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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펠타워가 있는 7구에서의 보통의 순간

    엘레이나 엘레이나 2018.09.28


    뉴욕 부부의 가을 파리 여행 - 에펠타워가 있는 7구에서의 보통의 순간


    두 번째 파리.
    여행하기 전에 나는 꼭 그 도시에 걸맞은 책 한 권과 음악을 고른다. 이 습관은 아마 나의 첫 일본 여행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2011년 겨울, 나는 가족들과 후쿠오카를 여행했었는데, 여행 내내 시간이 나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란 책을 읽었었다.  조명이 참 예뻤던 하우스 텐 보스 암스테르담 호텔에서도, 고요한 유후인의 료칸 다다미방에서도, 나는 모두가 잠든 늦은 밤이면 늘 그 책을 꺼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젠 그 책의 표지만 봐도 그날의 공기가 떠오른다. 폭신한 이불에 온몸을 뉘고 책을 읽고 있을 때 머리 위로 스치던 서늘한 겨울 공기. 특히 암스테르담 호텔에는 침대 사이드 테이블에 연결된 오디오가 있었는데, 채널을 맞춰 놓으면 호텔에서 선곡한 클래식 음악이 24시간 흘러나왔다. 무려 6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때 어떤 곡을 들었었는지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런 이유로 이번 여행에도 책을 한 권 골랐다. 바로 헤밍웨이. 지난 프랑스 여행은 모네에 의한, 모네를 위한 여행이었다면, 이번 파리 여행은 헤밍웨이의 에세이 한 권과 함께했다.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지내면서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회고록으로 엮은 책 'A Moveable Feast'. 한국에도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출간되어 있다. 책을 고르자 이젠 책의 형태가 고민이 되었다. 남편이 선물해준 아이패드가 있는 탓에, 책을 살 땐 늘 e book과 종이책의 그 중간에서 고민한다. 짐도 줄일 겸 e book으로 다운받아 아이패드에 넣어 갈까 아니면 번거로워도 종이책을 한 권 살까 고민을 했었지만, 결국 나의 선택은 종이책으로 이어졌다. 왠지 이 책은 e book의 차가운 성질엔 걸맞지 않은 책이라 생각해서. (물론 이 책뿐만 아니라, 나의 대부분의 선택이 종이책으로 결론이 나지만..)

    그렇게 나는 헤밍웨이의 책 한 권과 우리 부부의 여권, 그리고 보드라운 스웨터 몇 개와 편한 로퍼를 담은 케리어를 들고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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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밍웨이의 'A Moveable Feast', 그리고 여권과 커플 시계 >>


    비행은 나름 순조로웠다. 장거리 비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특유의 염려가 우습다는 듯, 기체는 기류 변화에 의한 흔들림 하나 없이 무탈하게 파리에 도착했다. 뉴욕발 6:30분 비행이었지만 도착은 파리 아침 7시 40분. 공항에 도착하니 어둑한 하늘이 우리를 맞이한다. -아직 해가 안 떴나? 하고 생각하다 보니 이제 조금 있으면 겨울이다. 해가 짧아지는, 내가 좋아하는 오후가 가장 짧은 계절. 

    버스를 타기 위해 공항을 나서자 스산한 공기에 몸이 부들 하고 떨린다. 일주일 전에 파리를 여행한 친구가 옷을 단단히 챙기라고 조언을 해주었는데,  그 덕에 챙겨온 두꺼운 울 머플러로 목을 감싸니 제법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시내로 나가는 교통수단은 다이렉트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숙소가 7구, 에펠 타워 근처에 있어서 공항에서 바로 그 근처까지 이동이 가능했다. 게다가 와이파이도 이용할 수 있어서 호스트와 직접 컨택도 가능하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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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항에서 시내까지 간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버스, 풍경을 구경할수 있어 지루 할 틈이 없다. >>


