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하면 본섬 하나만을 떠올리곤 하지만 제주엔 생각보다 많은 섬이 있다. 8개의 유인도와 55개의 무인도, 63개의 부속 섬 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섬이 많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바람과 파도가 잘 따라줘야만 갈 수 있으니 제주의 섬 탐방은 왠지 더 특별하게 느껴지곤 한다. 제주 본섬처럼 아름답고 또 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제주의 작은 섬, 섬 속의 섬으로 함께 떠나보자.
#1
제주의 섬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
모슬포항에서 25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면 닿을 수 있는 곳이 마라도다.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지만 태평양에서 배를 타고 대륙으로 들어올 때는 시작점이 되는 곳이다. 시작과 끝을 함께 한다는 의미만큼 많은 이들에게 특별함을 전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마라도의 면적은 0.3㎢, 해안선의 길이는 4.2km이고, 최고점은 39m이다. 한 시간 반 남짓이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할망당이다. 할망당(애기업개당)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옛날에 모슬포 해녀들이 여자아이인 애기업개를 데리고 물질하러 마라도로 들어왔다. 그런데 식량이 다 떨어지고 모슬포로 돌아갈 걱정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밤 한 해녀가 꿈을 꾸었다. 섬을 떠날 때는 애기업개를 놔두고 떠나지 않으면 모두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꿈이었다. 할 수 없이 모슬포로 떠나던 날 애기업개에게 심부름을 시키고는 모두 배를 떠나오고 말았다. 이듬해 다시 물질하러 가보니 애기업개는 애타게 기다리다가 죽어서 백골만 남아있었다. 그래서 해녀들은 자신들 때문에 희생된 애기업개를 위해 당을 짓고 1년에 한 번씩 제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섬을 찾고 떠나지만, 마라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인 만큼 종교시설이 갖춰져 있다. 재밌는 건 작은 섬 하나에 성당과 교회, 절이 하나씩 사이좋게 있다는 점이다. 특히 마라도 성당은 달팽이를 닮은 외관과 색감이 아름다워 여행자들이 꼭 찾는 곳이기도 하다.
마라도등대 또한 그렇다. 마라도의 등대는 마라도의 가장 높은 지대에 있으며 주변으로는 태양광발전 시설과 전 세계 유명 등대를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해양 문화공간을 볼 수 있다. 이 등대는 주변을 오가는 선박들이 육지 초인표지로 이용하고 있어 우리나라 영토를 알리는 중요한 표지이기도 하고 이 지역을 항해하는 국제 선박 및 어선들에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또한 한반도의 ‘희망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등대 근처에는 최남단을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85년에 세워진 마라도 상징 1호로 마라도의 관광 명소로 손꼽힌다. 온통 바다로 뒤덮인 섬 위에 있다는 것과 이곳이 비로소 남쪽 끝임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앞서 소개한 마라도 성당, 등대에 이어 여행객들이 꼭 들러 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어딘가의 끝과 시작이기도 한 이곳, 사진 한 장 남겨본다면 어떨까.
TRAVEL INFO - 마라도 주소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600 |
#2
제주의 섬
청보리의 섬, 가파도
가파도는 모슬포에서 남쪽으로 약 5㎞ 떨어진 섬이다. 마라도 갈 때와 같은 방법으로 모슬포 운진항에서 배를 타고 10분 정도 들어가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제주도 부속 섬 중 네 번째로 큰 섬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바다를 헤엄쳐 가는 가오리 모양을 하고 있다.
가파도는 관광객이 다소 적어 마라도 보다 한적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작은 곳이다. 푸른 바다와 색색의 돌들이 아름다워 눈길을 끌고 구릉 하나 없이 평평한 땅이 걷기에 제격이다. 섬의 가장 높은 곳도 20m를 넘지 않으니 걷기를 고집하기에 좋다.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섬을 가로지르면 30분, 바닷가를 따라 천천히 한 바퀴 돌아도 두 시간이면 충분한 섬이다.
