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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보도 가능한 겨울 한라산 등산 코스

    민양 민양 2020.01.16

    카테고리

    제주, 풍경, 겨울, 에피소드

    "니가 등산을 한다고?"
    "응 그냥 뒷산 가는 건데 뭐"

    주도민에게 그저 뒷산이라 표현되기도 하는 한라산은 해발 1,950m의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뒷산이라고 허세 가득한 말로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필자는 무릎도 좋지 않고 낮은 오름조차 올라가기 힘들어하는 저질체력의 소유자랄까. 평생 겨울 산을 가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적도 없고, 중학교 소풍 때 이후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한라산이었는데 무엇이 나를 산으로 향하게 했느냐?

    그 답은 달갑지 않은 '인생 권태기'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나의 가치를 잃었다고 생각했던 시기, 가장 싫어하는 것을 해보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도전한 겨울 한라산 등산은 꽤 매력적이었고 현재 나를 유혹하는 가장 큰 겨울의 선물이기도 하다.


    551_(2)_65439173.jpg:: 영실코스 휴게소

    한라산 등산을 위한 코스는 여러 곳이 있었고 가장 멋있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건 '관음사' 코스이다. 아직 한 번도 도전해보지 않은 코스이자,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는 코스이자, 초보에게는 체력의 한계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힘든 코스.

    그런 도전은 하고 싶지 않아서 비교적 쉬운 성판악 코스를 고려했었지만 등산 초보에 겨울산은 처음이라 무리일 수 있다고 판단, 초보에게도 열려있는 '영실 - 어리목코스'로 최종 결정했다. 영실 코스로 올라가 그대로 하산해도 되지만 다른 풍경을 보고 싶어서 어리목 코스로 내려오는 것으로 선택.

    차를 타고 한라산 영실 휴게소 근처에 주차 후 출발 준비 완료. 휴게소에 들려 간단하게 김밥과 간식을 먹고 미리 준비해둔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받으려 했으나, 당시엔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불가능했다.

    최종 목적지에 도달 후 따뜻한 차나 음료, 라면 등을 먹고 싶다면 미리 따뜻한 물을 보온병에 담아서 올라갈 것! 휴게소에서는 뜨거운 물을 받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다행히 다른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미리 받아둔 게 있어서 다행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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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준비해 놓은 컵라면 외 행동식을 따로 준비하는 것을 추천한다. 달달한 초콜렛은 필수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등산이 쉬운 일은 아니기에 나를 버겁게 하는 무거운 짐은 모두 내려놓고 가길. 마음의 짐이 있다면 한라산에 내려두고 오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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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등산의 필수 아이템, 눈 쌓인 곳을 걸을 땐 아이젠이 필수다. 등산에 대해 알 필요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나를 위해 동행했던 언니가 아이젠부터 패딩, 점퍼, 아이젠, 담요 등의 짐을 바리바리 챙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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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과 첫 겨울 산을 오르게 된게 신의 한 수였다. 나 때문에 모두들 천천히 오르기도 했고, 더 어렵고 멋진 풍경의 코스가 아니라 본인들에겐 쉬운 코스인 영실로 향했을 상황이 미안하면서도 감사했다.

