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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조금 심심해지기로 했다.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곰병키 곰병키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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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캄보디아에 다녀 왔다. 이웃한 나라들은 몇 차례 다녀 왔지만, 캄보디아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맛있는 여행을 하기엔 동서에 있는 나라가 워낙 싸고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하고, 휴양을 위해 떠나기엔 같은 비행시간대에 선택지가 워낙 많다. 그래도 캄보디아행 비행기로 오른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채 정글속에 천년이란 긴 세월 동안 묻혀 있던 거대 사원 앙코르와트가 궁금해서.

    뒤돌아서면 잃어버릴 게 뻔한 진부한 역사 이야기가 전부겠지만 여행의 목적은 다들 제각각이니까. 그래서 난 조금 심심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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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 씨엠립 노선은 민트색 항공사가 운영하는 새벽 도착 스케줄이 유일하다. 그렇게 호텔에 도착해서 짐도 풀지 못한 채 잠깐 눈만 붙이고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인디아나 존스였다면 챙이 넓은 페도라와 채찍을 준비했겠지만 난 충전이 완료된 카메라 배터리 3개로 충분했다. 호텔 로비에서 유적지 관광을 위한 버스를 기다릴 동안 로비를 가득 메운 어린 소녀의 로니읏 연주소리는 전장의 북소리처럼 한껏 고무되게 만들었다. 처음 가 본 낯선 나라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풍경마저도 쓸데없이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것 같다. 

    혼자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시나리오를 써보는 것도 잠시. 유적지 관광을 위한 버스가 도착했다. 씨엠립의 대중교통은 툭툭이 유일해 대부분 관광객은 미니밴이나 대형버스로 이동한다. 그래서 대부분 가이드 아니 이곳에선 역사 선생님이라고 하자. 역사 선생님을 동반한 패키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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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코르 유적지 투어에 앞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앙코르 패스를 사야 한다. 나라의 주 수입이 이곳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싼 편이다. 요금은 1일권 - 37불 / 3일권 62불 / 7일권 72불. 3일권과 7일권은 유연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앙코르 유적지는 패키지 여행객이 대부분이라 연속되게 사용한다. 그리고 즉석에서 패스를 발급받는데 선글라스와 마스크만 착용하지 않고 괴상한 표정만 짓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락된다. 유적지마다 패스 검사는 필수로 이뤄지니 목에 걸거나 항상 휴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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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띠아이쓰레이 사원(Banteay Srei Temple)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Banteay Srei 사원이다. 캄보디아 하면 검은 벽돌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붉은 사암에 정교한 부조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사원은 전혀 예상 밖의 모습이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앙코르 유적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힌다는 이곳은 당시의 본모습을 상당수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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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겐 소설 <인간의 조건>으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말로가 훔쳐가려고 했던 데바타 여신상. 동양의 비너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상반신 어깨까지 늘어뜨린 머리 장식과 정교한 허리 장식, 물결무늬의 패턴과 떠받치고 있는 오리 등 믿을 수 없는 정교함은 놀라움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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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와 손이 여럿 달린 라바나를 제압하는 시바신. 출입문마다 정교한 조각들이 수많은 얘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혼자 이곳을 찾았으면 '그냥 정교한 조각이구나'하고 끝났을 텐데, 유적을 보면서 설명을 듣는 패키지여행은 역사 선생님 꽁무니를 쫓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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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욘 사원(Bayon Temple)


    사면에 돌을 깎아 인면상을 만들어 놓은 바이욘 사원은 다양한 표정의 얼굴상을 살펴볼 수 있다. 2층에 오르면 사면상들이 탑을 이루고 있는데 54개의 탑에 266개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고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감은 눈, 뜬눈, 행복한 표정,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데 슬픈 표정은 1177년 참파가 4년 동안 캄보디아를 지배한 것을 나타내고 행복한 표정은 1181년 참파에 승리한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감은 눈은 명상을, 뜬 눈은 사람들과 도시를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전해진다. 각각의 다른 표정을 찾아보는 것도 숨은그림찾기처럼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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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는 벽화가 조각되어 있는데 밥을 짓고, 쌀을 씻고, 물건을 나르고, 곡식을 터는 사람 등 그때 당시의 모습들을 그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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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관리가 너무 소홀하다. 전체 유적의 70%가 복원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는데 이렇게 관리하다간 남은 30%의 멸망도 볼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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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쁘레룹 사원(Pre Roup Temple)


    조금은 힘들었던 패키지 일정은 크메르 왕국의 흥망성쇠처럼 해 질 무렵이 되자 엄청 피곤이 몰려 왔다. 가만히 앉아 노을을 기다리는 일이 전부인 쁘레룹 사원은 어쩌면 치밀한 여행사의 계획인지도 모를 정도로 탁월했다. 지평선에 해가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시원해졌고 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들면서 주위는 고요해졌다. 어쩌면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풍경을 보기 위해 다들 숨죽이고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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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마다 가장 편한 자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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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심심해지기로 했던 나의 캄보디아 여행은 조금도 심심할 틈 없이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와 함께 꽉 찬 하루를 보냈고 1차원적인 즐거움만 찾던 나의 여행에 값진 경험을 섞은 기분마저 들었다. 캄보디아란 곳은 누군가에겐 정말 심심하고 지루한 여행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고 주의 깊게 들여다 보면 그 어떤 나라보다도 재밌는 얘기가 숨어 있는 보석 같은 곳임을 알게 될 것이다. 

     

    곰병키

    아무래도 우린 여행 블로그 운영. 저스트고 규슈 저자.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사진과 글을 쓰고 싶은 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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