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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싱키의 햇살은 시나몬 향이 나요

    밤비행이 좋아 밤비행이 좋아 2019.07.09

    햇살, 시나몬 그리고 헬싱키

    싱키의 햇살은 향기롭다. 전날 비행의 피로가 저절로 중화되는 기분이다. 유독 일광욕을 사랑하는 유럽인들은 태양이 높게 뜨는 여름철 오후 2시가 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바깥으로 나와 화창한 날씨를 즐긴다. 공원과 길거리 벤치는 눈을 감고 광합성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니 저렇게 무방비하게 있으면 까맣게 탈 텐데… 예전의 나였더라면 태양을 피해 카페로 피신하거나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양산으로 무장한 상태로 돌아다녔을 테지만 이제는 나도 일광욕 무리 중 하나가 되어 무방비하게 햇살을 즐기곤 한다. 일 년 중 단 한 번밖에 없을 이 시기, 이곳의 햇살이 이렇게나 향기로운데 그냥 날려버리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2019-06-07-10-59-08_25955296.jpg:: 카푸치노가 일품인 KANNISTON LEIPOMO

    2019-06-07-10-58-58_78170826.jpg:: 진짜 시나몬 롤을 접시에 쌓아 놓은 독특한 디스플레이

    요즘은 호텔 조식보다 근처에 있는 동네 카페에 가서 라떼나 카푸치노 한 잔에 그 도시의 시그니처 빵을 먹는 게 낯선 도시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큰 재미 중 하나다.

    2019-06-07-10-33-24_37612075.jpg:: 향신료 맛이 강하게 났던 특이한 시나몬 롤

    마침 헬싱키는 시나몬 롤이 유명하다.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주인공 사치에가 시나몬롤을 만드는 장면은 하도 많이 봐서 눈을 감아도 만드는 장면이 선하다. 북유럽의 휘게 라이프와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한 감성에 반해 심신이 지쳤을 때 찾아보곤 했던 <카모메 식당> 덕분에 헬싱키는 나에게 시나몬 롤과 갈매기의 도시로 각인되었었다.

    어릴 때부터 시나몬 향이 참 좋았다. 커피를 못 마시던 십 대 때는 핫초코에 시나몬 가루를 뿌려 마셨고 성인이 되어 카푸치노에 빠졌을 때는 꼭 시나몬 가루를 뿌려달라고 주문했었다. 심지어 집에서 호떡을 만들어 먹을 때는 호떡에 시나몬 가루를 뿌려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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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싱키에서도 평소 나의 ‘괜찮은 카페’ 기준에 적합하는 곳을 찾아 나섰고 호텔에서 5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KANNISTON LEIPOMO를 발견해 냈다. 자그마한 공간에 그날 만든 빵이 진열되어 있는 곳. 이미 카푸치노가 맛있다고 여러 블로거들 사이에서 정평이 난 곳이란다.

    무엇보다 창가 자리에 놓여있는 나무 테이블이 마음에 들었다. 접시에 진짜 빵을 잔뜩 쌓아 꽃과 함께 디스플레이를 해 놓은 독특한 곳이었다. 이런 게 북유럽 감성인 건가? 고민할 것도 없이 카푸치노와 시나몬 롤을 주문했고 시나몬 롤의 어마 무시한 크기에 다시 한번 이곳에 반해버렸다. 내 얼굴만 한 시나몬 롤과 부드러운 카푸치노에 벌써부터 헬싱키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2019-06-07-11-06-20_41992313.jpg:: 도시 한가운데 자리잡은 공원

    헬싱키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공원에 앉아 꽃향기를 맡고 있자니 이게 햇살에서 나는 향인지 어딘가의 꽃밭에서 날아오는 건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얼굴 좀 타면 어때,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괜히 감수성에 젖어 벤치에 앉아 다이어리를 펴고 이것저것 끄적거렸다. 흰 종이에 반사된 햇살에 눈이 부셨지만 햇살에 취해 전혀 개의치 않고 뒤통수가 뜨거워질 때까지 앉아있었다.

    2019-06-07-11-15-46_42295788.jpg:: 벤치에 앉아 일광욕하는 사람들

    헬싱키 시내에 대한 첫 감상은 ‘잘 정돈되어 있다’였다. 길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블록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어서 길치라도 지도만 보고 길을 잘 찾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쉽다. 신나게 햇살을 쬐고 공원을 지나 10분 정도 걷다 보니 항구가 나왔다.

    항구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헬싱키 대성당(helsingin tuomiokirkko) 그리고 오른쪽에는 우스펜스키 대성당(Uspenski katedraali)이 위치해 있다. 새하얀 순백색을 자랑하는 대성당과 붉은 벽돌의 건축물. 하나는 루터교 또 다른 하나는 정교회다. 교파가 다른 만큼 두 건축물의 양식 또한 완전히 다르다.

