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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여행에 함께 하면 좋을 책, '연인'

    낟나 낟나 2011.09.19


     



    가을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붑니다. 얇은 카디건 하나쯤은 챙겨야 할 것 같아요. 낮은 아직 햇볕이 뜨겁지만, 바람 부는 저녁이 되면 창문 아래서 선선한 바람 맞으며 책 한 권 읽고 싶어지네요. 옆에는 커다란 머그컵 가득 찰랑이는 커피 한 잔을 두고 말이지요. 이제 김이 나는 더운 커피도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하고 싶은 얘기는, 내 나이 열다섯 살 반이었을 때의 얘기다."



     이 소설은 프랑스의 유명 여성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 '연인'입니다.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름 아닌 열다섯 살 때 겪었던 사랑 이야기라고요. 열다섯 살. 누군가는 아직 사랑하기에 이른 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성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열다섯 살의 연애는 조금 이른 느낌이 있습니다. 아마 그건 단짝친구의 연장선이지 않을까 싶은 그런 느낌말이죠.



    1929년 베트남이 프랑스령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프랑스 소녀입니다. 그녀는 잠시 가족이 있는 곳에 나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타고 메콩 강을 건너야 합니다. 어린 소녀가 홀로 나룻배 위에 서서 배가 가르는 물살을 쳐다봅니다. 그녀의 옷차림은 조금 유별난 데가 있습니다. 남성용 중절모와 생사 원피스, 굽 높은 구두 차림을 하고 있지요. 그런 그녀의 옷차림은 함께 배를 타고 있던 부유한 중국 남자의 시선을 끕니다. 그 남자는 소녀와 사랑하길 바랍니다.




     





    1992년 장자크 아노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로 제작했지요. 우선 민음사에서 펴낸 세계전집 가운데 하나인 이 책 표지의 여인 얼굴도 바로 장자크 나오 감독의 동명영화 포스터입니다. 이 영화로 ‘연인’이라는 소설을 알게 된 이도 꽤 있을 겁니다. 사실은 프랑스에서는 진작부터 이 소설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소설이 발표된 그해 공쿠르 상을 받았으며 세계 여러 국가에 번역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 작품은 작가가 간경화와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가 어느 정도 회복한 후 발표한 소설입니다. 그때 그녀는 70대였지요. 그녀는 술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페이지가 그리 많지 않은 소설을 손에 쥐었을 때, 이런 글을 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아주 어린 나이에, 열여덟 살이던가 열다섯 살 때부터, 내 얼굴은 이미 중년이 되면 알코올 때문에 형편없이 이지러질 전조를 보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입에 대기 시작했는데, 호기심이 강해서 너무 일찍 시작했다."


    "내 생(生)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중심이 없다. 길도 없고, 경계선도 없다. 광활한 장소가 있으면 사람들은 누군가가 그곳에 있으려니 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내 젊은 시절의 어떤 부분에 대해 나는 이미 썼다. (...) 그런데 이제는, 글을 쓴다는 것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길 때가 자주 있다.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든다. 마구 뒤섞인 일들을 모두 내가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한 것도, 그렇다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 둔 것도 아닌 이런 시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또한 뒤섞인 일들이 모두 매번 그 본질을 규명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일에 흡수되어 버리는 이런 시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과시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나에겐 뚜렷한 주장이 없다. 모든 곳이 개방되어 있고, 더 이상 가로막는 벽도 없으며, 작품은 어디에 숨어야 할지, 또는 어디로 끌려 나가 읽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것의 본질적인 무례함이 더 이상 존중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뿐이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녀를 관능적인 작가, ‘누보로망’ 작가라고 말했지만 정작 그녀는 그 어떤 장르에도 속하기를 거부했다고, 책은 설명합니다. 어린 소녀가 부유한 중국인 남자에게서 욕망을 느끼고 그에게 탐닉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 혹은 영화를 소개할 때 단지 이런 관능적인 문구만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느끼는 것인데, 그저 문구 한 줄로 그려내기엔 부족할 정도로 책은 더 많은 것을 품고 있지요. 왠지 펜을 쥔 작가의  늙고 주름진 손도, 그 무엇들을 위해 바짝 힘을 넣어 꼿꼿하게 글씨를 썼을 것만 같습니다.



    가을인데 옆자리가 비어 적적하니 외로우신 분들에게 추천해드립니다. (...)

    홀로 떠나는 가을 여행에 함께 할 책으로도 손색 없겠네요~ ^^



    (* 책 표지는 예스24에서, 영화 포스터는 네이버 영화에서 퍼왔습니다.)

    낟나

    어느 출판사에서 고전문학을 편집하고 있는, 아직 걸음마 배우고 있는 새내기 편집자입니다. :-) http://blog.naver.com/aswis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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