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바로가기
  • 메뉴 바로가기
  • 하단 바로가기
  • [불교기행] 스님들이 공부하는 절, 송광사에서 깨달음을 얻다

    송쓰 송쓰 2011.01.24

    카테고리

    한국, 전라

     

     

    특별한 인연, 송광사 신법스님의 가르침

     

     

     

      

     

     

    송광사를 다녀왔습니다. 다소 번잡한 선암사를 넘어 고요한 송광사에 다다르자마자 우리 일행은 '아, 조용해서 정말 좋다'며 탄성을 지르고 맙니다. 재작년 겨울에 저는 역사를 전공하는 후배들과 같이 순천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이 주변을 돌아본 적은 있었죠. 영화촬영장, 선암사, 낙안읍성, 순천만을 돌아봤는데, 이 송광사만큼은 다른 코스에 속해 미처 들르지 못했던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었죠. 하지만 올해 들어 결국 이렇게 송광사를 만나고 나니, 인연이라는 것은 이렇게 닿는구나 싶더군요.

     

    특별히 이번에 송광사에서 공부를 하고 계신 신법스님이 직접 나와 절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를 직접 설명해 주셨습니다. 어쩐지 무덤덤한 저희 일행의 반응에 조금은 힘들어 하시는 듯 싶었지만, 가르침을 받는 저희들의 입장에서야 자세하면서도 뜻 깊은 송광사와 대승불교 이야기를 들으며 참으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답니다. 참고로, 스님들의 얼굴은 초상권 문제와 학업 등의 복잡한 문제로 공개하지 않으니 양해해주세요! 

     

     

     

     

     

     

    송광사는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1200여 년 전 창건하였는데, 길상사란 이름의 작은 절에서 승보사찰(스님들이 공부하는 사찰)로 거듭나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전각, 스님, 보물이 많아 '삼다(三多)절'이라고 불린다고도 하네요.

     

    그러나 송광사는 꽤나 아늑하고 작은 절입니다. 풍수지리적으로는 연꽃의 풍수를 지니고 있다고 하는군요. 우리들을 가르쳐주신 신법스님이 내신 퀴즈인데, 혹시 여러분들은 승보사찰인 송광사에 있는 것 2가지와 없는 것 2가지 를 알고 계신가요? 저도 하나를 맞추기는 했습니다. 정답은?

     

    승보사찰인 송광사에는 승보전과 3명의 부처가 있는 대웅전 뒤에 스님들이 공부하는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자연히 '스님들이 공부를 하는 절'로서, 승보전은 승보사찰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보통의 절에서 '대웅전'은 절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대웅전 뒤에는 산(山)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송광사 뒤에 '선방'이 있다는 건, 그만큼 송광사가 공부를 하는 절이라는 걸 상징하는 요소라 합니다. (참고로 통도사에는 대웅전 뒤에 금강계단이 있고, 해인사 뒤에는 장경판전(장경각)이 있어, 각각의 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궁금하다면 대웅전 뒤를 살펴보라고 하시더군요.)

     

    자, 그렇다면 없는 것 두가지는 무엇일까요?  탑과 석등, 그리고 풍경이 없다는 것입니다. 송광사가 연꽃의 풍수를 가지고 있어서 탑과 석등이 있으면 가라앉을까봐 두려워 없앴다고 합니다. 풍경은 스님들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없앴다고 하고요. 예전엔 TV와 전화까지도 설치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래도 놓아둔다 합니다. 또 송광사의 기둥에는 주련(柱聯 : 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도 없는데, 이 또한 스님들이 공부하는 데 있어, '내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 비워둔 것이라 합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건물들은 풍수지리와 산수를 고려해 세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기운을 고려해 상징물을 두는 경우도 있고요. 위와 같이 특이하게 지붕을 두 개로 만든 것 역시 땅의 기운을 속이기 위해, 착시현상을 의도한 것이라고 합니다.

     

     

     

      

     

     

    절 안의 한 가운데 놓인 이 큰 수조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송광사를 둘러싼 조계산의 산세는 불길이 이글거리는 형상을 띄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맞은편 무념각도 7번이나 화재를 당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송광사의 화재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이 수조를 놓은 것이라 합니다. 또, 산의 방향으로 불이 넘어온다고 해서 그 방향으로는 다리도 절대 놓지 않는다고 하네요.

