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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정주, 신정공항에서 생긴 일

    발없는새 발없는새 2011.03.29

     

     

     

     

     

    한겨울을 방불케 하는 눈발에도 무사히 공항에 도착한 후, 입국심사대에서 엄격한 규율을 상징하는 제복을 보며 "역시 중국은 중국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서 전혀 뜻밖의 순박함과 친절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정주를 통해 보았던 중국의 첫인상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현재의 중국을 이루고 있는 체제를 하나로 정의할 수 없듯이 뭔가 혼란스러웠습니다. 공산주의라고 하면 떠오르는 국가의 통제와 제한에서 여행자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앞으로의 여행이 더 기대됐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긴장했음이 역력한 표정으로

    입국심사대를 무사히 통과한 후에 일이 터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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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릇 여행에서의 설렘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은 바로 공항 밖으로 나설 때죠. 이는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지만, 첫눈에 확 들어오는 이국적인 풍경과 향취가 여행자의 심장을 폭주하게 만들고 뜨거운 피를 샘솟게 합니다. 이제 몇 분만 있으면 저는 그 기분을 또 한번 느낄 수 있을 참이었습니다. 언제라도 맞이하길 꺼리지 않을 그런...

     

    한껏 들뜬 기분을 가벼운 발걸음에 담아 수하물을 찾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컨베이어를 따라서 각양각색의 캐리어가 하나둘씩 지나가는 걸 바라보는 저의 입가에는 미소만이 흐르고 있었죠. 그러나 잠시 후, 점차 미소는 사라지고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저와 함께 탑승수속을 받은 이들이 대부분 캐리어를 찾는 걸 보자 조바심마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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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 아닐 거야, 설마..."라며 기우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야속하게도 컨베이어 위로는 눈에 익숙해진 캐리어만이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우려하던 일이 터졌음을 확신했습니다. 하필 제가 짊어지고 온 배낭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어느새 다른 일행들은 다 빠져나가고 저만 덩그러니 남겨진 공간에서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평소 침착하다고 자부했던 저도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수하물 분실이 일어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짧은 시간 내에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특히 배낭 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먼저 떠올리게 됐습니다. 우선 일정이 짧아 노트북은 안 가져왔고, 카메라를 비롯한 기기는 모두 제가 휴대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고가라거나 중요한 물건은 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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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의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공중전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놀랍도록 차분해졌습니다. 물질에 근거하여 철저한 계산을 앞세운 이성이 소유욕을 품은 한낱 감정의 혼란을 순식간에 잠재운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잃어버린 건 항공사측에서 보상을 해줄 것이라고 위로하며 안심했습니다. 얼마가 될지는 몰라도 비싼 물건은 하나도 없었으니 딱히 괴로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비록 가격에 따라서 중요도의 여부를 결정하고, 그에 대한 애착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긍정적인 현상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후에는 배낭의 행방을 찾아 기억을 더듬으며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수하물을 접수한 것은 확실하니 지금의 상황은 셋 중의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제 배낭을 고의든 아니든 간에 누군가가 가지고 갔을 경우입니다. 그런데 입국심사대를 통과하고 수하물을 찾는 곳으로 제가 가장 빨리 온 편이라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죠. 나머지 둘 중에 하나라면 몰라도 누가 가져갔다면 영영 못 찾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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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의 바깥에 차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우리나라랑 별 다를 바가 없죠?

     

     

    둘째는 한국에서 제 배낭이 기내에 실리지 않았을 경우이고, 셋째는 신정공항에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해 종적을 감췄을 경우였습니다. 당황한 채로 횡설수설하는 게 싫어서 이렇게 상황을 정리한 후, 조금이나마 진정하고 하소연을 할 곳을 찾았습니다. 마침 대한항공의 유니폼을 입으신 여자분이 계시더군요. 중국인으로 보였지만 제가 중국어를 못하므로 어설프게 영어로 말했습니다. "Excuse me. I can't find my bag". 그러자 여자분께서 제 얘길 가만히 듣더니 왈.

     

    "한국말 할 줄 아세요?"

     

    속으로는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이라는 반응이 나왔지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분이라 내심 반가웠습니다. 아무래도 고객과의 접점에서 근무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한국어를 꽤 유창하게 하시더군요. 비록 표현이 능숙하지 못해 한국인에게 한국말을 할 줄 아냐는 질문이 날아오긴 했으나, 웬만한 대화를 나누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 한결 맘이 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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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버스의 매표소입니다.

    이것도 인천공항이랑 똑같죠?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우선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답니다. 그러면 분실한 것이 기정사실로 되는 것 같아서 찝찝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어 하나하나 써내려갔습니다. 죄다 중국어로 기재된 문서라 당황했는데 작성이 필요한 부분을 친절하게 일러주시더군요. 그나저나 저조차도 인정하는 유치원생급의 악필을 중국까지 와서 유감없이 자랑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신고서를 작성하는 동안 옆에서 여자분은 상관에게 무전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작성을 마칠 즈음에 담당자인 듯한 한국인 남자분께서 오셨습니다. 어지간히 바쁘신지 오히려 배낭을 분실한 저보다 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먼저 혹시나 비행기의 수하물 공간 내에 배낭이 있는지부터 확인했지만 없다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연신 사과를 하시길래 괜찮으니까 인천공항에서 제 배낭이 실렸는지도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곧장 휴대전화로 연락을 취하셨지만 그쪽도 바쁜지 빠른 처리가 되지 않더군요. 저만큼이나 남자분도 맘이 조급하셔서 거듭 재촉했으나, 야속하게도 끝내 제대로 답변을 듣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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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폭설이 내렸습니다.

