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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땅의 끝, 바다의 시작! 카보 다 호카

    지란지교 지란지교 201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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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럽, 풍경

     

    땅의 끝, 바다의 시작

    호카 곶 Cabo da Roca

     

    인간들은 물리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개념이나, 이것과 저것의 경계에서 의미를 찾는 것을 좋아한다. 
    '최고로 높은', '가장 오래된', '세계 최대', '가장 끄트머리' 등 말이다.

    인공위성도 없었고, 위도 개념도 확실하지 않았던 2천여 년 전의 고대 로마시대부터 이미 '땅의 끝'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다. 
    바로,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북서쪽으로 42km 에 위치한, 대서양을 향해 볼록 튀어나온 지점인  '호카 곶 (Cabo da Roca)' 이다.

    ※ 포르투갈에서는 알파벳 'R'을 'ㅎ'에 가깝게 발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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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호카 곶을 찾기 전까지, 나는 그 '대륙의 끝'이라는 수식어에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지극히 유럽적이고 서구중심적인 단어라 생각을 했다. 바다와 면하고 있다면, 어디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모두가 대륙의 끝일텐데 말이다. 게다가 그 '대륙'이란 개념은 그들이 살고 있는 유럽 땅만을 기준으로 한다!

    물론,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야 바다 넘어 또 다른 세상이 있는지 확인도 못했던 시기일테니 당연한 표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근현대에 들어서도 대륙의 끝이라 불리는 걸까! 시(詩)적이고, 상징적 표현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서구 중심의 은유에 우리도 동조해야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면서 '궁시렁 궁시렁' 호카곶으로 향했다.    

    북위 37도 47분, 동경 9도 30분.
    유라시아 지도를 평평하게 폈을 때 가장 왼쪽으로 나온 지점인 이곳은 그냥 '대륙의 끝'이 아니라,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이라고 해야 오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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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카 곶에서 북쪽을 바라본 풍경

     

    나는 지금 땅의 끝이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에 와 있는 것이라며 다소 유치한 자존심과 민족주의적 발상을 내세우며  호카 곶에 발을 디딛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다. 아찔한 해안 절벽 밑으로 대서양의 파도가 거칠게 숨을 몰아 쉬고 있는, 너무나 경외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게다가 대서양으로 뾰족히 들어간 땅은 바다의 바람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는 마치 뱃머리와도 같다고 해야할까? 게다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몰아쳐 왔다. 이 곳에는 오로지 바람과  화강암 절벽, 그리고 강풍을 이겨내고 있는 낮은 키의 초목들만 존재하고 있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정말 미약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더 이상 어디로 발을 내딛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지리적 특성.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이 분위기.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땅의 끝'이자 '세상의 끝'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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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화한 지중해만을 봐온 고대 로마인들이 이 멀고 먼 로마 속주의 땅까지 와서  마주하게 된, 거친 대서양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기원전 1세기, 집정관이 되기 전 이베리아 반도 원정을 한 바 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분명 이 대서양을 만나봤을 것이다. 거친 파도와 사나운 바람, 무언가에 의해 절단된 듯한 절벽은 충분히 '세상의 끝'이라 느낄만한 모습이었으리라.

    세월이 흘러 1500여 년이 지난 후, 이 바다에서부터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었다. 거친 파도가 집어 삼키려고 대들고 바람이 사납게 짖어대도, 목적이 확실해진 인간의 의욕은 아무도 꺾을 수가 없었다. 공포의 공간을 넘어 저 미지의 세상으로 향하면 일확천금과 새로운 시대가 열리리라! 여기서 발걸음을 멈추면 유럽의 남서쪽 변방에서 조그만 점으로 남는 것이고,  크게 숨 한번 들이켜고 대차게  나아간다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를일인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브라질, 북아프리카, 더 나아가 현재의 동남-북아시아까지 (무력도 동원하며) 그네들의 물질적 텃밭으로 만들었고, 그 텃밭에서 퍼온 여러 작물과 광물,향신료 등을 토대로 전무후무한 '그들만의'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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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땅 끝 지점을 상징하는 십자가석비

     

    그 황금기의 희생양은, 포르투갈 범선이 닿았던 여러 지역의 주민들만은 아닐 것이다. 평범한 포르투갈 자국민들도 마찬가지였터. 항해의 왕자 엔리케 왕자, 인도항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 가마 등 오직 소수의 리더들만이 후대에 기억될 뿐이지만, 그들을 따라 나선 수많은 선원들은 배에서, 망망대해에서 혹은  머나먼 이국 땅에서 비명횡사하기 일쑤였다. 거친 바다로 남편과 아들을 보낸 부녀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신에게 기도하는 것. 이런 점이 포르투갈에서 가톨릭이 더 강하게 뿌리내린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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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십자가석비에는 이 지점의 위도와 경도와 함께 카몽이스의 싯구가 새겨져 있다.

     

    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ça...

    대항해시대가 가져다 준 포트투갈 문예부흥기에 활동한 포르투갈의 국민시인 '카몽이스(Camões)'는 이 호카 곶을 가리켜 '여기가 바로 땅의 끝이면서 바다의 시작'이라는 유명한 어구를 남겼다.

