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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쪽빛 바다 보러 니스로 떠나요

    밤비행이 좋아 밤비행이 좋아 2020.06.30

      여름 니스행   
    쪽빛 바다 보러 니스로 떠나요

    플로피 햇을 쓰고 화려한 색깔의 원피스를 입은 멋쟁이. 어깨에는 줄무늬 모양 에코백을 걸고 양손 가득 먹을거리로 가득한 가방을 흔들며 지나가는 남녀. 벌써부터 웃통을 벗고 쪼리를 찍찍 끌며 달려가는 남자아이들까지. 니스의 바다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활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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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프레이 창밖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나도 저들과 함께 바다로 달려갈까 하다가 니스 바다와의 첫 만남을 충동적으로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아직 내 상태가 니스의 아름다움을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에 살짝 띵한 머리와 비어있는 속을 좀 안정시키고 정신을 차린 후에 바다를 보러 가야 했다. 갓 짠 새콤달콤한 오렌지 주스를 꿀꺽꿀꺽 참 씩씩하게 마시다가 카페 직원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머쓱하게 눈을 돌리는 대신 씩 - 웃어줬다. 그리곤 입안 가득 고소하고 쫄깃한 크루아상을 씹으며 생각한다.

    ‘지금 이 카페 문을 열고 딱 2블록만 더 가면 바다가 있는 거야!’

    • Cafe Frei
      주소: 52 Rue de France, 06000 Nic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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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kaoTalk_20200531_200357974_75574197.jpg: 니스의 밥상, 카푸치노 한 잔과 크루아상 2개 그리고 신선한 오렌지 주스

    니스에서 머무는 이틀 동안 카페 프레이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관광지라 그런지 바닷가 주변엔 카페가 참 많다. 다만 이곳에서 카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런 카페가 아니다. 커피나 디저트류 만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식당을 겸하는 곳이다. 테라스에 앉아 한가롭게 커피 한잔하고 싶어도 약간은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커피만 마시는 내 테이블 주변의 포크와 나이프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빨리 원샷하고 엉덩이를 들어야 할 것만 같다.

    다행히 카페 프레이는 아침엔 한산하고 보다 전문적으로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화려하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다. 진한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꾸며진 화려한 인테리어는 이곳이 니스가 아니라 쿠바라 해도 믿을 법했다.

    KakaoTalk_20200319_221002146_66286194.jpg: 니스의 아름다운 해변

    8월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휴식을 의미한다. 가장 더운 이 한 달 동안 다들 남쪽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중에서도 니스는 파리지앵이 사랑하는 여름 휴양지다. 카페 프레이 맞은편 마세나 박물관을 지나 발코니가 매력적인 아파트를 두 블록만 더 지나면 새파란 수평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치 일부러 채도를 강하게 준 것만 같은 맑고 진한 하늘과 새파란 니스의 바다가 맞닿아 있다. 모든 게 파란 세상이 펼쳐진다.

    니스의 바다는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바다보다 진하고 파랬다. 강렬한 햇살을 뚫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신기하게도 바다 색깔이 3가지나 된다. 서서히 변하는 그라데이션도 아니고 중간에 색이 희미해지는 것도 아니다. 스카이 블루, 에메랄드 그리고 시릴 정도로 새파란 쪽빛. 모든 색이 뚜렷하다. 바다를 보고 있으니 이번 여행이 벌써부터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곧 헤어질 생각을 하니 이 바다를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거대 휴양도시임에도 니스는 꽤 간단하게 요약된다. 영국 산책로를 따라 펼쳐진 쪽빛 바다와 산책로의 끝에 위치한 니스성 그리고 그 밖의 레스토랑과 쇼핑몰이 가득한 골목들. 동선만 잘 짜면 하루 안에도 다 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나의 여행은 ‘효율’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굳이 정의한다면 ‘즉흥’이란 단어를 붙이고 싶다. 대부분 정보 부족으로 몰라서 그렇기도 하고 여행할 때만큼은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음… 시험 전날 굳이 방청소가 하고 싶어 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영국 산책로는 해안가 바로 옆에 조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산책로를 쭉 따라가면 길을 잃을 필요도 없이 바로 니스성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기차역을 먼저 들렀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헤매었다. 아마도 니스성으로 가는 가장 어려운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열심히 걷고 사진 찍고 헤매다 보니 올드타운이 나타났다. 가볼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가는 길에 나올 줄은 몰랐다. 굴곡진 좁은 거리와 작은 레스토랑과 오픈 마켓 그리고 경사진 빨간 지붕과 가깝게 붙어있는 건물들은 중세시대 도시를 연상케 하는 니스의 역사적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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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니스성까지는 꽤 걸어야 할 것 같아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뭘 먹을까 하다가 치즈로 채워진 피자와 브리또의 중간쯤 돼 보이는 플랫 브레드를 판매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겉으로 볼 때는 다 비슷한데 메뉴판을 보니 종류만 20가지가 넘어 뭐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맨 위에 있는 걸 골랐다. 제일 자신 있으니까 첫 번째로 넣어놨겠지 싶은 나름의 논리적인 결정이었다. 전날 와인 마시고 감기가 심해졌던 아픈 기억 때문에 시원한 생맥주를 함께 주문했다. 치즈와 루꼴라라면 환장하는 나에게 생맥주라는 생명수까지 주어지니 대낮부터 축제였다. 