     


    헬싱키 대성당 Helsingin Tuomiokirkko
    위치 - Unioninkatu 29, 00170 Helsinki, Finland

    2019-06-07-11-44-54_18307435.jpg:: 헬싱키 대성당 앞 줄지어 지나가는 단체 관광객

    헬싱키 대성당은 멀리서도 눈에 선명하게 들어올 정도로 거대하다. 티 하나 없이 새하얀 이 건축물 보는 순간 압도당했다. 한 시선에 담기조차 버거운 이 거대한 대성당을 향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수록 성당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마침내 정상에 당도해 성당 뒤쪽으로 한 바퀴 돌아 안으로 들어서니 의외의 소박함이 나를 맞이했다.

    2019-06-07-11-28-52_55268029.jpg:: 마치 신전 같은 대성당의 기둥

    2019-06-07-11-37-03_14969776.jpg:: 대성당 뒤편에 위치한 오르간

    생각보다 작은 규모와 간소함에 놀랐다. 그 흔한 스테인드글라스도 화려한 그림도 걸려 있지 않았고 오로지 한쪽 면에 자리 잡은 파이프 오르간이 전부였다. 때마침 오르간 주자가 연습을 시작했고 경건한 공간에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가득 찼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헬싱키 대성당을 보고 갑자기 찾아온 허기에 우스펜스키 대성당을 빠뜨리고 바로 카우파토리 마켓 (Kauppatori)으로 향했다. 배고픔에 우스펜스키 대성당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닫고 배고픔에 눈이 먼 스스로를 원망했다. "괜찮아. 연어가 그만큼 맛있었잖아!" 스스로를 위로했다.

     


    카우파토리 시장 Kauppatori Market
    위치 - Eteläranta, 00170 Helsinki, Finland
    운영시간 - 6:30-18:00(월~금), 6:30-16:00(토), 10:00-17:00(일)

    2019-06-07-12-25-12_99609785.jpg:: 항구 옆에 위치한 카우파토리 마켓 건물

    2019-06-07-12-23-08_48119172.jpg:: 스퀘어 마켓을 지나 항구 근처까지 오면 온갖 식재료가 모여 있는 카우파토리 마켓 건물이 보인다.

    카우파토리 마켓은 길거리 노점상이 펼쳐져 있는 시장 광장(Market Sqaure)을 지나 항구 안쪽에 위치한 건물이다. 핀란드 전통 식재료와 해산물 요리 그리고 가볍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점이 모여있다.

    2019-06-07-12-10-10_15266730.jpg:: 훈제 연어를 올린 곡물 빵 한 접시

    연어, 굴, 게 등 싱싱한 해산물과 이름도 모르는 훈제 햄, 고기들 심지어 사슴 가죽까지 팔고 있다. 정어리 캔, 커피, 잼 등 기념품으로 사 올 수 있는 것들도 꽤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에서도 시선을 확 사로잡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연어였다. 안 그래도 연어를 좋아하는 데 헬싱키에서 신선한 연어를 먹을 수 있다니! 고민할 여지도 없이 훈제 연어를 올린 곡물 빵 하나를 주문해서 눈 깜짝할 새에 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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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 한 잔이 절실했으나 밤 비행이 날 기다리고 있었기에 개인적으로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꼭 모둠 해산물 한 접시와 와인 한 잔을 주문하겠다고 굳게 다짐한 채 와인 대신 물을 마셨다.

    항구 바로 옆에서 시티바이크를 빌려 도시를 한 바퀴 돌았다. 요즘 한창 자전거 타는 거에 빠져있어서 유럽 도시에 올 때면 언제나 공공 자전거가 있는지 찾아보곤 한다. 등록도 쉽고 가격도 저렴해서 온라인으로 미리 등록을 해놓고 바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헬싱키 시티바이크 Helsinki Citybikes
    웹사이트 - http://hsl.fi/citybikes
    특이사항 - 헬싱키의 시티바이크는 등록비 5유로에 하루 종일 이용이 가능하고 처음 30분은 무료다.

    2019-06-07-11-18-16_16022038.jpg:: 곳곳에 놓여있는 시티바이크 정류소

    2019-06-07-12-38-22_30725954.jpg:: 시티바이크를 타고 가다 마주친 군악대

    아 근데 거기에 정말 괜찮은 카페가 하나 있어, 꼭 가봐!

    시벨리우스 파크의 위치와 자전거 정류소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임시 관광안내소를 찾았는데 잘생긴 관광안내원이 근방 지도와 함께 카페를 추천해줬다. 상관없는 맥락이지만 그의 눈동자 색깔은 푸른 호수 같았다. 어쨌든 그가 추천해준 곳은 시벨리우스 공원 근처에 위치한 카페 레가타(regatta)였다. 헬싱키 주민들은 물론 이미 관광객 사이에서도 유명한 곳인 듯했다.