     

    덧붙여, 이 수조 안에는 사람들이 던지고 간 수많은 동전들이 들어 있는데, 월요일 새벽마다 스님들이 다리를 걷고 직접 수조 안으로 들어가 동전을 거둬 좋은 일에 쓰고 있다고 합니다.

     

     

     

     

     

    관음전 위를 보시면, 절의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수(水 : 물)'와 '해(海 : 바다)',

    두 글자를 적어 놓기도 했지요.

     

     

     

     

     

     

    위의 사진은 금호그룹의 지원을 받았다는 지장전의 모습입니다. 지장전 안에 모신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열반의 길을 스스로 포기한 부처라 하며, 신법스님은 이 지장보살에 대해 많은 감동을 느끼신 듯 하더군요. 고통받는 중생을 두고는 깨달음을 얻지 않겠다며, 중생을 구제하는 데 무엇보다 애를 쓴 대승불교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이 지장보살 옆으로는 머리에 경전을 얹고 있는 염라대왕도 만날 수 있습니다.

     

     

     

     

     

     

    관음전의 풍경도 인상적입니다. 본래 '성수전'이라 불렸던 관음전은 1903년 왕실의 기도처로서 사용됐다 합니다. 왕과 고관이 70세 이상이 되어야 출입이 가능했다고 하며, 왕실의 번영을 위해 기도한 곳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관음전은 옛 관음전이 쇠락한 이후 재건한 건물로,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해'와 '달'이 내부에 그려져 있다고 하더군요 (이 시간, 다른 스님의 예불이 있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작년 겨울엔 개금불사를 하면서 복장유물이 나왔는데, 이곳에서 소현세자의 아들인 경안군의 유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경안군의 이야기는 드라마 '추노'에도 등장한다고 하는데, 제가 드라마를 보지 않아 동행한 분이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곳에서 나온 유물은 관세음보살과 기도문이 새겨진 부인 허씨의 저고리라고 하던데, 최근 보물로 지정된 '신상 유물' 이라는 재밌는 농담도 덧붙이더군요. (송광사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찰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입니다.)

     

     

     

     

     

     

    약사전과 영산전의 지붕 모습도 독특합니다. 이곳의 약사전, 영산전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병자호란과 철종 때 화재를 입은 뒤, 여순반란 당시 공비 집결지로 국군에 의해 화재를 당하기도 했다지요. 약사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법당으로 대들보가 없이 공길만 짰다고 하며, 영산전엔 대들보가 있다고 합니다.  

        

    너무 멀어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승보종찰의 심장인 국사전에도 들렀습니다. 고려 시대 보조국사 지눌 스님을 중심으로 정혜결사(현실을 비판하면서 불교의 신앙 본질에 충실하는 개혁 운동)가 이루어져, 선종과 교종의 대립을 극복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선정과 지혜로 닦는다'라는 정혜쌍수(定慧雙修) 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 국사전은 고려 공민왕 때부터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하더군요.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존되어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국사전을 비롯한 대웅전 뒤쪽은 스님들의 영역입니다. 1년에 16 국사스님의 영전이 있는 그림들이 보물로 있는 곳은 지눌스님의 열반일에 공개한다고 하며, 올해 800주년을 맞았다고 합니다. (이 800년은 바로 고려불교의 800년을 뜻하며, 음력 3월 27일 입니다.)

     

    이윽고 타종 소리를 들으며 송광사의 예불 이야기를 듣기 시작합니다. 사실 송광사의 새벽예불과 법고를 들으면, 송광사에 관한 90% 이상을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절에서 북은 '가죽'을 의미하여 짐승들을 구제하고 마음속의 무명을 떨칠 수 있는 존재라 합니다. 또, '종'은 땅속의 금속으로서 지하생명과 지하의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뜻을 지닌다 하네요. 그밖에 목어는 '바다', 음파는 '영혼을 구제'하는 의미를 지닌다 합니다.

     

    송광사는 남성적인 기운의 해인사와 쌍벽을 이루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성적인 산세에 부드러운 기운을 품고 있는 송광사는 가야산의 남성적인 기운을 지닌 해인사와 견줄만한 곳이란 얘기죠. 그래서 송광사에 있던 스님이 해인사에 가면 성격이 남성적으로 변하고, 해인사의 스님이 송광사에 오면 성격이 여성적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하네요.

