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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얼빈, 일제만행을 증거하는 역사기행지_731부대 죄증진열관

    홍대고양이 홍대고양이 2016.10.25

    카테고리

    기타, 역사/종교,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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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를 모르면 현재를 제대로 살수 없고,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면 주도적인 미래를 맞이할 수 없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중국 땅에서 흘렀는지를 오롯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하얼빈이다.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대한민국 만세’라는 한 문장이 얼마나 마음 절절히 맺히는 말인지 새삼 느꼈다. 이어서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일본의 악마 같은 실험을 온몸으로 증거하고 있는 하얼빈 731부대 죄증진열관을 찾았다.

     

     

     

    ● 잔학무도의 현장, 하얼빈 731부대 죄증진열관 侵华日军第七三一部队罪证陈列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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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 일본은 동아시아를 집어삼키기 위한 야욕을 숨기지 않으며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가장 악명 높은 것이 제 2차 세계대전 시 생체실험을 주도한 731부대다. 하얼빈 중심부에서 약 1시간 남짓 달리면 검고 묵직한 기운이 감도는 731부대 죄증진열관(侵华日军第七三一部队罪证陈列馆; The exhibition hall of evidences of crime committed by unit 731 of the japanese imperial army)이 나온다. 일제시기 만주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생체실험, 세균전의 증거를 전시하는 곳으로, ‘너희들의 죄는 부정할 수 없다! 그 모든 악행, 죄의 증거가 여기 진열되어있다’고 크게 외치고 있는 진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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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얼빈 731부대 죄증진열관은 2015년 8월 15일 정식 개관했다. 기존 진열관은 벽돌 건물이었으나 731부대 동쪽에 1만m2의 대지 위에 무고한 죽음을 추모하는 거대한 검은 관 같은 죄증진열관을 새로 지은 것이다. 이 앞에 선 죽은 나무는 실험 희생자를 상징한다.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나무토막-마루타로 함부로 다루어진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로 느껴진다. ‘마루타’와 그 가족들의 감정들-공포, 두려움, 분노을 떠올리자 숨이 턱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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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물에 대해서 중국어, 영어로 설명을 적어 두었으며,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각 전시실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해당 전시관의 설명이 매끄러운 한국어로 이어져 이해를 돕는다. 중국 흑룡강성 TV 이학준 앵커의 음성이란다. 동영상과 인체모형, 실제 각종 실험에 이용된 실제 물품들이 짜임새 있게 전시되고 있다. 그래서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거나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끝까지 듣기 힘들어 빠른 걸음으로 걷기도 했다.

     

     

     

    ● 슬픔과 분노의 현장, 하얼빈 731부대 죄증진열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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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서서 일단 놀랐다. 미국 뉴욕의 911 기념관에 버금갈 정도로 상상이상으로 현대적이고 세련된 전시 공간이다. 단 하나의 목적으로 모든 공간 구성이 이루어져 있다. 일본 731부대의 만행을 드러내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3층 규모의 건물 입구부터 엄숙함이 드리워져 있다. 6개 언어로 ‘비인도적 잔학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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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의 전시실은 731부대의 창설부터 패전 시까지의 생체실험, 세균전, 범죄은폐 증거들이 일목요연하게 놓여 있다. 보면 볼수록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내용들이다. 전시실에는 1930년 일왕 히로히토 칙령으로 731부대가 만들어진 과정이 나온다. 731부대는 1936-1945년까지 급수, 방역의 가짜 목적으로 하얼빈에 주둔하며 세균전을 획책했다. 조직적인 국가 범죄였던 것이다. 쥐를 사육해 페스트를 연구해 쥐 부대로 불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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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특별이송 전시실에서는 사람들, 특히 항일투사들이 생체실험 대상화 된 과정이 이어진다. 생체냉동실험, 생체원심분리실험 및 진공실험, 신경실험, 생체총기관통실험, 가스실험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두말할 것 없이 일본 731부대의 군인들은 성악설을 믿게 할만한, 악마 집단이었다. 낱낱이 드러나는 실험 내용들. 소, 말 등 실험용 동물을 대량사육해 각종 실험을 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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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뿐일까, 노약자를 불문하고 실험대 위에서 배를 갈랐다. 죄 없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잡아다가 세균을 배양해 혈관에 주입하고 음식에 섞여 먹였으며 각종 독가스를 들이마시게 하고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관찰했다. 모자를 함께 죽이면서 자기애와 모성애 중 어느 것이 더 강한지 모성애 실험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실제로 이런 실험을 했을까. 이것을 증거 하는 물건 하나하나가 절규하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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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실내 전시실은 기이한 분위기였다. 검은 건물 내, 가운데로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곳은 역사의 블랙박스를 상징한다. 일본인, 마루타, 동물의 사체를 구분하여 분리 소각하던 굴뚝 3개를 상징한다. 투명 유리관 3개에는 의학책, 수술용 칼, 벽돌이 각각 놓여 있다. 그들이 감추려던 진실, 블렉박스 안의 진실을 수술용 칼로 해부해 비밀을 밝혀냈다는 의미라고 한다. 백일하에 드러난 진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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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 전시를 보고 야외로 나가면 과거 피로 젖어들었던 731부대 현장이다. 실험을 위한 사람들, ‘나무-마루타’들을 실어 나른 열차의 철로도 그대로다. 또한 일본군이 후퇴할 때 731부대의 증거를 지우기 위해 부대 전체를 폭파시킨 흔적이 남아 있다. 후퇴 당시 실험 대상이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여 파묻거나 강물에 던졌다고. 가엾은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분명 731부대의 각종 시설의 자리는 남아있다. 모든 사물이 침묵 속에 그들의 죄를 크게 외치고 있었다.

