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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소도시 여행, 시마바라 동네 산책

    김노을 김노을 2018.06.14

    비 오는 아침, 거리는 한산했다. 어제저녁처럼.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여전히 마을을 적셨다. 숙소에서 우산을 빌렸다. 여행 중 만나는 비를 좋아할 리 있겠냐만, 시마바라에서의 비는 조금 달랐다. 숙소 창문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던 시마바라 성. 그 방향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반듯하게 이어지는 듯했던 골목은 막다른 길에, 한 집 앞에서 멈추어 섰다.

    "시마바라 성을 찾으세요?"

    그 집에서 창문이 열리더니 집주인이 미소를 지으며 물어왔다. 고개를 끄덕였다.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간 뒤,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시마바라 성에 갈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잘못 들어 이쪽으로 왔던 적이 있는 듯했다. 집주인은 고맙게도 길을 묻기도 전에 먼저 말을 걸어 준 것이다. 
    마음에 든다, 시마바라.

     

    # 시마바라 성 (島原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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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마을을 다스렸던 곳, 시마바라 성에 도착했다. 전국시대와 에도시대를 거치며 이 지역을 지배했던 마츠쿠라 시게마사가 세운 성이다. 도요토미 가문, 그리고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충성하며 여러 공을 쌓았다고는 하나, 정작 주민들의 신임은 받지 못했다고. 부당한 세금 징수, 기독교 박해 등 포악한 정치는 결국 농민들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마츠쿠라 가문은 몰락했고, 지금의 시마바라 성은 당시의 그 반란을 기념하는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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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바라 성 주변으로는 당시 성주를 섬기던 사무라이의 마을이 자리한다. 부케야시키(武家屋敷), 우리말로는 흔히 무사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는 장소다.  옛 모습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애써 찾았다. 이 지역에서 사무라이 가문으로 유명했던 몇몇 집이 문을 열어 관람객을 맞이한다. 더러는 기념품을 팔고, 더러는 소품을 판다. 사무라이의 이야기는 그저 미끼 상품일 뿐이었던가. 그래, 사무라이는 접어두자. 비 오는 골목길 거니는 게 그리도 좋았으니까. 

     

    | 시마바라 성 (島原城, しまばらじょう)
    - 위치: Nagasaki Prefecture, Shimabara, Jonai, 1 Chome, 1183-1
    - 운영시간: 09:00~17:30
    - 입장료(성 내부 박물관): 대인 540엔, 소인 270엔
    - 주차 요금: 320엔

     

    # 히메마츠야 본점(姫松屋 本店)

    시마바라 성주의 폭정에 지친 농민은 저항했다. 살기 위해서 그랬을 테지. 시마바라의 난으로 불리는 이 사건을 주도했던 인물 아마쿠사 시로는 비옥한 마을 주변에서 나는 여러 농산물과 자주 먹는 떡을 넣어 국을 끓이기로 한다. 우리의 떡국과도 그 모양새나 끓이는 방식이 흡사한 이 요리를 '구조니'라 부른다. 시간이 흘러 이 지역의 전통 음식으로 자리 잡은 구조니는 시마바라 사람에게 가슴 뭉클한 역사를 담은 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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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바라 지역 어디를 가나 구조니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맛있다는 평을 받는 곳은 시마바라 성 앞에 자리한 식당, '히메마츠야'다. 으레 어딜 가나 유명한 맛집이 그 기대만큼의 맛과 분위기를 내주지는 않지만, 히메마츠야는 다르다. 깔끔한 식당 분위기, 정갈한 요리는 시마바라 인에게 이 구조니가 얼마나 중요한 음식인지를 반증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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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쫄깃한 식감의 떡과 진한 육수, 버섯과 어묵 등, 갖가지 채소를 듬뿍 끓여 맛을 낸 구조니가 고급 자기 그릇에 담겨 나온다. 많은 재료로 맛을 냈다고는 하나, 그 모양새가 화려하기보다는 정갈하다. 아무렇게나 끓였을 그 옛날의 구조니와는 분명 다르겠지만,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오롯이 담겼다. 요리를 포근하게 감싼 그릇이 열기를 유지한다. 시원한 비와 묘하게 어울리는 온도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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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는 라면만큼이나 흔한 음식이라는데,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조용히 한 그릇 먹고 나가는 이들부터 왁자지껄하게 들어와 역시 맛있다는 말을 연신 해대며 국물을 떠먹는 이들까지. 문을 여는 오전 11시부터 몰려드는 사람들은 이내 번호표를 받아들고 대기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비 오는 주말, 시마바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식이 이곳의 구조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풍경.

