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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프스 정상에서 인생의 첫 번째 스키를 탄 이유

    헤일리 헤일리 2018.11.02

    순전히 아이와 눈썰매(터보건 : Toboggan)를 타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었다. 평생 스키장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은 내가, 아이에게 만들어 주고 싶은 첫 번째 추억은 알프스에서 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시작된 여행이었다. 누군가에는 평생 꿈인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는 일이 유럽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수월해진 이유도 있었다. 

     

     

    #오스트리아서 스키를 탄 이유

    흔히들 '알프스에서 스키를 탄다'라고 하면 스위스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알프스의 중심은 오스트리아이다. 알프스산맥은 1,200km에 걸쳐서 8개국에 뻗쳐 있는데 이중 약 30%가 오스트리아 땅에 속한다. 같은 알프스인데 굳이 물가가 비싼 스위스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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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에 있는 800개가 넘는 스키 리조트 중에 우리가 선택한 지역은 티롤(Tirol) 지역이었다. 이 지역을 선택할 때도 많고 많은 리조트 중에서 설질의 상태를 고려한 것은 아니었다. 5월 초까지 스키를 탈 수 있다는 이유와 독일의 뮌헨 공항에서 접근하기 좋은 곳이라는 것, 근처에 아쿠아돔(Aqua Dome)이라는 유명한 리조트 시설이 있고, 4월 말부터는 비수기 가격이 적용된다는 우리만의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필요한 것들을 챙긴 후에 스키장 주변을 살펴보니 이 지역이 두 번의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을 만큼 스키로 유명한 지역이었고, 2015년에 개봉한 영화 <007 스펙터>의 촬영장이란다. 뭔가 얻어걸린듯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티롤 지역으로 가는 길

    뮌헨 국제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오스트리아 티롤 지역으로 향했다. 4월 말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완연한 봄의 색깔을 띠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했지만 해가 있을 땐 그야말로 여행하기 좋고 걷기 좋은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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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목적지는 오스트리아 티롤 지역에 있는 솔덴이라는 작은 스키 타운이었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그곳을 향해 달렸던 길이었다. 같은 자연이지만 국가가 바뀌고 지역이 바뀔 때마다 자연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는 반기고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지막하고 푸른 구릉이 아닌, 평평한 평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라던가 아주 먼 곳에서부터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알프스산맥 그리고 따뜻함이 완연한 봄 날씨지만 산꼭대기에 그대로 남아 있는 만년설까지. 그곳의 자연과 인간이 만든 건축술은 3시간 이상의 멋진 드라이브 코스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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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만 듣던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다니!

    스키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는 평생 꿈일 수 있는 일이 유럽에 사는 우리 가족에게는 이렇게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게 3시간 반을 달려 솔덴(Solden) 지역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스키복을 입고 스키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2차선을 중앙에 두고 도로 양쪽에는 스키 렌털숍과 호텔, 레스토랑이 전부인 동네였다. 그야말로 스키가 이 동네의 주요 산업인 곳이었다.

    TIP. 스키시즌이 아니더라도 여름철에 솔덴 지역을 방문하는 것도 추천한다. 이 지역은 알프스산맥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가 많고 경치도 좋아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즐겨 찾는 지역이기도 하다.

     

     

    #눈썰매 대신 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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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쪽 스키장은 눈이 다 녹아서 터보건을 탈 수 있는 리조트는 문을 닫았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인터넷으로 5월 초까지 스키장을 개장한다는 정보만 입수한 채 온 여행이기 때문에 알프스에 오면 무조건 눈썰매를 탈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했다. 솔덴 지역에만 약 40개 이상의 리프트가 있는데 그중 눈썰매를 탈 수 있는 낮은 지대의 스키장은 눈이 다 녹아서 폐장을 한 상태이고 4월 말에는 가장 높은 고도에 있는 일부 구간에서만 스키를 탈 수 있었다. 가장 높은 고도라 함은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의 두 배 높이에 달하는 3,400~3,600m에 위치하는 스키장을 이야기한다.

