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섬에서 오늘 하루는 뻔한 홍콩 자유여행을 하기로 맘 먹었지만 높은 건물에 올라 조망을 즐기기로 한 야무진 계획부터 꼬이기 시작해 발길 닿는 데로 내 맘대로 홍콩 자유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뱅크 오브 차이나 타워 뒤편으로 가니 빨간 벽돌 건물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빨간 벽돌만 보면 왜 이리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지. 뱅크 오브 차이나 타워 전망대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 따윈 이미 머리 밖으로 튕겨져 나갔고 지금 내 목적지는 저곳이다. 저 뒤에 더 멋진 곳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 채 뚜벅뚜벅 빨간 벽돌 앞으로 전진한다.
1849년 지어졌다는 성 요한 대성당. 그동안 홍콩 여행하면서 만났던 건물들 중 가장 오래된 할배 건물을 만난 샘이다. 올해로 168년을 홍콩에서 산 샘. 이 성 요한 대성당이 200해를 이곳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그 날 난 이곳을 찾아올 수 있을까? 그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에 내가 이곳을 찾을 것을 상상하니 가슴속 울컥거림이 느껴진다.
어느 성당에 가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정면에 위치한 단상. 스테인드글라스 속 예수가 인상적인다. 전체적인 성당 안 분위기를 보면서 문득 오래된 영화 '연인'과 '인도차이나'가 떠올랐다. 사실 너무 오래된 영화라 영화 내용도 가물가물하고 딱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 두 영화가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의문은 성당 안을 돌아보면서도 계속되었는데 막연하게 떠오른 두 영화 제목 외에 떠오르는 것이 없어 결국 그 이유가 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성당 내부 곳곳에 스테인드글라스는 그 앞에서 걸을을 멈추게 한다. 성경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안다면 정교하게 들어선 문양들이 다르게 받아들여질 테지만 오직 로미교 교리에 충실한 나인지라 그저 아름다운 창문 하나로 단출한 느낌표를 찍는다. 아름답다는 표현의 한계에 괜스레 미안해지는 성 요한 대성당.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했을 무렵 성 요한 대성당에도 시련이 닥쳤다. 구룡 유니온 교회가 마구간으로 사용되고 세인트 앤드류 교회가 신사로 활용되었던 것처럼 성 요한 대성당도 본래의 용도를 잃은 채 클럽하우스로 개조되어 사용되었다고 한다. 무참히 부서지지 않고 그렇게라도 살아남았다니 다행이라 해야 할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홍콩섬 금융가에 살고 있는 167세의 할배 성 요한 대성당.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곳을 꿋꿋하게 지켜내면서 홍콩섬의 변화를 어느 누구보다 자세하게 봐왔을 것이다. 그런 세월을 품은 성당 하나가 자리 잡고 있고 그곳을 찾는다는 건 홍콩을 알아가는데 더욱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세련된 도시 이미지 속 반전 매력을 담은 성 요한 대성당. 홍콩섬 여행 중 반드시 찾아봐야 할 곳이 아닌가 싶다. 성 요한 대성당은 빅토리아 피크트램 타러 가는 길에 만날 수 있으며 주변엔 홍콩공원과 청콩공원 그리고 종심법원이 자리 잡고 있다. 피크트램 탑승 계획이 있다면 이들을 코스에 넣어 함께 다녀가도 좋을 것 같다.
문밖을 나서면 어디든 여행.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발길 닿는대로 기웃거리는 뚜벅이 여행가 R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