     

    | 히메마츠야 본점(姫松屋 本店)
    - 위치: Nagasaki Prefecture, Shimabara, Jonai, 1 Chome, 1208-3
    - 영업시간: 11:00~19:00
    - 주요 메뉴: 구조니 일반 980엔, 곱빼기 1,180엔 / 마쿠노우치 정식 1,100엔
    - 주차 가능

     

    # 아오이 이발관 (青い理髪舘) 공방 모모 (工房モモ)

    비가 그쳤다. 하늘은 여전히 짙은 잿빛을 머금고 있었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것뿐이라는 듯이. 우산을 접었다. 물이 고인 바닥을 피해 마을을 거닐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마을. 그래서 더 마음이 잔잔해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벽에 기대어 사진을 찍고, 길을 지나치는 이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 조용한 바닷가 마을의 사람들은 낯선 이의 미소도 받아줄 만큼 여유가 그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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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가운 호빵맨이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넨다. 아마 마을의 한 유치원이겠지. 일본의 문화는 이리도 깊게, 이리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더랬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 건물에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들이다. 비에 젖어 축축한 운동장에 나갈 수 없으니 그 안에서라도 신나게 뛰놀아야 하는 것이 녀석들이 해야 할 일이겠지. 그들과 함께 있던 선생님은 낯선 내 시선을 잠시 의식하더니, 역시나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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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건물 사이. 또 하나의 오래된 건물이 파란 페인트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유난하진 않다. 원래 이곳에 있었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이다. 아오이 이발관(青い理髪舘). 파란 이발관이라는 뜻이다. 이름 한 번 정직하다. 무려 1923년에 세운 이발관 건물을 리모델링했단다. 고풍스러운 느낌을 살려 카페로 개조한 뒤, 공방 모모(工房モモ)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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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를 잘 하는 직원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맞이한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이래저래 신기한 것도 많은 모양이다. 이 시골까지 무슨 일이냐는 듯이. 그러나 곧 자리를 비켜준다. 여전히 이발관이었을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엔 테이블 두어 개와 작은 바 하나뿐. 낡은 가구들과, 그보다 훨씬 더 낡은 의자를 바라보며 촉촉한 공기와 차가운 커피를 들이킨다. 홀짝, 홀짝. 이 순간이 조금 더 오래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아오이 이발관(青い理髪舘) 공방 모모(工房モモ)
    - 위치: Nagasaki Prefecture, Shimabara, Uenomachi, 888-2
    - 영업시간: 10:30~18:00 (매주 월요일은 17:00)
    - 휴무일: 매주 목요일, 첫째 주와 셋째 주 수요일
    - 주요 메뉴: 커피 400엔부터

     

