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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노의 포도, 66번 도로를 추억하다

    moo nee moo nee 2016.05.12

    카테고리

    미국

    미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티셔츠를 선물 받았는데, 'route 66' 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66번 도로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 우리 가족이 '양념'이라 부른 여정.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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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번 도로는 미국 최초로 동서(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까지)를 이은 도로다. 현재 지도상에선 없어진 길이지만, 일부 구간은 다른 이름으로 여전히 존재한다. 길 위에 있던 몇 개 마을은 사라져버린 66번 도로를 추억하며 옛 풍경을 재현해 두었다.

    이번 여행은 내가 전 일정을 계획했는데, 여행의 막바지로 갈수록 체력이 안될 듯하여 다소 느슨하게 잡고 떠났다. 그 탓에 반나절의 시간이 비어버렸다. 그때 동생이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66번 도로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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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에서 상징적인 도로인가 봐. 

    - 소설 '분노의 포도'의 배경이라고 하는데?

    미국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대지주의 등장으로 농사를 지을 터전을 잃어버린 많은 농민들이 서부로 이주를 했다. 그때 이용했던 고속도로가 바로 66번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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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메인 도로 (Main Street of America)라 불렸다. 존 스타인벡이 소설 '분노의 포도'에서 엄마의 도로라 칭하며 'mother's road'란 별칭도 갖고 있다.

     

    " 66번 도로는 도망치는 사람들의 길이다. 흙먼지와 점점 좁아지는 땅, 천둥 같은 소리를 내는 트랙터와 땅에 대한 소유권을 마음대로 주장할 수 없게 된 현실, 북쪽으로 서서히 밀고 올라오는 사막, 텍사스에서부터 휘몰아치는 바람, 땅을 비옥하게 해 주기는커녕 조금 남아 있던 비옥한 땅마저 훔쳐가 버리는 홍수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 

     

    ... 66번 도로는 이 작은 지류들의 어머니며 도망치는 사람들의 길이다."

     

    - p.244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中

     

     

     

    '한 번 읽어봐야지' 생각만 해두었던 작품이었다. 이번에 들르면 책을 반드시 읽을 기회도 되겠다 싶어 가보기로 하였다.

    - 지도에서 없어졌는데 어떻게 가지?

    우리 가족은 내비게이션에 '셀리그먼'이란 도시를 목적지로 찍고 가면서 66번 도로의 향수를 느껴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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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리조나주 북서부에 위치한 셀리그먼(Seligman)은 인구 40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66번 도로의 스톱 포인트 (stop point)로 인기가 좋은데, 1926년부터 1978년까지 66번 도로가 셀리그먼을 지났다.

    마을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남서부의 여행길에 오른 퇴역군인들과 자동차 여행자들에 의해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관광지라고 하기엔 조금 어설픈 셀리그먼의 한 상점에 들어갔다. 놓인 물건 하나하나엔 한국인인 내가 온전히 향유하기 어려운 향수가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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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미국 경제공황기 한 농부 일가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미국 중남부에 위치한 오클라호마에서 소작농으로 생활하던 조드 가족은 모래바람을 만나 농사를 망치고, 은행과 대지주에게 땅을 빼앗겨 고향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들은 인부를 많이 구한다는 전단지만 믿고 '축복의 땅'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물론 캘리포니아는 젖과 꿀이 흐르는 풍족한 땅이었으나, 일자리보다 일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임금은 낮고 지주의 착취도 심하였다.

    조드 가는 빈민촌을 전전하며 하나둘 흩어지게 된다.

     

    작품은 1940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혹시나 있을까 유튜브에서 검색하니 마침 풀 영상으로 있어 소설을 읽은 후 감상해 보았다. 스크린 속에서 조드 가족이 66번 도로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향하며 잠시 들른 상점 풍경이 셀리그먼의 상점과 닮아 반갑다. 

    [youtube]https://www.youtube.com/watch?v=QwXU-_r19w4[/youtube] 

     

    또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의 경계를 지나 만나는 (이 길 위에서 할머니를 떠나보낸다) 사막길 위 조슈아 나무들도 간혹 보여 더욱 반갑다. 

    우리 가족도 캘리포니아의 사막길에선 꽤나 가슴 졸이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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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에서 출발한 우리는 초행길에 500마일, 8시간이나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애리조나 세도나까지 향했다. 어떤 길이 나올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이토록 메마른 땅이 계속될 줄도, 그토록 긴 구간 내에 주유소가 없을지도 예상하지 못 했다.

    - 니들스에서 저녁을 먹자. 

    - 니들스까지만 가면 휘발유를 넣을 수 있겠지. 

     

    "햇빛에 시들어 버린 애리조나의 울퉁불퉁한 산악 지대를 지나면 콜로라도 강이 나온다. 양쪽 강둑에 초록색 갈대가 자라고 있는 이곳이 애리조나의 끝이다. 강을 건너면 바로 캘리포니아고, 캘리포니아 초입에 바로 예쁜 도시가 하나 있다. 강변의 도시 니들스. 그러나 이곳에서 강은 이방인과 같다. 니들스에서 북쪽으로 나와 햇빛에 타 버린 산악 지대를 지나면 사막이 나온다. 66번 도로는 이 무서운 사막을 지나간다.

     … 그러다가 갑자기 고갯길이 나타나는데, 그 아래에는 아름다운 계곡이 있다. 그리고 멀리 도시가 보인다. 오, 하느님, 이제 여행이 끝났군요."

     

    - p.244-245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휘발유를 넣을 시간을 한참 전에 놓쳐버렸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긴장감 속에서 휘발유가 모두 동나기 바로 직전 사막의 오아시스같이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의 경계에서 주유소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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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먼저 읽고 66번 도로를 지났다면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내가 지나온 장소가 담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조드 가족이 66번 도로를 달리며 겪었던 경험들의 일부, 그들이 보았던 풍경들을 8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가족도 만나게 된 점이 기억에 오래 남을 듯 하다. 66번 도로를 마냥 달릴 땐 잔뜩 긴장하여 맘껏 누리지 못 했던 것들을 돌아와 활자로 다시 만나니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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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ORMATION

    주소 : 22750 AZ-66 Scenic, Seligman, AZ 86337

    moo nee

    배경여행가. 책, 영화,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의 모습이 지워진 배경에 들어가 보는 여행을 하고 있다. 백과사전 회사에서 5년 가까이 근무. 건조하고 차가운 글을 쓰고 편집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으니, 촉촉하고 다정한 글을 찾고 쓰는 일이 낙(樂)이 되었다. 지금은 IT회사에 재직 중. 저서로는 <다정한 여행의 배경>이 있다. www.istandby4u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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