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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얼빈, 항일애국의 뜻깊은 역사기행지 - 안중근 의사 기념관

    홍대고양이 홍대고양이 2016.10.10

    카테고리

    기타, 역사/종교,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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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겨울 빙등제로 화려하게 빛나는 겨울왕국,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 가을의 숨결이 짙어지는 9월의 하얼빈은 뜻깊은 목적으로 찾았다. 일제치하에서 항일애국의 뜻을 불태운 위인의 흔적이 하얼빈에, 일제의 잔악함을 밝히는 증거들이 하얼빈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역사적 사실들은 타자의 과거가 아닌 ‘우리의’ 과거다. 눈을 들어 마주하기 힘든 내용도 있지만 그렇기에 더 형형한 눈빛으로 직시해야 한다. 그런 다짐으로 마음에 담아야 할 우리나라의 역사 조각들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 항일애국의 현장,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 安重根义士纪念馆  

    - 역사적 장소, 하얼빈 역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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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안중근 의사를 찾아 하얼빈 역으로 향했다. 중국 하얼빈은 항일애국 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 하얼빈이니, 우리에게 각별한 도시다. 그 중에서 하얼빈 역(哈尔滨站)은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난강구의 교통 거점이다. 1899년 쑹화장 역으로 문 열었고, 1903년 하얼빈 역으로 개명되었다. 하얼빈 역을 바라보고 서면 바로 왼쪽에 2014년 문 연 ‘안중근 의사 기념관(安重根义士纪念馆)’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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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풍 건물 전면부에 현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라는 한자들이 보인다. 낡고 오래된 문을 너머 기념관으로 들어가기 직전,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시침과 분침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시계는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며 침략을 자행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역사적 순간에 멈춰있다. 나도 숨을 잠시 멈추게 된다. 시간은 흘러도 역사적 순간은 잊히지 않고 있었다.

     

     

     

    - 안중근 의사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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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알고 보면 세계 곳곳에 있다. 한 곳은 대한민국 서울에 있으며, 또 다른 한 곳은 중국 하얼빈에 있다. 중국 뤼순 감옥에도 있다. 우리나라의 기념관은 2010년 개관하여 첨단 시설을 갖춘 기념관이지만 하얼빈의 기념관은 작고 소박하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의거한 현장에 위치하고 있다는 역사적 의의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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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념관은 2014년 하얼빈 역 1층의 귀빈용 대합실을 수리하여 만들었다. 200m2의 작은 공간에 뜨겁고 큰 애국정신이 오롯하게 담겨 있다. 천천히 보았다.입구에는 안중근 의사의 흉상과 초상화가 있으며 연이어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업적, 이토를 처단하기까지의 이야기와 이토 암살 뒤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까지가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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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념관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건 유리창 너머 풍경이다. 여느 기차역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다시 바닥을 살피면 두 개의 특별 표시가 보인다. 이토가 서 있던 자리와 안중근 의사가 암살을 위해 자리 잡았던 실제 위치다. 세 발의 총성이 바로 여기서 울렸다. 십자 표시를 했던 총탄이 침략의 원흉을 향해 발사된 곳이다.

     

     

     