푸르른 청보리밭
제주에서 가장 먼저 봄이 찾아오는 섬이 바로 가파도다. 겨울바람을 이겨낸 청보리가 바람에 일렁이면 봄이 왔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섬의 60~70%, 17만 평이 청보리밭이라 하니 그 규모를 실감하게 한다. 해마다 3월부터 5월까지 청보리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4월엔 무꽃을 볼 수 있으니 끊임없이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작은 섬에도 두 개의 마을이 나뉘어 있다. 하나는 여객선 선착장과 가까운 북쪽의 상동마을이고 다른 하나는 남쪽 포구의 하동마을이다. 두 마을을 잇는 길이 제주올레 10-1코스(4.3㎞)이기도 하다. 올레 코스가 지나가는 길에 이 청보리밭을 만날 수 있다. 작은 섬 안에 바람 따라 흔들리는 청보리밭을 거닐어 볼 봄이 기다려진다.
TRAVEL INFO - 가파도 주소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
#3
제주의 섬
이름도 모습도 다양해, 차귀도
차귀도는 고산리 해안에서 약 2㎞ 떨어져 있으며 면적이 0.16㎡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다. 죽도와 와도, 지실이섬 등 3개의 섬과 장군여, 썩은여, 간출암 등 작은 암초들로 이뤄져 있다. 차귀도는 경관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희귀한 생물 종이 많이 서식해 200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사진 속 계단은 배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모습이다. 이 계단을 따라 오른 뒤 커다랗게 섬 전체를 한 바퀴 돌아 걷게 된다.
차귀도는 예로부터 대나무가 많아 대섬 또는 죽도로 불려왔다. 현재는 무인도이지만 1970년대 말까지 7가구가 이 섬에서 보리, 콩, 참외, 수박 등의 농사를 지으며 살았었다.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와 연자방아, 빗물 저장시설 등이 남아 있다. 그때 당시에 사용하던 집터를 직접 볼 수 있다.
길 따라 이십여 분 걸으면 나오는 장군바위다. 사진 속 중앙에 위치한 것으로 죽도와 지실이섬 사이에 솟은 검은 바위다. 화산활동 때 화도에 있던 마그마가 분출되지 않고 굳어져 암석이 된 것이라고 하며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 할망의 아들 500명 가운데 막내라는 전설도 있다.
가쁜 숨을 내쉬며 걷다가 만난 차귀도의 등대다. 이 등대는 한경면 고산리 주민들이 손수 만든 무인 등대로, 1957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자동으로 어둠을 감지하고 불을 밝히고 있다. 이 등대가 위치한 ‘볼래기 동산’은 차귀도 주민들이 등대를 만들 때 돌과 자재를 직접 들고 언덕을 오르며, 제주말로 숨을 ‘볼락볼락’ 가쁘게 쉬었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가파른 이곳까지 등대를 손수 지어 만들었을 정성을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흰 등대가 푸르른 언덕 위에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섬의 정상도 그렇다. 탁 트인 바다와 푸른 풍경이 마음마저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독수리를 닮은 지실이 섬
차귀도 본섬을 다 봤다면 배를 타고 멀리서 나머지 섬들도 봐야한다. 본섬을 죽도라 부른다면 부속 섬이자 차귀도의 두 번째 섬을 지실이 또는 지시리 섬이라 한다. 이 섬은 보는 방향에 따라 독수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호랑이가 울부짖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 독수리 바위와 범바위로도 불린다. 배를 타고 멀리서 본 지실이 섬이다. 날개를 펴고 막 날아가기 전의 독수리처럼 보인다.
또 하나의 부속 섬인 와도다. 와도는 누운 섬이란 뜻으로 만삭의 여인이 손을 포개고 누워있는 형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사진 왼쪽으로부터 얼굴 가슴과 배로 이어진 듯한 모습인데 말 그대로 누워있는 듯한 모습이다. 신비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름도 모습도 다양한 차귀도, 아름다운 제주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TRAVEL INFO - 차귀도 주소 제주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
매일 무언가를 쓰는 사람 담차입니다. 책, 차, 고양이와 여행을 좋아합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한 뒤 <겨우 한 달일 뿐이지만>을 펴냈습니다.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 귀 기울이며 글을 쓰고 기록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