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에 지친다면, 제대로 된 힐링이 필요하다면,
잠시 스마트폰은 내려두고 일상에서 벗어나 대자연으로 치유할 수 있는 여행지, 가고시마가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이런저런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훌훌 털어버리듯 딱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딱 2박 3일 정도 부담 없이 떠나면 좋으련만. 비행기로 약 1시간 거리에 일본의 가고시마가 있다. 사실 가고시마 하면 아직 '어디지?'라고 묻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최근에는 12월에도 영상 10도 이상인 온화한 기후로 롯데 자이언츠의 전지훈련 장소나 골프 여행지로 알려져 있다. 저비용항공사(LCC)에서도 가고시마 취항이 늘면서 자유여행객들이 점점 찾기 시작한다. 유난히 추운 한국의 겨울에서 벗어나 따뜻한 가고시마에서 보냈던 2박 3일을 소개한다.
추천 코스[Day 1] 가쿠이다 흑초 양조장
3년 된 흑초, 완전히 바뀐 빛깔, 부드럽고 깊은 단맛이 느껴진다
셀 수 없이 많은 항아리들이 선사하는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가고시마의 대표 특산품인 흑초를 만드는 마을, 가쿠이다. 200여 년 전 한 장인이 항아리와 자연을 통한 제조 방식의 흑초를 개발했는데 지금은 일본인의 장수 비결로 손꼽히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아담한 집마다 안뜰에 항아리들이 있다. 우리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는 양조장에 방문했다. 무려 2만여 개의 항아리에서 흑초를 만드는 곳으로 항아리가 펼쳐진 모습이 절경이다.
이곳의 흑초가 유명한 건 양질의 유기농 현미, 강렬한 햇빛, 깨끗하고 맛있는 물, 해풍만으로 3년 이상 발효시켜 만들기 때문. 가고시마의 온화한 날씨가 맛있는 흑초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직원이 1년 된 흑초와 3년 된 흑초를 보여주었다. 빛깔부터 달랐다. 노란빛에서 검은빛의 흑초가 되는 건 자연에 순응해 얻어낸 결과였다. 시음해보니 1년 된 흑초는 굉장히 시큼했는데 3년 된 흑초는 거짓말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났다. 5년, 7년, 10년 된 흑초도 있다고 한다. 숙성기간이 길어질수록 아미노산이 더욱 풍부해진다고. 건물 1층에는 다양한 흑초를 판매하고 있고 2층에는 흑초를 이용해 만드는 요리로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다.
추천 코스[Day 1] 아리무라 용암 전망대
웅장한 사쿠라지마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탁 트인 장소
전망이 끝내주는 산책로. 한쪽으론 사쿠라지마가, 또 한쪽으론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는 명당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가고시마의 상징인 사쿠라지마를 보기 위해 아리무라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사쿠라지마에 성큼성큼 다가가는 기분. 입구에서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와, 사쿠라지마가 한눈에! 살짝 보슬비가 내리는 날씨에 구름이 낀 탓이었을까, 더 신비로운 아우라를 뿜어내던 사쿠라지마. 분화구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마도 가고시마 시민들에게 사쿠라지마는 수호신 같은 존재가 아닐까. 여행 전 가고시마의 화산이 분화했다는 뉴스를 봐서 염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염려는 무색할 정도로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가고시마 사람들에겐 분화가 일상이라고 한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화산재가 시내로 날아오느냐 바다로 가느냐 달라지는데, 다행히 우리가 간 날은 바다 쪽으로 바람이 불어 화산재를 맞는 일은 없었다.
추천 코스[Day 1] 사쿠라지마 비지터센터
사쿠라지마에 관한 역사,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가고시마 학생들은 등교할 때 노란 헬멧을 쓴다고 한다)
사쿠라지마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있다. 앞서 방문한 아리무라 전망대와 시내 중심가의 시로야마 전망대, 그리고 가고시마 여행에서 꼭 들리는 장소인 사쿠라지마 비지터센터. 사쿠라지마의 역사와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작은 박물관 같다. 그리고 이곳을 꼭 찾는 이유는 사쿠라지마를 바라보며 족욕을 할 수 있기 때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가에 너도나도 앉아서 족욕을 즐긴다. 나도 얼른 양말을 벗고 물속에 발을 담갔다. 하, 뜨끈한 물에 발을 담갔을 뿐인데 몸이 차분해지고 마음은 느긋해졌다. 다음 일정 탓에 10분 정도 밖에 못 했는데도 거짓말처럼 발이 가뿐해졌다.