    시내로 들어서자 말간한 하늘이 고개를 든다. 마치 큰 무대의 암막이 열리고 무대 위의 근사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그렇게 평범한 금요일 아침을 시작하는 분주한 파리의 모습을 만난다. 사요 궁을 지나자 멀리 빼꼼 얼굴을 내미는 에펠 타워. 2014년에 찾았던 파리에서도 첫날 이 모습을 담았었는데- 하고 생각한다. 그날의 에펠타워는 늘 누군가의 사진을 통해 보던 모습과 흡사했다면, 이날의 에펠타워는 내가 늘 상상하던 모습과 닮아있었다. 흐린 회색 하늘에 대비되어 더욱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 Gill은 비 오는 날의 파리가 그 어떤 모습보다도 아름답다고 했다. 비록 그녀의 약혼녀가 시니컬한 목소리로 -Why does every city have to be in the rain? what's wonderful about getting wet?이라고 투덜거렸지만, 나는 비 오는 파리를 좋아한다.  그의 말처럼 낭만적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여행 기간에 딱 하루 정도는 비가 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소리를 들은 내 남편은 질색했지만, 나는 남편 몰래 레인코트도 두벌 챙겨 넣었다. 딱 하루만, 가을비가 내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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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번째 눈에 들어온것은 바로 개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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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스에서 바라본 사요 궁과 에펠타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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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른 아침의 에펠타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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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소가 위치해 있는 아름다운 7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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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급스러운 주택가의 7구는 마치 뉴욕의 어퍼이스트와 비슷한 느낌이다. >>


    숙소에 도착하자 다니엘이란 이름의 하우스 메이드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영어와 프렌치를 섞어가며 나름의 노력으로 열심히 설명을 해주는 그녀. 영어가 익숙지 않다며 미안해하는 그녀에게 우리는 양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우리의 프렌치가 미흡함을 사과했다. 호스트는 2시쯤 도착할 예정이란다. 우리는 거실 한편에 가방을 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 산책에 나선다. 7구와 6구 근처를 구경하고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로.

    7구는 참 아름다운 동네였다. 오래된 건물, 좁은 골목 틈 사이에 다양한 카페와 레스토랑까지. 특히 이곳은 거주용 주택이 많아 슈퍼마켓과 빵집, 작은 카페가 많은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마치 파리에서 살아보는 느낌. 왠지 관광객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동네였다. 한참을 걸어 6구로 향하자 지하철역 근처에서 작은 파머스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 여행을 가도 꼭 시장은 챙겨서 가보는 우리 부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듯한 장바구니를 든 노부인의 뒤를 따라 걸으며 마켓을 구경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각종 홈메이드 소스와 잼, 허니. 종이봉투 안에 가득 담아서 숙소에 데려가고 싶은 것 투성이였다. 요리가 취미인 남편도 식재료 구경에 신이 난 듯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여행은 싫어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면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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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크인 전 동네 산책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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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책길에 발견한 앙발리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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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 특유의 느낌이 나는 카페와 레스토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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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연히 발견한 작은 장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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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소에 가져갈 치즈를 조금 구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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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긋한 향이 나는 납작 복숭아와 블루베리도 구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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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에서 가장 좋은 순간, 가장 보통의 순간을 즐기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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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의 화분들. 모두 집에 데려가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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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산도 식후경. 바게트 샌드위치와 커피 한잔 >>


    동네 구경을 마친 우리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파머스 마켓에서 사 온 치즈와 오렌지 주스, 그리고 과일 등을 냉장고에 넣어두려고. 체크인을 하고 보니 시간은 오후 두 시 반이었다. 뉴욕시각으로 따지면 벌써 아침 8시 반. 한창 자고 있어야 할 시간에 깨어 있느라 고생한 남편에겐 nap time이 필요하다 느껴 오늘은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신나는 마음에 도통 잠이 오지 않던 나는, 거실에서 Duke Jordan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거실 카우치 앞에 난 큰 창을 열어 공기를 들이고, 호스트가 준비해둔 블랙 티도 한잔 마셨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마저 감격스러울 수 있다니 하며 혼자 배시시 웃었던 나. 그렇게 파리의 첫 오후를 만끽했다.

    마음이 일렁이던 파리에서의 오후.

     

    엘레이나

    Born in Korea , New York Lover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뉴욕과 20대 중반에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젠 삶으로 뉴욕을 만나는 태생이 몽상가인 욕심 많은 블로거, 크리에이티브한 마케터, 그리고 어퍼이스트 새댁인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내. Blog : blog.naver.com/alaina_ny Naver post : post.naver.com/my.nhn?isHom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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