              

     

             

    ● 일본의 악행에 대한 치밀한 조사와 엄정한 증거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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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해졌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평방구(平房區)는 수년에 걸쳐 이 하얼빈 731부대 죄증진열관을 채울 증거-수장품을 발굴하고 모았다고 한다. 1945년 이후 731 부대의 유적 폐허와 하얼빈에 있던 일본군 유적지 등을 조사해 5천 여 건의 731부대 관련 증거물을 모아 정리하고 731부대가 세균무기실험 시 사용한 기구 등 4백여 건의 중요한 물품을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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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측이 일본 만행을 밝히고자 한 노력은 하얼빈 731부대 죄증진열관에 제대로, 고스란히 담겼다. 진짜 말 그대로 죄증(罪證)이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가 저술한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증언한 내용들 그 이상의 잔인과 잔혹함의 증거들이 여기 있다. 막연하게 상상했던 그들의 만행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의 얼굴, 이름을 하나하나 마주하는 것은 고통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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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디로 여기는 과거 만행을 지우려는 일본에게 발 뺄 수 없는 증거를 내밀며 진실을 밝히는 작업 공간이다. 진실은 참담했다.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실험용’으로 죽었다. 게다가 숨겨진 마루타가 더 있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곳이 여기다. 일본군이 대량살상을 목적으로 자행한 악마적 실험들에 대해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다행이라 여겼고, 그 노력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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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이 유물들을 통해 매우 적극적으로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있다. 이미 2015년 중국 난창에서 이곳의 유물을 바탕으로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 전시’ 순회 전시를 열어 일본군이 중국에게 저지른 죄를 널리 알렸다. 수만 명이 이 전시를 찾았다고. 앞으로도 중국 각지의 순회전시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즉 중국은 전쟁범죄에 대한 분노를 잊지 말라 전하고 고통당한 자국민에 대한 깊은 애도와 추모를 표하고 있다. 본받을 일이다.

     

     

     

    ● 잊지 않겠습니다, 이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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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얼빈 731부대 죄증진열관을 걸을 때 수많은 생각이 명멸했다. 인간이 인간을 고문하고 처절한 고통 속에 죽도록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인 흔적들을 보며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해 환멸을 느꼈다. 불과 100여 년도 지나지 않은 사실들이 소름끼치도록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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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잔재는 오늘의 인간에 대해 본연적인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인간이라면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서로를 돕고 당연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건 착각에 불과한가? 최소한의 도덕률은 모두 어디로 증발했는가? 결국 성악설이 맞는 것일까? 얼마든지 악으로 치달아 가는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면 더욱 더 그렇지 못하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비장할 정도로 또렷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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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이렇게 비인간적인 과정을 통해 얻어진 생물학, 화학 등의 지식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동안 과학 각 분야의 발전은 전쟁을 통해 ‘눈부시게’ 이루어졌다. 최첨단의 공학, 수학, 물리학 등의 지식으로 엄청난 살상 무기를 만들었다. 즉 죽음을 위해 지식을 쌓았다. 차라리 과학의 발전 없이 미개하더라도 평화롭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 사실 과학이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비판 없이 과학을 악용한 인간의 문제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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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가해자 일본의 공식사과는 없다. 731부대의 주동자 이시이 시로는 전후 가짜 장례식을 치루고 가명으로 잘 살다 죽었다. 그는 물론 당시의 일본군들은 상사의 지시로 로봇처럼 움직였다고 변명할 수 없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죄가 있으며 엄연히 사람을 죽인 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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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일본군들은 전후 재판을 통해 가벼운 징역을 살거나 교묘히 빠져 나갔다. 그들은 저지른 죄악에 대해 값을 치르지 않았다. 독일이 전범들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거의 사형을 언도한 것과 달리 이제까지 일본은 이 전범들이 권위와 명성을 누리며 살도록 두었다. 지금의 일본은 자신들의 과거를 부정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이렇게 살피고 잊지 말아야 한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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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 검은 터널을 통과해서 이곳을 나왔다. 길고 어두운 역사를 통과해 나온 기분이었다.

    하얼빈에서 되돌아본 ‘우리의’ 역사는 반드시 알아야 하고 잊지 말아야할 내용이었다. 값진 시간이었다. 특히 일본이 덮고자 하는 진실들, 그 실상을 알수록 분노와 슬픔, 참담함이 뿌리 깊게 심장을 파고들어 앎이 괴로울 정도였다. 그렇기에 더욱더 널리 알려 바로 잡아야할 역사적 진실이 많다. 누구에게라도 꼭 권하고 싶다. 하얼빈을 찾아서, 잊으면 안 되는 역사에 대해 서늘하고 또렷한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고 오라고 말이다.

     

     

     

    * 취재: Get About 트래블웹진

     

     

     

     

    홍대고양이

    동아사이언스 과학기자, 웹진과학전문기자, 아트센터 객원기자, 경기여행지식인단으로 활동. 지금 하나투어 겟어바웃의 글짓는 여행자이자 소믈리에로 막걸리 빚는 술사랑 여행자. 손그림, 사진, 글로 여행지의 낭만 정보를 전하는 감성 여행자. http://mahastha.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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