    - ‘우리’ 안중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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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던 일본인 중 하나인 이토를 저격하여 사살한 위인으로 알고 있다. 이 기념관에서 어릴 적 읽고 잊었던 위인의 삶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안중근 의사는 격랑의 시대를 살았다. 안중근(安重根) 의사는 1879년 9월 태어나 1910년 3월 숨을 거둔 항일 의병장이자 정치 사상가다. 몸에 7개의 점이 있어 어릴 적 이름은 응칠(應七)이었고 천주교 세례명은 토마스, 즉 도마(多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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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는 일본에게 빼앗긴 국권회복을 위해 온몸을 던졌다.국채보상운동이며 의병활동에도 열성적이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할 또 다른 위인들,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와 함께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를 죽이는 거사를 계획한다. 중국 채가구 역과 하얼빈 역에서 각각 이토 저격을 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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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이토 저격을 계획할 당시, 인간 안중근으로서 얼마나 고뇌했을까.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감히 헤아리기 힘들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고 어머니가 살아계셨다. 자신 때문에 고초를 겪을 가족의 삶을 떠올리며 괴로웠을 것이고 천주교 신자로써 사람을 죽이는 일에 죄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이토의 피살은 곧 자신의 죽음과도 같은 의미임을 모를 리가 있는가.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한 뒤 죽임을 당할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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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는 모든 고뇌를 뒤로 하고 항일애국의 마음으로 거사를 진행했다. 1909년 10월 26일 러시아와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 역에 도착한 일본총리 이토를 현장에서 격살하고 러시아어로 대한독립을 크게 외친다. 대한민국이 엄연한 독립국임을 만방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코레아 우라! (Корея! Ура!)를 외친 안 의사는 곧 체포된다. 이토는 총성이 울린 뒤 30분 후, 병원으로 이송되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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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의 인품은 의사가 감옥에 수감된 뒤에 더욱 더 찬란하게 빛났다. 수감 중 악의 화신처럼 날뛰던 일본을 껴안아 한국, 일본, 중국이 함께 평화롭게 지냈으면 하는 글 ‘동양평화론’을 남겼으며 많은 유묵도 남겼다. 여러 가지 유묵 사본을 이 기념관에서 볼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그 유명한, 보물 제569-2호인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 가시가 돋는다)’ 사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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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의 재판 과정을 읽노라면 가슴 뭉클해진다. 안 의사는 재판 중 ‘내가 이토를 죽인 이유 15가지’를 들어 일본의 부당한 우리나라의 주권 침탈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 국제적으로 일본의 잘못을 알렸다. 하지만 재판은 자명한 결론으로 끝났다. 거사가 이뤄진 이듬해 2월 14일, 안중근 의사는 사형을 선고 받았다. 한 달쯤 뒤 3월 26일, 안 의사는 뤼순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여기서 다시 몇 번이고 강조하고 싶은 사실, 안 의사의 순국 장소는 악명 높던 중국 랴오둥 반도의 뤼순감옥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온갖 고초를 당한 뒤 옥사한 곳이다.

     

     

     

    - ‘우리 모두’의 안중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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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관의 방명록에 수많은 이들의 서명이 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 직후에는 한국인들이 주로 찾았지만 이제 중국인들도 많이 찾는다고.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을 너머 일제 강점기에 고통당한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모두 포괄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다. 하루 수백 명, 벌써 25~30여만 명이 기념관을 찾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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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 살아생전의 역사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켜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일본의 총칼은 중국이라고 하여 비켜가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대해 갈등을 풀지 못한 부분이 많다. 그렇기에 우리의 항일운동의 영웅이 중국의 항일운동의 영웅이기도 한 것이다.

     

     

     

    -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나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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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조국에 뼈를 묻어 달라 하셨던 유언은 아직도 받들지 못했다. 안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한 까닭이다.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했던 목소리가 여전히 울린다. 후손으로서 죄스럽다. 안타까움이 깊이 남는다. 기념관을 돌아보는데 휙 걸어 지난다면 20여 분이면 충분할 정도로 작다. 서운한 감이 없지 않다. 한자와 병기된 한글 설명판의 오타나 어색한 번역투의 설명문구도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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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최근 찾아든 희소식으로 위안을 삼는다. 곧 현재 규모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두 배로 커진다는 점이다. 하얼빈 시와 하얼빈 철로국이 손을 잡고 2018년까지 하얼빈 역 개축공사를 하며 중국측에서 비용을 들여 기념관을 새단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새로 개관할 기념관에는 하얼빈 조선민족예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물들을 옮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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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부각시키면서 의사의 업적을 알고 그 의미를 되새긴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참 다행이다. 올해로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서 의로운 거사를 행한지 107년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 깨달아야할 역사적 의의가 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며 문을 나섰다. 새로 문 열었을 때 다시 하얼빈을 찾고 싶다. 하얼빈의 또 다른 항일애국 장소, 안 의사가 거사를 치르기 전 들렀던 장소이자 2006년 안 의사의 유묵비가 세워졌다는 하얼빈 자오린 공원(兆麟公园)도 함께 들르고 싶다.

     

     

    -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 安重根义士纪念馆 정보
    · 위치 :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하얼빈역
    · 운영시간 : 9:00-16:30 개관, 11:30-13:30 break time, 월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 취재: Get About 트래블웹진

     

     

     

    홍대고양이

    동아사이언스 과학기자, 웹진과학전문기자, 아트센터 객원기자, 경기여행지식인단으로 활동. 지금 하나투어 겟어바웃의 글짓는 여행자이자 소믈리에로 막걸리 빚는 술사랑 여행자. 손그림, 사진, 글로 여행지의 낭만 정보를 전하는 감성 여행자. http://mahastha.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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