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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이면 생각나는 그 여행지, 평양

    트레커 트레커 2011.11.02




    매년 11월이 되면 추억의 가을 여행지가 새삼 떠오르곤 합니다. 만추에 접어드는 계절의 아름다움은 여행에 대한 강한 유혹을 발산하기 마련입니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 낭만에 젖어들기 쉬운 계절이 바로 11월 만추의 계절입니다.


    이 11월 계절에 떠난 여행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 여행지가 하나 있습니다.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변하는 남북 관계 때문에 쉽게 가보지 못하는 곳. 바로 휴전선 너머 북한 땅을 여행한 기억입니다. 어느새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이야기입니다.


    쉽게 가보지 못하는 북한 땅을 여행하게 된 계기는 ‘생뚱맞게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일정이었습니다. 물론 이 일정 중엔 평양 시내와 묘향산 등을 관광하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기간으론 지난 2005년 11월 23일부터 26일까지 3박 4일 일정이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85627" align="aligncenter" width="500" caption="고려호텔 33층에서 바라본 평양의 일출과 운무"][/caption]




    평양. 말로만 듣고 TV화면 속에 흑백으로 처리된 웬지 무겁게만 느껴지던 북한 땅, 그 심장인 평양을 직접 여행한다는 생각에 출발 당일은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전세기편으로 서해 직항로를 날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웬지 모를 만감이 교차했던 기억입니다.


    평양에서 보낸 3박 4일 일정은 당시 함께 방북한 144명의 남측 일행들에겐 모두 평생 기억에 남을 시간이었을 겁니다. 북한 땅, 그것도 평양 시내를 2시간 여 동안 달릴 수 있었다는 사실은 꿈만 같았으니까요. 당시 마라톤 대회는 하프코스로 진행되었습니다. 평양 시내와 남포 방향으로 뚫린 대로변 왕복구간 약 21㎞를 마음껏 달리는 코스였습니다. 


    ‘평양-남포간 통일마라톤대회’가 열린 당일 24일 이른 아침의 기억입니다. 무심코 선잠에서 깨어 숙소인 고려호텔 33층의 동쪽 창문을 열었을 때 보았던, 새벽 운무에 뒤덮힌 평양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마치 외부에 그 실체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은 미지의 도시, 혹은‘천공의 성’을 연상시키는 듯한 구름 위 고층 건물군 모습이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85633" align="aligncenter" width="512" caption="평양시내 민족식당"][/caption]





    평양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외래인을 맞이하는 곳은 순안공항입니다. 낮고 아담한 공항 건물이지요. TV에서 간혹 보아오던 외관과 실내 구조는 역시 실물로 접해보니 국제공항 규모로는 크기가 매우 협소한 느낌이었습니다. 전력 사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부 전등만 켜놓은 다소 어두운 공항 세관대를 통과하면 비로소 북한 땅에 들어선 느낌을 받게 됩니다.


    순안공항에서 평양 시내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 소요되는 대체로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만추의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평양 시대에 이르는 길가 주위에 늘어선 주택 모습은 이곳이 바로 북한 땅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주기에 충분히 낯선 건축 환경이었습니다


    우리로 보면 다세대주택에 해당하는 4~5층 단위의 공동주택들이 길가에 늘어 서 있는 풍경은 처음 북한 땅을 찾은 건축인의 눈을 집중시키에 충분했습니다. 일률적인 건물 배치와 벽면 색이 바랜 회색 건축물들은 마치 우리네 80년대 초반 도심 외곽의 낡은 다세대주택단지를 보는 듯 했습니다.


    평양 시내 도심에 가까이 접근하면서 길가엔 점차 고층아파트군들이 눈에 뛰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언덕 위에 세워진 20층 내외 규모의 아파트들은 그 규모에 비해 대부분 유리창이 달리지 않은 앙상한 창문틀로 인해 허허로운 느낌마저 들게 해주었던 기억입니다.


    초겨울 바람을 막을 유리창도 없이 나무로 만든 창문틀만 앙상한 모습은 평양 시내 건축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건축 자재와 물자 부족 실태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기회였는데 6년이 지난 지금은 좀 변했을까요? 당시 건축인으로서 참 가슴이 아팠던 기억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85632" align="aligncenter" width="512" caption="고려호텔 북한식 만찬 "][/caption]





    평양의 전체적인 도시 규모는 서울보다 훨씬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구는 300만 명 정도에 불과하지요. 도로와 고층건물들 사이론 맨땅과 녹지 공간이 공존하는 도시였습니다. 도로를 지나는 차량도 별로 없어서 상대적으로 공기도 맑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마치 도시와 시골이 공존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당시 도로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군밤, 군고구마’판매대는 이채로운 평양의 한 풍경으로 기억됩니다.


    인상적인 것은 평양 시내엔 우리로 말하자면 주상복합형 건물이 많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일행이 묵었던 고려호텔 앞에도 30층 규모의 공동주택형 건물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리발소, 미용실, 도서열람실, 남새(채소)상점, 식당 등이 주상복합형 건물의 저층부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일정 동안엔 숙소였던 고려호텔 인근 민족식당과 민예전시관, 보통강변의 원형식당, 통일거리의 평양단고기집, 만경대와 개선문, 만수대창작사 등을 방문했었지요. 이밖에도 평안북도 향산에 있는 묘향산 보현사와 국제친선관, 용문대굴, 평양 시내 외곽에 자리한 고구려 시조 동명왕릉 등을 둘러보았던 당시 기억이 현재까지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85628" align="aligncenter" width="500" caption="평안북도 묘향산의 국제친선관"][/caption]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년 전 기억임에도 당시 방북 일정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기만 합니다. 언제 또 다시 남과 북이 서로 화해 무드 속에서 남한 사람도 자유롭게 북한 땅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엔 그리 머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개인적으론 중국이 아닌 북한 땅을 통해서 백두산을 오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6년 전 묘향산을 방문하는 길에 일부 일행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서로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북한 땅을 통해 백두산 정상까지 트레킹해 보자는 의기투합.


    그런 때가 조만간 오겠지요? 만추의 계절 11월에 들어서면 그 때 그 기억이 매번 떠오르곤 합니다.



    트레커

    프리 저널리스트이자 건축가. 산을 사랑하여 자주 트레킹과 도보답사여행을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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