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생겨난 이곳은 분화구 정상에서 반짝거리는 암석을 다이아몬드로 착각한 하와이 최초 발견자 '캡틴 쿡'에 의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오아후 섬 최고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이곳 '다이아몬드 헤드'의 이름은 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아닌 산 아래에서 위를 바라다보며 붙여진 이름이다. 반짝거리는 산 정상의 바위를 다이아몬드로 오인해 그렇게 불리었다니, 사계절이 온화하고 따뜻한 날씨인 오아후 기후로 보아서는 언제 보아도 푸르른 녹음으로 뒤덮인 이 산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와이키키 해변의 숨 막히는 절경과 빼곡히 들어선 호놀루루 주도(州都)의 아름다운 도시가 눈부시게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그것과 닮았다.
과거에 대한 해석이야 어찌 되었건 그 최고 몸값을 지닌 보석처럼 이곳은 언제나 오아후 섬 여행의 하일라이트로 손꼽히는 곳이다. 약간의 체력 소모를 해야 하지만 절대적으로 놓쳐서는 안 될 다이아몬드 헤드 여행을 위해 조금 알아보고 떠나도록 하자.
다이아몬드 헤드 여행의 시작
와이키키에서 다이아몬드 헤드 주립공원까지
오아후 섬 여행자의 대다수는 이곳 와이키키 해변을 중심으로 반경 3km 이내에 숙소를 잡는다. 물론 코올리나 해변공원 인근이나 호놀룰루 국제공항 근처 또는 에어비엔비를 통해 일부러 외딴 오지 체험을 경험하기 위해 도시를 벗어난 몇몇 이들을 빼고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오아후 섬 안에서 여행의 시작은 와이키키 해변을 기점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무난하다.
TIP. |
다이내믹한 감성 하이킹 코스
잘 짜인 한편의 시나리오 같은 하이킹 코스
하이킹 코스는 난이도 중급 정도로 왕복 2.5km의 비교적 짧은 구간이다. 하지만 짧은 구간이라고 얕보기엔 만만치 않은 경사의 오르막과 175개의 가파른 계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방문자 센터를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 놓여 있는 안내 지도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정상까지의 높이 232m. 얼마 되지 않은 이 짧은 구간에 뭘 이렇게 많이 그려 넣었을까? 늦었지만 묘사력 좋은 그 작가님께 경의를 표한다.
시골길을 걷는 것 같이 평온하게 시작된 하이킹은 이내 다이내믹한 순간들을 경험하게 해준다. 중국의 만리장성을 표현한 것만 같던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지나, 초등학생 시절 운동장 철봉을 만졌을 때의 향기를 연상케 해주는 난간을 꼭 잡아야만 했던 좁디좁은 길목. 그리고 어느 순간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경이로운 분화구의 모습을 감상하며 다채로운 다이아몬드 헤드 하이킹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계단을 오를 차례다. 등짝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숨이 가빠 오지만 그래도 희소식은 이 계단을 지나면 곧 정상이라는 점. 더욱이 계단을 오르면 잠시 지나치게 되는 용암동굴의 시원한 자연 쿨링 덕분에 정상에서의 기분은 더 상쾌해진다. 어느 정도 지칠 때쯤 잠깐의 여유를 만들어 주고, 더위로 짜증이 날 때쯤 시원함을 선사해 주며 여행자와의 밀당을 제법 잘 할 줄 아는 하이킹 코스다.
레아히(Leahi) 정상에서 만난 오아후
360도 파노라마 뷰에 반하다.
레아히(Leahi)는 다이아몬드 헤드 정상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다랑어의 머리 혹은 다랑어의 지느러미를 일컫는 이곳 원주민 언어였던 지명이 19세기 영국 탐험가들에 의해 지금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곳 정상에 올라오면 어딘지 '레아히'라는 이름으로 불러줘야만 할 것 같다. 때묻지 않은 청명한 하늘과 푸름 속 자연처럼. 하와이의 모든 인사로 통용된다는 '알로하' 인사말처럼. 이곳 역시 '레아히'가 찰떡처럼 잘 붙는다.
드디어 최고 정상인 232m에 다다른 순간이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이라면 최고봉에서 남기는 인생 사진을 위해 조금씩 양보의 미덕도 가지고 기다려야만 한다. 1970년대에 설치된 54개의 철계단이 마지막 관문이지만 여행자로 붐비는 요일과 시간대라면 여지없이 이곳에서는 치열하다. 세계 각국에서 각광받는 여행지이니만큼 정상에서 들려오는 언어 또한 무척이나 다양하다.
레아히 정상의 가장 큰 매력 중에 하나는 360도 파노라마 뷰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삥 둘러싼 화산 활동 분화구. 그중에서도 가장 정점에 위치한 덕분이다. 이 맑은 공기와 청량감. 오아후 섬의 끝자락 어딘가까지 내려다보일 것 같은 시정(視程).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체력 소모와 다이내믹한 하이킹 코스. 어디 하나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이곳에 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금도 나는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다시 생각해 보니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레아히 정상에는 화장실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이아몬드 헤드 관광 안내소가 있던 시작점 말고는 오르는 내내 화장실이나 음료수를 사기 위한 편의시설은 1도 없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황급히 숨어서 이용할 대자연 화장실도 찾아보기 힘들다.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360도 파노라마 뷰포인트기 때문이다. 늦게 언급해서 미안하지만 오르기 전 화장실 이용과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생수 한 병은 필수품이 되겠다.
다이아몬드 헤드의 맛!
파인애플 스무디 vs 무지개 슬러시
기본적으로 파인애플을 통째로 갈아만든 스무디는 일단 맛보아야 하고 아이들을 동행했다면 무지갯빛 슬러시도 피해 갈 수 없는 아이템이다. 더위를 뚫고 오아후 최고의 절경을 감상하고 난 뒤의 이 맛은 굳이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어떤 걸 먹어도 꿀맛 같은 테니까. 단, 잊지 못할 최고의 오아후 절경을 보여줬던 이곳을 기억하며 '다이아몬드 헤드의 맛'이라는 폴더 속 이름을 붙여둔다.
공간디자이너 겸 여행사진가! 겟어바웃으로 인해 이제는 본업 보다도 프리랜서 여행사진가라는 타이틀이 익숙해진 지구별 여행자. instagram.com/601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