     

     

    재차 사과를 하시며 확인하는 대로 연락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듣는 것으로 일단락을 지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면서 소위 말하는 '진상'을 부려봤자 해결될 리는 만무하고, 그저 소모적인 행동일 뿐이라 수긍하고 돌아섰습니다. 설사 인천공항에 짐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음 항공편은 내일 들어올 예정이라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습니다. 다만 수십 분을 허비하고도 결론을 짓지 못하니 괜스레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습니다. 이건 뭐 희망고문도 아니고, 차라리 분실했음을 확정하고 깨끗이 포기하는 편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하는 수 없이 공항을 빠져나오려던 찰나에 걱정거리가 떠올랐습니다. 갈아입을 옷은 물론이고 세면도구까지 싸그리 없어졌다는 사실이! 이런 제 속내를 읽으셨는지 남자분께서 "세면도구는 있으신가요?"라고 여쭈셨습니다. 센스가 있으신 분이라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수하물이 분실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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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 농구의 자존심이자 'NBA'에서도 맹활약 중인

    야오밍이 모델로 나선 광고판! 

     

     

    없다고 답하자 남자분께서 임시로 쓸 수 있는 세면도구를 주시겠다며 어딘가로 뛰어가셨습니다. 이렇듯 유연한 대처를 보니 역시 한두 번 생기는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긴 수하물 분실에 대한 불만이 적힌 글을 인터넷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이번처럼 저한테 그런 사태가 들이닥칠 줄이야 꿈에도 몰랐었기에 문제지. 그런데 잠시 후...

     

    저쪽에서 나타난 남자분의 걸음걸이가 조금 전과 달라졌습니다. 마치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아틀라스처럼 힘겨워 보였습니다. "혹시?"라고 생각할 찰나에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띄시는 걸 보곤 저도 반색을 하며 종종걸음으로 다가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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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을 빠져나온 직후에 찍은 사진이

    영화 <더 로드>를 연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어깨에 저의 배낭이 걸려있었습니다. 애타게 찾았다고는 말 못해도 그립기는 했던, 인천공항에 남겨진 것은 아닐까 했던 그 배낭 말입니다. 곧이어 들어보니 뒤늦게 나타난 배낭에 얽힌 자초지종은 이랬습니다. 컨베이어를 따라 나오다가 끈이 어딘가에 걸려 멈췄는데, 그걸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수하물이 다 나갔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랍니다.

     

    약간의 부주의로 발생한 일이지만 어쨌든 찾았으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숱하게 읽었던 수하물 분실의 경험을 제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다만... 나중에 호텔에 도착해 확인해보니... 남자분의 설명과는 다르게 땅바닥에서 포복을 했는지 아님 누가 패대기를 쳤는지 몰라도 배낭이 흙투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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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으로 돌아올 때 공항에서 두 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용케 (당연히?) 저를 기억하시곤 먼저 다가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시더군요. 이 자리를 빌어 짧지만 파란만장했던 일을 도와주셨던 두 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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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제발~

     

     

     

     

    BONUS - Cinephile & Trav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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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로드 (The Road, 2009)

     

    이 영화는 정확한 시점을 밝히진 않으나 묵시룩적인 배경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종말이라도 들이닥친 듯이 세상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생명체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고 남은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일뿐인 것 같습니다. 생존자들의 일부는 살 곳을 찾기 위해 떠돌지만, 다른 쪽에서는 식인도 서슴치 않는 야만적인 생존본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처참한 상황에서 살아남고자 어린 아들과 아버지가 길을 나섰습니다. 어딘가에는 자신들이 바라는 희망이 존재할 것으로 믿으면서...

     

    <더 로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코맥 맥카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 소설 이전에 발표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2007년에 코엔 형제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비교는 뭣하지만, 문학으로는 <더 로드>가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나 영화화에서의 성공으로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압도적입니다. 전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데 반해 후자는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크고 작은 영화제를 휩쓸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만도 감독상,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색상을 수상했습니다.

     

    저는 <더 로드>가 개봉하기 전에 미처 소설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중반부까지 읽으면서 상상했던 참혹한 세상이 영화에서 충실히 그려지고 있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장면에 다다라서는 반사적으로 코맥 맥카시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많은 상을 받지는 못했으나 원작의 힘 덕분에 결코 실망적인 영화는 아닙니다. 인간성의 카오스 상태라는 소재에서 일면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와도 비슷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코맥 맥카시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더 로드>가 더 맘에 들었습니다.

     

    발없는새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고 여행을 꿈꾸는 어느 블로거의 세계입니다.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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