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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미르 고원, 혜초가 걸었던 순례의 길

    이교 이교 2011.04.07

     

     

     

     

    '여 행' 

     

     이 두 글자는 언제나 운치있게 다가온다.

     

     

    박목월의 시 '나그네'처럼 풍류 넘치는 발길을 그려보기도,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처럼 인생의 비밀을 찾아가는

    신비한 체험을 꿈꾸기도 한다.

     

     

     

     

     

     

     여행을 떠올릴 때 앓게되는 이 알 수 없는 미열은

    다시 떠나야만 사라지는 진통이었고,

     

    그래서 나는 또 다시 무작정 길을 나서게 되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언제나 여행은 애드립,

    별 생각없이 길을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길목인 우루무치로,

     

    다시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지나

    파미르고원의 중심인 타지키스탄에 이르게 되었다.

     

     

     

     

     

     

    자원부국으로 떠오르는 중앙아시아,

    하지만 타지키스탄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중앙아시아에선 흔한 자원도 하나 없고,

    김태희도 밭에서 일한다는 우즈베키스탄처럼

    농사를 짓기에도 환경은 척박하기만 하다.

     

     

     

     

     

     

     

    # 파미르의 동쪽 관문인 무르갑은

    파미르에서 가장 큰 도시로  소개되고 있으나

    사진에서 보이듯 그냥 작은 마을 수준이다. 

     

     

     

     

     

    # 마지막 사진은 사실 아이에게 폭력이지 않을까 해서 찍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저 자세로 한동안 멍하니 쳐다봐 주어서  결국 셔터를 누르게 되었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로

     700만의 인구 중 100만명이 넘는 남성이

     이웃나라로 돈을 벌러 떠나게 되었고,

    최근 단 세 번의 통화로 가능하다는 전화이혼통보가 급증했다.

     

    그리고 타직 울리마위원회(타지키스탄의 최고 이슬람기구)에서

    이 사태가 효력이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여파가 무관할 것 같은 고원지대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내겐 경탄스러운 비경도 이들의 눈엔 극복하기 힘든

    척박한 환경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의 삶에 동화되어  얻게되는 안도감은 잠시뿐.

    때론 그 삶의 질곡이 그대로 전이되어

    삶과 죽음, 신의 존재 등 평상시엔 떠올리기 힘든

    무거운 주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도 한다.

     

     

     

     

    프레임을 통해

    타인의 삶을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자신에게 더 큰 축복이다.

     

    이 성찰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데

    가장 원초적인 질문들,

     

    술자리의 친구에게 털어 놓았다가는

    "술이나 처먹어."

     소리를 들을만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하는 성장통과 같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도와주었다.

     

     

     

     

     

     

    현인들은 명상과 수행을 통해서

    이러한 질문들로부터 스스로를 단련하고 깨달음을 얻겠지만

     

    입시, 스펙, 취업, 결혼 등에 일희일비하고

    깊은 나락에 빠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까지

     그런 기회가 덜썩 찾아오기에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

     

    파미르의 압도적인 풍광은 

    천년도 더 전에 이길에 서 있던 혜초에게 해주었듯

    이런 고민의 흔적들을 보듬어 주고 자연의 순리에 기대어서

     

    때론 더 느리게 바라봐도 된다고...

     삶의 여유를 가지라고...조언해 주는 것만 같았다.

     

     

     

     

     

     

     

     

    윌리엄 워즈워스, 루소, 괴테, 몽테뉴, 혜초, 박지원

    우리를 앞서 간 수 많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이

     

      '길' 에서 영감을  얻었고

    중요한 건 목표나 결과가 아닌 '길' 그 자체였음을 가르쳐 준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인생선배 

    베르나르 올리비에, 파울로 코엘료같은 작가들도

    그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준다.

     

     

     

    *****

     

     '길에서 세상을 만나고 나를 만난다.'

     

    형님들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건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전해기지 힘든 가르침이

    나같은 한량에게도 조금이나마 느껴지고

    잠시나마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 건

     

    분명 느리게 갈 수 밖에 없는 파미르의 길과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었으리라.

     

     

     

     

     

     

     

    '좋았으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내가 젤 좋아하는 말인데,

      여자가 인생의 목표이고

    석가모니가 중국사람이냐고 묻고

    미국의 수도가 워싱턴인지 뉴욕인지 헷갈려하는

    친구녀석이 술에 취해 한 말이다.

     

     

     

    ***** 

     

    이 여행이 추억이었는지

    경험이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면역이 되었겠지 방심하다가

    처음으로 고산병을 극심하게 앓았고

    아직까지도 취업과는 거리가 멀다.

    집에서는 정신나간 놈 취급을 받고있다.

     

     

    그런데도 뭘 얻었냐고?

     

    지나고 보면 모든게 희미해져 가지만 그래도 또렷이 새겨진건

    무르갑에서 귀찮게 따라다니던 녀석들과,

    달아나는 양도 잊은채 낯선이를 신기해하던 녀석들의 미소이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여행의 이유는 충분했다.

     

     

     

     

     

     

    여행 기간 중 경험과 단상들

     

     

    * 이슬람을 신봉하는 중국 신장 지역과 중앙아시아에서 자신를 지켜주는 가장 확실한 한마디는 "앗쌀라무 알라이꿈" (신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하기를) 이다.

     

    이슬람지역 어디서나 통용되는 이 인사는 때론 커다란 마법을 부리는데  중국 우루무치에서 카자흐스탄 비자를 받을 때도 하루앞서 단돈 20$에  키르기스스탄에서 타지키스탄 비자와 파미르퍼밋을 받을 때도 당일날 발급되서 콧대높은 서양여행자들을 놀라게 했다. 