    챙김 받을 나이가 아님에도 한 언니의 정성스러운 챙김을 받으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지만, 아이젠은 처음부터 착용할 필요가 없었다. 빙판이나 눈길이 있을 땐 좋았지만 그렇지 않을 땐 오히려 불편한 게 많았으니, 어느 정도 눈이 쌓인 곳에서부터 아이젠을 착용하길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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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좋지 않을 거라는 건 한눈에 직감했다. 맑은 하늘이 나를 마주해주길 간절하게 바랐지만 시작부터 안개가 낀 겨울산은 아쉬움으로 가득할 거라는 생각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상쾌한 공기와 눈 쌓인 한라산을 조심스레 걷는 필자의 기분은 그야말로 천국의 구름을 밟는 기분이었다고 하면 표현이 됐을까. 처음이라는 게 이렇게 큰 설렘을 주는 것일 줄은, 그리도 싫어하던 등산이 이리도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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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젠을 벗어던지고 산을 오르고 또 오른 지 몇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한라산의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온 세상 하얗게 물든 세상을 기대했으나 적당히 하얗고, 적당히 색감 있고, 적당히 흐린 날이 살며시 미소 짓고 있었다. 활짝 웃어주길 바랐던 욕심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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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듯 나타난 맑은 하늘은 또 순식간에 안개로 나를 감싸 안았다. 분명히 멋진 뷰가 보여야 할 장소임에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 나를 씁쓸하게 했다. 좋았다가 씁쓸했다가 상쾌했다가 쓸쓸했다가. 감정 기복이 춤을 추게 만드는 한라산이었거늘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생애 다시없을 순간이니까. 다시 겨울의 한라산을 만나더라도 '처음'이라는 단어는 이미 사용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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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듯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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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만들어 놓은 나무 눈사람이 내 얼굴 표정을 대변해주었다. "이게 뭐야.", "맑은 날씨 어디 갔어?"라는 표정이랄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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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일 없다는 말처럼 나는 산을 오르고 있다. 평생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 추운 날씨지만 오르다 보면 몸에 땀이나서 열이 생기기 때문에 두꺼운 패딩이나 우모복은 오히려 좋지 않단다. 초반에 입었던 두꺼운 패딩 점퍼를 벗어던지고 바람막이만 입고 등산을 했는데, 모르긴 몰라도 그게 맞는 방법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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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의 히말라야화. 눈 덮힌 산과 필자의 마음은 마치 히말라야 등반을 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크나큰 일을 해 낸 것이나 다름없으니 마음가짐만큼은 그러해도 되지 않겠는가. 참고로 내가 서 있는 곳 뒤로는 한라산이 있고, 청명한 하늘이 반기는 날에는 눈 쌓인 한라산의 모습이 평생 명장면으로 남을 만큼 감동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하나의 명장면을 만나기 위해 오른 길에 그 장면은 탄생하지 않았고, 필름을 펼쳐 놓은 듯 상상으로 그 자리를 채웠다. 언젠가 꼭 보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며 바삐 다시 걷는 길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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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눈보라가 쳤더라면 '인생 영화'를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안개가 나를 가로막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551_(13)_18147443.jpg:: 한라산 윗세오름 휴게소

    "말도 안 돼! 내가 겨울산을 올랐어요!" 신나서 한참 방방 뛰며 돌아다니다가 추위가 몰려와서 급하게 패딩을 입었다. 바람막이를 입고 등산을 한 후 바로 두꺼운 옷을 입지 않으면 감기에 걸릴 확률이 높으니, 목표지점에 도달하자마자 몸을 따듯하게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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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 1,700미터의 윗세오름. 코스가 코스이니만큼 여기가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셈. 영실 코스는 한라산 백록담을 볼 수 있는 코스가 아니다. 오는 길에 한라산을 바라볼 수 있는 코스로, 날씨가 흐리면 그조차 볼 수 없다는 걸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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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온병에 담아 놓은 뜨거운 물이 빛을 발했던 시간. 비록 그 물이 부족하고 조금 식기도 했지만 그래도 산에서 먹는 라면은 꿀 맛이었다. 다시없을 그 맛. 아, 감동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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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의 휴식을 끝내고 바로 어리목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더 지체되면 하산 자체가 힘들어질 것 같아 걸음을 빨리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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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실 - 윗세오름 - 어리목 코스로 왕복 총 소요시간은 4시간 반. 등산이라고는 중, 고등학생 때 이후 단 한번 했었고 겨울 산은 처음이었던 초보를 기준으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성판악 코스, 난이도가 높으나 더 감동스러운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관음사 코스를 추천한다. 물론 관음사 코스를 내가 가 볼 일이 있을까 싶지만, 마음만은 이미 그 한가운데에 있다.

    겨울산의 매력을 알았으나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걸 보니 어렵긴 어려웠었나보다. 제주도의 제대로 된 매력을 마주하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겨울 한라산 등산. 새로운 경험에 욕심이 난다면, 지금 새로운 세계로 갈 준비를 해 보세요. 한라산이 큰 선물을 만나게 해 줄 수도 있습니다.

    ▶ 겨울 한라산 등산 준비물 : 
    바람이 잘 통하는 상/하의, 우모복(패딩) 상의, 바지 안에 레깅스, 겨울 등산양말/등산화/아이젠, 등산 스틱, 겨울 모자(귀를 막을 수 있는 것), 배낭, 버프(혹은 마스크), 행동식,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비상약(파스 등)

    ▶ 초보 겨울산 등산 팁 : 
    등산 시작 시 기온이 낮더라도 우모복 보다는 바람 잘 통하는 상의에 바람막이를 입는 것이 좋습니다. 등산을 하다보면 땀이차고 몸에 열이 생겨 답답하고 두꺼운 우모복은 오히려 좋지 않다고 하네요. 목표지점에 도달 후엔 바로 패딩(우모복)을 입는 것이 좋습니다.

     

    민양

    여행의 순간엔 예쁘지 않은 시간도, 기억의 순간엔 예쁜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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