    • 올드타운의 식당
      주소: 33 Rue Pairolière, 06300 Nic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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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구불구불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며 찾아가는 곳은 니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니스 성이었다. 이곳은 11세기 도시 주민들의 비상시 피난용 성채의 군사적 목적으로 언덕 꼭대기에 지어졌다. 즉, 니스만이 한눈에 보이는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성채는 18세기 초반 태양왕 루이 14세에 의해서 파괴되었고 지금은 공원으로 그리고 니스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전망대)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 니스성 전망대 폭포
      주소: 06300 Nice, France(Castle of 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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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하는 기분으로 이리저리 꺾여있는 계단을 오르니 어느새 산속에 들어와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니스성을 오르는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단다. 어쩐지 나 혼자 그 계단을 오르고 있더라니. 마지막 계단 끝에 올라서면 우거진 나무 사이로 니스 시내가 보인다. 좀 더 올라가 볼까? 폭포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이끌려 마지막 힘을 짜내 조금만 더 올라가면 터질 것 같은 허벅지와 가쁜 숨소리를 없애버릴 정말이지 감탄만 나오는 아름다운 니스가 그림처럼 하늘에 걸려있다. 처음엔 아무 생각이 안 든다. 그리고 이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림 속에서 여행잡지에서 보던 곳을 내가 실제로 보고 있다니. 이건 꿈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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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니스의 풍경

    엘리베이터로 오르든 직접 계단을 걸어 올라오든 니스성은 반드시 와봐야 한다. 이곳에서 내려가면 바로 영국 산책로로 이어지며 다시 바다가 펼쳐진다. 저 위에서 보았던 니스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저 아름다운 해안가에 나도 포함되겠다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하며 내려다보고 있을 사람들의 프레임에는 나도 추가되는 거야. 

    그렇게 나는 태양을 정면으로 맞으며 영국 산책로를 걷게 되었다. 오후 4시쯤 아침과 정 반대로 바뀌어 버린 태양 덕분에 난 잘 구워진 한 마리의 닭같이 되어버렸다. 이쯤에서 효율이 중요한가 즉흥이 중요한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타이밍이다. 뜨거움을 피해 잠시 산책로에서 벗어나 건물 사이로 숨어들었는데 재래시장이 서 있었다. 살레야 시장이다. 보통 각종 식료품을 주로 팔고 월요일은 골동품과 중고 물품들이 나온다. 내가 간 날이 딱 월요일이었다. 특이한 장신구, 오래된 명품 잡화 그리고 시디나 엘피판과 턴테이블까지 나와 활기찬 시장 분위기에 신비로운 기운까지 더해졌다.

    • 니스의 재래시장 살레야 시장
      주소: Metropolitan area, Nice, City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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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긋하게 도시를 헤매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해가 늦게 지는 유럽의 여름한테 이렇게 고마울 수가.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다시 바다로 나왔다. 슈트케이스 한구석에 조심히 쌓아 온 책들 중 한 권을 골라 아직까지도 따가운 햇살을 피해 쪽빛 바다만큼 파란 의자에 앉아 한 장씩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문득 고개를 들어 바다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선탠을 하던 여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가방에서 당당하게 브래지어를 꺼내 들었다. 놀라 주변을 흘끗거리는데 아무도 못 본 듯했다. 아니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걸까? 그녀는 굉장히 기술적으로  비키니 상의와 속옷을 바꿔치기한 후 원피스로 갈아입더니 짐을 챙겨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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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책을 읽다가 눈을 들면 쪽빛 바다가 보인다. 철썩철썩 - 불규칙적인 파도 소리에 책이 술술 읽힌다. 종종 저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의 희미한 엔진 소리와 수영하는 아이들의 즐거운 소리침. 여름의 소리다. 

    부드러운 바람에 펄럭거리는 파란 파라솔 끝자락 아래 나는 지금 니스에 있다. 나의 여름이 니스의 바다에서 시작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행복한 여름의 시작이다.

    밤비행이 좋아

    내 인생은 하나의 움직이는 축제에요.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걸 글로 옮겨요. brunch.co.kr/@avecr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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