    2019-06-07-13-20-07_55068380.jpg:: 핀란디아 홀

    2019-06-07-13-35-09_80981683.jpg:: 국립 오페라 하우스

    자전거를 타고 시벨리우스 공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핀란디아 홀, 오페라 하우스, 뮤직 센터 그리고 새로 지은 국립도서관까지 문화 예술의 집합지를 지나쳤다. 한 곳에 모여 있는 각종 공연장을 보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본 발레 공연이 언제였나 새삼 서글퍼졌다.

    도하에 살면서 안타까운 것 중에 하나다. 문화 예술을 향유할 기회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 저 공연장 안에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페달을 밟았다. 시벨리우스 공원까지 언덕길이 이어져 허벅지가 터지도록 페달을 밟아야 했다.

     


    카페 레가타 Cafe Regatta
    위치 - Merikannontie 8, 00260 Helsinki, Finland
    운영시간 - 8:00-23:00
    특이사항 - 핫초콜릿 혹은 주스 등 시원한 음료도 있지만 커피 메뉴는 필터 커피 딱 하나다!

    2019-06-07-14-04-14_51825351.jpg:: 시골집 같은 카페 레가타

    2019-06-07-14-04-20_87616856.jpg:: 실제 자동차가 아닌 독특한 조형물

    시벨리우스 파크 안쪽으로 들어가면 강이 있는데 보트를 타는 작은 선착장 쪽에 아기자기한 집이 한 채 있다. 카페 레가타다. 나무판자로 지은 작은 창고 같은 곳인데 보는 순간 시골집을 연상케 한다. 이곳의 원앤온리 메뉴인 필터 커피를 투박한 머그컵에 따라준다. 종류는 딱 한 가지라 메뉴판을 볼 것도 없다. 필터 커피 순한 맛이냐 강한 맛이냐만 결정하면 된다.

    신기하게도 리필이 되는데 리필을 하고 나면 리필 머니로 50센트를 돌려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지만 리필이 된다니 너무 좋았다. (라떼를 원한다면 카운터에 비치된 우유를 직접 따라 라떼로 제조하면 된다.)

    2019-06-07-14-04-33_24855396.jpg:: 카페 레가타 입구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전부다 호숫가에 자리를 잡아 카페 안에 4개뿐인 테이블이 모두 비어 있었다. 레가타의 분위기를 더 느끼고 싶어 나 혼자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마치 인상주의 화가의 풍경화 같은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 물론 바닐라 시럽을 듬뿍 올린 블루베리 파이와 필터 커피를 풍경에 곁들였다.

    방금 로스팅 한 프레시 커피보다 내린 지 한참 된 이 필터 커피가 훨씬 맛있는 이유는 분명 분위기 때문일 거야

    2019-06-07-14-10-44_32379985.jpg:: 이곳의 시그니처인 필터 커피와 블루베리 파이

    딱 시골집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컨트리 송이 지지직거리며 흘러나오고 싸구려 페인트칠을 한 나무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나무 벽에 걸린 각종 주전자와 찻잔, 싸구려 장식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더위 아래 지친지도 모르고 걷고, 자전거 페달을 굴리면서 헬싱키 시내를 돌아다닌 모양이다. 아늑한 레가타에 앉아있으니 몸이 노곤해지면서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만 같았다.

    목이 화끈거려 거울을 보니 쇄골 근처 피부가 벌겋게 변해있었다. 아까 먹은 해산물이 알레르기 반응이 온 건가 싶어 자세히 보니 원피스의 넥 라인 그대로 목만 빨갛게 타버린 것이다. 하긴, 선크림도 안 바르고 햇살이 좋다고 선글라스만 끼고 온종일 북유럽의 태양 아래를 쏘다녔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에게  헬싱키는 그냥 조용한 북유럽 도시 중 한 곳이었다. 컬러풀한 색감보다 무채색을 즐기는 사람들과 차분하고 절제된 미를 사랑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직접 본 헬싱키는 활기가 넘치고 반짝이는 곳이다.

    무엇보다 시나몬 롤이 제일 맛있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가볍고 달달한 향에 이끌려 입에 넣어보면 정작 진한 달콤함보다는 알싸한 향과 강한 여운을 남기는 시나몬처럼 헬싱키는 직접 와봐야 알 수 있는 깊은 매력을 지닌 곳이다. 헬싱키는 지금 여름 낮 기온 26도, 딱 걷기 좋은 최적의 날씨다.

    밤비행이 좋아

    내 인생은 하나의 움직이는 축제에요.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걸 글로 옮겨요. brunch.co.kr/@avecr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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