     

    중앙아시아가 젤 어려운 여행지로 꼽히는 이유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과 악명높은  경찰과 군인의 갈취인데 먼저 다가가서 건넨 이 한마디 때문에 어려운 그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고  그들에게서 얻었지, 잃은것은 없었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인사 한마디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곤 하는데 이게 사실 너무나 고맙지만 처음엔 황송했던 양고기요리도 두달이 지나자 물리고  한번 대접하는  양이 엄청난서 밥을 먹었어도 예의가 아닌거 같아서  주는거 다 먹다보니 몸에서 양고기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 파미르는 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동쪽으로는 중국 신장지역으로 뻗어있다. 이 평균 4000m가 넘는 길을 상하이 개발기구(중국,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참여)을 위시한 중국이 신장쪽부터 파미르를 거치는 길을 뚫고 있는데 이 신실크로드가 이 지역에 풍요를 가져다 줄지 ,재앙을 가져다 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분명한 건 많은 문명의 요소들이 들어오고 있는데 중국산 핸드폰은 이미 필수품이고  값싼 전자제품과 함께 불법 복제 CD, DVD들도 눈에 띈다. 그 중에는 우리 드라마와 이효리같은 가수들의 것들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리고 싸움을 마다않는 유목민의 기질답게 UFC의 영상들도 잘 팔리는데 불과 몇달 전의 대회까지 있는것을 보고 놀랐다. 북극에서 물개 밀렵해 해구신 만들어 팔고 아프리카에서 코뿔소 뿔(서각)을 밀매해서 최음제를 만든다 하더니 역시 중국 상인들의 상술이 대단하긴 대단했다.

     

     

    *  파미르 서쪽과 동쪽주민의 외모는 극명하게 다른데 동쪽은 티벳장족과 닮아있는 키르기스계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위의 사진들에서 보이듯 키르기스계통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양털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다. 

     

    반면에 파미르 서쪽으로 갈 수록  존경받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초록눈의 소녀의 사진과 같은 아프간 파슈툰족과 닮아있는 신비한 초록색 눈을 가진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파슈툰족 자체가 페르시아계로 구분하기도 그 전에 그리스가 뿌리인 박트리아인들의 후예라는 얘기도 있다. 타지크족 자체가 박트리아부터  페르시아의  역사를 공유했고 무수히 많은 교류와 혼혈이 있었겠으므로 구분하는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였다.

     

    한가지 특색은 파미르의  타지크족은 외모는 서양인인데 비해 키는 생각보다 작다. 이게 영양문제 때문인지 종족 고유의 특색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수도인 두샨베로 가면 체구가 큰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금발머리의 슬라브계도 눈에 많이 띈다. 아시아에서 인종의 전시장은 바로 타지키스탄이었다.

     

     

    * 아프가니스탄이 여행금지국가가 된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타지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가장 길게 국경을 맞대고 있고 파미르의 서쪽  호록에서도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여기가 막히는 바람에 인도에서 파키스탄을 거쳐 타지키스탄까지 갈 수 있는 루트가 차단 되었다.

     

    바로 길 건너편이 아프가니스탄인데 길 건너도 말리는 사람 하나없고 어렴풋이 보기에도 역사를 공유한 파미르 서쪽은 별로 문화나 민족차이가 없어 보였다. 중국, 타지키스탄간에도 통과할 수 있는 루트가 있지만 중국,타직 양 국가의 국민만 가능한 일이라 육로로 가려면 멀리 돌아가야 했다. 나갈때도 마찬가지로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중동쪽으로 나가거나 다시 비자를 받아서 왔던 나라를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파미르 구간 자체가 퍼밋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 된 마약의 유통통로라서 위험할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평화로운 일상들을 살고 있었다.  혜초가 돌아 온 길을 갈 수 없다는게 안타까웠고 그 시절이  유일하게 유리했던건 바로 국경과 비자 이것 하나다.

     

     

    * 차디찬 눈이 얼음 위에 쌓이고/차가운 바람이 땅이 갈라질 듯 매섭네/바다마저 얼어붙어 발라놓은 단(檀)인 듯하고/강물은 벼랑을 갉아먹고 있네/용문(龍門)엔 폭포수마저 얼어 끊기고/ 우물가장자리도 도사린 뱀처럼 얼어붙었는데/불을 벗하여 층층대를 오르며 노래하지만/어떻게 파밀 (播密파미르고원)을 넘을 수 있을까.

     

    혜초가 파미르를 넘으며 지은 오언시인데 여행시기가 6월이었는데도 있는 옷 다 껴입고 침낭속에서 몸을 파묻었지만 살을 에이는 추위는 견디기 힘들었고 그 당시 보온장비도 없이 파미르를 넘은 혜초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 중앙아시아에서 무엇보다 즐겨 먹었던 건 과일이다. 고온건조한 기후 때문인지 길거리 어딜가나 체리, 자두, 살구,석류, 오디, 수박등 자취생이 큰 맘먹기 전엔 사기 힘든 과일들이 널려 있었고 단 돈 몇백원에 맛볼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인데 여행중에 파미르지역에서 할리우드 입간판처럼 웰컴 투 아가 칸( Āgā Khān IV) 이란 문구를 많이 봤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사람은 세계적인 부호이자 파미르지역 사람들이 신봉하는 이스마일파의 49대 이맘이였다. 파미르의 호록의 중앙아시아 대학이나 많은 건물들이 이 사람의 기부로 지어졌고 파미르 지역에서는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교

    유쾌하고도 진중한 여행을 꿈꾸는 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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