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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 함께 걷는 나가사키 - 1편

    cookybox cookybox 2010.10.12

    카테고리

    일본, 기타
            나가사키, 과연 어떤 도시일까?      

     

    백년이 다 되어가는 건물이 여전히 그 시절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는 도시.

    언덕 위에 빼곡이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 있는 도시. 

    폐허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복원한 도시. 

    이런 도시라면 한번쯤 가보고 싶은 마음이 인다. 

     

     

    일본의 나가사키 역시, 그런 도시 중에 하나다.

    일본에서 오래된 것과 조우하고 싶다면,

    특히나 근대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의 풍경을 보고 싶다면,

    꼭 봐야 할 곳은 바로 나가사키다.

    아니다. 나가사키는 이렇게 설명되어져야 할 곳인지도 모르겠다.

     

     

    원폭이 떨어진 잿더미의 폐허 속에서도 여전히 네델란드인들이 지어놓은 건물을 간직하고,  

    원자폭탄으로 무너진 건물 벽돌을 그대로 둬 끔찍했던 기억을 보존하면서도

    한편 끊임없이 새로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곳.

     

     

    희망의 빛과 그림자...

    이 두가지를 모두 볼 수 있는 도시를 원한다면 역시 들러야 할 곳은 나가사키다.

     

     

     

     

     

     

     

    일본 문학 속 나가사키  

     

     

     

     

    요시다 슈이치 '나가사키'

     

     

    나가사키에 가기 전 이곳은 어떤 곳일까 알아보면서, 실제  나가사키의 거리를 내 발로 기억하듯이 꾹꾹 눌러 밟아 걸어보면서, 이곳은 참 일본적이면서도 일본적인 곳이 아니구나 싶었다. 일본 안에 작은 네덜란드가 있는 것 같은 오란다자카. 그러나 한편 외국인들을 마치 게토 - 독일이 정한 유대인 거주구역- 같은 데지마와프에 모여 살게 했다는 점이 그렇다.

     

    이국적인 문화가 번성했음에도 일본의 생생한 역사가, 그 아픔까지 담겨져 있는 곳이 이곳 나가사키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일본 소설 두편을 접하면서 굳어졌는데, 그 작가 중 한명이 바로 요시다 슈이치다. ‘동경만경’, ‘일요일들’, ‘퍼레이드’ 등을 통해 일본 내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는 그는 작품 ‘나가사키’를 통해 나가사키의 과거와 현재를, 한 야쿠자 집안의 흥망사에 비춰 그려낸 바 있다.

     

     

     

     

     

     

     

     

    온다리쿠 [황혼녘 백합의 뼈] 

     

     

     

    반면 좀더 여성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고른다면, 뭐니뭐니 해도 온다리쿠의 작품 ‘황혼녁 백합의 뼈’다. 황혼녘과 백합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백합의 뼈는 과연 뭘까... 하고 집어든 이 책에서 나는 아주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다.

     

     

    산이 바다까지 바짝 다가와있는 이 오래된 도시는 언덕이 많기로 유명하다. 일찍부터 외국문화가 흘러들어와 종교도 문화도 독자적으로 발전을 이룬 도시. 아름다운 교회며 서양식 건물들이 천연의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퍼즐조각처럼 박혀 있다. 한편으로 바닷가를 따라 펼쳐진 시내 중심부에는 붉은 기둥이 선명한 차이나타운과, 중국음식으로 일본식으로 변형한 ‘시츠포쿠’요리로 유명한 오래된 오차야마치가 펼쳐져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였다. 

     

     [온다리쿠, 황혼녘 백합의 뼈 中 일부]

     

     

     

     

    나가사키를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이보다 더 정확하게 나가사키를 설명하는 글이 또 있을까?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로 유명한 온다리쿠는,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불온하면서도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미즈노 리세를 주인공으로 '황혼녘 백합의 뼈'란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온다리쿠의  연작의 네번째 작품이다. 수수께끼의 저택, 불길하고 으스스한 분위기, 의문의 사건, 겉과 속이 다른 등장인물들이 어우러진 고딕풍 미스터리로, 온다 리쿠의 전작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4장에서 시작되어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된 미즈노 리세 이야기의 후속편이다.   

     

     

     

     

     

     

     

    미즈노 리세, 그녀를 따라 나가사키를 걷다

     

     

     

     

    중년 여성 관광객들의 무리를 스쳐지난다. 즐거운 나들이에 들뜬 웃음소리. 리세는 자신이 관광객들이나 언덕을 내려가는 소녀들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문득 실감했다. 경치가 맑고 아름다운 관광지와도, 그곳에 사는 주민들과도 내가 사는 세계는 서로 섞이 수 없다. 더욱이 자신은 아직 보호자가 필요해서 혼자서는 아무데도 갈수가 없다. 혼자서 어중간하게 두 세계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느낌이다. 