추천 코스[Day 1] 사쿠라지마와 가고시마를 이어주는 페리
페리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멀리서 보이는 페리의 모습
페리의 명물, 우동 가게
육지에서 사쿠라지마까지 직선거리 약 4km로 배로 약 15분 정도면 시내에 도착한다. 페리는 15분 간격으로 종일 운행하니 참고하자. 짧지만 여행 기분을 내기에 충분하다. 배 안에는 매점과 작은 우동 판매대가 있다. 우동이 불티나게 팔리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점심을 먹은 직후여서 먹지 않았는데 괜히 아쉽다. 다음에 방문한다면 꼭 먹어야지.
추천 코스[Day 1] 가고시마 덴몬칸과 돈키호테
일본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쇼핑 핫플레이스, 돈키호테
가고시마 시내의 쇼핑을 위한 장소, 덴몬칸. 일본 쇼핑 리스트들을 다 모아놓은 돈키호테도 주변에 있고 다양한 상점, 카페들이 모여있는 쇼핑 아케이드. 만약 번화하고 화려한 일본의 거리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있을 건 다 있었고 오히려 번잡하지 않아 여유롭게 쇼핑을 할 수 있었다.
추천 코스[Day 1]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이부스키 큐카무라 호텔
아침의 호텔 로비 전경, 창밖으로 드넓은 바다의 풍경이 그림같다
이부스키는 가고시마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으로 검은 모래찜질과 온천이 유명한 남규슈의 최남단 시골 마을이다. 밤에 도착해 일단 방으로 올라가 짐을 풀었다. 꽤 널찍하고 깔끔한 다다미방이었다. 짐부터 풀고 호텔 온천으로 향했다.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언제든 이용 가능해 편리했다. 호텔의 온천은 작고 아담했지만, 노천온천도 있어 알찼다. 추가 비용을 낸다면 검은 모래찜질도 가능했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그동안의 피로가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머무는 내내 편안했던 호텔. 만약 다시 이부스키를 방문한다면 다시 찾고 싶은 곳.
추천 코스[Day 2] 이부스키 헬씨랜드
이부스키에서도 아름다운 절경으로 손에 꼽히는 노천온천이 있는 헬씨랜드. 온천과 바다, 가이몬타케 산, 그리고 파란 하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노천탕에 들어가 기가 막히는 풍경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황홀할 수밖에. 천국이 따로 없다. 일본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소로 이부스키에 방문하는 여행객들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가격대도 부담 없어 이부스키에 간다면 꼭 가볼 만한 장소.
추천 코스[Day 2] 나가사키바나
용궁설화의 주인공인 토요타마 공주를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가이몬타케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나가사키바나는 가고시마를 대표하는 용궁 설화의 배경지로 용궁 신사로 불린다. 우리나라에도 용궁과 관련된 별주부전이 있듯 일본에도 용궁에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설화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어부인 우라시마 타로가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거북을 구해주는데 그 답례로 용궁 구경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그곳에는 토요타마 공주가 있었는데 어부는 공주에게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육지로 가야 한다고 하자 공주는 어부를 만류해보지만, 어부의 뜻이 바뀌지 않을 것을 알고 절대 열어보면 안 된다며 상자(타마테바코) 하나를 준다. 육지로 돌아온 어부는 자신이 알던 사람들이 없자 이상하다고 여겼다. 호기심에 공주가 준 상자를 열어보는데 갑자기 뿌연 연기와 함께 노인이 돼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용궁에서의 며칠이 사실은 700년이 지나버린 것"
용궁 신사는 설화 속 공주를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신사 앞으로 펼쳐지는 바다와 검은 모래, 강렬한 빨간색의 신사가 묘하게 어우러진다. 이야기를 들어서였을까, 바다에서 거북이들이 올라올 것만 같은 위치. 알고 보니 실제로 이곳 일대가 바다거북의 산란장이라고 한다. 그100엔을 내고 한 해 운세를 뽑을 수 있다고 해서 재미 삼아 해보았다. 중길! 만약 좋지 않은 운세일 경우, 이곳 신사에 걸어두고 나오면 된다고 하니 혹여나 좋지 않더라도 훌훌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좋지 않은 운세는 이렇게 걸어두면 액운을 물리쳐준다고 한다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거북이와 설화 주인공인 어부, 우라시마 타로
추천 코스[Day 2] 니시오야마역
여기저기 풍경을 담는 여행객들, 역 앞에 놓여진 종 울려보기
일본 본토 최남단 역이라는 타이틀로 많은 이들이 발걸음 하는 니시오야마 역. 큰 기대를 하고 가면 실망할 만큼 작은 규모지만 곳곳에 종, 노란 우체통, 역사 안이 소소하지만 푸근한 시골역의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행복을 전해준다는 노란색 우체통은 인증샷 포인트!
