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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독한 미식가> 속 그 맛, 와사비 돈부리

    moo nee moo nee 2018.12.24

    카테고리

    일본, 음식, 예술/문화, 기타

    시즈오카에서 맡은 신선한 향기 

    자주 먹는 튜브 속 와사비와는 전혀 달랐다. 가끔 생와사비를 사용한다고 하는 횟집의 와사비와도 달랐다. 처음 맡아보는 채소의 향기였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야기는 구스미 마사유키가 쓰고, 그림은 다니구치 지로가 그려서 1994년부터 <월간 PANJA>에 연재된 작품. 2012년부터는 TV도쿄에서 드라마로 제작하여 방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촬영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친숙하다. 드라마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수입 잡화상을 운영하는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가 거래처에 갔다가 갑자기 배고픔을 느끼고, 주변에 맛있는 식당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곤 식당에 들어가 홀로 음식을 만끽한다. 음식점과 메뉴만 달라질 뿐 이야기는 매번 똑같지만, 꽤 중독성이 있다.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좋고,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멍하니 보게 된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고 나면 무언가 먹을거리를 찾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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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한 미식가> 시즌3의 시즈오카 편을 보게 된 날은 몇 가지 우연이 겹친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후지산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하나 읽었고, 전날 밤부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라는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배경이 시즈오카였다. 낮잠을 자려는데, TV에서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시즈오카 편이 시작되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화면이 나와서 눈길을 멈추고 낮잠을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이노가시라는 보통 도쿄의 음식점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드라마 배경이 주로 회색 풍경인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화면 안에 초록빛이 가득했다. 이노가시라가 시즈오카로 출장을 간 것이었다. 미팅을 마치고, 여행객 기분이 되어 시즈오카 이즈반도의 유명한 폭포를 찾아가고 그 주변에서 맛있는 음식점을 발견한다. 그날 온종일 시즈오카와 관련된 콘텐츠를 다량으로 섭취한 탓에 나는 문득 시즈오카에 가고 싶어졌다. 두 번이나 다녀온 지방이지만, 가봐야 할 곳이 많이 생겨버린 것이다.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마음이 시큰둥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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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즈오카에 도착해 이노가시라가 앞서 걸어간 초록빛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폭포로 향하는 산책길 입구에는 수학여행지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을 팔고 있었고, 이노가시라는 ‘요즘 중학생들도 이런 것을 살까?’ 궁금해한다. 나는 생애 처음 간 경주 수학여행에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새긴 거북이 모양의 돌을 사 온 기억을 떠올렸다. 이곳에 놓인 물건들처럼 쓰임에 비해 값비쌌던 돌.

    산책길이 뻗어 있는 이곳은 일곱 개 폭포가 있기로 유명한 가와즈(河津)의 나나다루()다. 그중 하나 쇼케이 폭포 앞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이즈의 무희> 속 남녀 주인공 동상이 있다. 고로는 이 폭포 앞에서 ‘음이온 탓인가?’ 배고픔을 느끼고 서둘러 걸어 나와 맛집을 찾는다. 우린 아침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고로가 들어간 식당 ‘와사비원 가도야(かどや)’에 서둘러 들어갔다. 식당이 오후 2시까지밖에 하지 않고, 재료가 다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는 정보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거의 모든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아있었다. 고로가 두 그릇이나 비운 와사비 돈부리 맛이 궁금해 이곳까지 왔으므로 일단 주문. 그것만으로는 아쉬워 소바도 함께 나오는 세트메뉴로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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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와사비가 상어가죽 강판과 함께 나왔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미리 갈아 두어야 한다. 전에 시즈오카에 왔을 때 와사비란 식물을 실제로 봤기 때문에 죽순처럼 생긴 줄은 알고 있었다. 모양은 충격적이지 않다. 남아 있는 잎을 떼어내고 떼어낸 부분부터 갈기 시작하면 된다. 드라마에서 ‘둥글게 둥글게’ 갈아야 한다는 조언을 봤으므로, 원을 그리며 열심히 갈기 시작했다. 굉장히 강렬한 향이 올라왔다. 처음 맡아보는 채소의 냄새였다. 튜브에 들어 있는 와사비와는 전혀 다른 향기였기에 다소 충격이었다. 이 향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까.