    이 의미는 중의적이지 않았을까? '땅의 끝'이란 지리멸렬하고 끔찍히도 배고팠던 중세의 끝, '바다의 시작'이란 그들에게 발견되어진 새로운 땅과 그 곳에서 퍼와서 자국 땅을 채움으로 인해 풍요로와진 신세계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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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 특히 이 '땅의 끝'에서 바라본 대서양은 어딘지 더 특별하다. 바람이 강하게 내 몸을 타격하기에 온전히 서있을 수도 없는 '거친' 시간이었지만,  그 때의 내눈에 들어온 바다는 이런저런 생각을 안겨준다. 역사의 모호성과 모순에 씁쓸해지기도 하고, 그리고 지금의 나는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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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카 곶 주변의 건물은 이 '등대'와 위 사진에는 나오지 않는 조그만 '관광 안내소'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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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카 곶에서 내륙 쪽으로 쳐다보면, 옹기종기 작은 마을들이 있다. 그야말로 '땅 끝 마을'일 터. 

    신트라에서 호카곶까지 버스를 타면 약 30여분 정도 소요되는데, 이런 마을들 사이를 빙빙 돌면서 호카곶에 도착하게 된다. 지루하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조그만 마을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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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카 곶은 바다 절벽 위로 평평한 지대가 펼쳐져 있다. 그 위에는 산책로가 있어 대서양의 시원하다 못해 거의'장풍' 수준의 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다. 이 지대에는 오로지 땅에 붙어 나직하게 자라는 초목들만 있다. 낮은 들풀 사이로 군데군데 막사국이라 불리는 야생화가 애처롭지만 강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크고 길거나 인간의 눈에 화려한 나무들은 자랄 수 없다. 거친 풍파를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는 조그만 녀석들 뿐이다. 그들의 연약하지만 굳건한 모습이 나에게 오히려 큰 위로를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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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전부다. 시끌벅적한 위락시설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생각' 혹은 '사색'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곳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정 반대편, 조그만 동아시아의 나라에서 찾아왔고 대자연 앞에 티끌처럼 미미한 존재인 내가, 어떻게 이 최서단의 땅까지 밟아보게 되었을까. 웃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대항해 시대, 몇 달에 걸쳐 목숨 걸고 나아갔을 거리를 마음만 먹으면 하루 이틀로 올 수 있게 된 오늘이 감사하기도 했지만, 지나간 과거의 영혼들에게 숙연한 마음도 들던 하루였다.

         

     

    INFORMATION

     

    호카곶 관련 Tip

    -  호카곶 관광사무소에서는 원한다면 유럽 대륙 최서단에 왔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발급수수료는 1장짜리가  7유로이다.
        하지만 비추천. 큰 의미도 없고, 여행 중에 거추장스러워질 것이 분명하다!    

    - 오후 늦게 시간을 잘 맞춰간다면 '대륙 최서단'에서의 일몰도 감상할 수 있다! 

     

    호카곶 가는 법은? 

    - 리스본에서 신트라(Sintra)까지 기차를 타고 간 후, 신트라 옆 앞에서 403번 호카곶 행 버스 탑승

    - 신트라에서 30여 분 버스를 타고 내리는 곳이 관광안내소에서 하차

    - 관광 안내소에서 바다를 향해 조그만 걸으면 위에 소개한 십자가석비가 보이는 호카 곶, 즉 '최서단' 지점이 나온다. 

     

    지란지교의 포르투갈 여행  Tip

    신트라 -호카 곶- 카스카이스 일정은 당일치기 리스본 근교 여행 코스로 유명하다.  이 세 지역은 리스본 호시우 기차역에서 구입한 1day 패스(Viva card) 로 모두 다닐 수 있기 때문.  이 패스로 리스본-신트라 행 기차, 신트라-호카곶 버스, 호카곶-카스카이스 행 버스, 카스카이스-리스본 기차 모두 탈 수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을 하루에 답파하려면, 새벽같이 리스본에서 출발하거나 신트라 시내 중심지의 볼거리를 생략하거나 혹은 호카곶의 일몰을 포기해야 한다. 장소 이동에 급급해서 대충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곳이 많으므로, 하루에 다 못다니더라도 시간적 여유를 갖고 다니길 바란다. (원데이 패스의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는 여유도 함께!)

    내가 이 곳을 다시 간다면, 신트라에서 오후 늦게까지 천천히 있다가 호카 곶으로 가서 일몰을 본 후 다시 신트라로 와서 1박을 하겠다. 그리고 다음 날 카스카이스로 가서 오전 중에 둘러본 후, 리스본으로 되돌아가서 오후 시간을 살려보겠다.

      

     

     

     

    지란지교

    지난 수년간 공연장에서 클래식 연주회를 기획하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아이와 함께 삶을 앙상블하고 있는 아줌마. 특별히 문화와 예술적 시각의 여행을 지향한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순간을 더욱 즐긴다. 그곳의 즐거움 뿐만 아니라 아픔까지도 나누고 싶다. http://contenter.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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