추천 코스[Day 2] 이케다호수
다시 또 달려 이부스키의 이케다 호수로 향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는데 노랗게 만발한 유채꽃들이 어찌나 많이 지나가던지! 와, 12월에 보는 유채꽃이라니! 도착한 이케다 호수 앞에도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펴있었다. 12월에 느껴보는 봄이라니. 고요하고 잔잔한 호수에 리듬을 더하듯, 유채꽃밭은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해주었다. 이케다 호수는 5500여 년 전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칼데라 호수로 규슈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잔잔한 호수 속에는 괴생명체인 이시가 산다고 하는데 검증된 바는 없고, 세계 최대 크기의 장어인 무태장어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2m 길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호수 앞 휴게소 겸 레스토랑인 파라다이스에서 점심과 쇼핑을 즐기기 좋다.
추천 코스[Day 2] 이부스키 큐카무라 호텔 & 석식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온천을 제대로 즐겼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하루에 4번 온천을 했더니 피부가 반들반들해지고 속도 편안해졌다. 온천 덕에 치유되는 기분이랄까.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무리 없이 여행할 수 있었던 건 자연 속에서 즐긴 온천 덕분이었다. 저녁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가이세키와 바이킹으로 구성된 코스로 다채로운 요리들이 나왔다. 하나하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던 음식들. 특히 기비나고라 불리는 샛줄멸회의 맛이 가장 기억에 남을 만큼 고소하고 쫄깃했다. 음식 하나하나 맛보는 즐거움이 가득했던 밤.
추천 코스[Day 3] 사라쿠 회관
검은 모래찜질은 온천수로 달궈진 모래에 들어가 찜질을 즐기는 이색 체험. 세계 유일의 천연 모래찜질로 아토피, 어깨 결림, 신경통 등 다양한 질환에 도움이 된다. 수족냉증을 달고 사는 내가 가장 기다리던 장소. 이부스키에 검은 모래찜질을 하는 곳은 많지만 우리가 방문한 사라쿠회관은 아름다운 뷰로 유명하다. 유카타를 갈아입고 나오면 직원들이 친절히 안내해준다. 그저 시키는 대로 검은 모래 속으로 몸을 맡기면 된다. 연기가 올라오는 검은 모래 속에 파묻히는데 살짝 무겁지만 따뜻한 온기에 몸이 이완된다. 온몸이 순환되는 듯 금세 훈훈해진다. 5분 정도 지나면 얼굴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만큼 온몸이 데워진다. 최대 15분까지 하기를 추천하지만 내게는 10분도 충분하다. 개인마다 피부가 다르니 뜨겁다 느끼면 바로 일어서는 게 좋다. 화상을 입을 위험도 있기 때문. 나는 딱 10분 하고 나왔는데도 몸이 확실히 가볍고 개운함을 느꼈다. 몸의 피로도 스트레스도 다 날아간 기분! 모래찜질한 뒤 간단히 샤워하고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수건은 제공되지 않으니 참고하자. 유료로 대여할 수 있다.
추천 코스[Day 2] 타마테바코 특급열차
이부스키에서 가고시마까지 가는 타마테바코 열차가 우리 여행의 장식할 마지막 코스. 용궁 설화 테마로 제작된 특급 열차로 열차 곳곳에 설화 속 감성이 담겨 있다. 멀리서 증기를 내뿜으며 달려오는 기차는 묻어두었던 동심을 꺼내게 한다. 이부스키에서 가고시마까지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해안가로 달리는 기차 속에서 풍경을 보다 보면 1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린다.
추천 코스[Day 2] 가고시마 추오역(중앙역)
가고시마 추오역에 도착하니 이부스키가 얼마나 조용한 시골이었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조금은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이 잠시 낯설게 느껴졌으니. 내가 직접 가서 본 가고시마와 이부스키는 딱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힐링하고 싶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의 여행지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 속에 몸을 맡기고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고, 온화한 기온 덕에 음식도 하나같이 정갈하고 맛있는,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가고시마의 따스한 온기가 벌써 그리워진다.
※ 취재 지원 : Get About 트래블웹진
바게트, 크루아상, 몽블랑, 브라우니, 퐁듀, 와플, 츄러스, 젤라또, 티라미수, 뜨레들로, 데니쉬, 자허 토르테 ... 그 다음은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