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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의 황산벌, 유대인들의 최후의 항전지 마사다!

    On air On air 201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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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에도 백제의 황산벌과 같은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자신과 가족들의 죽음을 불사하면서 적에게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항거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마사다는 백제의 황산벌과 참 많이 닮아있다.

    마사다(Masada)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을 가진 지역으로 기원전 40년에 헤롯 왕이 폭동과 반란에 대비해 황야에 지은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로마군에 의해 요새가 포위 당하고 공격받을 때도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항거 정신은 혼란스러운 중동의 정세에서도 지금의 이스라엘을 있게 한 근본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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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마사다는 높이 400m에 지어진 요새로 아래에서 올려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높이에 왜 난공불락의 요새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스네이크 패스라 불리는 꼬불꼬불한 트래킹 코스를 따라 1시간 반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케이블카를 타면 3분 정도 소요되는데 광야 위로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을 1시간 반 동안이나 견딜 자신이 없어서 필자는 케이블카를 선택했다. 이럴 땐 정말 문명이 주는 편리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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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다는 기원전에 세워진 요새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에는 학교와 회당, 목욕탕, 곡물 창고 등이 마련되어 있어 사람이 지내기에 부족할 것이 없었다. 수천 명의 사람이 몇 년간 먹을 수 있는 식량과 식수도 준비되어 있었고, 식용을 위한 비둘기 사육장까지 있었기에 3년 동안 계속된 로마군의 포위에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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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야 한가운데 위치한 요새였기에 무엇보다 가장 큰 관건은 바로 식수의 확보였는데 마사다에는 그 비밀을 알려주는 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수돗물을 컵에 담아 모형에 물을 부어 보면 광야에 비가 내렸을 때 어떤 방식으로 물이 마사다 요새로 흘러드는지 이해할 수 있다. 기원전에 지어진 건축물도 이렇게 과학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당시 헤롯 왕은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해 듣고 베들레헴 일대의 두 살 이하 유아를 모조리 죽이라 명했을 정도로 잔혹한 왕이었다. 폭정으로 인해 민심은 잃었지만 요새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고, 저장할 수 있도록 열두 개의 물 저장소를 바위 안에 만드는 등 건축물을 계획하고 건설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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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지대에 위치한 마사다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광활하게 펼쳐지는 유대 광야와 저 멀리 사해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이 가히 장관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로 만들어진 좁은 통로를 통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찔하지만 이런 풍경을 감상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그 오래전 이곳에 살았던 유대인들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드넓게 펼쳐진 광야를 바라보면서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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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반 북쪽으로는 높이가 낮아지는 세 개의 테라스가 있는데 이곳은 헤롯 왕이 거처하던 호화로운 저택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하루 종일 내리쬐는 광야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가장 해가 들지 않는 서늘한 북쪽에 저택을 지은 것만 보더라도 헤롯 왕의 건축에 대한 혜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광야에 있는 바위산 위에 요새를 만든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요새에 물을 공급하고 저장하기 위한 체계와 일조량까지 고려해서 저택의 방향까지 계산했다고 하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 덕분에 마사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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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모든 것이 완벽했던 난공불락의 요새, 마사다는 로마군의 공격을 받게 된다. 로마군을 피해 예루살렘에서 도망쳐 온 천여 명의 유대인들은 이곳 마사다에서 3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로마군의 포위 공격을 견뎌내면서 버텨냈다.

    마사다 요새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당시 로마군이 주둔했던 캠프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2천 년 전의 흔적들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1만 5천 명의 로마 군들은 마사다를 가운데 두고 둘러싸듯 캠프를 설치한 채 주둔하면서 돌 대포까지 동원하며 수차례 공략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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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마침내 로마 군은 요새의 서쪽에 요새 높이와 같은 거대한 토성을 쌓기 시작했다. 토성이 완성되자 성벽을 넘어 마사다로 진격해 들어갔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천여 명의 유대인들은 이대로 적에게 포로로 잡혀 수치를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로 했다. 자살을 금하는 유대인들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 방법을 택했다. 

    요새가 함락되자 식량 창고를 제외한 모든 건물에 불을 질렀는데 식량 창고만 남겨둔 이유는 자신들이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한 것이지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마지막까지 결사 저항의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이때 이후로 이스라엘이 재건된 1948년까지 약 2천 년의 세월을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되었지만 지금도 마사다에 오르면 2천 년 전 그들이 절망 속에서도 보여주었던 투지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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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마사다는 유대인들의 최후 저항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으로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 군인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이들은 바위산을 걸어서 오르면서 "다시는 마사다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겠다!"라는 다짐을 한다고 한다.

    On air

    사진찍고, 여행하며,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여행자입니다. :) • 한국관광공사 세계여행 필진 • Naver 세계여행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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