     

    사실 남성적인 기운이 강한 해인사에는 스님들이 축구를 좋아해서 잔디구장까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 대항 축구대회가 열려 남성적인 축구를 하는 해인사와 맞붙는 날엔, 송광사의 스님들은 '제발 이기고 오세요'가 아니라 '제발 다치지만 말고 오세요'라는 인사말을 듣는다고 합니다.

     

     

     

     

     

    한편 송광사 입구에 있는 사천왕상은 흙으로 만든 소조사찰로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지금 팔이 떨어져나가 3년째 보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조가 단종을 살해한 후 노년에 등창이 나서 고생을 했는데, 오대산의 문수보살을 만난 뒤 치료를 받아 불교에 귀의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 이후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도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경전을 간행했는데, 그 사천왕상 안에서 간경도감의 경전이 나오기도 했다지요 (이걸 복장유물이라고 합니다).

     

     

     

     

     

    절 입구에서 고목이라 그냥 지나쳤던 이 나무 또한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800년 전 지눌 스님의 지팡이 나무로, 보조국사 지눌 입적시 나무가 죽어 버렸고 그대로 서 있어 수행자의 꼿꼿함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지눌 스님이 다시 돌아오는 날 나무가 살아난다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절 안 곳곳에는 욕심을 버리라는 상징들도 참 많습니다. 송광사 앞에 있는 있는 물은 '부처의 땅'과 '세속의 땅'을 나누는 선이라 하고요, 송광사를 건너오는 다리 밑에 동전이 붙어 있는 건 돈으로 받는 시주는 올바른 목적에만 사용하라는 뜻을 지닌다고 하는군요. 이 동전은 다리를 짓고 남은 동전이니 함부로 쓰지 말고 나중에 다리 보수 때 쓰라는 의미라고도 합니다.

     

    우화각(羽化閣)을 건너면서도 참 많은 생각이 스칩니다. 깃털과 같이 몸이 가벼워진다는 뜻을 지니는 이 다리에서, 곤충이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된다는 '우화이등선'이란 소동파의 싯구도 생각나는군요.

     

    사실 삶의 껍질을 벗어 던진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불교는 문(聞 : 듣고), 사(思 : 생각하고), 수(修 : 닦고)의 종교인지라, 사유의 단계를 넘어 실천하면서, 내 안의 부처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중시합니다. 

     

     

     

     

     

    절 밖에는 특이한 이름의 건물 두 개가 있는데, 그 이름은 각각 '척주당(滌珠堂)'과 '세월각(洗月閣)'입니다. '구슬을 씻고', '달을 씻는다'라는 다소 민망한 이름을 가진 이 전각들은 윤회의 계율에서 가장 엄격하게 경계하는 음욕의 기운을 씻는 귀신들이 목욕을 하는 장소라고 하네요.

     

    그래서 이 곳에서 많은 이들이 위패를 모시고 목욕재계하며 하루를 머물다 가곤 합니다. 절의 위치로 보면, 여자 영가를 모시는 세월당은 부처님을 비껴서 세워져 있고, 남자 영가를 모시는 척주당은 부처를 직시하며 세워져 있는데, 이는건 부처가 여자 영가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여자영가를 보는 음욕을 경계한다는 뜻을 지닌다 합니다.

     

     

     

     

     

    위의 사진은 사찰 안의 심우도입니다. 심우도란,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童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묘사한 불교 선종화(禪宗畵)에 나오는 마지막 세 장면이죠. 내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에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수행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그림입니다. 이는 곧 대승불교의 뜻인 '깨달음을 도구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 또한 담고 있죠.

     

    이외에도 송광사에는 참 많은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숯 굽는 노인이 중국의 천자로 태어나 송광사의 9번째 국사가 되었다는 '천자암'이란 건물도 있고, 천자가 샘물을 마시고 3일만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삼일영천'이란 샘물도 있습니다.

     

    더 많은 곳을 돌아보며 큰 깨달음을 얻고 싶었으나,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간직한 채 절을 나섰습니다. '첫 마음을 잊지 말고, 이미 부처는 내 마음에 있다'는 깨달음을 간직하고 싶다는 신법스님의 말씀을 새기면서 말이죠... 

     

     

    송쓰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이야기가 담긴 여행지, 전통이 가득한 소중한 여행지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http://www.songss.kr @songss

    같이 보기 좋은 글

    전라의 인기글

    송쓰 작가의 다른글

    전체보기

    SNS 로그인

    복잡한 절차 없이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댓글을 남겨보세요!

    겟어바웃 에디터라면 로그인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