    와사비를 가는 일은 생각보다 중노동이었다. 쉽게 갈리지 않았다. 게다가 기대보다 많은 양이 나오지 않았고 조금 묽었다. 손목이 아파졌다. 가는 일이 귀찮아진 남편이 와사비를 그냥 씹어 먹기 시작했다.

     

    "어때? 안 매워?"

    "전혀 안 매워. 약간 알싸한 정도인데?"

    잠시 뒤.......

    "오오오 올라온다."

    남편의 콧방울이 넓어지며 흡사 공룡 같이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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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사비를 아직 다 갈지 못했는데, 돈부리와 소바가 나와버렸다. 밥 위에 올린 와사비에 간장이 닿지 않게 뿌려 먹으라는 조언이 뒤따랐다. 흰 밥과 와사비와 가쓰오부시에 약간의 간장으로 간을 한 평범하고 평범한 요리. 그런데 정말 맛있다. 흰 밥과 가쓰오부시의 튀지 않는 맛과 향이 오로지 와사비에 집중하게 해준다. 다른 요리에서는 늘 조연 역할을 하는 와사비가 주연이 된 요리. <고독한 미식가>에서 밥 친구들이라 불린 네 가지 와사비 반찬도 주연을 도와준다. 와사비 김, 와사비 된장, 와사비 절임, 와사비줄기 초절임. 이 중 와사비 된장은 매운맛이 살짝 돌아서 우리나라 볶음 고추장과 맛이 비슷했다. 내 입맛에 딱 맞아 한국에 사서 오고 싶었지만, 여행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아쉬웠다.

    와사비 돈부리를 즐긴 후, 대나무 통에 나온 소바도 먹어 본다. 와사비 향이 평범한 소바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소바까지 신선하게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남은 와사비를 씹어 먹어 보라'는 남편의 권유에 못 이겨, 살짝 먹어보았다. 식감은 무 같았다. 처음에는 살짝 단맛이 돌다가 마지막에 매운 기운이 코로 확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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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마치고 나와, 우리는 후식으로 와사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었다. 아이스크림이라 전혀 맵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맵다. 코끝까지 시원하게 하는 아이스크림이다. 초록빛으로 가득한 시즈오카 이즈반도에서 맡은 와사비의 신선한 향기. 온몸이 정화된다.

     

    INFORMATION

    [와사비원 가도야(かどや)]

    매주 수요일이 정기휴일이며, 재료가 다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기도 한다. 
    메뉴 : 와사비 돈부리, 와사비 소바, 와사비 소주 등
    주소 :
    〒413-0501 静岡県賀茂郡河津町 梨本371-1
    영업시간 : 식당 09:30~14:00 / 상점 09:00~17:00
    홈페이지 : http://www.wasabien-kadoya.com

     

    [나나다루 쇼케이다루 폭포(初景滝)]

    높이 약 10m의 폭포로, 입구에서 걸어서 8분 거리에 있다.
    주소 : 〒413-0501 静岡県賀茂郡河津町 梨本
    홈페이지 : http://www.nanadaru.com/

     

     

    moo nee

    배경여행가. 책, 영화,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의 모습이 지워진 배경에 들어가 보는 여행을 하고 있다. 백과사전 회사에서 5년 가까이 근무. 건조하고 차가운 글을 쓰고 편집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으니, 촉촉하고 다정한 글을 찾고 쓰는 일이 낙(樂)이 되었다. 지금은 IT회사에 재직 중. 저서로는 <다정한 여행의 배경>이 있다. www.istandby4u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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