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날이 언제 있었냐는 듯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다채로운 색이 가득한 가을에는 특히 더 생각나는 제주. 제주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일정에서 빼놓으면 안 될 오름들을 소개한다.
나 홀로 나무와 수많은 억새가 손짓하는 '새별 오름'
제주 서부에 위치한 새별 오름은 가을 오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오름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억새의 장관, 바람이 불 때마다 나부끼는 억새들의 연주 소리까지. 하지만 그 장관을 보기 위해서는 혹독한 등산을 해야 한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완만하고 오래 걷는 구간과 가파르지만 덜 걷는 구간으로 나누어지는데 나는 전자를 택하고 올라갔음에도 올라가는 도중에 몇 번이나 멈춰서 하늘을 바라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올라오는 사람들 모두가 헉헉대는 모습이 마치 내 모습 같고 우리의 모습 같다. 그 풍경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아빠보다 앞장서서 가던 씩씩한 꼬마 아이, 손을 꼭 잡고 올라가던 모녀, 업어 달라고 장난치는 연인들까지.
모두가 올라가는 길 내내 계속 고개를 들어 정상의 위치를 확인했지만 곧이어 산들바람이 부는 정상에 올라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히고 있다.
정상까지 올라가기 어렵다면 오름 아래 산을 둘러싸고 있는 억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가을 제주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새별 오름에 간다면 잊지 말아야 할 나 홀로 나무. 새별 오름과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니 위치를 꼭 확인하고 가야 한다. 걸어가기엔 너무 멀다. 2월 정월대보름이 되면 오름 전체를 태우는 들불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장관을 만든다고 한다.
새별 오름
풍경과 일몰이 아름다운 '백약이 오름'
제주 동부에 위치한 백약이 오름은 하루의 여행에서 꼭 마지막에 찾게 되는 곳이다. 천국의 계단처럼 오름까지 이어진 계단을 걷다가 중턱쯤 올라서면 뒤를 한 번 돌아보자.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릴 것이다. 또한 산 중턱을 제 세상처럼 씩씩하게 뛰어노는 방목된 소를 만날 수 있다.
정상까지는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정상에 서면 시원한 계곡물에 퐁당 빠진 듯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 360도를 뱅글뱅글 돌아봐도 눈에 거슬리는 무언가가 하나도 없다. 툭 튀어 올라온 고층 빌딩이 하나도 없이 내 발밑으로 온전히 초록한 세상이 펼쳐지니 자연스럽게 두 팔이 벌어진다.
가시거리가 좋은 날은 저 멀리 성산 일출봉도 볼 수가 있다. 또한 분화구처럼 생긴 정상을 따라 동그란 원을 그리며 산책을 할 수가 있다. 꼭 일몰 시간대에 방문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언덕 어딘가에 털썩 앉아 저무는 해를 바라보는 것으로 긴 여운이 남는다. 언제든 가을 제주를 생각하면 이 오름 위에서 보았던 일몰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백약이 오름
가볍게 오르기 좋은 '안친 오름'
제주 동부의 가벼운 오름을 찾는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안친 오름. 입구가 애매모호해서 찾아가기 어려울 수는 있으나 한번 오르고 나면 그 매력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오름들은 모두 20분 이상 올라가야 하는 오름뿐이었지만, 안친 오름은 정상까지 약 5~10분 밖에 걸리지 않는 낮은 오름이다.
안친 오름은 짧은 시간 오른 것치고 무시할 수없는 아름다운 전망을 뽐낸다. 단 5분으로 만날 수 있는 제주 풍경이 이 정도라니. 제주에 대한 사랑이 샘솟는 곳이다.
불쑥불쑥 올라온 오름들을 내려다보지 않고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오름의 매력이다. 흐린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구름에 가려진 흐릿한 산의 능선의 굴곡이 아름다웠다.
안친 오름
차 타고 올라가는 '군산 오름'
제주 서쪽 아래 서귀포에 위치한 군산 오름. 많이 알려진 오름은 아니지만 이미 군산 오름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 풍경에 반해 계속 발걸음을 하게 된다고 한다.
군산 오름까지 가파른 언덕을 타고 올라가다가 산의 정상에 거의 다다라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나서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정상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꿀인 오름이 있는가!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고 주차장에서만 내려다봤는데도 이미 정상에 도착한 듯 눈앞으로 절경이 내려다보인다. 다만 주차장이 넓지 않고 경사도 매우 가파른 1차선 도로이기 때문에 내려가고 올라가는 차들 사이 안전운전이 필요한 곳이다.
군산 오름
가을 오름의 대표주자, 억새가 노래하는 새별 오름, 오름을 따라 나있는 계단과 일몰이 아름다운 백약이 오름, 가볍게 오르기 좋은 안친오름, 차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군산 오름까지.
이번 가을 제주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다양한 매력이 넘치는 오름 여행은 어떨까.
소박한 여행과 소소한 순간을 좋아합니다. 빛나는 순간, 푸른 오늘을 담고 이야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