    알프스 정상까지 올라가서 스키를 탄다고?

    알프스에서 인생 첫 번째 스키를 타게 되었다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려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있는 스키장을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을 앓는 나에게 가장 높은 고도의 스키장은 오르고 싶은 장소가 아니라 오르면 안 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4월 말에 오픈한 스키장은 가장 높은 고도에 있는 스키장이 유일무이했다. 여기까지 와서 스키장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뭐, 아무리 높아도 스키장을 지을 정도면 차로 올라갈 만한 곳이겠지? 그렇게 믿고 싶었다.

     

     

    #20분간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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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 렌털숍에서 장비들을 빌려서 스키장으로 향한다. 지상에서 3,400m에 있는 스키장까지 올라가는데 필요한 시간은 차로 약 20분. 길이상으로는 4km가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하늘을 향해 특별한 안전장치가 없는 길을 4km씩이나 올라가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스키장 입구까지 도로가 닦여 있다 한들 도로 바로 옆으로는 떨어지면 구조조차 될 수 없는 까마득한 골짜기가 내려다보인다. 단순히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는 차원이 아니었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두려움과 공포감이 증폭되는 곳. 난 단지 알프스에서 눈썰매를 타고 싶었을 뿐인데... 알프스 정상에서 스키를 탈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할 생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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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장 난 롤러코스터에 앉아서 언제 떨어질지를 모른 채 끊임없이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어디서 떨어질지 알 수 없고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극심한 공포감. 안전벨트를 맸지만 두 손은 자동차 안의 손잡이를 너무 꽉 잡아서 손이 아플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래로 굴러떨어지면 손잡이를 잡은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나 싶지만, 그때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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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0분 이상을 달렸을까? 넓은 평지가 보이고 차들이 보이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리프트가 보이고 커다란 주차장이 보였을 때 비로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내려가는 일이 남았지만, 일단은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스키장 입구에서 맴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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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그랬다. 초보자는 좋은 스키장도 필요 없고 리프트를 탈 일도 없다고. 딱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어떤 스키 마니아에게는 꿈의 장소인 알프스 스키장. 거기에 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스키를 타는 꿈만 같은 일이 나에게는 가장 어렵고 피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렸다. 하얀 풍경 아래 형용 색색의 스키복을 입고 날렵하게 스키를 타는 모습은 컴퓨터 배경화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안에 불협화음처럼 껴 있는 나는 한 번 넘어지면 일어서는 데만 몇 분이 걸리는 초보 중에서도 왕초보였다.

    "리트프권은 당신만 사면 될 것 같아요. 나는 그냥 여기서 연습하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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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장 입구에서 걷고 넘어지는 연습을 한 지 30분가량 지났을 때 나는 깨달았다. 오늘 난 그저 잘 넘어지고 잘 일어서는 것만 성공해도 이곳에 온 보람이 있는 것이라고. 평소 같았으면 어떻게라도 나를 연습시켜서 같이 스키를 타러 가자고 할 남편이었겠지만 이러다간 본인도 여기까지 와서 스키를 제대로 못 탈것을 직감했는지 안타까운 표정만 지은 채 리프트권을 사러 유유히 사라졌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스키장이 알프스 정상이라니! 그런데 리프트조차 못 타는 신세라니! 뭔가 웃픈 사실에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알프스 정상에서 스키를 탔다는 사실 자체로는 충분히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정상까지 와서 스키장 입구만 맴돌다 갔다는 사실에 그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오스트리아 솔덴 지역 스키 정보

    솔덴 지역의 스키장은 9월 중순부터 개장해 다음해 5월 초까지 운영을 한다.
    날짜에 따라서 리프트 운영 시기와 가격이 달라지니 구체적인 것은 홈페이지를 참고하자.

    홈페이지 : https://www.soelden.com/

     

    헤일리

    아일랜드 거주 / *디자인 리서처(Design Researcher) +여행 작가/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아일랜드 홀리데이> <한 번쯤은 아일랜드> <아이와 함께 런던> 책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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