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도 빙하가 바다와 직접 만나는 곳은 극히 드물다고 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곳임이 틀림없었다.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이랴.
멀고도 먼 그곳
너무 느긋했나 보다. 차를 달리고 달려 겨우 도착한 요쿨살론(Jökulsárlón)에는 이미 하루가 마감되는 듯한 분위기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게다가 변화 무쌍한 날씨도 불안한 조짐을 보였다. 고대하던 곳을 눈 앞에 두고도 기쁨보다는 초조함이 먼저 다가왔다. 사실 낯선 아이슬란드의 여행 계획을 머릿속에 그려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슬란드인 친구가 보내준 추천 여행지 리스트가 없었다면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의 리스트 중 일 순위에 오른 것이 다름아닌 요쿨살론이었다.
마침내 눈 앞에 펼쳐진 요쿨살론의 전경
언덕배기에 올라서 바라본 요쿨살론과 그 너머로 보이는 바트나요쿨 빙하
요쿨살론은 바트나요쿨(Vatnajökull) 국립공원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바트나요쿨은 유럽 최대의 빙하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거대한 빙하가 대서양까지 밀려내려 왔다가 차츰 녹아 후퇴하면서 형성된 석호(Lagoon)가 바로 요쿨살론이다. 현재는 해변에서 약 1.5km까지 후퇴한 상태다. 이곳의 수심은 200m가 넘어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깊은 호수로도 기록되고 있다.
빙하호 백배 즐기기
과연 요쿨살론은 사진에서 본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뉴질랜드에서 이미 빙하를 경험해 본 터라 큰 기대감은 갖지 않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이곳에서 놓칠 수 없는 즐길 거리가 있는데, 바로 수륙양용보트다. 뭍에서도 호수가 훤히 보이는데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안으로 들어가서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때 오늘의 마지막 보트가 곧 출발이라는 말에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이 후다닥 표를 사버렸다 .
요쿨살론의 하이라이트, 수륙양용보트 투어
탑승 후, 잠시 지붕없는 시티투어버스처럼 달리던 수륙양용보트. 호수가에 다다르자 서서히 물 속으로 들어섰다. 해병대 상륙주정 같은 엔진음 때문인지 무슨 군사 작전에 투입되는 듯한 묘한 분위기도 자아냈다. 어느 새 자동차에서 ‘변신’한 보트는 유빙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보트 뒷쪽으로는 모터를 장착한 구명보트가 바싹 붙어 다녔다. 이곳은 물이 워낙 차가워서 물에 빠졌을 경우 익사보다는 쇼크사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에 들어가기 직전의 '긴장'되는 순간!
두둥실 '항해 모드'로 전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줄곧 따라다니는 구명보트
한편, 눈길을 끈 것은 짙은 갈색의 물빛이었다. 보통 빙하수는 살짝 푸르거나 잿빛을 띄게 마련인데 이곳은 해조류 때문에 이런 독특한 색이 만들어진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막상 호수에 들어와보니 그 규모가 땅에서 바라보던 것과는 다르게 엄청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저기 떠 있는 얼음 덩어리들도 생각 외로 크고 다양하다. 푸른 빛이 감도는 제법 큰 규모의 유빙도 있어 정말이지 이곳이 북극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분위기였다.
얼음 덩어리들이 보트 근처에 보이기 시작
슬슬 모습을 나타내는 커다란 유빙
빙하가 바닥을 긁고 내려왔음을 보여주는 흙 묻은 유빙들
왠지 먹으면 맛있을 것만 같다. 푸른빛을 띠는 거대한 유빙
북극해를 연상케하는 형상의 유빙
조금 늦었다지만 그래도 해가 비치던 하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름까지 끼며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도 밝은 햇살에 비치는 유빙과 호수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시식용 빙하 얼음 채취
맞은 편에서 오는 또 다른 수륙양용보트
빙하가 흘러 내려온 흔적이 생생한 바트나요쿨 빙하와 유빙 위에서 유유히 쉬고 있는 물범
'항해'를 마치고 다시 상륙
이곳에서는 수 만년 전의 얼음을 건져서 먹어보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빙하의 얼음이라고 특별한 맛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실제로 맛 볼 때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덧 유람을 마친 보트는 다시 ‘자동차’로 돌아와 물 밖으로 올라왔다. 일반 보트로도 투어를 하기에는 충분한 곳이지만 수륙양용보트가 주는 이런 '입수와 상륙 이벤트'는 분명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차가 땅 위에 올라와 달리기 시작하자 이제까지 잊고 있던 한기가 몸을 움추리게 했다. 그렇지만, 일상에서 상상하기 힘든 이 풍광은 잠시나마 춥다는 것조차 잊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음 한 켠에 또 다른 싹을 심어놓았다. 그것은 바로 다음에는 ‘진짜’ 북극해의 거대한 빙산을 보겠다는 결의였다.
그리고, 요쿨살론에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보너스로 있는데, 바로 맞은 편 해변이다.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 바다로 떠 내려가는 유빙들
바다로 나왔다가 검은 모래 해변에 좌초된 유빙들이 널려있다
이국적이라기보다 초지구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려나?
[Information]
아이슬란드의 도로는 링로드(Ring road)라 불리는 1번 국도가 국토를 한바퀴 도는 형태다. 요쿨살론은 아이슬란드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서쪽 끝에 있는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링로드로 약 370km 지점에 있다. 중간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비크(Vik)로부터도 무려 190km나 떨어져 있다. 생각보다 먼 곳이다. 아이슬란드 대부분의 자연 명소와 마찬가지로 요쿨살론 자체는 입장료 없이 즐길 수 있다.
#수륙양용보트 투어
- 웹사이트 : www.icelagoon.is
- 요금 : 어른 - 5,000 ISK / 어린이(6~12세) -1,500 ISK / 유아(0~6세) - 무료 / 기타 그룹 등의 할인요금은 웹사이트 참조.
* 환율: 1 ISK(아이슬란드 크로나) = 약 9~10원
- 운영 시간 : 4월~5월 & 9월~10월 : 10:00~17:00 / 6월~8월 : 9:00~19:00
* 마지막 보트는 카페 ( & 매표소 )가 문을 닫기 한 시간 전에 출발한다.
[TIP]
- 요쿨살롱은 해가 비칠 때와 어두워질 때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다. 거리가 멀어 자칫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 요쿨살론까지의 여정 중 마지막 마을인 비크에서 식음료를 포함한 필요한 것을 모두 미리 준비하고 출발해야한다. 휴게소 같은 곳은 물론, 구멍가게 하나조차 없다.
낯선 환경과 문화에 던져지는 것을 즐기는 어드벤처 여행가. 육/해/공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골고루 즐기며 이를 통한 에피소드와 여행 정보를 다양한 매체에 기고 중이다. 여행 매거진 트래비의 객원 기자, 월간항공의 에디터, 일본 출판사 쇼가쿠칸(小學館)의 웹진 @DIME 에디터 등으로 활동 중이다. instagram.com/oxenho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