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이 이끄는 곳으로의 여행
일본 나라 현으로 가자
내게 있어 나라는 두 번째 방문하는 곳, 그때마다 관심사는 한결같이 '사슴'이었다. 물론 나라는 사슴 외에도 볼거리가 넘치는 곳이지만, 늘 내 관심은 사슴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이 사슴이란 동물이 예상과는 달리 좀 많이 과격(?)하단 것. 이미 2년 전에 겪은 바 있어 새삼 놀랄 일도 아니지만, 나라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충격 아닌 충격(!)을 받게 되곤 한다. 과격하다 못해 집요함이 느껴지는 나라 현 사슴들을 모습을 기록했다.
나라의 상징, 사슴
나라로 출발하기 전 일본사람에게 물어봤다. '나라에 무슨 볼거리가 있어?' 그럼 곧 대답이 돌아온다. '사슴'.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일본 사람 열에 아홉은 그리 대답할 것이다. 나라에는 동대사(東大寺, とうだいじ)라고 불리는 커다란 절도 있고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かすがたいしゃ)라는 멋진 신사도 있건만, 대부분의 사람 머릿속을 차지하는 이미지는 '사슴'이다.
이 사슴들은 나라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참으로 쉽게 발견한다. 말 그대로 여기저기에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있는 거다. '동네 사슴'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 없을 정도로 정말 막 다닌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동물원에서 혹은 서울숲에서 만나는 사슴들과 뭔가 좀 다른 종류일까? 아니다. 그냥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슴이건만, 이들은 너무나 편하다. 나라 전역이 자신의 집인 것처럼.
왜 사슴이었을까?
▲가스가타이샤에서는 사슴과 관련된 것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그런 의문이 든다. 왜 나라에는 사슴이 많은 걸까? '사슴 명소'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그럼 나라 어딘가에 커다란 사슴 사육장이 있는 걸까? 그런 별별 생각을 다 하다가 알게 된 나라와 사슴의 상관관계는 옛날 옛적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사슴 오미쿠지, 600엔
과거 이바라기 현에 있는 신궁의 제신이 사슴을 타고 나라로 왔고 그 후 사슴은 가스카타이샤의 신의 대리인(神使)이 되어 계속 소중하게 보호되어 온 것. 1957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나라에서는 더욱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으니 나라에서 사슴을 소중하게 보호하는 것은 그들이 신을 위하는 마음과 연결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사슴은 들이받는다
사슴이 곳곳에서 돌아다니다 보니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표지판을 만나곤 한다. 도로로 뛰어드는 사슴을 조심하라는 의미의 표지판과 관광객들이 사슴을 만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적어놓은 표지판이 그러하다.
주의사항 표지판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언가 너무 간단(?)한 동사 표현으로 쓰인 내용과 귀여운 사슴 일러스트가 인상적이다. 이것 또한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재미로, 어린 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함일까 싶다가도 '돌진' 'Knock down'이란 부분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사슴은 문다. 사슴은 때린다. 사슴은 들이받는다. 사슴은 돌진한다. 그러니 모두 나라에서는 조심!
먹지 마세요, 사슴을 위해 양보하세요
▲사슴센베 150엔
나라의 사슴은 오랜 시간 사람과 함께 공존하면서 지내오다 보니 일반적인 사슴과는 달리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온순하다. 그럼 왜 앞서 말한 주의사항 표지판이 있는 것일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사슴 센베(鹿せんべい)'가 그들을 과격하게 변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귀여운 사슴들에게 점수를 한번 따 보겠다고 센베를 사서 돌아서는 순간, 어느샌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다가와 있는 사슴에 깜짝 놀랄 거다. 아마 이때가 '사슴이 뭔가 무서워'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아닐는지. (내가 그랬다.) 이후 사슴 센베를 든 손만 졸졸 쫓아다니며 주둥이를 들이대는 사슴들을 보며 '문다, 때린다, 들이받는다, 돌진'의 의미가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피리 부는 소년이 된 기분으로 사슴떼를 끌고 다니게 되는 진귀한 경험을 자연스레 하게 되니 너무 놀라지 말길. (나는 매우 놀랐지만.)
가자, 사슴을 따라서
봄이 코앞까지 찾아왔다. 그렇다면 설렘을 안은 봄바람과 함께 여행을 떠나야 할 계절이다. 봄이 어울리는 장소야 한 두 곳이 아니겠지만, 봄의 공식을 써내려가기에 나라만큼 멋진 곳도 없다. '봄+벚꽃+사슴 = (기억에 남을 여행)' 이라고 써도 무방할 테니. 때론 과격하기도 한 사슴들이지만, 어느 곳보다도 사람에게 온순한 그들이 함께하는 여행. 나라 어느 곳을 먼저 볼지 계획을 세우는 것은 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사슴을 만나고 그들이 이끄는 곳으로 가자. 그 끝에는 늘 나라의 멋진 관광지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 취재 : Get About 트래블웹진, 하나투어, 일본 킨키일본철도주식회사의 지원으로 다녀온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