    #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 용수정원 시메이소 (湧水庭園 四明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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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비가 쏟아진다. 장마철이 다가오니 그러려니 한다. 평소엔 바짓단에 빗방울이라도 튈 새라 조심스럽지만, 여행 중엔 다르다. 신발이 젖어도, 바지가 젖어도, 가방이 젖어도 마냥 좋다. 여행을 떠나온 참에 이런 것도 즐겨야 하는 게 아니던가. 다들 비를 피하느라 분주한 모습인데 난 그저 설렘 가득한 표정과 경쾌한 발걸음을 겸비한 채 기나긴 아케이드를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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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의 도시라 불리는 시마바라답게 어디서나 쉽게 물을 만난다. 마을 지도에는 마실 수 있는 지하수의 위치 여러 곳이 따로 표기되어 있고, 길을 걷다가 노천 족욕 시설을 만나는 일도 있다. 일반 가정집의 담장 너머로 연못을 만나는 일도 부지기수. 마을 골목 가장자리로는 잔잔한 물이 흐른다. 그리고 그 수로에는 잉어가 산다. 잉어라니. 그것도 수십 마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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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많이 흐르는 이곳에 조금 더 특색 있는 관광 포인트를 만들고자, 마을 사람들이 생각을 모은 결과물이 이 잉어들이란다. 수로와 연못에 잉어를 방류했고, 오랫동안 관리하며 지킨 결과가 이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을 만든 것.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이곳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잉어들에게 또 한 번의 박수를 보낸다. 어쨌든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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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마을 한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집이 한 채 있다. 용수정원 시메이소(湧水庭園 四明荘)라 불리는 집이다. 반쯤 열린 대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고궁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을 법한 연못과 정원이 마음을 간질인다. 잔잔한 연못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한 방울, 두 방울. 유독 비와 어울리는 마을이라 생각했다만, 이 집은 조금 더 그랬다. 한눈에 봐도 집 주인인 듯한 할머니가 웃으며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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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바로 밑에서 솟아나는 지하수를 이용해 연못을 만들었고, 그 주변으로 나무를 심어 예쁜 정원을 만든 집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못에서 노니는 잉어들 또한 마을 사업의 일환이라고. 작은 찻잔에 말차 한 잔을 내어준다. 처음 들어왔을 때의 그 미소와 함께. 몇 마디 나누던 주인 할머니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이 정원의 분위기를 오롯이 즐기라는 것일 터. 찻잔의 온기가 비에 젖은 몸을 녹인다. 

     

    용수정원 시메이소(湧水庭園 四明荘)
    - 위치: Nagasaki Prefecture, Shimabara, 新町2
    - 운영시간: 09:00~18:00

     

    # 그리고

    우산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세차게 쏟아지는 비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용수정원 시메이소에서 나온 발걸음은 자연스레 숙소를 향했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그칠 줄 모르는 비. 잠시 엎드려 눈을 붙인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낯선 빛에 눈을 뜬다.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에 조금씩 빛이 스미기 시작한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날이 좋아지려는 걸까. 다시 나갈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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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바견 삼 형제를 만났다. 아직 비가 오는 줄 알고 마당 안쪽에 쪼그리고 있던 녀석들이, 담장 밖의 한 강아지가 짖는 소리를 듣고는 뛰쳐나온 순간을 포착한 것. 위에 붙은 그림보다는 시크한 녀석들이지만, 그래도 네모난 틀에 얼굴을 내밀어 준다. 사실 시마바라까지 온 이유 중 한 사분의 일 정도는 이 녀석들이었다. 비가 워낙 세차게 내렸던 터라 못 보고 그냥 가는 줄 알았다만, 그래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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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에 젖은 길을 거닐었다. 촉촉한 공기와 선선한 바람. 고요한 마을 골목을 따라 오래된 집이 길게 늘어선다. 양철로 만든 외벽은 딱 그 세월만큼 녹이 슬어버린 듯하다. 길고양이가 밟고 지나다녀서 그랬을까. 지붕의 기와는 깨지고 해진 모습. 그 어귀엔 100년을 훌쩍 넘긴 사케 전문 구멍가게도, 오래된 폐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카페도, 몇십 년은 족히 되었을 라멘 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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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게 뻗은 듯, 살짝 굽은 듯한 골목길을 한참 걸었다. 그 길에 끝에 한 폭의 그림이 걸려 있는지도 모른 채.

    김노을

    21세기형 한량 DNA 보유자. 글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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