화재다. 단오제 때 이곳에서 제를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행사가 시작된다고 하니 내년엔 단오제에 맞춰 이곳을 찾아봐야겠다.
강릉을 내려다보자, 반정
숲길을 빠져나와 도로와 맞닿으면 그곳이 반정이다. 산줄기를 눈으로 타고 내려가면 하얀 자갈들을 뿌려놓은 듯한 곳이 강릉이다. 북적이는 사람들도 고민에 빠지게 하는 그 무엇도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울 수밖에. 어쩜 신이 공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인이라서가 아니라 한걸음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이곳에 있는 나에게 세상 속 이야기가 '그럴 수 있다'라 결론내듯이 말이다.
물이 하산한다, 계곡
강릉시내를 보며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숲 속으로 향한다. 언제부턴가 내 귀를 자극하는 움직임이 들린다. 물이다. 물은 나와는 달리 걸음 소리를 낸다. 느린 눈 깜박임에 물이 지나간 흔적을 카메라가 잡아낸다. 우렁차고 시원한 물의 하산을 지켜보는 건 이상형이 지나갈 때 발걸음을 멈추고 그의 뒷모습이 점이 될 때까지 지켜보는 것과 같다.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물 한 바가지, 주막터
걸음이 지칠 때쯤 집 한 채가 보인다. 물레 방아도 있다. 예전엔 이곳에도 사람이 살았었나 보다. 오래전엔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을 테니 그런 사람들이 머물고 쉬고 했던 주막터. '잠시 쉬고 싶다' 생각이 드는 타이밍에 나오는 걸 보니 주막터로 적절하다. 시원한 약수로 목마름을 해결하니 낮잠이 밀려온다.
다시 만난 하산 동지, 계곡
또다시 만난 계곡. 굽이굽이 흐르는 물의 흐름과 소리는 홀로 걷는 길을 운치 있게 만든다. 더 내려가면 아쉬울 것 같아 계곡 가까이 다가가 배낭도 내려놓고 발을 담가본다. 9월의 계곡물은 제법 차다. 이 기분 좋은 차가움은 하루 종일 걸어 지친 발에게 청량함을 선사한다.
피로 회복제, 탁주 한잔
산행이 끝날 무렵 가게 하나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잔 막걸리 한 잔을 받아 데크에 걸터앉는다. 배낭에 행동식으로 넣어 두었던 밀크카라멜을 안주 삼아 들이키는 나만의 축제. 이런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사람과 함께 건배라도 기울였다면 좋으련만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다. 그래도 산행 후 즐기는 곡주의 톡톡히는 탄산은 행복이다.
징검다리 건너, 집으로 가는 길
이 길도 끝이 보인다. 사실 잔 막걸리집이 길의 끝인 줄 알았는데 그 뒤로 한참을 더 가야 해서 당황했지만 걷다 보니 길은 끝이 나고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아침 일찍 부지런하게 양떼목장 구경도 하고 대관령 옛길도 넘었으니 오늘 하루 수고한 나의 두 발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얘들아, 다음엔 어딜 걸어볼까?
문밖을 나서면 어디든 여행.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발길 닿는대로 기웃거리는 뚜벅이 여행가 R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