     

     [온다리쿠, 황혼녘 백합의 뼈 中 일부]

     

     

     

    나가사키에 도착한 나는 미즈노 리세와 좀 닮아있었다. 나는 혼자였고 도망치듯 일상을 벗어나 이곳 나가사키에 왔다. 그러나 일상을 떠나오면서도 여전히 나는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혼자만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사람들은 내게 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떠들썩하게 즐기는 사람들 속을 어떻게 하면 파고들어야 할지 잘 몰라서 그냥 물끄러미 앉아 있었고, 이런 일상의 이질감과 외로움이 싫어서 문득 이곳 나가사키에 왔지만, 여전히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이야 말로 여행지에서 느껴야 할, 일상의 때를 벗겨낸 감성이 아닐까. 

     

    등에 20kg의 배낭을 메고 쩔쩔 매며 나가사키 역에서부터 숙소까지 걸어왔다. 어린 시절 빵집에서 팔던 '오란다빵'의 원천지처럼 느껴진 나가사키 '오란다자카'에 얼른 가보고 싶어서 차이나 타운 옆에 있는 숙소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지도도 가져오지 못했다. 급한 마음에 일단 역에서 나온 뒤 한참을 걸은 후에, 나는 때늦은 탄식을 했다. 아무리 일상을 탈출해도 덤벙거리는 성격은 탈출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저기 앞에 사랑하는 그이가 서있는 것처럼 다급하게 뛰어가 만난 나가사키의 오란다자카. 지도도 없고 여행책도 없이 무작정 바다를 건너온 나에게 상당히 친절한 도시가 되어주었다. 어딜 가나 표지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란다자카 표지판

    곳곳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표지가 서 있어

    지도 없이도 나가사키 주요 관광명소를 돌아볼 수 있다.

     

     

     

     

    오란다는 일본말로 "네덜란드"를 뜻한다. 네델란드가 어떻게 "오란다"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기네 식으로 불러도 될 정도로 네덜란드가 친근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때문에 그 유명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될수도 있었겠지. 나가사키는 어느 면에서나 홋카이도의 하코다테를 떠올리게 한다. 개항지라는 측면에서, 언덕이 많으며, 항구를 끼고 부채꼴로 펼쳐진 도시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야경이 아름답다는 점에서 두 도시는 닮은 꼴이다.

     

    그러나 나가사키에는 좀더 인공적인 노력이 배여 있다. 오란다자카에 있는 카페는 그저 주민의 생계이며 그 자체로 나가사키스러운 그 무엇을 풍기지만, '그로버 코엔' 그 자체를 하나의 관광지화 해서 거대한 네델란드 타운으로 만든 것에서는 지역 주민의 생계를 걱정하는 정부의 노력까지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오란다자카의 카페

     

     

     

     

    나가사키에 오면, 아니 이번 일본 여행에서는 무엇보다 스무살 시절처럼 많이 걸어보자 했다. 걷고 또 걸어서 나중에 또 나가사키를 와도 기억할 수 있어야지... 하는 마음이 컸다. 어쩌면 걷는 동안 나는 생각을 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일상을 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런 생각 자체도 내겐 지속적으로 일상을 여행지로 불러오는 결과이며, 내 근거는 내 일상에 있음을 확인시켜준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표지판을 따라 걷다가 나는 과일가게로 들어섰다. 투명 플라스틱 휴대용 도시락에 메론, 수박, 오렌지 등을 깎아놓은 과일 7~8점을 담아놓고 100엔에 파는 가게였는데, 그 가운데 수박을 하나 골라 글로버코엔에 가서 먹기로 했다.

     

    계속해서 안내 표지를 따라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걷는다. 그냥 동네 뒷골목같은데 이 길이 맞을까? 오래된 집들 사이로 걷는 동안 잠깐만 '미즈노 리세'가 되어보자 싶었다. 할머니 댁이 나가사키에 있으면서도 정작 나가사키 유명 관광지는 한번도 돌아보지 않은 미즈노 리세는, 어떤 면에서 나가사키를 구경하러 온 일본인과 닮아있다. 그리고 대한 해협을 넘어 이곳 나가사키까지 찾아온 나와도 닮아있었다. 그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모습은, 또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를 따라 나가사키 곳곳을 돌아보는 모습은 사춘기 시절의 문학소녀를 꿈꾸던 나와 분명 공통분모가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서인지 나는 언덕 위에 있는 '그로버코엔'까지 걸어올라가리라는 애초의 결심을 지키지 못했다. 그 낡은 집들 사이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엘리베이터를 만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그로버코엔'으로 갈수 있는데 이 오래된 도시에 엘리베이터라니. 신기했다. 언덕위에 사는 주민들을 배려한 건가...? 하는 내 생각도 곧 확인이 됐다. 엘리베이터가 언덕 위에서 내려오길 기다리는 사람 총 6명 가운데 젊은이는 나혼자였고, 관광객도 역시 나 혼자였다. 어느 여행길에서나 이렇게 뒷골목을 찾아오는 재주도 아무나 있는 것은 아닌데... 싶었다. 역시나 나는 보통 관광객들과는 또 다른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걸 타고 오르면 그로버코에서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나가사키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문제의 엘레베이터!

     

     

     

     

     

     

    나가사키 전경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꼭대기까지 올라와놓고 나는 갈래길에 섰다.  성당으로 갈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이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볼까... 문득 가톨릭 신자로서 존재확인을 해야 할것 같아서 나는 성당을 선택한다. 문득 미즈노 리세가 그녀를 이끌어 나가사키 시내를 구경시켜주던 잘생긴 소년, 마사유키와 나누었던 장면을 떠올렸다.

     

     

    관광기념품 가게들이 쭉 늘어선 언덕길을 올라가자 바로 앞으로 큰교회가 보인다. 초록색지붕꼭대기에 있는 십자가 빛이 반사되고 있다 커다란 종려나무가늘어선 것이 마치 남국같다.

     

    "신이라는 거 무섭지 않냐?"

    "어째서?"

     

    불쑥 그렇게 중얼거리는 마사유키에게 묻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죽었는데, 줄곧 모른척을 하고 있잖아."

     

    리세는 당황했다.

     

    "난 모르겠어. 순교니 하는 거. 어째서 아무것도 해주지않는 자를 위해 죽을 수 있을까. 죽기만하는 게 아니라 서로 죽이기까지 하고 말이야. 세계 곳곳에서 저자를 위해 날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이고 있잖아."

     

    교회앞 돌층계를 오르면서 하는 이야기치고는 조금 불온하지만 리세는 마사유키의 솔직한 말이 재미있었다.  

     

     

     [온다리쿠, 황혼녘 백합의 뼈 中 일부]

     

     

     

     

    한 때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입장료 300엔. 그로버코엔과 입구가 연결되어 있다.

     

     

     

    일본 최초의 개항지가 된 나가사키는, 개항과 더불어 가톨릭도 전파가 됐다. 이곳에 발을 디딘 선교사가 바로 가톨릭의 성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다.  그러나 일본의 박해도 만만치 않아서 나가사키에서만 무려 스물 여섯명의 순교자가 나오게 된다.  그들의  동상이 있는 나가사키 역 근처가 지금은 관광지가 됐는데, 이 성당과 순교비를 찾아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이 나가사키를 찾고 있다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성당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방문한 적이 있어, 그 역시 가톨릭 신자들이 느끼는 나가사키의 매력 중 하나라 하겠다. 

     

    그러나 온다리쿠가 소설속 주인공 '마사유키'를 통해 '줄곧 모른척을 한다'는 신의 모습에 "하늘에만 계시옵는 주님"이라고 표현한 한 시인의 시 일부가 떠오르기도 했다. 허나 그 누가 신의 존재에 대해 뭐라고 하든지 나는 여행지마다 성당에 들릴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하다. 성당을 가지 않은지 수년..., 내 마음의 신앙 밭은 이미 황무지가 되었다고 해도 나는 성당에 앉아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와야 마음이 편했다. 오래된 습관일지도 몰겠지만 이곳에 와서도 나는 기도를 바친다.

     

    더구나 입장료 300엔이나 내고 들어간 성당인만큼 오랜 시간 기도를 드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유럽의 그 유명한 성당을 가도 입장료를 내지 않았고, 심지어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에서도 공짜로 들어갔건만... 나가사키는 관광지로서 너무특화시킨 건 아닐까...아쉬움도 들었다. 3백엔을 내고 들어가는 성당은, 이미 성당으로서의 그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더군다나 성당의 뒷마당을 통해 입장료 6백엔을 내고 들어가는 그로버코엔과 입구가 닿아있다는 점도... 기가 찰 정도로 놀라웠다. 어쩌면 신은 그토록 가만히 있다는 마사유키의 말도, 이런 나가사키 특유의 관광지화와 연결이 될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것이 폐허 위에 가까스로 다시 세운 도시에서의 모습임을 감안할 때, 한편으로 측은지심도 드는 건 어쩔수 없었다.

     

     

     

    - 문학과 함께 걷는 나가사키, 2편도 기대해주세요~

     

     

     

     

     

    cookybox

    통장에 잔고만 있다면 어느새 여행사이트를 들여다보면서 비행기 값을 가격비교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어떤 시인은 "사랑은 나의 권력"이라고도 한다지만, 혼자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여행은 나의 권력"이라는 문장을 만들어내고 혼자 흐뭇해 합니다. 암만, 여행은 경험과 추억의 절대적 권력이고 말고. 물론 여행길에 책은 필수옵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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